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유래혁 지음 / 포스터샵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얀 표지, 액자처럼 박힌 한 폭의 그림, 새파란 하늘에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검은 아스팔트 위, 자전거로 시원하게 내달리는 두 청춘.

내가 <수족관>을 집어 든 가장 첫 이유이지 싶다.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는 파랗고 하얀 선명한 이미지만큼이나 강렬했고, 내용 역시 시리도록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청명한 분위기로 예상하며 책장을 펼친다.

우선 시집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장들이 하얀 지면에 흘러넘친다. 현란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책을 이끌어간다. 배경은 시가 되고 이야기는 그림이 된다. 그리고 열일곱 살의 풋풋한 청소년이 주인공인데다 일본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를 보는 것 같았다.

보육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류이치는 자신의 지갑을 훔친 아카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도 보육 시설에서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훔친 지갑을 팔아 멀리 떠나고 싶다는 그녀를 도와주며, 그녀에게 마음이 빼앗긴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아카리의 행동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녀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화창하고 발랄하던 이야기가 아카리의 죽음으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진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이 여럿 보이며 사뭇 어두워진다. 그래서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 어둡고 습한 분위기로 급변한다. 마치 우울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기복이 심했다.

물론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소재로 후루룩 읽어버렸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감정의 변화들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이별, 상처, 외로움에서 시작된 아픔은 빈곤과 가출, 폭력과 도벽으로 확장되고 결국 죽음이나 자살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지만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산은 있지. 그렇게나 쉽게 부서지고, 망가지면서도. 웬만큼 수리용 부품이 따로 나오질 않나 봐. 차라리 새로 사는 게 휠씬 싸서. 그러니 수리를 할 때엔 부서진 것들 중에 각자 쓸 만한 부품들을 모아서 고치는 게 대부분인 거야. 선생님은 그게 꼭 사람 같다 하셨어. 사람도 사람을 고치는 데에 따로 부품이 있질 않고 고장 난 마음을 고치기 위해서는 꼭 서로가 만나서 서로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뜯어 내고, 기워 주고, 붙여 주고. 그래야만 하니까. 그렇게 기어코 하나의 마음이 되는 게 우산과 꼭 닮았다고."(p300)

끝으로, 사람이 부서진 우산 같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쉽게 드러내놓고 치유받지 못한 이들이 힘차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힘겨워하는 이웃들에게 우리 모두가 서로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www.freeism.net)

우산은 있지. 그렇게나 쉽게 부서지고, 망가지면서도. 웬만큼 수리용 부품이 따로 나오질 않나 봐. 차라리 새로 사는 게 휠씬 싸서. 그러니 수리를 할 때엔 부서진 것들 중에 각자 쓸 만한 부품들을 모아서 고치는 게 대부분인 거야. 선생님은 그게 꼭 사람 같다 하셨어. 사람도 사람을 고치는 데에 따로 부품이 있질 않고 고장 난 마음을 고치기 위해서는 꼭 서로가 만나서 서로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뜯어 내고, 기워 주고, 붙여 주고. 그래야만 하니까. 그렇게 기어코 하나의 마음이 되는 게 우산과 꼭 닮았다고.
- P300

그녀의 말대로 삶은 어쩌면 평생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훔치고, 찾아내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코디언>은 소설이 아니라 음악이다. 그것도 전쟁 직후의 절망과 혼란, 가난과 죽음이 뒤섞이며 우리 역사의 회색빛 상흔으로 남아 있던 시기의 진혼곡이다.

  럭키 서울(1948, 현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목포의 눈물(1935, 이난영), 슈샨 보이(1952, 박단마), 테네시 왈츠(1950, 패티 페이지), 홍콩아가씨(1954, 금사향), 타향살이(1934, 고복수), 열아홉 순정(1959, 반야월), 베사메무쵸(1949, 현인), 이는 1950년대를 관통했던 음악이자 <아코디언>의 구성하는 각 장의 제목이다.

  그래서 둥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 음악들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오래된 LP를 올려놓은 듯한 잡음과 함께 수줍은 반주가 시작되고, 구슬프고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온다.


 "동이는 아코디언을 집어 들어 자리에 앉은 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즉흥연주였다. 음정도 박자도,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손 가는 대로 건반을 짚고 감정대로 바람통을 눌러 아련한 멜로디가 움막 안을 가득 채웠다. 뜻밖의 아코디언 소리에 아이들은 하나둘 울음을 그치고 동이의 즉흥연주를 감상했다. 그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지만 끊길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는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짙은 슬픔이 깔려 있어 잘 아는 곡처럼 친숙한 느낌이었다."(p84)

  동이는 전쟁고아들을 모아 앵벌이를 시키는 양 목사 밑에서 힘겹게 생활한다. 하루 종일 구걸하고 와도 남는 것은 멀건 호밀죽뿐이다. 굶주림과 착취는 일상이 되었고, 무차별적이고 대책 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때 동이의 눈에 아코디언이 들어온다. 교회에서 풍금을 치던 엄마를 떠올리며 동이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동이는 연주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풀어놓았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p226)

  <아코디언>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이 일상이었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조차 버거웠던 시절. 법과 질서보다는 아첨과 협박, 때로는 주먹과 발길질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빠른 방법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직접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50대인 나에게도 낯설지만, 지금의 3~40대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질서가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배고픔과 굶주림을 겪고 나서야 밥 한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폭력과 혼란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을 경험한 뒤에야 법과 질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거칠고 불편했던 시간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낸 토대였는지도 모른다.

  아코디언은 수많은 주름을 접고 펼쳐지기를 반복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가난과 전쟁, 폭력과 혼란, 좌절과 궁핍이라는 수많은 주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다.
  그래서 아코디언의 그 많은 주름은 단순히 우리가 지나온 고단한 흔적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주름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밀어 올린 스프링이 아니었을까. 과거의 고통과 혼란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견디고 극복해온 힘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코디언>은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굴곡진 역사를 지나,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밀려 올렸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풍요와 질서 역시 그 수많은 주름이 만들어낸 한 소절의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의 기술 - 책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명환, 어디선가 자주 들었던 이름인데,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때 잘나가던 코미디언이었다는 말을 듣자 그의 얼굴이며 말투가 실루엣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그 코미디언... 요즘에 뭐하지?"라는 의문에 옆에 앉은 지인으로부터 "최근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인기가 장난 아니다"고 한다. 오히려 연예인으로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보다 더 잘나간다고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뛰어난 언변으로 최고의 명사가 되었다는 것.

사실 이번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교육부 사업(협약형 특성화고)에 선정되어 '부산전력반도체고'로 전환 개교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홍보활동과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 학교의 한 졸업생이 고명환 작가와 친분이 있어, 행사 준비에 도움을 받고자 추천을 받았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책이 나와 놀랐다. 난 그중 가장 최근에 나온 <독서의 기술>을 주문했다.

<독서의 기술>은 독서에 대한 작가의 예찬사다. 조선시대 때 유씨부인이 바늘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담아 쓴 '조침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책과 함께 시작했고 그 끝에는 독서가 있다는, 이 길만 따라가면 정신적 삶은 물론이고 경제적 풍요까지 얻을 수 있다는 독서에 대한 극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과 힘들었던 식당 사업을 겪으며 많은 위안과 해결책을 제시해준 독서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떻게 책을 읽고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는지 실천적 방법과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다시금 독서에 시동을 걸고 있기는 하지만 즐겨 읽는 분야가 아니면 잘 손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독서의 기술>에서는 난해한 시집이나 엄청난 양으로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세계문학전집, 무게 만큼이나 두껍고 어려울 것 같은 인문학 책을 어떻게 처리(^^)할지 지침을 내려준다.

아직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성경 읽기와 독서라는 작가가 놀라울 따름이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스마트폰의 쇼츠만 기웃거리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나도 한때는 책을 참 많이 읽었는데... 통신병으로 있던 군대 시절, 업무 외의 시간이면 내무반 바닥에서 책만 죽어라고 읽던 나를 '방바닥'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그 때는 독서 목록표를 만들어 한 달에 10권, 1년에 100권 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대 후에는 대학교 때는 전공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워 강의실 뒤편에서 책만 줄기차게 읽었고 1998년부터는 <어린왕자>와 <갈매기의 꿈>, <무소유>를 시작으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독후감과 여행기를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진행하던 서평단을 하면서 독서의 레벨이 많이 올랐던 것 같다. 매주 2~3권의 신간이 배송되어 왔고 이를 읽고 서평을 올려야 했었다. 산문이나 소설은 그나마 수월했는데, 인문학 책은 정말 글을 쓰기 위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커피 전쟁과 배신을 주제로한 심리학 책, 그리고 인간의 뇌과학까지 알라딘에서 던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었다.

학교에서 담임을 하던 시절에는 반 학생들 모두에게 책을 선물해주기도 했고, 수업시간을 쪼개 독서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온갖 학교의 문제에 연루되었던 학생과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기도 했는데, 잘 따라올 것 같지 않던 학생이 책을 읽고, 느낌을 적어보고, 작은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봤던 일도 떠오른다.

나도 나름 책을 많이 읽었고, 독서의 가치에 대해 알고 있기에 그 간절함이 충분히 와닿았다. 하지만 고명환 작가의 독서 예찬론이 너무 절절해서일까. 자칫 독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수단쯤으로 독서를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서의 다양한 가치 중에 돈벌이나 출세를 위한 지침서 같은 측면만 너무 부각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어쩌면 성공이나 출세의 굴레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책을 읽는데, 여기서마저 우리를 몰아세운다면 과연 어디서 쉴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책 속에는 성공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휴식의 시간과 공간도 충분한데 말이다.

책을 펼치면 왼쪽 면과 오른쪽 면이 만나는 가운데로 제본하면서 생긴 깊은 골(거터, Gutter)이 보인다. 문득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며 만나게 하는 수평선처럼 느껴진다. 두 면을 나누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책으로 이어주는 선. 어쩌면 활자들이 남긴 시간과 공간을 잇고, 책과 독자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경계인지도 모르겠다. 독서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자 하는 고명환 님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한다.



무더위를 날려버릴 <독서의 기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선란, 그녀의 소설에 푹 빠져버렸다. SF 소설은 외국 고전 외에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고, 이야기가 엉성하거나 너무 비현실적일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잘 읽지 않았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이런 편견과 나의 경솔함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완전히 새롭고, 역동적이고 매혹적이면서도 섬세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작품이었다.

안드로이드 기수인 콜리는 멋진 하늘을 보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진다. 프로그래밍된 데이터로 움직이는 로봇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지만, 제작 과정에서의 실수로 콜리는 자신이 타는 말(투데이)과 교감하며 감성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말의 생명력과 즐거움을 이해하고, 하늘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다.

콜리는 이렇게 세상에서 떨어져 고철이 되어 폐기될 운명이었지만, 연재의 눈에 띄어 그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소방관이었던 아빠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엄마 보경은 식당을 운영했다.

로봇공학에 탁월한 소질을 가진 연재는 망가진 콜리를 수리하는 한편, 연골이 닳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투데이(경주마)를 살리기 위해 경주에 다시 출전시키려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몇 번씩 놀라게 된다. 소설이 허구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다양함과 섬세함은 깊이 생각하거나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점점 로봇으로 대체되어 가는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람들, 첨단 장비 도입이라는 명목 아래 기본적인 안전이 소홀해지며 발생하는 문제들, 장애인의 경험과 그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 반려동물에 대한 순수하지만 위험한 생각들까지. 작가의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래서 자꾸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를 읽게 된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 로봇을 등장시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알면서도 외면했던 생명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나 존재하는 생명은 없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살아 있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비스’라는 이름의 개를 키운 적이 있다. 서면 육교 위에서 산 똥개였고, 2~3년 정도 함께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족이 며칠간의 겨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개는 딱딱하게 얼어 죽어 있었다. 아마도 동네를 뛰어놀다가 쥐약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죽은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죽음은 낯선 것이었지만, 따뜻한 체온을 가진 동물이 통나무처럼 굳어 있던 모습은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강아지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말티즈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예전처럼 쥐약을 먹을 일도 없고, 밖에서 키우는 환경도 아니지만, 예방접종과 관절 수술까지 하며 비교적 오래 함께 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팔자’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식은 밥을 먹으며 집을 지키는 똥개였다면, 지금은 건강관리와 생일상까지 챙김 받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인간의 필요와 욕망이 만들어낸 기구한 운명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는 단순한 소유물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부모나 형제 이상의 가족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p286)

빠른 속도로 달려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해야 하는 경주마의 세계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이런 숨가쁜 순간 속에서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나 이외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콜리는 가지고 있었다. 차가운 알루미늄 속에 숨겨진 따뜻함은, 빠르게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파랑’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넷플릭스를 검색하다가 <리플리: 더 시리즈>(2024)를 알게 되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평가도 좋아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원작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다섯 권으로 된 동명의 소설이 나왔고, 이 외에도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 맷 데이먼의 <리플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플리>는 총 5권으로 이뤄진 연작 소설로, 1편에 해당하는 <재능있는 리플리>는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청년 리플리가 부유한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그의 삶을 살아간다는 범죄소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과 생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 심리, 스릴러물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허접하고 볼품없는 삶을 사는 리플리는 디키의 귀국을 설득해 달라는 그의 아버지 요청으로 이탈리아로 떠난다. 리플리는 그곳에서 호화롭게 생활하는 디키를 만나게 되고, 그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게 되면서 질투를 넘어 심한 모욕감까지 느끼게된다. 결국 디키로 살기로 결심하고 바다에서 그를 살해한다. 리플리는 점점 디키처럼 입고 말하고 생각했다. 그의 풍족한 삶에 빠져들며 동일시하게 되고, 이를 숨기려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또 다른 삶, 어쩌면 우리 안에 숨겨진 희망이자 욕망이 아닐까.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선생님 말을 무시하고 그 대학을 지원했다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주식을 계속 갖고 있었다면... 과 같은 일상적인 바램부터, 내가 톱스타이거나 대기업의 상속자라는, 혹은 엄청난 금액의 로또 당첨자였으면 하는 다소 엉뚱한 바램 역시 내가 갖지 못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리플리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그 연장선에서 본다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고 영화나 유튜브를 보는 것도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여행사나 작가, 감독, 유튜버는 나를 대신하는 디키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기반이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저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돌아올 곳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되돌아올 현실이 있기에 더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으리라. 현실이 상상 속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면 정해진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모니터 속 게임 캐릭터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리플리는 디키의 껍데기를 쓰고, 그의 삶을 살아보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막혀 리플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속이려 했지만 이는 거울 속의 일시적인 허상일 뿐 실재할 수 없었다.

그의 기행은 자극적인 릴스에 갇혀 단편적인 흥밋거리만 쫓아가는 우리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불로초를 찾아 세상천지를 돌아다니는 진시황의 꿈처럼, 있지도 않는 허상을 찾아 액정 화면 속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우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리플리의 일탈이 멋있고 낭만적이게 보일 수는 있어도 영원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점은 변함없어 보인다. 전원 코드만 뽑아버리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화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신기루가 매혹적이기는 하다. ^^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