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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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어낚시'는 알겠는데 '통신'이란 단어가 있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책의 줄거리를 알고 주문 하지만 책의 제목에 호기심이 발하여 사둘 때도 있다. 1994년 소설인 이 책의 은어 낚시 모임은 60년대에 태어난 80학번이고 90년대는 30대들로 1968년 7월에 태어나 서울에 거주한 이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지하에서 술을 마시며 사는 '삶 부적응자'들이다.


  한국 문학은 1950년대까지는 교훈과 엄숙주의적 긴장성 또는 추상적 표현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1960년대는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 출현으로 '감수성 혁명기'를 맞는다. 1990년을 전후로 큰 변화가 나타난다. 1980년 소련의 사회주의 붕괴로 온 파장은 그간 우리 문학의 주된 소재였던 사회•역사적인 상상력을 밀어내고 사람의 존재의 내면을 바라보는 방향 전향(존재의 시원)을 시도한다. 저자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자연주의와 같은 회귀성(은어)을 역설한다. 그 변화의 모멘트가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다.


  소설은 일상에 갇혀 있는 주인공이 은어낚시모임의 통신을 받고, 모임에 나간다. 통신은 주인공을 조금씩 과거의 시간, 기억의 시간 속으로 끌어간다. 현대적 삶의 황막함과 소소함에 갇혀있던 고독한 도시인 주인공은 생의 본질적 의미를 찾기 위해, 은어의 귀소본능과 같은 절실함으로 원래 태어났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의식 변화는 생의 본질적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사막과도 같은 현실의 저편에 있는 진정한 가치의 삶을 보여준다.  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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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릴케전집 1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용민 옮김 / 책세상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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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지 않은 소식에 비통해 했다. 지난 주는 그랬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인간집단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슬픔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듯 그 슬픔안에 머물러 있었다. 누구에게도 나의 슬픔을 얘기하기에 모자랐다. 나의 슬픔과 황망함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문상객이 장사진을 이루던 석양에도 나는 들판에 있었다. 나의 슬픔을 보석상자에 숨겨두고 아무도 모르는 밤에 가장 조용한 밤에 기름종이에 싸아둔 붉은 꽃잎을 한 잎 두 잎 펼처보듯 내 앓임을 만저 보고 싶었던 중에도 “말테의 수기”를 놓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시의 현상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나는 “말테”에 대한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유명한 시인들이 어떻게 일제 강점기에서도 “릴케”를 만나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것은 전설같은 얘기였다. 만주에서 말을 달리며 독립투쟁을 하던 때에도 어떤 청년이 적의 도시에서 “릴케” 만났다는 말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오히려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스물여덟 살의 덴마크 시골청년 “말테”가 대도시 파리에 도착하여 받은 인상을 요약한 말이다.


  “말테”는 보편적인 사실이라든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 대신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세상일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말테”는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 한다. 아는 사람도 일자리도 없이 낯선 이국의 대도시(파리)에 홀로 던져진 시골청년이 거대한 대도시의 존재에 함몰되지 않고 새롭게 세상을 배워간다. 마치 그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대도시에서 직장을 찾아 헤메는 시골뜨기 청년과 같은 모습이었다.


  “말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파리의 화려한 외관 뒤에서 감춰진 죽음과 가난의 그림자를 보기도 하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차례차례로 바꿔가며 쓰고 다니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도시의 호화판 병원에서는 마치 공장에서처럼 죽음이 대량 생산될 뿐 그 어느 곳에서도 고유한 죽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외활아버지 댁에서 보았던 유령의 모습을 다시 생각한다. 사물의 현상 뒤에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던 것을 꿰뚫어보거나 유령처럼 아예 보이지 않는 존재마저도 새롭게 인식하는 말테는 예전의 말테가 아니다.


  새로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말테는 지금까지의 역사와 기록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론을 펼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떤 진실한 것, 중요한도 보지 못하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수많은 발명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다만 삶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었다.”, 비록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며”, “젋고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얻어가는 말테는 파리의 5층 방에서 밤낮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쓰고 또 쓴다. 파도처럼 자신에게 밀려오는 외부와 내부의 인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다.


  말테는 우선 파리의 인상을 새롭게 정리하고, 할아버지의 고유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를 방문했을 때의 추억을 새로운 인식의 빛에 비추어본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러 도시에서 만난, 인생에 의해 “내던져진 자들”과 옆방의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그 성찰의 결과를 책상에 앉아서 기록한다.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서는 점점 역사상의 인물들인 샤를 대공, 가짜 황제 그리샤 오트레피오프, 샤를 6세의 이야기를 서술한 기록으로 바뀌고, 마지막은 말테가 새롭게 해석한 성경의 ‘돌아온 탕아’ 이야기로 끝난다.


  “말테의 수기”는 바로 이들 기록을 허구의 편집자가 아무런 가감 없이 모아놓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를 1904년 시작하여 1910년에 로마에서 완성했다. 무려 6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려 있었다. 그 사이에 릴케는 로마를 여행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머물기도 했다. 그 밖에도 릴케의 일생 내내 그러했듯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지냈다. “말테의 수기”에는 비단 이 6년 동안의 경험뿐만 아니라 릴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 무엇보다 1902년에 스물일곱의 나이로 로댕의 전기를 쓰기 위해 대도시 파리에 머물렀던 체험이 아주 짙게 배어 있다. 말테의 말처럼 많은 추억이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변형되어 새롭게 태어난 문학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을 보아야 하며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는 말테의 유명한 말은 이 작품에 그대로 해당된다.


  “또한 아직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과 (...) 아주 이상하게 시작되어 몇 번이나 매우 깊고 무겁게 변화해간 어린 날의 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하고 외진 방에서의 나날들과 바닷가에서 맞은 아침, 그리고 (...) 별과 함께 날아 가버린 여행중의 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는 아직 충분치 않다.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다란 인내심을 가지고 추억이 다시 솟아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몸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이 되고 몸짓이 되어 이름을 잃어버리고, 우리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될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그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글의 첫단어가 솟아올라 걸어나오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이처럼 릴케의 모든 추억이 함께 녹아들어 마침내 솟아오른 작품이 된다. 그래서 한 편 한 편이 산문시 같다. 말테의 기록은 일기와 편지 같은 아주 주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일정한 줄거리도 없고, 하나의 주제도 없이 다양한 내용의 독립적인 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따라서 세심한 독서를 요구한다. 일인칭 화자가 있기는 하지만 작품을 이끌어가고 때로는 독자에게 정보도 제공해주는 전통적 의미의 서술자는 아니기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마치 다른 사람이 혼잣말하듯 써놓은 기록을 어깨 너머로 볼 때처럼 말테의 감정과 생각에 곧바로 빨려 들어가기가 어렵다. 산문시집을 읽듯 이 작품을 읽어나간다면 의외로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그 자체로 보석처럼 빛나면서 동시에 다른 단편들과 함께 모여 커다란 왕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무너진 집의 잔해에 아직 남아 있는 벽의 묘사를 읽어보면.


  “그러나 가장 잊을 수없는 것은 벽 그 자체였다. 이 방들 속에서의 끈질긴 삶은 밝혀 없어지지 않았다. 삶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삶은 아직도 박혀 있는 못에 매달려 있었고, 손바닥 넓이만큼 남아 있는 방바닥에 붙어 있었고, 아직도 조금은 내부 모습이 남아 있는 방 모서리 틈새에 숨어 들어가 있었다. (...) 거기에는 내팽겨쳐준 젖먹이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긴 여운이 남는 냄새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불안의 냄새, 사춘기 사내애들의 침대에서 나는 끈적한 냄새도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깊숙이 자리잡은 사건”을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어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말테의 수기”의 중요한 특징이다. 말테의 커다란 주제는 “존재의 불안”이다. 대도시에서 말테가 마주친 이 불안은 어린시절 무언가 알 수 없는 “커다란 것”에 대한 공포에 짖눌려 깊은 병을 앓던 추억을 일깨운다. 그리하여 말테가 지금 느끼는 존재의 불안이 어린 시절의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깨닫고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어린 시절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음을 인식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의미도 모른 채 세계에 내던져져,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로의 세계를 해매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낯선 도시를 해매는 이방인처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말테의 수기”는 대도시의 외부와 내부의 모습을 서술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대도시 문학”으로 “도시 문제”를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주제중에 하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다. 말테가 펼치는 사랑론은 사랑하는 것과 사람받는 것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사랑받는 것은 구속이며 불타오르는 것을 의미하고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기름으로 타오르며 빛을 내는 것이다.


  사랑받는 이는 따라서 사랑하는 이에 종속되고 사랑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지만 사랑하는 이는 그 어느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사랑하는 대상을 넘어서서 더욱 발전하기 때문이다. “말테의 수기”는 여러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성찰과 모색를 이룬다.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회상”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발전 단계를 거친다. 이 소설은 단선적 줄거리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 소설의 전통과 결별하고 몇개의 주제가 평행선을 이루며 진행되는 현대소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도저히 조망하기 힘들 정도로 불확실해진 세상을 정직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표면만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서는 안 되고, 그 이면의 삶의 참된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내야 한다. 외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삶의 내부 깊숙이 뚫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내면을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려면 자연히 단편적 형식을 취하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192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모더니즘 소설의 길을 열었다. 이 작품이 카프카, 마르셀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로 이어지는 현대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말테의 수기”는 독일문학에서 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느끼는 상실감은 새로운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잠시 밀여 있지만 결국은 기억의 근저에 자리하게 된다. 때를 기다리게 된다. 추억이 추억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피와 살속에 녹아 들어 어느 날엔가 예리한 칼에 베어진 노란 단무지처럼 우리앞에 다가온다.   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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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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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의 노래>를 부르며 <남한산성>(책)에 올랐다. 허허로운 세월속에 나는 초초했다. 주말에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오르는 산성은 먼 날의 그리움처럼 아른거렸다. 모두가 떠난 밤에 혼자 별들을 보며 그의 말을 외우곤 했었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울네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칼의 노래>를 부른지 6년이 지나 그는 지쳐 나딩구는 나를 다시 깨웠다. 그의 글은 이순신이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쓴 휘호를 연상케 했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책)은 치밀한 구성과 거침없는 문장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민중의 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글로 토해냈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라면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런 삼전도 굴욕을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는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조선의 운명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인조를 비롯한 위정자들이 국제정세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책실패의 원인이기도 하다. (책)은 1636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청나라(후금) 군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지하는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하며 결단을 미루는 인조 임금과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흥미롭다.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의 상징성을 더 높여준다.


  그의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은 뜨거운 말들이 나의 마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는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작년 5월말경에 <남한산성>에 올랐을 때 몹시 궁금했었다. (책)의 <하는 말>의 첫줄 때문이었다.“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성남시청과 성남기능대학을 지나 <약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산성마을닭죽촌> 입구 못가 죄회전하면 산성 진입도로가 나온다. 도로는 2차선 아스팔트로 한 참을 들어가야 했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산성까지 가기에는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때 나는 (책)의 뒷쪽 산성지도 7.남문(지화문)에 올랐었다. 남문에서 좌측(서문쪽)으로 올라 서장대에 이르러 내려다 보이는 성남시는 아파트로 꽉 차있었다. 산성밑에 골프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370  조선의 왕이 <오랑캐>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렸던 역사의 치욕을 정교하고 복원하였다. () 표지는 김선두 화백의 작품으로 장지에 채색이다마치 이마의 핏물이 장지에 스며민듯하면서도 봄날의 창꽃을 연상케 하는 함축미가 있어 왕의 치욕을 여실이 보여주는 듯하다그의 문체는 아버지 김광주의 영향이 크다그가 어렸을  아버지 원고료는 집안의 생계를 이여갔다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불러주는 문장부호 하나까지 받아쓴던 그는 환갑이  되어 노래의 연분홍빛으로 피여났다그의 글을 읽으면 눈물이이 났다. 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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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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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대중의 반역”을 읽은 후로 얼마 간 책을 잡지 못했다. 잡다한 일상들 사이로 게으름이 도졌다. 하루 이틀 피해지더니 읽어야 한다는 마음만 커졌다. 하루 중 나를 관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은 거미줄처럼 가늘고 희미해 손을 놓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이끼가 끼여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야 내 자신이 잘 보인다. 잘 보여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이든 뭐든 오감으로 받아들인 감각을 재구성하여 실토하는 작업은 비지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다. 산등선에 오르면 탈력이 붙어 정상을 향해 술술 걸어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작가들은 보통 기억으로 글을 쓴다. 문학의 언어는 기억을 통해 뇌 전체의 감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한다. 작가는 상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기억인 경우가 많다. 직접 체험한 것만이 아니라 책이나 예술, 문화 전반의 기억 일부를 새롭게 선보인다.


  집단의 기억 일부를 표현해 주는 동시에 그 기억에 일부를 보태주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노벨문학 수상 작가의“아프리카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 삶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며 따라가 보는 일인칭 서술자의 자선적 소설이다. 십여전 전에 작고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되밟으면서 그의 삶과 가치를 재구성하는 전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작가의 문학세계의 형성 배경과 근원을 더듬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아프리카가 어떤 존재인지, 그의 상상세계가 어떻게 이 대륙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 아버지가 직접 찍은 오백여 장이 넘는 아프리카 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이십여 년 이상의 긴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희망과 열정, 고독과 비탄 그리고 절망을 표현한 일기였다.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의 삶의 순간들을 채웠을 생각과 느낌들을 자기 자신의 상상세계의 리얼리티 속에서 되살린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친밀한 시선과 작가의 것이 서로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바나”를 향해 질주해가던 자신의 분방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자유를 회고하는 그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어조로, 뜨거운 햇살 아래 광할한 아프리카 고원지대를 횡단하는 아버지의 모험을 그린다.


  아버지가 빅토리아만에 첫발을 디디면서 찍은 사진을 묘사할 때, 작가 자신이 그 사진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낡은 사진과 그것을 찍을 때 느꼈을 감격에 대한 아들의 묘사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일체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속이며, 자서전과 전기의 성격이 이 책속에 어우러질 수 있는 비밀은 아프리카가 그들에게 주었던 혜택이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8살의 “클레지오”는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 서부 “오고자”라는 마을로 떠난다. 식민정부하의 의무장교로 일하던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인자한 여성들의 품 속에 보호되던 작가 자신의 삶은 거침없는 햇살과 한밤의 폭풍우, 끝없는 황갈색 “사바나”의 풍경앞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혼란을 경험한다.


  성인이 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다른 세상속으로,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방식, 세계와 예술에 대한 생각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 걷고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꿈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나마로의 여행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덕택으로, 작가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일상용품들에서 사소한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비와 바람과 태양의 흔적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는 아버지를 입양한 마음의 고향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가 끊임없이 도달하려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작가의 “유년기의추억”, 작가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들이 뿌리내린 원천이 되었다.


  작가가 아프리카에 대해 느끼는 끈은 단순히 향수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이프리카인들처럼, “르 클레지오”는 진정한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수태된 고장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자신이 잉태되던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 속에서 끓어오르던 아프리카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 속에서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작가는 육체에 기입된 물질적 감각적 기억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깨우는 신화와 전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소설적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글쓰기 여정은 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는 작가의 상상세계를 잉태하고 젖을 준 상상의 어머니이며 그의 상상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듯 보인다.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주었지만 또한 작가의 아버지를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는 노년의 아버지를,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완고한 침묵으로 버텄던 당신의 삶을, 그 고독과 비탄을 이해하게 된다. 60대 중반이 된 작가의 그 이해는, 기아와 질병의 아프리카 현실과 관계된 자신의 오랜 꿈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불어로 글을 쓴다는  외에 프랑스인라는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 모두 소위 주변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며그래서 그는 불어의 작가이지만 프랑스 작가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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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평전
김학동 지음 / 새문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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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둑에 홀로 나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소월이 흐르는 강물을 한 없이 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가 나 일까 싶어 진다. 소월이야 말로 나의 청춘기를 가장 잘 대변하기에 좋은 시인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갈 날의 첫날이기도 하다. 재즈 가수  '말로' 가 부르는 '개여울' 을 들어 본다.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 은 1972년 수원대 교수 였던 '정미조' 씨의 학생시절 리메이크 버전이 제일 듣기 좋다. 그녀의 '비음' 이 주는 느낌은 소월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소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었다. 개여울은 1925년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소월의 비루했던 삶과 위대했던 정신의 초점화에 한정되어 있다. 소월은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다.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났던 곳이며 소월(1902~1934) 이외에도 이광수(1912-?), 김억(1896-?), 백석(1912-1995) 등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고장이다.

   평북 정주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은 혼종성있다. 봉건 지배 권력의 중심인 한양으로부터 밀려나 소외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곳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근대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일찍 받아들여 근대 지식인과 민족지사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소월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혼종의 시공간(정주)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었다.

   소월은 1909년에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에 오산학교 중학부에서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유학을 중단, 귀국 후 4개월간 서울에 머문다. 다시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폐업한 후 조부에게 얻은 돈을 밑천 삼아 고리대금업을 시작한다. 곧 실패한다.

 

   지병인 '저다병'(팔과 다리가 붓는 각기병)을 앓았다. 그는 '내면적 인간의 비극적 운명' 을 떠안았던 시인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촉망 받은 장손으로 가족의 관심과 기대 속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소월은 고향 밖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열망했다.

 

   오늘날 소월 시의 수용이 시집 '진달래꽃'(1925, 초판이 3억원)에 편중된 것은 독서 대중의 오해가 생겨낸 또 다른 이유이다. 소월 시의 화자들은 대체로 상실감과 비애에 몰입되어 있다. 근원의 세계, 본질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과 감각의 세계, 그 허깨비 같은 것 현실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실존적 상황의 부조리함 앞에서 소월의 화자들은 눈물에 젖은 채 비통해 한다. 

   지구 상에 '한'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한'은 인간의 실존의식, 즉 존재의 모순과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생겨난 역설적 감정 이다. '한'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경험에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1950년대의 '고석규'는 소월의 '한'은 근대가 애써 망각하고 부정했던 '자연 속의 서정'을 발견한 '눈'이었다고 했다. 즉 소월의 '님'은 자연이다. 그 자연은 웅장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네 일상속에 늘 함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로 우리 조상이 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고 후손이 살아 갈 삶의 공간이다.

 

   소월이 마주쳤던 식민지 근대의 현실과 인간 실존의 비극성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다. 어쩌면 소월이 당면했던 마음의 짐들이 여전히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삶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대결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인깨워 준다. 소월은 세계의 시인으로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월의 진실이다.  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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