이웃님들! 반갑습니다.

'다윗의 서재'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vaid_library)을 오픈했습니다.

상기 링크를 클릭하시거나 유튜브에서 '다윗의 서재'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좋은 책과 작가를 소개하겠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 는 믿음과 도전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낯뜨겁지만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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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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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시민의 책을 즐겨 읽는다. 잘 알다시피 나는 그의 정견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탐독하는 건 그의 말과 글이 논리와 재미 면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유시민만큼 지식을 언어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잘 호흡하고 전달 능력이 탁월한 지식인이 흔한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지식은 더 단단하고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반대자의 탄탄한 논설은 미처 생각지 못한 내 견해 너머에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준다. 내가 유물론자이자 진보주의자이며 진화론자인 유시민을 '어색하게' 좋아하는 이유다.

유시민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흥미로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문과 출신인 저자가 자신의 비전문 분야인 과학을 다루었다. 여태까지 많은 책을 집필해왔지만 과학 관련 책은 단 한 권도 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과학 이야기를 들고나온 건 순전히 아내 한경혜 박사 덕분이다. 자신의 유튜브 도서 비평 방송 '알릴레오 북스'를 소재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수학사를 전공한 아내가 중간에 조정하여 기획하게 된 것이라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서문부터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에 불과하다고 안전장치를 깔아두는 저자의 너스레가 요란하다.

이 책은 크게 여섯 장으로 나누어 과학을 얘기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이후 각 장마다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각 파트별 과학 분야의 개념이 설명될 때는 지루함과 난해함이 교차되는 것 같다가도 저자의 언어로 해석과 리뷰가 가미될 때는 흥미롭게 읽힌다. 과거 『청춘의 독서』에서 여러 고전을 소개했던 것처럼 여러 과학의 법칙과 뒷이야기를 저자의 시각으로 리뷰했다. 저자 특유의 입담이 글에도 잘 녹아 있어 독자를 과학의 세계로 촉촉이 견인한다.

초반부터 흥미롭다. 2장 '나는 무엇인가'에서 뇌과학을 다루며 칸트를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에게도 칸트 철학은 도저히 범접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명저라고 불리는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려다가 몇 장 넘기다 책장을 덮은 기억이 수도 없다. 저자도 그랬던 듯하다. 저자는 칸트의 난해성에 대해 문장은 철학적인데 내용은 과학적이라는 데서 찾는다. 『순수이성비판』 서론부터 물리학·기하학·대수학·생물학 용어가 출몰하고 본론 '선험적 원리론'에서 감성·직관·개념·감각 등의 개념이 과학적 용어와 뒤섞여 독자를 곤욕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칸트의 인식론을 양자역학에 대입해 풀이하기도 한다. 결국 (과학적이진 않았지만) 칸트가 옳았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화학을 다룬 4장이다. 최근 환경과 기후 문제로 이슈가 된 탄소에 대해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탄소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다들 탄소를 비난하고 미디어에서 탄소 때문에 인류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로 이는 탄소에 대한 지나친 혹평이라고 탄소를 대변한다. 탄소야말로 화학적으로 유능한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탄소에 대한 저자의 변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탄소가 중도라는 건 원자번호 6번으로 주기율표 왼쪽 오른쪽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 원자핵과 전자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잘 깨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지도 않다.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이런 성격(성질) 때문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된 것이다.

저자의 강력한 변호가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 탄소라는 사실 자체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저자가 서술했듯이 탄소가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지구에 존재했었으나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게 풀려나 산소·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 위기가 생긴 것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 규제 및 동결 정책의 핵심은 탄소가 산소와 수소와 결합하지 않도록 최대한 줄이고 주의하자는 메커니즘이다. 지구에 석유가 남아도는데도 전기 자동차로 인간의 이동 수단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기 배터리와 자율주행을 위한 AI, 반도체 기술의 도약적인 발전과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패권의 구조적 변화 등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탄소의 중용의 도(道)를 알고 난 후 숯불에 고기를 굽다가 손과 얼굴에 검댕이 묻어도 예전처럼 닦아내지 않고, 어두운 자기 피부색에 대한 불만도 줄었다고 하는 저자의 너스레는 흥미를 넘어 코믹하기까지 하다.

뒷부분에는 물리학과 수학을 다룬다. 물리학을 다룬 5장에서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엔트로피 법칙, 빅뱅 등을 일반 독자의 수준에서 쉽게 정리했다. 양자역학을 불교와의 유사점으로 풀이하고 과거 청년 때 열심히 공부했던 유물변증법에 대입한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 거대하고 복잡한 과학 이론을 대하는 저자의 지적 겸양이 이번 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겸손함은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6장에서는 몹시 아름답지만 오직 천재들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수학에 대해 할애했다.

서평을 마무리하면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읽기에는 적절치 않을 듯하다. 저자 스스로 '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이라 표현할 정도로 겸양을 떨기는 했으나 실제로 과학의 각 분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과학 전공자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독자에게는 심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저자의 강점인 인문학 잡담이 가미된 건 덤이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독서, 여행에 이어 과학에까지 글쓰기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가 유시민의 '확장'을 지지한다. 그의 말과 글은 언제나 여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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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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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은 거의 찾아보는 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상은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며 스토리가 탄탄한 소설이 주로 선정된다. 초기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너무 재미있고 흡입력이 있어 드라마 <선덕여왕>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백영옥의 『스타일』,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는 각기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문학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재미'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세계문학상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보편의 문학적 기호를 담아내고 걸러내는 관문의 역할을 잘 수행해왔다. 내가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탐독하는 이유다.

제19회 세계문학상은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수상했다. 소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이 나라 대한민국의 서민 가족의 이야기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 간병의 문제를 해학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묵직한 주제가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통해 더 진지하게 고찰하게끔 만든다. 독자는 웃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오금이 저리기도 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관통한다. 작가의 탁월함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아파트 옆집에 사는 중년 여성 명주와 젊은 청년 준성이 각자 치매와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모를 홀로 감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이와 성별과 상황이 다르지만 둘의 중요한 공통점은 경제력이 여의치 않은 채 홀로 노부모의 간병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13평 임대 아파트에 홀로 사는 모친을 간병하는 50대 여성 명주의 삶은 비루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대리운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26세 청년 준성의 삶도 박복하긴 마찬가지다. 소설은 두 화자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다가 어느 결정적 시점에서 만나 이야기의 절정을 이룬다.

소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으로 흘러간다. 명주는 엄마의 연금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숨긴다. 엄마의 시신을 아마포로 둘러싸 미라로 만들어 작은방에 모신다. 준성도 마찬가지다. 욕실에서 넘어져 사망한 아버지의 시체를 어떻게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결국 명주의 도움으로 사체은닉 공범이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범죄가 그저 '죄'로만 보이지 않는다는데 이 소설의 핵심이 있다. 작가의 문제 제기는 간명하다. 치매와 뇌졸중과 같은 노인 중증 환자의 간병을 오직 가족에게 일임하는 게 옳으냐, 하는 것이다. 결코 남일 같지 않고 남일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를 작가는 흥미진진한 픽션으로 풀어냈다.

명주와 준성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이지만 보다 궁극의 화자는 명주다. 시간 순서상으로 먼저 범행(?)을 일으켰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자의식이 강하게 묻어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남동생의 이른 죽음, 이혼과 화상 사고 장애 등 어느 누구보다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그 처절한 현실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자신과 엇비슷한 처지의 준성을 설득해 '공범'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명주라는 캐릭터를 적극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단순하고 엽기적인 돌아이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엄마의 시체를 은닉하면서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라며 묵직한 한방을 날릴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명주의 일갈은 작가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의 구조, 즉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엄마를 미라로 만든 명주의 비밀이 들킬랑 말랑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정체불명의 남자가 명주의 집으로 전화해 "당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다"며 협박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소설의 성격은 미스터리로 전환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며 읽는 묘미가 제법이다. 부양과 간병이라는 우리 사회의 무거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되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은 누추한 양심 어딘가에 한 번쯤 상상해 봤을 조악한 인간성을 그려냈다는 것에 이 소설의 생명력이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더욱이 치매와 같은 병은 아무리 효자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인간성 너머의 시험 거리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젊은이보다 노인이 많은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우리 사회도 간병과 부양의 문제를 세밀하고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명주와 준성처럼 부모의 시신을 유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그 지옥 같은 일상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준성이 술 취한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상으로 아버지를 때려죽이고, 그 죄책감에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부양과 간병의 문제에 신음하는 우리 주변의 여러 사람들의 불편하고 내밀한 '진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첫 장편이다.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이 집필에 토대가 되었다 한다. 코로나 시기 때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75일 동안 간병하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암묵지가 소설 속 명주와 준성의 특질에 투영된 듯하다. 간병 일 자체의 디테일은 모르겠으나 노부모 간병을 어려운 조건에서 홀로 떠안은 사람의 존재론적 고뇌와 감정이 잘 살아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부양과 간병의 문제를 천착했다. 나에게도 아직까지는 건강하시지만 곧 팔순을 앞두고 계신 아버지와 허리가 좋지 않아 주기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니가 계시다. 그렇기에 외아들로서 많은 사유가 남았다. 개인의 책임인지 국가의 과제인지 논하기 앞서 인간성의 본질과 상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곱씹었다. 이 무거운 메시지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연금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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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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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키우고 있다. 큰 딸의 사춘기 진입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에 비해 말수가 줄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짜증을 많이 낸다는 걸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꿀밤을 한대 갈겨주었을 텐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히 여자아이의 사춘기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과 공부 없이 지나치기에는 아빠로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책 몇 권을 골랐다. 우리 시대 가장 잘나가는 젊은 작가 손보미의 신작 『사랑의 꿈』은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다.

『사랑의 꿈』은 단편 「불장난」으로 작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6개의 단편이 미세한 연결로 이어져 있고 동시에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로 배치되었다. 표제작 「사랑의 꿈」을 제외하고는 전부 10대 초중반 여자아이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화자들은 십 대 소녀의 기분과 감정을 잘 대변한다. 그 나이대의 관찰과 생각으로 타자와 세계를 파악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읽힌다.

여섯 편의 단편이 공유하는 미세한 연결고리는 '정우맨션'이라는 아파트다. 사실 이 소설이 왜 '연작소설'로 분류될까 의문했다. 사건 연관성이 있는 단편을 모아 하나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장편의 분량을 구축한 소설을 통상 연작소설로 부르는데 이 소설은 각 단편마다의 연결고리가 극히 희박하다. 그나마 연결고리가 있다면 정우맨션이다. 어렸을 때 각인된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유달리 오래간다. 나도 35년 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토요일마다 가재를 잡았던 안양유원지를 생생히 기억한다. 또 평일 방과 후 '더블 드래곤'이라는 게임을 했던 관악역 앞 오락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유년 시절의 장소는 당시의 추억을 고스란히 정지 화면으로 이미지화하여 뇌에 아로새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소설에서 정우맨션이 갖는 독특한 위치다.

『사랑의 꿈』에 등장하는 10대 소녀 중 일부는 가정의 파괴를 겪는다. 부모가 이혼(「불장난」)했거나 삼촌 집에서 길러지거나(「밤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으려 하거나(「사랑의 꿈」) 등 상처가 있는 가정들이 배치된다. 가족의 분열이야말로 어린 시절에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존재론적 균열이다. 아이는 그 균열을 통해 망가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의 극복을 통해 슈퍼맨이 되기도 한다. 친구를 향한 동경과 첫사랑의 발견 등 그 시절 여성으로서 외부 세계를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는 동인도 소설은 다룬다다. 아프기도 하고 눈부시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기도 한 유년 시절의 불가해함을 작가는 노련한 필치로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 「불장난」에 유독 많은 감정이 이입되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이라는 외연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 아파트 옥상에서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한다. 다만 소설과 다른 점은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의 차이다. 소설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라이터로 옥상에 올라가 종이를 태운다. 훗날 중학생이 되어 과거의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장면이라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하지도 않은 남의 이불을 태웠다는 오해와 모략을 받아 소위 개 패듯이 맞았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 있다. 소설 속 아이는 불장난을 통해 자신을 괴롭힌 수치심과 굴욕감, 외로움을 연소시켰을지 몰라도 과거의 나는 단순한 불장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로부터 확증편향을 당해 이웃의 이불을 태워버린 방화범이 되었다. 「불장난」을 읽는 내내 그때의 억울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첫사랑」과 「이사」는 과외 선생과의 관계를 통해 겪게 되는 주인공의 성장통을 담았다. 「첫사랑」은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 오빠가, 「이사」는 주인공과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중학생 언니가 과외 선생으로 등장한다. 부모 외에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처음 겪은 타인을 향한 신비로운 감정은 결국 비루한 진실 앞에서 폭파되고 해체되어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양태된다. 세상 모든 아이가 겪는 고통,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것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참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다양한 성장통의 모습이 1인칭 시점의 발군의 묘사로 그려졌다.

소설의 막장을 덮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연약하지만 다채롭고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 속에 포함되어"(192쪽)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사춘기는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다. 기성세대로서 십 대 시기의 특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위태로움에 대한 방어기제로 그 시절을 재단하려 하지 않았는지 자문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딸아이의 사춘기 입성에 맞춰 아빠로서 그 시절 여자아이들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집어 든 책이다. 최근 부쩍 말수가 줄고 가끔 내뱉는 말조차도 엄마와의 신경전에 대부분 소비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연약하면서도 다채롭고 위태로우면서도 맹렬한 세계에 진입되고 있는 내 딸의 여정이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한다. 엄청난 성장과 함께.

서평을 정리하자. 반추해 보니 너무 감상적인 서평이 되었다. 앞서 고백한 내 진지한 현실이 반영된 탓일 게다. 픽션이 논픽션보다 진실되다는 평소의 내 독서 철학을 거뜬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보미의 소설 『사랑의 꿈』은 압도적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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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오랜만에 아이들과 책장 정리를 했습니다. 추가되는 책은 많아지는데 순서에 맞게 꼽아놓지 않아 체계 없는 중구난방의 책장이었지요. 차일피일하다가 아이들이 도와준다고 하여 잽싸게 작업했습니다. 제 책장은 양면으로 되어 있는데 침대가 있는 전면은 문학으로 채웠고 장롱이 있는 후면은 비문학으로 채웠습니다. 이마저도 공간이 부족하여 첫째 딸 방에 별도 책장을 설치해 제가 가장 아끼고 영향을 준 명저들, 즉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카뮈, 위고, 폴 존슨의 저작들을 따로 구분해두었지요.

문제가 되는 건 안방 책장의 한국문학이었습니다. 가나다순의 작가명 배열이 완전히 파손되어 공선옥부터 현기영까지 순서대로 맞췄고 제가 좋아하는 공지영, 신경숙, 오소희, 김훈 작가는 별도 구획으로 모아놨습니다. 그리고 문학 내에서도 소설과 비소설을 나누어 일반적인 에세이, 즉 여행후기와 산문집 같은 책은 작가명과 무관하게 별도로 묶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와주어 금방 끝날 수 있었지요. 이제 남은 건 후면의 비문학 도서―주로 인문학 서적―를 손보는 일입니다. 워낙 책이 많고 먼지도 많아 하루 반나절을 소요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즐겁게 도와주겠지요.

한국문학을 정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참 많은 한국 작가들을 만났구나. 결혼 전 가장 많이 읽은 게 한국소설이었습니다. 비 오는 금요일 밤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김훈의 『남한산성』을 벌벌 떨며 한달음에 읽은 기억은 아직도 선연합니다. 박민규는 한국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작가이고, 공지영은 내가 관심 갖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김별아의 에세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힐링'이었고 『달의 제단』을 위시한 몇 권 안 되는 심윤경의 소설은 나에게 하나의 독특한 '브랜드'로 심어졌지요. 신경숙의 문체와 이문열의 무게는 여전히 저를 압도하지요. 한국소설은 여전히 찬란합니다.

고전과 인문학으로 이탈했던 제 독서를 응시하면서 이제 한 달에 한두 권씩은 꼭 한국문학을 만나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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