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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차산업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대통령의 연설문 또는 신문의 기고문에 애용된다. 무슨 의미를 지닌 말인지를 설명하거나 이해를 돋는 책들이 쏟아지거나 개인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역설하는 강연도 있다. 이 용어는 2016년 세계 경제 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언급되었으며, 정보 통신 기술(ICT) 기반의 새로운 산업 시대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기하급수적 변화를 일으킨다. 즉 융합의 혁명이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융합, 공학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과 융합(합성생물학), 조직과 비조직의 융합이 그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4가지 각기 다른 융합이 또 서로 융합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헉헉거리고 있다.  4차는 물리학과 디지털 그리고 생물학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다.  미래의 융합시대는 우리의 현실에 와 있으나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통섭이라는 학문적 개념이 생활속에서 융합의 결과를 선보이는 것이다. 

 

   * 미래창조과학블로그

 

   ’제4차산업혁명’과 나는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불평등을 생산하는 새로운 줄세우기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새 기술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새 아이폰을 물신숭배할 이유도 없다. 이런 시대일수록 직접 만나서 상대방의 눈빛을 보며 대화하며 신뢰를 쌓아야 차별화된다.

 

 

   한국의 제4차산업혁명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준비는 이해되지만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구호적인 단계를 넘어서 선도 산업으로 자리메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새 산업지도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은 자연스럽게 접목될 것으로 본다.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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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사상가들의 책이 그렇듯이 생활인으로서 비전문가로서 책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루소의 고백론은 연애 소설 같다. 세계의 3대 고백론으로도 유명하다.

 

 


   시골에서 살았던 국민학교 방학때면 사촌 누나 집에 가끔 갔었는데 사촌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한 질의 전집이 뒷방에 있었다. 루소의 전집이었다.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도 살아 있다. 다시 루소의 전집을 읽는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일 것이다 . 지금 그때의  사촌 누이는 환갑이 지났다.


 


   나는 결혼 후에도 루소의 사진을 영문 사전의 겉표지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보았던 때가 있었다. 한 인물을 그렇게 좋아 해 본적은 없다. 왜 그리 좋아 했을까? 루소의 고백록을 읽다보면 미남이면서도 지적인 루소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마 그의 연애감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으라 생각된다. 청소년기를 혼자 살았던 기억에 대한 컴플렉스 또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내 속에 살아 있는 듯하다. 그 압축된 기억 때문에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자연주의자이며 산책을 즐겼던 루소에게!  201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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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에는어떤 시인들을 해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나 싶었다. 그들의 시어들은 외형적인 느김이 어뚱해도 읽다보면 뭐가 다른 글맛을 느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박서원이라는 시인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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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관현 열사를 처음 본 것은 전남대학교 1학년(1980년) 초봄이었다. 3월 초에 입학식을 치르고 나는 법대와 가까운 농과대학 수의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기이면서도 수의학과에 같이 입학한 여섯명의 동기들과 너릿재를 지나 화순과 능주로 자전거 항이킹을 다니곤   했었다.  친구들중에는 국민학교때부터 줄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도 있었다.

 

 

   ‘서울의 봄’이 찾아온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에 당선된 박관현 열사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총학생회장 출마 연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문회를 하면 열변했던 모습과 일면 흡사했다. 그가 출마 연설을 하기 위해 법과대학과 인문대 그리고 상과대학을 지나 농과대학 1호관 현관에서 했던 연설은 마치 대통령 선거 유세장처럼 대학생들과 심지여는 일반인들도 많이 모여 들었다. 그의 얼굴은 표효하는 호랑이상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쭉뻗어가는 섬광처럼 귀를 쭛빛 세울 정도로 날까로웠다. 그가 연설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길 정도였다. 수업이있어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야, 박관현이 연설하더라!”, “안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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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월의 향내
    from 고립된 낙원 2019-03-20 19:47 
    실은 5월 18일 개엄령이 확대되었던 전날에 비가 내렸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과 교수들은 햇불을 들고 도청 분수대 위에 모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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