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 지구 가장 깊은 곳에서 만난 미지의 세계
제임스 네스터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8월
평점 :
지난 5월, 처음으로 프리다이빙 강습을 신청하고 5m 풀장으로 향했다. 예전에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잠수하는 스쿠버다이빙을 약간 배워봤지만 수압을 견디게 하는 이퀄라이징(압력평형기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수영을 통해 물과 바다에 친해진 다음에도 물 속 세계는 여전히 도달하기 힘든 넘사벽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잠수에 대한 열망이 컸다.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에도, 동남아에서 호핑투어를 나갔을 때에도 바다 속 세계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이렇게 신청한 프리다이빙 강습이었지만 이퀄라이징에 대한 불안한 경험처럼 귀가 잘 뚫리지가 않았다. 남들은 몇 번의 시도 만에 도달하는 5m 바닥도 강습 첫날에는 닿지 못하고 두 번째 강습 때에 가서야 겨우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퀄라이징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귀는 여전히 먹먹하고 아프기만 했다. 계속 연습하면 좋아질 거라고 강사님도 이야기 했지만, 얼마나 걸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두세 번의 다이빙으로 프리다이빙 라이센스를 취득하기도 하지만 몇 달, 아니 해를 넘기기도 한다는 말에 자신감을 갖고, "까짓것, 언젠가는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차에서도, 직장에서도 압력평형 기술(프렌젤)을 연습하고 익혔다. 특히 유투브의 설명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모호하던 프렌젤이 몸에 익어가고, 5m 수심의 풀장도 비좁게 생각될 무렵 바다에서 해양실습을 진행했다. 높은 파도와 2~4m 전후의 짧은 시야는 검푸른 바다 속을 더욱 두렵게 했다.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10m 이상을 내려가야 하지만 7m를 넘어가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이퀄라이징은 잘 되지 않았고, 꽉 조인 슈트는 더욱 갑갑해졌다. 바다 속 부유물은 세포 속 박테리아처럼 징그럽게 다가왔다. 함께한 교육생들은 덕다이빙으로 10m를 잠수하고, 레스큐(구조)를 멋지게 성공시켰지만 나는 아직 10m도 내려가보지 못했다. 과연 올해 안에 10m를 내려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강사는 바다에 다섯 번을 도전해 성공한 사람도 있다고 안심을 줬지만, 진행 속도가 너무 더뎠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습을 통해 귀는 압력변화에 적응하고 있었고, 몸은 점점 수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갑갑하던 마음도 조금씩 바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두 번째 해양실습에서 10m를 내려갈 수 있었고 한결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남 욕지도에서 진행한 실습에서는 13m, 20m를 내려갔고, 레스큐도 통과해 5개월 만에 프리다이버(SSI Level1)가 되었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나를 지켜보던 아내가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추천한 책이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다. 왠지 이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더 깊이 잠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선한 가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제이스 네스터(저자)의 책을 펼친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에 프리다이빙 대회를 취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바다와 프리다이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프리다이빙의 의미와 방법, 경기종목과 훈련방법, 그리고 수심에 따른 수압과 우리 몸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해가는 프리다이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바다 속에서의 생활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과학자를 만나 수압의 힘을 알게되고, 상어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와 함께 바닷 속 생명체의 존재와 이들의 생활방식을 듣는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잠수의 역사와 함께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를 찾아 나서고, 상어와 함께 수영하며 이들이 해변에 출몰하는 원인을 찾아나선다. 고래의 의사소통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향유고래를 기다리고, 잠수정을 타고 에베레스트 산과 맞먹는 높이의 해구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기원을 찾아본다.
최근 프리다이빙이 텔레비전 속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다, 긴 핀을 차고 바닷속을 누비며 열대어와 인생 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책에서는 그런 화려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를 이야기하며 정복하고 지배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또한 무모한 깊이 경쟁으로 다이빙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프리다이빙 경기도 질책한다. 바다와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한 다이빙이 아니라 이기심과 경쟁만 남은 무모한 숫자 경쟁을 되돌아보게 된다. 철저한 준비와 자기 수련이 없으면 피를 토하거나 기절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다이빙의 현실을 말하기도 한다.
책은 프리다이빙을 넘어 바다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호흡이 필요하다. 욕심을 부려서도 안되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자신을 비우고 물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리다이빙은 "바다와 가장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시 바다로 간다.
희미해지는 라인을 향해 핀을 찬다.
바다를 채운 부유물이 마스크를 스쳐간다.
우주 속, 별들 사이를 고요히 유영한다.
나는 프리다이버다.
(욕지도 프리다이빙, CWT 2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