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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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의 젊은 애인에게 마음이 흔들였을 때 김선우(이병현 분)는 잠을 뒤척이며 이렇게 독백을 한다.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 저마다 자기가 안고 사는 삶이 있다. 우리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삶은 삶 자체로써 의미가 있다. 자기의 삶은 판단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다. 


  급속히 노령화 시대로 접어 들면서 뇌질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노인층에서는 암과 치매(뇌신경질환 등)를 우려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던 영국의 대처수상은 뇌졸증과 방광 종양으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퇴행성 뇌질환(알츠하이머병)으로 말년을 보냈다. 이 소설은 뇌질환(뇌경색,치매,뇌경화)을 앎고 있는 유태인 늙은 창녀 출신 로자 아줌마와 어느 창녀 아들인 14세쯤 된 아랍 소년 모모와의 생에 대한 작가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동반 자살하는 노부부의 기사도 가끔있다. 하지만 중1학년생쯤되는 '모모'눈으로 보는 생의 통찰은 고급 교육이나 거부나 중산층 행복 타령이 아닌 몸으로 벌어 먹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깨달음이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자신의 생 중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창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은퇴 창녀인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뇌경색 등)을 앓게 되자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자 아줌마가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모모는 열다섯 살 때의  아줌마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 속의 처녀는 앞날이 충만하고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모모는 생은 그러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도 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멘토격인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할아바지는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뿐'이라 가르쳐 준다. 세상엔 전적으로 희거나 검은 것은 없고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으며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음을 들여준다. 

 

  로자 아줌마가 의식을 잃기 시작했을 때 모모는 아줌마가 평소에 혼자 숨어들곤 했던 지하실의 방으로 데리고 간다. 모모는 병세가 깊어진 아줌마를 친척이 있는 이스라엘로 보내지 않고 둘 만의 지하실에서 로자 아줌마의 입종을 지킨다. 그때의 모모는 돌아가신 부모의 식어버린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울었던 내 심경이었을 것이다. 


  다시 새롭게 살아갈 낯선 땅을 찾아가던 길에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 들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떠울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없다' 말을. 책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는 슬픔으로도 사람은 행복해질 있다는 반증이다. 생은 아픔만큼 성장해 가는 진보성이 잠재되어 있다. 1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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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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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해가 서산으로 기울제, 햄거집 쇼윈도우 앞에 앉았다. 분주한 거리를 멍허니 보면서 떠오른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무심히 큰 길 건너 편에서 한 취객이 은행 입구 주변을 휘청거리며 서성인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모습이 내게 박혔는지 모른다. 그는 한 소시민이며 단정할 수 없는 무력자라는 성급한 내 판단이 있을 뿐이다. 카프카가 14년간 보험회사에 다니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먼저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변신'은 그의 처지를 잘 그린 작품이다. 


  싯타르타 출가 동기에는 가지 형이 있다. 하나는 왕자로서 싯타르타가 갖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혁신적 지도력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해결책 모색이다. 그의 전통적 출가의 변은 생로병사에 대한 풀이적 해설성이 짙지만작가는 싯타르타의 자기혁신을 통해 권력을 발바닥 밑에 내려 놓았음을 강조했다.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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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강 세트 - 전9권 - 문순태 장편소설 완결판 타오르는 강
문순태 지음 / 소명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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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이번 연휴로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행의  종착지는 집이다. 즉 고향이다. 우리 곁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과 돌아 올 수는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차가운 심해에 혈육을 둔 가족에게는 기막힌 현실이다.


  어렸을 때 담장 너머로 보곤 했었다. 동네 누나와 형들이 택시에서 내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도시의 공장에서 받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마을 우물터 앞에서 내렸다. 그들을 빨래하던 아줌마와 물길는 아저씨가 처음 반기곤 했었다. '누구여, 칠석이 아니냐, 명절 세러 왔구나 !', 고향은 포근하다.


  객지로 떠난 전라도 사람에게 고향의 들과 강은 어머니와 같았다. 그 동안 어머니와 같은 영산강을 소재로 많은 문인들이 문학작풍을 창작해왔다. 특히 문순태의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은 구한말 영산포 일대에 정착한 민중들의 삶을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노비세습제가 풀린 1886년부터 동학농민전쟁, 개항,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병합조약, 3•1만 세운동을 거쳐 1929년 광주학생운동까지 우리민족의 수난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리는 강에서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모습 들과 만난다. 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오랫 동안 바다를 꿈꾸며 흘러 왔다. 강은 땅과 사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과 자유 롭게 교섭하고 어울리면서 흐른다. 근래에 '영산강 문학'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 이다. 그 중심에 '타오르는 강'이 있다. 2012년 봄, 37년 만에 완간된 한의 민중사로서 한국 근대사 의 격랑을 겪은 이 땅 민초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지식인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해서 우리 고향을 맨들자 이것입니다요. 대대로 자식들헌티 물려줄 고향을 맨들자 허는 거지요. 후담에 자식들이 커서도 고향이 없는 떠돌아댕긴다고 생각해 보씨요. 그러고 자식들이 우리덜 고향이 어디냐고 물은다 치면 멋이라고 대답헐라요. 내 고향은 종살이허던 아무개 진사네 동네라고 대답헐 꺼요? 사람이 고향 없는 것보담 더 짜잔헌 것은 없는 것이요.


  , 그러니 우리 같이 우리덜 고향을 맨들어 봅시다. 고향을 맨들자면 땅을 장만해야지요. 우리들 자식들이 커서 며느리를 데려오고 딸을 시집 보내게 되면, 우리 땅에서 우리가 거든 곡식으로 떡도 맨들고 술도 빚어서 사돈네 집에 보내야 아니겄어요. 모두덜 싫다면 허는 없지요. 혼자서라도 내일부텀 방천을 쌓기 시작헐라요.'  - 2 깨어있는 밤에서 웅보의 발언 - 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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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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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를 안가면 바보가 된다' 는 말이 있다. 반복된 공간이나 규정된 조직안에 있으면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져 사물을 보고 느끼는 여유가 메마른다. 잘 놀아야 행복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휴가를 못 가는 이웃도 있다. 다녀온 사람은 충만된 마음을 나누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아 가는 힘이다. 휴가속에 책이 있으면 좋다.


  도시 마다 대표하는 거리가 있다. 소설은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호사스런 장소 '네프스끼 거리'에 대한 이 야기이다. 이곳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계층과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신흥 도시 거리로,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여 주는 전람회장이기도 하다. '뻬쩨르부르그'는 유럽 문명을 급하게 수 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럽의 창'으로서  인공 도시이다. 

  이 도시는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스크바와 달리 표뜨르 대제의 명령에 의해 세워진 계획 도시로 유럽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계급적, 물질적 가치에만 집착하 는 범속성과 속물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 의 앞선 물질 문명을 배우고 익혀 그 대열 에 합류하려는 현실적 욕망만이 팽배하고 있다. 계급과 서열만이 중시 되는 관료제도 하에서 명예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펼쳐진다. 허위와 환영의 공간인 네프스끼 거리는 수도의 부분이지 만 수도 전체, 국가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화가 삐스까료는 몽상적 이며 소심하고 온순한 젊은이인 데 반해 그의 친구 삐로고프 중위는 허영심 많은 속물적 장교이다. 이 두 친구가 네프스키 거리의 정체를 밝혀 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화가와 중위는 네프스끼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눈에 띈 두 미녀를 각각 쫒아간다. 이상적으로 묘사된 두 여자 가운 데 하나는 검은 머리고 다른 하나는 금발머리이다. 화가가 뒤따라간 검은 머리는 창녀였다. 

  화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꿈속에서 나마 그가 원하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마침내 화가는 실제로 그녀를 찾아가 청혼하지만 그녀는 웃어대며 그를 비웃는다. 절망에 빠진 화가는 자살한다. 한편 중위 삐로고프가 매혹을 느껴 뒤따라간 금발여인은 독일인 유부녀였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를 정복 할 욕망을 불태운다. 어느 날 그는 남편이 부재 중일 때 금발 미녀와 춤을 추고 키스를 하려다가 돌아온 남편에게 들켜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고골의 작품에선 네프스끼 거리는 영혼 부재 공간이다. 인간의 육체적 특징이나 외형적 장식물들이 변신을 시도하고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인간적 가치나 풍모를 영혼과 정신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외적 사물에 의존한다. 결국 부분이나 사물은 인간의 신분이나 계급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이름을 획득한다 뻬쩨르부르그 문화는 인공적이며 비현실적이다. 공중에 기초없는 만들어진 도시, 이것이 초자연적 이고 환상적인 빼쩨르부르그다. 

  기존의 러시아 전통에 에서 벗어난 서구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인공 도시로 새로운 관료사회를 탄생시킨 곳이다. 환영속에 빠진 도시의 속물성은 창조성이 결여된 저열한 정신만 모방한다. 건강한 도시는 창조적인 자연을 꿈꾼다. 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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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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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실정법 부재나 관련 권력의 생존으로 그들의 편향된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적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다시 기억해보면, 고대는 중세 이전으로 한국은 고조선-후삼국 시대의 종결 연도까지를 말한다. 중세는 5세기 경부터 15세기 중엽까지로 한국사는 고려시대를 말한다. 


  근세를 중세와 근대 사이로 서양의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14-15세기 무렵으로, 조선 전기로 본다. 근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인 17,18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를 말하며, 1863년 고종의 즉위 이후 또는 1876년 개항 이후를 근대로 본다. 현대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말하지만 서양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종결 이후 현재까지로 분류한다.


  어느 세대나 전 세대의 역사적 영향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근대가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관리권 밖으로 이양 되듯, 우리의 성장 틀에 근대사가 있다. 근대를 사유하지 않고, 어떻게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오늘의 성장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근대가 가장 가까운 과거인데도 멀리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차단과 굴절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바로 알지 못하면 현재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근대는 끊임없는 성찰의 대상이며 미래로의 전환기다.


  이 책에는 1898년부터 1958년까지 그려진 외국 화가들과 우리 화가들의 그림 86점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근대 화가의 작품 중 당대의 삶이나 역사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으로 대표되던 조선 후기 풍속화의 맥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근대에는 끊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 화가들은 당시의 시대상과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상당수 남겼고, 그 덕분에 우리의 근대사를 그림들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 휴전 협의차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와 이승만 대통령의 협의 모습,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100년 전 조선의 절경인 대동강과 한강(남산 남쪽 아래에서 노량진까지)을 오가는 황포돛배, 내금강의 마하연 풍경 등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저자는 서울생으로, 1976년 도미하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면서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 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근대의 그림을 모았다고 한다. 


  우리의 근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에도 자식들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쟁 중에도 천막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어머니들은 함지를 머리에 이고 행상을 했고, 아버지들은 열심히 농사를 짓거나 직장에 다녔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을 개조해 구멍가게를 차렸다. 


  누나/언니들은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일했고, 형/오빠들도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기술과 장사를 배웠다. 누구나 예외없이 모두가 그렇게 근면하게 일하고 공부해 그 어려운 시기를 헤치고 나왔다. 우리는 온 몸으로 근대를 지나 현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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