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 신학연구위원회 지음 / 영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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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바다에 빠져 살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하 '웨민'을 칭함) 강의를 수강해 끝마쳤다. 강의와 더불어 웨민의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해 정요석 박사와 스프로울 박사의 해설서를 각 3독씩 병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웨민이 얼마나 풍성하고 엄밀하며 유기적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스프로울의 말대로 기독교 역사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더 꼼꼼하고, 더 정확하고, 더 철저하고 그리고 더 포괄적인 신앙고백서는 없다.

18개월 동안 웨민의 바다에 빠져 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강의 프린트와 병독(倂讀)한 해설서마다 번역이 가지각색이라는 점이다. 웨민은 밀도 있고 엄밀한 문장을 담고 있어 일부 절을 통째로 외우는 게 유익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해설서마다 번역이 조금씩 달라 어떤 번역본에 방점을 찍을지 고민스러웠다. 같은 교단(예장합신) 안에서 출간된 텍스트가 안정적일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정성호 목사(수원 선목교회 담임)가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을 주로 참조하곤 했다.

교회 웨민 강의를 끝마칠 때쯤 개인이 아닌 총회(예장합신) 차원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음사에서 출간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예장합신 신학연구위원회가 번역을 주도해 신앙고백서뿐 아니라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교회정치까지 웨스트민스터 5개 문서를 모두 담았다. 교단 내에 목사나 교수 차원의 개인적 번역은 많았으나 교단 차원의 공적 번역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략히 책의 몇 구절을 훑어봤는데 번역의 질이 상당히 높았다. 긴 문장을 짧고 명료한 단문장으로 변환시킨 게 아주 좋았다.

이 책의 탁월함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가진 신학적 엄밀성을 현대적 번역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앞서 만났던 여러 번역본의 부딪힌 긴 문장, 어색한 표현, 애매한 문장 구조, 비문 등을 없애고 명료한 문장으로 가다듬었다. 불필요한 접속사로 연결해 비대한 문장이 되었던 것을 명료한 단문장으로 나눠서 처리했다. 의미 부여를 위해 쉼표를 적극 활용한 부분도 돋보인다. 특히 기존에 고착된 한자의 신학용어를 일반 성도들도 알기 쉽게 평이한 단어로 바꾼 것은 인상적이다. 가령 '칭의(稱義)'를 '의롭다 하심'으로, '승귀(昇貴)'를 '높아지심'으로 번역했다. 특히 소요리문답은 교회 아이들의 교리 공부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쉬운 문장으로 번역했다.

이번 번역 작업은 무려 7년에 걸쳐 연인원 644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영어 원문뿐 아니라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을 병행 참조했고 조사와 대명사의 사용 적절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신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번역위원으로 참여한 이남규 교수는 나와 같은 교회를 다녔고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역자와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삶과 신학이 일치한다는 면에서 이 교수는 내 주변 최고의 모범이다. 정요석 목사는 일면식은 없지만 명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를 통해 호감을 가진 바 있다. 내가 지금껏 읽어본 웨민 해설서 중 정 목사의 책은 단연 최고다.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벨탑 사건 이래 사람은 각기 다른 언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번역 작업의 엄존함은 실로 무겁다. 번역은 사람의 작업이기에 흠과 오류가 불가피하다. 이 세상 텍스트 중 하나님에게 직접 영감된 성경 원어(히브리어 구약, 그리스어 신약)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류와 한계가 있다. 또한 시대마다 언어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로교회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을 시대에 맞게 주기적으로 개정·번역하는 작업은 긴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속한 교단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공적 번역한 것은 상당한 자부심이라 할만하다. 이 거룩한 자부심 위에 신간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놓여 있다.

근자에 장로교회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내세우면서도 성도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먹고살기 힘들고 멘토와 힐링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죄와 회개는 따분한 얘기일 수 있다. 어린이 영어캠프나 부흥회와 같은 실용적이고 촉촉한 터치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많다. 강단(하나님의 말씀)보다 '어와나(Awana)'의 시행 여부로 교회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다 인간의 기호에 목회적 스탠스를 두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안타깝다.

단언컨대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성경의 일부 구절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이단적 세계관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 시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반드시 '전체 성경(tota scriptura)'과 함께 가야 한다. 신학자 신원군 교수의 말대로 성경과 교리는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비루한 시대적 맥락을 직시할 때 예장합신 신학연구위원회의 헌신적 수고로 쓰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보석과 같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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