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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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인 줄 모르고 구독했다. 원래 책을 읽기 전에 사전 검색을 하지 않는 편이다. 과거 작가의 에세이가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저 그렇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 모음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 예루살렘에 간다고. 아차 싶었다. 그제야 책 표지가 보였다. 황량한 사막 위에 솟은 성스러운 교회 사진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감동적인 에세이다. 공 작가가 이렇게 산문을 잘 썼나. 오래전부터 작가의 팬이었지만 나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왔다. 조금은 냉정하다고나 할까. 소설가로서 공지영은 인정해도 산문가로서 공지영은 쉽게 인정 못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풀어내는 작가의 '글결'이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 에세이는, 너무 좋았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공지영의 예루살렘 순례기이다. 작가는 수년 전 모든 sns 활동을 접고 서울을 떠나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배경이 된 후 '문학의 성지'처럼 여기던 곳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균열에 빠진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던 어느 날 한 후배의 부고를 접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동경해온 예루살렘 순례 길을 결심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작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기에 가능했지만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 강, 쿰란,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을 차례로 순례한다. 예수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죽음, 부활의 역사를 훑는다. 국경을 이동할 때마다 예수의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쟁 지역의 삼엄함을 목격한다. 여러 성소를 방문해 걷는 동안 성경을 묵상하며 거기에 자신의 삶을 포갠다. 작가에게 예루살렘의 글라라 수녀원은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안정된 수도자의 길을 버리고 오직 예수를 닮고자 했던 샤를 드 푸코 성인의 흔적이 담겼다. 작가는 푸코 성인의 삶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추적한다.

작가의 대표 에세이 『수도원 기원 Ⅰ·Ⅱ』의 계보를 잇는 듯하지만 결은 다르다. 두 책 모두 기독교(가톨릭) 신앙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다만 『수도원 기행』이 외부로부터 제안받아 기획되어 기행문 콘셉트가 강한 반면 이 책은 자전적 성찰에 더 방점을 두었다. 작가 스스로 그렇다 할 동기 없이 무심코 떠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글쟁이로서의 존립 위기의 한가운데서 출발한 순례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전보다 더 자유화한 작가적 고백과 성찰이 돋보인다. 미혹적 문장이 이끄는 울림이 대단하다. 완성형 에세이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작가는 한없이 낮아지는 자아의 현존을 느낀다. 작가가 전 인생을 통틀어 깨달은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을 예루살렘에서 더욱 명징하고 밀도 있게 받아들인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이 알고 믿은 것이 실상 거짓과 위선에 가려져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안 충격은 비단 작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 작가의 통찰을 재청한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걸.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 믿음의 대상은 오직 신밖에 없다는 것을.

15년 전이다. 작가와 서초동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직접 만나 보니 '현실에 제법 화나 있는 여성 작가'란 아우라가 분명 있었다. 동시에 '작가라는 존재는 타자와 세계를 극히 세밀하게 바라보는구나' 하는 이미지도 강렬했다. 누구나 부조리를 안다. 비정의와 불공정을 목도한다. 못마땅하고 바꾸고 싶다. 하지만 들춰내기에 피곤하고 당장 이익이 되지 않기에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특별한 개입이나 혁명적 행동이 없는 한 이 세계ㅡ큰 사회이든 작은 조직이든ㅡ의 조악함과 비루함은 일반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독자보다 불편하고 예민하다. 조명하고 들춰낸다. 아니 들춰내고야 만다.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는 소설가 조정래의 말처럼 그들은 현실을 비틀어 더 생생한 진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때 나는 소설가 공지영에게서 그걸 생생히 느꼈다. 그리고 그해에 소설 『도가니』가 출간됐고 이듬해 그녀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의 제목을 생각한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얼핏 보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하지만 책을 읽은 사람은 안다. 외로움이 부정적인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걸. 외로움은 독특한 상태다.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꼭 필요한 무언가이다.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어떤 내적 체제와 같은 것이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유를 관통해야 하듯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히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것이 외로움이 가진 거룩한 비밀이다. 참된 고독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공지영의 산문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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