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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견주(堅主)라는 이름보다 견자(犬子, 개새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맹인 침술사이자 최고의 칼잡이인 황정학으로부터 칼 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황정학이 이몽학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견자 곁을 떠나자 산적 이장각과 함께 의적 행세를 하며 나라에 등을 돌린 민심을 확인한다. 이장각이 관군과의 싸움에서 죽자 동요하는 산적패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때마침 찾아온 스승과 재회한다. 그러나 스승 황정학의 갑작스런 죽음은 자신이 겨눠왔던 '칼'의 의미마저 흔들어놓았다. 결국 견자 자신을 가두고 있던 자존심과 오기를 깨뜨리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칼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던지려던 견자. 그의 서슬 퍼런 칼날은 세상을 향해 자유를 노래한다.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마저도 그의 칼 끝 앞에서는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이었다. 견자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칼>(이외수)이 기억난다. 거기서 칼은 피에 대한 갈구이자 욕망이었고 <칼의 노래>(김훈)에서는 사지를 찾아 춤추는 진혼가가 아니었던가. 그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말하는 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켄신>에서는 역날검(칼의 윗면에 날이 있어 일반적인 검법으로는 사람을 배지 못함)을 들고 세상에 뛰어든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칼에 죽었던 원혼들에 사죄하며 칼날을 꺾었다. 견자 역시 칼로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했지만 칼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칼의 쓰임새를 알아야했지만 그 대가는 냉혹하기만 했다. 견자의 손끝에서 나가떨어지던 목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고 사(死)는 단지 자유를 찾는 진행형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만화가 마무리 되는 3권에서도 그는 여전히 피 묻은 칼을 놓지 못했다. 아마도 견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칼을 쓰지 않고도 이기는, 생(生)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프레임을 뛰어넘는 박진감과 한국적인 멋이 흠뻑 묻어있는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바람에 밀리지 않는 달처럼 오롯이 서 있는 견자의 모습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할 우리들의 정체성을 보는 것 같다. 정치의 분열과 왜란이라는 외부의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올곧게 걸어간 선지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 드러난 신분이야 어떻든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하게 매진해온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달’은 변함없이 밤을 비추고 있지 않았나싶다.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을망정 달빛마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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