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지식소설! 처음 듣는 말이다.
지식소설이 무엇이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건전한 지식에는 대부분 그와 대립하는 지식이 존재한다. 서로 대립하는 이들 지식 쌍은 경쟁하면서 어느 한쪽이 자연도태하지만, 상당수가 서로 영행을 미치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다. 지식들은 갈등하고 싸우며 승리하거나 패배하고 또 살고 죽는다. 이러한 지식들의 갈등구조와 진화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소설이 지식소설이다.

그러면 이 소설의 대립하는 지식은 무엇인가.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결정론, 본능주의와 행동주의가 대립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철학자인 김용규와 불문학자인 김성규로 공저이다. 보스니아의 한 소녀의 절규를 계기로 인간의 학살 행위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다가 쓰게 되었다 한다.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한 저자들의 생물학적 지식과 필력에 놀라게 된다.

이야기의 기본틀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제니퍼를 중심으로 숲의 벌목으로 자신들의 거처를 잃게되는 다른 무리의 침팬치들이 이주할 곳의 침팬치들을 제노사이드하고 이를 막기위한 제니퍼의 노력을 기본 얼개로 하여, 문화대혁명 당시 아버지를 잃고 입양된 제니펴를 대비하여 인간과 동물의 제노사이드의 차이와 인간의 광기와 폭력성 등을 고발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길게 말하는 것보다 책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리뷰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워싱턴 대추장(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을 베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정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기슭, 검은 숲속의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을 흐르는 수액은 우리 紅人의 영혼을 실어 나른다.
 백인들은 죽어서 벌들 사이를 거닐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버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한다.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들의 어머니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지의 한 부분이고 대지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은 모두 한가족이다. (.....)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다. 강은 우리의 형제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누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일 우리가 땅을 팔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들을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들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
 땅이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 아니라 그 거미줄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거미줄에 행한 일은 곧 그 자신에게 행한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것처럼 이 땅을 사랑해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신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우리는 한 가지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신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조차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1854년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의 제안을 받고 수쿠아미시족의 시애틀 추장이 답한 연설문.

길지만 인용한 까닭은...미개인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가 나보다, 많이 배운 문명인 이라는 우리보다 더 많은 진리를 알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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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 개정판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 궁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매번, 언제나, 항상, 애니타임 하는 결심.
운동을 하겠다. 살을 빼겠다. 논문을 반드시 쓰겠다. 제때제때 해서 쫓기지 않겠다 등등

항상 비대해지며 망가지는 내 몸을 보며 결심한다. "아침마다 운동해야지" 그러나 매일 결심만 한다.
간혹 실천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음날을 "너무 힘들어. 오늘만 쉬자"
이제 장마가 온다. "비도 오는데 장마 지나면 하자"
장마가 끝나면 "너무 덥다. 이런날 뛰면 일사병으로 죽겠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넘 춥다. 추운날 운동하면 안좋대"
인생이 항상 이런식이다.

이런 인생에 자극을 요시카 피셔는 자극을 준다.
이 글은 달리기에 관한 책도, 살빼기에 관한 책도 아니다.
나 자신을 극복하고, 나의 생활을 바꾸는 실천에 관한 책이다.
피셔 자신이 50의 나이에 115kg에 달하는 몸을 보며 그간의 자신을 반성하고 실천으로 나아간 것이
달리기였다.

살진것이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비만이 어떤 병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과도한 욕망의 외형적 결과이자 저울로 표현되는 결과
라고 한다. 나의 경험상 100% 동의한다.

자아가 너무 약하다거나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에서 자아의 내적인 조화가 심하게 방해받을때 충동구조 가운데 한 부분이 발현하여 자아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아가 충동구조에 종속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최소한 먹고 마시는 것에서는 이렇게 되기 쉽다.....다시 말하면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욕구 충족적 행동을 하는 것은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즉 내가 이렇게 비대해지는 것은 나의 자아가 약해서 욕구가 이성을 눌러 버린 다는 뜻 되겠다.
이것도 동의 한다.
이런 나와 같은 유형의 인간에게 던지는 피셔의 충고.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내가 스스로 오늘은 추워서 또는 기분이 안 좋아서 또는 너무 피곤해서 뛸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계획을 확실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가 내 계획을 압도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나 뛰러 나갔다.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그렇게 했다. 나의 리듬을 발견하고 매일의 의식에 익숙해져야 내 안에 있는 치사한 마음을 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도 항상 저런 핑계를 댄다. 비단 달리기에 국한하지않는다. 일상사 모두에 미루거나 안하는 핑계를 댄다. 이러한 나를 바꿔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더불어 이 책을 매우 감명깊게 읽으시고도 그 비대한 몸을 이끌고 절대 운동하지 않으시는 나의 스승 김모 교수님께 심히 존경을 표해 마지 않는다. -'어떻게 이 책을 읽고도 안 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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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8-0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감동적으로 읽었는데요, 얼마전 기사를 보니 요쉬카 피셔가 다시 옛날 그 몸매로 돌아갔다네요 정치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계속 먹었을까요? 다시 달리기에 돌입했다고 하는데 체중 유지하는 거 쉽지 않나 봐요

코마개 2005-08-0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다녀왔습니다. 휴가중 저도 넘 먹어서 피셔와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먹는 유혹이 어찌나 큰지...
 
이승철 - A Walk To Remember - 20th Anniversary
이승철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승철의 20주년 기념 음반이 나왔다.
"브로마이드 한정판" 이란다.
기실, 내가 무슨 10대도 아니고 그의 브로마이드는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와도 버릴것이었다.

오늘...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음반이 도착했다.
네모난 상자에. 일반 책크기.
이상타...

상자를 개봉한 순간, 난 "이 무슨 퐝당한 시츄에이션"을 외치고 말았다.

음반 크기에 맞게 정성껏 곱게 곱게 16등분 하여 접은 브로마이드를 음반과 함께 사무용품의 대표격인 '노란 고무줄'로 혹여 두몸이 될세라 꽁꽁 묶어 보내신 이 알라딘의 정성!!!

사진도 같이 올려 이 감동적 시츄에이션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으나 지금 당장 카메라가 없는 관계로 내일로 미룬다.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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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태 2005-06-2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몇달전..저도 조성모 초회한정판 브로마이드..4등분..당했음..
도대체 브로마이드를 접어주는 저의가 뭐지..그럴거면 차라리 주질말든가

세벌식자판 2005-07-02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_-;)a
알라딘에서 브로마이드를 준다고 하면 긴장해야겠군요.

freeN 2005-07-1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마이드주는 상품, 인터넷에서 처음 주문하셨나보죠?
원래 브로마이드포장비 별도 이런 말 없으면 다 상품 사이즈에 맞춰 접어보낸답니다.

코마개 2005-07-1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말했더니 다른 음반들은 다고지 했는데 이승철 음반만 고지가 빠졌다나요...저처럼 브로마이드 있는 음반 첨 사서 받아본 사람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세계종교 둘러보기'이다. 그러나 1권 391쪽의 책으로 세계종교를다둘러보기는 무리가 있다는건 저자나 독자 모두 알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표적인 세계의 종교 둘러보기' 정도...
별을 4개만 준 이유는 오강남 선생이 좀더 심화된 속편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우선 우리가 모르던 많은 종교적 사실을 알게 해준다. "어 그래??"라는 감탄도 나오고.
여기서 퀴즈~~
기독교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하갈이라는 여종에게서 나은 이스마엘을 하갈과 내쫓는데 그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삼는 종교는???
다 알고 있나? 이슬람교 되겠다.

불교의 경우 그렇게 복잡한 교파와 변형이 있는줄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나무아미타불'은 정토종에서 나온 것인데 아미타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극락왕생이 된다고 믿어 '서원하다'의 '나무'와 아미타의 이름을 붙여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을 하는 것이라 한다.
일본에서 건너온 종교중에 '남묘호랑개교'라고 알고 있었던....어렸을때 옆집 아줌마가 믿어서 모여 앉아 염불을 외는데 '개굴개굴개굴'로 들리던 그 종교의 정확한 이름은 '일련종'이고 '법화경'을 진리로 보아 경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중요시 하여 '묘법연화경'에 귀의한다는 뜻의 나무를 붙여 일본발음으로 '나무묘호렌게교'라고 외운다 한다. 개굴개굴개굴이 아니었다.(비하의 의도가 아니라 내 귀에 정말 그렇게 들렸다)

힌두교는 저자의 말대로 너무나 복잡다단하여 잘 파악이 안된다. 나의 머리를 탓해야지..

조로아스터교는 그 전까지 없었던 천구과 지옥, 부활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어 기독교등 여타 종교에 이런 개념이 반영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의 천국의 개념은 나의 맘을 사로잡았다. "천국은 정금(황금)으로 된 거리보다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동산으로 묘사되고, 의로운 사람은 취기나 숙취가 따르지 않는 술을 마시게된다"고 한다.
아마도 이슬람교가 사막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길이 천국으로 묘사 되었으리라. 숙취가 따르지 않는 술이라...매우 땡긴다. 그러나 취기가 오르지 않는 술은 왜 마시지?? 성경에 '술취하지 말라'는 귀절 때문인가? 하여간 매우 마음에 드는 천국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할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유교이다. 주입식 교육 덕택에 책을 읽는 내내 무의식적으로 학창시절 외운 것들이 마구 떠올랐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게 뭔지는 모르나 기억났었는데, 이게 바로 맹자의 성선설에서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기본적 덕성,'사단'이란다.
유교의 궁극 목표는?? 成人인 되는 것이란다.

처음 알게 된것은(거의 대부분 처음 알게 된것이지만) 도교와 도가가 거의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도가사상은 정신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절대 자유와 초월을 추구하고 도교는 육체적으로 불로장생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정말 그 동안 얼마나 종교와 사상에 무지했는 가를 알수 있다.

지금껏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독교에 대해서도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종교가 발원한 곳의 문화와 그 종교의 내용이 얼마나 닮은 꼴을 가지고 있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혹여 "나는  00종교를 믿고 어려서부터 믿어왔기 때문에 잘알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있다면 한번 읽어보시라. 나의 무식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되리라.

좀 아쉬운 점은 좀더 깊게 다루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분량에 말 그대로 '둘러보기'이니 이정도로 만족하고 각자 궁금한 점은 공부해야겠지.

165쪽  행복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과 비례해서 증대하는것 같지만 욕망을 충족시켜봐야 욕망이 더 커지므로, 오히려 욕망 자체를 줄이는 것이 효과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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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6-1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강남은 전 <도덕경>을 통해 알게 됐쬬. <장자>였나??

코마개 2005-06-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 해설서를 썼죠. 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제 구입 목록에 들어있어요? 훌륭한가요? 읽기 쉬운지요? 오강남 교수 자체가 글을 쉽게 쓰기는 하는데...다음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 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김훈이 쓴겁니다. 자전거 여행의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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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사회부 기자 (평기자 자처, 맞죠?)할 때 쓴 글인가요?
다시 읽어봐도 좋네요.

코마개 2005-06-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평기자 시절 쓴거 맞습니다. 단문의 수식 없는 문체. 매력적이죠.
아프락사스님 양심에 관해 관심 있으시군요. 제 논문 제목이 양심의 자유걸랑요...근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양심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