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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은 "전인권(1957~2005)" 교수의 글의 주석은 문장과 문장 사이를 부드럽게 이여주는 가독력을 높여 준다. 그는 미술평론가 이기도 하다.  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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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 평전 1 - 인물
앤드루 킬패트릭 지음, 안진환.김기준 옮김 / 윌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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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렌 버핏은 1930년 8월 30일 내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1929년에 시작된 경제 대공황이 한창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버핏은 오마하 시내에 있는 오래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버핏가가 오마하에서 정치적,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뒤었다."   


 1936년 6세 때 인생 최초의 사업을 시작했다. 6개들이 코카콜라 한 팩을 25센트에 구입해 한 개에 5센트씩 받고 이웃에게 팔아 20%의 수익을 남겼다. 그는 1938년 8세 때는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보고 있던 주식시장에 관련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개입되지 않고 순수 주식(돈)으로만 돈을 번 버핏, 생사의 서사가 난무한 시대에 이 보다 더 깔끔할 수는 없다.  


 "워렌은 어릴 때부터 매사에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아버지를 지켜보았고 아버지의 우직함을 늘 따르고자 노력했다. 반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위험한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이데올로기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직설적이고 강직한 성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워렌도 자신만의 생각으로 삶을 영위했다. 그러한 태도는 버핏이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바탕이되었다."   


 "아버지는 '나는 우리 관계가 끝까지 깔끔했으면 한다. 한번 돈이 개입되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라며 거절하셨다.",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것일가? 일인독재, 온전한 자기 소유욕에 대한 결백증같은 것은 아닐까? 돈으로 좋은 관계를 망치까 싶은 심정의 가치가 온전한 자기 물욕보다는 좋다는 생각을 한다. 


 1956년 마침내 버핏 투자조합을 설립했다. 그가 투자조합을 운영한 장소는 자산이 살고 있던 이층 침대 방 옆에 있는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였다. 베란다/ 차고지/ 지하실 창고 등은 미국인들이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에게 투자를 하시오."    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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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노근 평전 - 하느님의 착한 아들, 광주의 작은 다윗
김준태 지음 / 심미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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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호 알암. 1932년 광주 농성동에서 서촉 연안명씨 제23세 손으로 태어나다.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미국무성 플브라이트장학금으로 미시간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영어교수법으로 교육학 석사학위, 하와이 주립대학 동서문화센터에서 영어교재 개발 연구, 전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광주YMCA이사장,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1998)을 역임, 1965년부터 1998년까지 전남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봉직하다.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1978년)"으로 강제해직, 광주YWCA구국기도회사건(1979)으로 투옥, 5.18광주항쟁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 505보안대 → 상무대영창 → 군사법정 → 광주/장흥교도소를 거쳐 1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전남대교수평의회의장, 전국국립대교수협의회회장단의장, 전국기독자교수협의회장, 2000년 1월 12일 민주시민장으로 5?18국립묘지에 영면하다. "   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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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평전
김택근 지음, 원택 스님 감수 / 모과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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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여명은 서늘했다.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중산리탐방로를 택했다. 금요일 저녁 진주에서 잤다. 다음 날 새벽에 택시로 산청읍을 지나 지리산 중산리에 도착했다. 지리산으로 가는 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성철 스님의 생가를 만나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곳에 생가 터가 있었다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 법어는 현대 한국 불교의 최대의 치욕이라 하는 1980년 10.27 법난으로 위기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성철 스님이 제6대 종정직을 수락한 취임법어다.  

 

  왜, 그 길을 가야 했을까? 스님은 진주중학교를 합격하였으나 신체검사에서 탈락되어 그의 생가(산청군 단성면)에서 가까운 지리산 대원사의 탑전에서 화두 공부를 익혔다.스물다섯의 나이인 한 속인이 훌륭하게 정진하고 있다는 소문에 해인사 동산 스님의 출가 권유를 받는다. '참선을 잘하려면 스님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그러나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삶의 근원에 대해서 길을 구하던 청년 성철은 영원한 삶에 대한 화두참선을 시작한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이른바 '무자 화두'를 들고 정진한다. 42일 만에 다른 데로 도망가지 않고 동정일여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스님은 다독주의자였다. 그의 '이영주 서적기'에는 행복론,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역사철학, 장자남화경, 소학, 대학, 자본론, 유물론, 신구약성서 등 동서고금의 철학에 관한 책으로 약 70여 권의 목록이 적혀 있다. '스님! 집에 불 들어갑니다.' '1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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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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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평전>(아름다운전태일)의 4부 '전태일 사상' 중에 '원섭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괴 있다.

 

             "원섭아.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얼마나 중대하고 이상한 현상이고 평범한 사실이야?

 너는 내가 아는 친구, 나는 네가 아는 태일이.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일이야.

 왜 펜을 잡게 되는지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속이 답답하고 무엇인가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딜 심정이기에

 쓰고 있는 것 같구나.

 서울에 와서 5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너에게 할 말이 너무나 없다.

 그러나 너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애통한 것을 너에게 심적으로

 위로 받으려고 이렇게 펜대를 할퀴는 것이다.

 누구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단 말인가?

 불행이도 너는 내 친구."       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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