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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p27)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p7)
"사람들은 은희가 내 손녀라고 생각한다. 딸이라고 하면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올해 칠십 줄에 들어섰지만 은희는 경우 스물 여덟이기 때문이다." (p16)
"은희 엄마가 내 마지막 제물이었다." (p22)
"제발 우리 딸만은 살려주세요." (p26)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마을에서 우연한 기회에 '박주태'라는 인물과 마주친다. 나는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이 때문일까, 그는 내 주변, 아니 은희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하나 뿐인 딸을 지키기 위해 그를 뒤쫓는다. 하지만 치매(알츠하이머 병)로 인해 과거는 물론 조금 전의 일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나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심플하게 넘어간다. 구차한 설명이나 변명 없이, 숙달된 킬러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사뿐히 흘러갔다.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텍스트는 동남아의 외딴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처럼 한가로웠다. 시원하게 뚫린 하늘과 바다는 하나 둘 지워지는 주인공의 머릿속처럼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
그의 치매 증세가 나에게 전이된 것일까. 마지막장을 덮자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다. 소설 속의 전후 이야기기가 두죽박죽 뒤섞이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의 기억법은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자신으로 향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끝없는 허상을 불러일으켜 그의 생각을, 그의 세상을, 그의 인생을 허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살인자의 기억법>은 내가 느끼던 기존의 '기억법'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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