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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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슬로바키아(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를 중심으로 벌어진 '프라하의 봄'이 중요 배경이기에 이것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에서 소련은 아군에서 적군으로 바뀌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소련은 2차대전 막바지에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하기 위해 진군했던 천사 같은 존재였지만, 종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어 반감을 사게 된다. 이때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의 개혁(1968년)을 통해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소련의 무력 침공으로 무산되었다. '프라하의 봄'은 이 7개월 동안을 일컫는 말로, 세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 후반(1979년)에 터져 나온 민주화 열기(5.18 광주민주화운동)를 '서울의 봄'으로 비유해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튼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알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책은 무거운 시대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만큼이나 가벼웠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순박했던 테레자는 가벼운 사랑을 찾아다니던 바람둥이 토마시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토마시가 자신에게 좀 더 충실하기를, 깊고 무거운 사랑을 원했다. 그리고 토마시가 가볍게 만나던 사비나 역시, 모험적인 삶을 동경하는 유부남 프란츠와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
  테레자가 원했던 깊은 사랑과 이를 단순한 놀이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토마시는, 앞서 말한 체코와 소련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되면서 교차한다. 자신에게 자유를 안겨 주며 영원히 자기편인 줄 알았던 상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더욱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존재가 되었다. 가볍게 시작한 사랑은 깊은 존재감으로 다가오고,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의 작은 차이는 서로 간의 상이한 성장 과정과 생활방식으로 무거운 거리감을 만들었다.

  프란츠는 부인 마리클로드에게 사비나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의무감처럼 유지해오던 부부관계를 끝내지만, 정작 사비나는 뜨거운 정사 뒤에 프란츠를 떠난다. 그 뒤 프란츠는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났고, 파리에 머물던 사비나는 전 연인이었던 토마시와 테레자의 부고를 듣게 된다.

  가정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의 사랑은 허울만 남긴채 사그라들었고, 대신 가볍게 시작된 외도가 점차 그 깊이를 더해간다. 사랑은 형식이나 방향도 없이,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면서, 나름의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가볍게 시작된 사랑은 깊은 존재로 남게 되었다.

  소설은 텍스트가 난해하고 철학적인데다, 화자의 시점과 시간이 뒤섞여있어 등장인물 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외국 소설이 갖는 번역 과정에서의 거리감인지, 나의 짧은 문해력으로 인한 이해 부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 문장이 가진 세부적인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문장과 챕터 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편이 밀란 쿤데라의 글을 이해하는 쉬운 방법인 것 같다.

  하긴 청소년 소설이나 에세이의 쉬운 책도 좋지만, 이런 두껍고 이해하기 힘든 책도 읽어 줘야 내 정신의 폭도 깊어지지 않을까 한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어려움'이랄까! ^^

  유명한 책인데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이전에 읽었던 <책은 도끼다>(박웅현)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글이 있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다.
  확실히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흘려 읽었던 문장들의 관계와 의미가 이해되면서 단순한 사랑놀이 뒤에 숨겨진 다양한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깊이를 가름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중도에 읽는 것을 포기해버릴까도 생각했던 506쪽에 이르는 책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명작이라는 말에 집었고, 사랑에 취해 읽었지만, 난해함에 포기하려던 책을 주변의 도움으로 다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텍스트가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p506)
  결국 토마시와 테레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인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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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다이브 소설Q
이현석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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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서핑을 가르치는 태경에게 다영이 찾아온다. 다영은 지금 잘나가는 인기 유튜버지만, 병원 간호사로 일했을 때는 천대받고 멸시받던 왕따였다. 오죽했으면 창고에 처박혀 나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겠는가. 이런 그녀가 지금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스토리텔링으로 유명인이 되었고, 많은 이의 관심을 받으며 서핑을 배고 있다.

하지만 다영을 지켜보는 태경의 마음은 편치 않다. 병원에서 함께 일했을 때, 그녀가 다영의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방관자로 배회했을 뿐 다영을 돕거나 위로하지 못했다. 힘들게 버텼던 다영과는 달리 태경은 강자들이 구축한 세계에서 편안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푸른 파도 위를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서핑에는 어쩔 수 없는 위험 요소가 숨어있다. 파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 혹은 화려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해변의 지형과 바람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파도를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크고 완벽한 파도일수록 그 밑에 감추어진 암초는 더 위험했고, 거친 파도에 휘말리거나 보드, 서퍼 간의 충돌로 심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피해 갈 수 있는 작은 방편 중에 하나가 어쩌면 덕다이빙이다.

"경사면 아래로 보드를 찔러 넣은 태경은 숨을 참았다. 잠영을 하며 눈을 흡뜬 태경 뒤로 해파리 한 마리가 굴러갔다. 파도가 머리 위를 지나가자마자 태경은 오른발로 보드 뒤쪽을 찍어 눌렀다. 보드 앞이 들리며서 수면 위로 솟아오른 그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는 얼굴을 닦았다.

바늘을 꿰는 것처럼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가 타지 못할 파도를 피하는 이 기술을 서퍼들은 '덕다이브'라고 부른다."(p18)

서핑과 마찬가지로 세상일도 기대처럼 되지 않는다. 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을뿐더러, 타인의 머릿속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웃는 것 같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같이 칼을 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억지 웃음을 짓고, 야근에 지원한다. 혹은 병원에 다니거나 내부고발자가 되기도 한다.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덕다이빙 방법을 찾아보지만, 그 뒤에는 더 큰 파도가 있을 뿐이다.

나만의 덕다이빙은 누구에게 배워서 얻어지기보다는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것 같다.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조율과 균형만이 인생의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

태경은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우리의 오해가 비록 영원할지라도, 앞으로도 내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였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니까."(p284)

아무튼,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공유한다는, 아니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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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석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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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새벽, 졸린 눈을 비비고, 나를 조용히 반겨줄 바다로 간다.
  힘차게 물살을 가른 팔은 리커버리하며 수평선을 향해 길게 뻗는다.
  검지부터 차례로 입수하자 발끝까지 긴 유선형을 만들어 물을 가른다.
  상체를 틀고 꺾어진 팔꿈치부터 한 아름 잡은 물은 가슴을 지나 허벅지 아래로 밀어낸다.
  암청색의 바닷속에는 하얀 거품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수심 아래로 사라진다.
  나는 넓고 고요한 바다를 날카롭게 가르며 미끄러진다.

  바다는 반복된 일상의 갑갑함을 뒤로 밀어내고 나를 전진하게 한다.
  호흡과 함께 사선으로 모습을 드러낸 도시는 이내 찰랑거리는 물결 속에 잠겨버린다.
  나를 잡고 있던 책임과 의무, 질서와 규칙은 긴 물보라 속으로 사라진다.



  최근 수영하는 시간이 늘었다.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빡세게 수영하다 보니, 여기에 몸이 맞춰져 버렸는지 체중도 약간 줄면서 수영에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 주말 새벽에 진행하는 바다수영 외에도 약간의 틈이라도 주어지면 풀장이나 바다를 찾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영과 관련된 읽을거리가 없을까 찾게 되었다. 수영과 관련된 책은 기술적인 입문서 외에 몇 권이 나와 있지만 수영의 과거사만 나열한 인문학 서적이나 수영 입문자가 겪은 일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에세이, 혹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 대부분이라 수영에 관한 소설은 의외로 찾기 힘들었다. 거기다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어 무더운 여름날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책의 가치를 보증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수경과 수모를 쓴 소년이 힘차게 물을 가르고 있는 모습의 표지가 너무 시원했다!

  바다고에 다니는 박욱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바다고 수영부인 스피드(SPEED)에 가입하고, 거기서 아프리카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은 아버지가 바다고 재학 시절에는 최고의 수영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도핑 사건에 연류돼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욱은 아버지가 남겨둔 수영 일기를 보며 수영에 관한 기술과 자신감을 갖는 한편, 아버지가 수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사연도 함께 조사하게 된다.
  한편 저조한 실적의 스피드는 해체 통보를 받게 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하늘고와의 수영 라이벌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욱은 아버지의 도핑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고, 하늘고와의 수영 시합에서 이길 수 있을까?

 바다고 수영부의 해체를 막기 위해 이사장님 댁을 방문하던 욱은 동행한 수빈 선배의 폰에서 공성전 게임을 보게 된다. 곧이어 소설은 수영부 해체냐, 유지냐를 놓고 벌였던 이사장님과 담판을, 철옹성을 지키고 선 적군과 맹렬한 공격으로 성을 함락시키고자 하는 아군의 전쟁에 빗대 리얼하게 표현해 놓았다. 텍스트로 쓰인 아날로그 매체에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긴박함을 느낄 줄이야~
 바다고 수영부에게 스피드 해체는 전장에서의 패배와 같았다.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에, 수영부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 이겨야 했다.

  반면 아버지의 도핑 사건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방점을 둔다. 전쟁 같은 극한의 한바탕 승부가 끝나고 난 뒤의 고요함, 아니 허무함이랄까.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고 피해를 불러오는지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거둔 최고의 성적은 주변의 감각을 마비시켰고, 1등이라는 결과물에 취해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득권의 모든 혜택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었기에 아버지의 주변에서는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겨야만 했다.

  무한의 속도 경쟁 속에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경쟁에서의 순위나 그에 따른 포상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경쟁과 승패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다면 그 결과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코어의 힘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속적인 연습으로 내 안에 내재한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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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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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p7)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p248)이었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거짓말처럼 죽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삶에 비해 초라하다 못해, 코미디같이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추모이자 회상이며, 기억이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p110)


  아리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철도노동자로 일하다 인민의 나라를 위해 지리산을 누볐던 해방전사였지만,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고향 구례에 터전을 잡았다.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노동(농사)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었지만, 친척과 이웃, 하다못해 생면부지의 외지인의 어려운 일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자기 일처럼 도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장례식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고, 이들을 통해 빨치산 뒤에 가려졌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된다.

  거대한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 개인의 이야기가 죽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서러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우리의 역사가 그러하듯, 거친 너울에 가려 보이지 않던 수면 아래의 다채로움이 소소하게 전해진다. 혁명전사, 혹은 빨치산이라는 잔혹한 이름 뒤에 숨겨진 아버지로서의, 아니 이웃이자, 친구, 남자로서의 삶...

  아버지의 장례식은 찬란했던 청준으로 시작해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평생을 살아야했던 아버지의 무게를 벗어던지는 해방구였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p169)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이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p231)



  나의 아버지는 교육자였다. “집념은 기적을 낳는다”라는 믿음과 조국 근대화의 사명으로 학교를 세운 교육자였지만,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십대 때 세운 고등공민학교를 오늘날의 특성화고등학교까지 발전시켰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국회의원의 꿈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차례에 걸쳐 출마했지만 매번 낙방을 거듭했다. 그는 노년이 되어 정치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철이 되면 여러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돌며 정치자 문을 해주거나, 옛 기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과 글을 좋아해 늘 지인과의 술자리를 즐겼고, 거기에는 언제나 학교와 정치에 얽힌 무용담과 함께 시를 읊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니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난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심폐소생술을 받던 마지막 모습이 혈기 왕성하게 교정을 누비던 40대 후반의 아버지 모습과 오버랩된다. 부패 정권 타도를 외치며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단상을 내리치던 모습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힘없이 침상에 누워있던 모습과 대비된다.

  아리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역사와 함께, 혹은 그에 맞서,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왔다. 어떤 물리적인 업적이나 정치적 수식어를 동원하더라도 표현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리와 나를 통해 여전히 세상에 녹아있다. 이것이 아버지의 남긴 최고의 해방일지가 아닐까.










아버지와 나(1975년 6월, 아버지가 세운 동래공업전수학교(지금은 금정전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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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5-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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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p37)
  이렇게 끌려온 철이는 다른 로봇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힌다. 여기서 인간인 선이와 휴머노이드 로봇인 민이를 만나면서 자신도 어쩌면 휴머노이드 로봇일 수 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이렇게 수용소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민병대가 쳐들어온 혼란한 틈을 타 셋은 수용소를 탈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이는 죽고,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를 만난다.

  <작별인사>는 김영하 님의 기존 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배경부터가 로봇과 미래사회다 보니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휴머노이드, 과학, 로봇, 복제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사회시간인 줄 알고 기다리던 교실에 갑자기 컴퓨터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랄까(아니 신선함이라고 해야 옳을 듯). 김영하 님의 색다른 시도와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점점 흥미로웠다.

  책장이 넘어가자 로봇과 인간의 대결처럼 보이던 소설에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겉모습만 보면 인간의 정체성을 간직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방황기 정도로 보이지만, 텍스트 곳곳에 남겨진 내용은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심오해진다. 

  우리 인간은 점점 복잡해지고 시스템화 되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와 이를 증명한다고 믿는(아니 착각인가?) 자의식이나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뇌?
  그럼 이 신경 덩어리가 인간의 근원이란 말인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유전자 조작이나 장기이식, 의체기술은 생명의 경계마저 사라지게 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글을 쓰는 인공지능부터, 뇌에 전기적 자극을 통해 시각을 재생하고, 최면이나 무의식을 이용해 기억도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젠 뇌의 기능과 복합적인 사고력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도 어려워졌다. 

  
  나는 인간이 길거리의 가로수나 개울가의 올챙이,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나 안방의 옷장, 자동으로 온도를 맞춰주는 김치냉장고나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과 무엇이 다른지 자문해본다. 생물학적인 외형이나 '나'라는 생각이나 의식만으로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이런 인식마저도 사회적 관습이나 보편적 규율에 따라 학습된 것은 아닐까.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진짜 나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최근 챗봇(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채팅로봇)이 많이 화자 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정보를 학습해 새롭게 가공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마치 유명한 교수나 석학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논리정연하다. 심지어 몇 달이 걸릴 보고서나 어려운 숙제도 척척 풀어내고 있어 일부에서는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봇은 인간의 능력과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을 즐기고 소비하는, 수동적인 것들 뿐이리라.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고물덩어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작별인사>는 수동적인 삶에 대한 김영하 식의 작별 인사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주문하는, 인류에 대한 마지막 인사...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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