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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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쓰다듬는 일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지금은 대형화되어 버린 만화방과 오락실.

나의 80년대는 만화방과 오락실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불온한 학생들의 아지트라며 소위 범생이, 혹은 건전한 학생들은 가기를 꺼렸다는데...믿거나 말거나.

오락실에서 울려나오는 뿅뿅 소리가 얼마나 황홀했으면 그런 곳 다니면 나쁜 언니 혹은 오빠들한테 삥 뜯긴다며 엄포를 놓는 사촌오빠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그곳을 기웃거렸을까.

그러다가 사촌오빠의 눈에 띄어 질질 끌려나오기도 여러 번.

사촌오빠는 거의 오락실에서 살았으면서, 아마 짱도 먹었을 걸...

그래도 오빠의 주무대는 만화방이 아니어서 나는 주로 곰팡내 나는 만화방을 애용했다.

옆집 언니가 만화방에서 빌려왔던 김동화의 만화<아카시아>가 내 첫 만화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아직도 제목과 작가를 잊지 못한다.

순정만화를 한창 섭렵하던 그 시절, 시장통 한가운데 나만의 비밀계단을 내려가면 만화책으로 꽉 찬...아마 담배연기도 자욱했겠으나 이상하게도 한산했던 나만의 공간을 만나는 즐거움이 너무도 컸었다.

그 즐거움에 500원, 1000원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학교 파하자마자 내리달았던 추억, 추억들.

다행히 내가 그 즐거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 내게서 삥뜯어간 나쁜 언니 오빠들은 없었다. 감사, 또 감사.

 

기억을 되짚어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야식을 먹는 일과 같다.

뭔, 뜬금없는 소리냐고?

야식을 먹고 나면 나른한 포만감에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띄며 행복해 할 수도,

'내가 왜 먹었을까?' 후회할 정도로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유발하는 야식먹기처럼,

기억을 되짚는 일도 어떤 때에는 달콤하지만 어떤 때에는 시금털털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좋았던 기억도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만화방으로 내리달았던 숨가쁜 행복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가게 일을 돕기 싫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던, 현실도피처로서의 만화방의 기억도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떠올린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기억은 잘나가는 대중문화평론가 현수빈이 비밀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명한 인터뷰어, 강사로서의 유명세에 힘입어 80년대 얘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10회 연재분 칼럼을 쓰게 된 현수빈은 어릴 적 살았던 다가구 주택을 소재로 삼기로 한다.

라일락 하우스라 이름붙인 그 집에는 그녀의 다섯 살 무렵부터 여덟 살 초까지의 기억이 스며 있었다.

마침 20년 만에 다시 만난 소꿉친구이자 현재 남자친구인 우돌이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줄 터였다.

안채와 별채로 나뉜 집에는 수빈네 가족과 세 언니들, 과일장수 우돌네 네 가족, 유난히 닮았으며 금실 좋았던 별채 신혼부부, 문간방에서 자취했던 영달이 오빠가 살았고, 가끔 들러 집을 단속하던 집주인 아저씨가 있었다.

 

연탄 아궁이, 석유풍로, 김장 묻은 화단 구덩이.

새록새록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그녀의 칼럼 5회째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영달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이 부분을 읽고 그녀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 그는 바로 늙은 전직형사 고영두였다.

 

은퇴 후 할 일 없이 넘겨 보던 신문 속에서 과거의 사건이 영두에게 다시 다가와 해결되지 못한 의문을 건드렸다. 무엇을 더 하든 하지 않든 앞으로는 이 여자아이가 결정할 것이다. -21

 

현수빈의 칼럼에서는 쥐 한 마리에 20원 하는 부업에 열중하는 아낙들 , 컬러 TV와 빨간 전화기에 얽힌 추억, 서민 낙찰계의 실상들이 하나 하나 소개되는데 그것들이 알고 보면 영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해결하기 위한 징검돌이 되어 준다.

형사 고영두의 접근 때문인지, 칼럼이 소개되고 라일락 하우스에 살던 이들과 연락이 닿으면서 그들을 만나는 동안 현수빈은 영달의 죽음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건의 진실에 점차 근접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남자친구 우돌은 그만 덮어두자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다.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 덮어 두었을 때에만 아름답게 빛나는 법인가?

마냥 복고풍의 추억담을 꺼내 쓰며 순진하게 과거를 회상하기에는 라일락 하우스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수빈이 만나는 사람들의 기억은 다들 달랐지만 그들의 말들은 점차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고 있었고, 거기에는 묻어두었더라면 좋았을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모두가 다 몰랐다면, 알고도 숨겼다면,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그 일은 없었던 일인 거잖아요. 내가 나 자신을 의심해야 했겠죠. "

고맙습니다.

김순자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었다.

-337

 

기억을 쓰다듬는 일.

더러는 간지러움에 웃음 터지게도 하고, 더러는 아픈 상처를 건드려 쓰라리게 하기도 한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안에 우글거리며 모여 살던 사람들은 그저 제대로 살아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저 천진난만하게 눈망울을 또록거리며 작은 것들 하나 놓치지 않고 기억에 담았을 뿐이다.

지나온 발자국은 돌아보면 삐뚤빼뚤.

그래도 먼 발치에서 보면 대체로 평탄하게 이어져 온 것 같다.

기억을 꺼내보느냐, 덮어두느냐하는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해마다 라일락을 보면, 어찔한 향기와 함께 라일락 피던 집의 이야기가 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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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7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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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견우직녀달 [샘터 7월]

 

견우직녀가 만나는 아름다운 달. 7월.

이렇게 고운 우리말 달 이름을 쓰니, 자칫 잊고 지나갈 뻔 했던 칠석도 한 번 더 챙겨보게 되고, 어여쁜 이름들, 견우, 직녀도 한 번 더 불러보게 된다.

7월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 달이 되기를 기대한다.

7월의 표지는 빗방울이란 동시인지, 동요인지를 생각하며 보면 참 잘 어울린다.

 

빗방울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본격적인 장마철을 예고하는 듯, 자주 날이 흐리고 후텁지근하다.

기분이 울적해지고 괜히 짜증이 날 때, 샘터 7월호를 보면 표지부터 상콤한 기운이 전해질 것만 같다.

더불어 소녀의 발그레한 뺨에서 묻어나는 건강한 웃음이 기분을 업시켜 주리라.

 

이번 7월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빼곡하다.

고래 보호 운동을 펼치는 시인 정일근 의 이야기

물건 모으는 여자, 물건 그리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오연경의 가방 이야기도 흥미롭다.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이라는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파주의 미메시스에서 그녀의 물건 전시회를 하기도 했는데...

 

 

 

 

사진이 있어 붙여본다.

전시회를 다녀온 사람의 기사를 샘터에서 보게 되니 무지 반가웠다고나 할까...^^

 

그녀의 이야기 다음 페이지에는 할머니의 부엌 수업 편이 나오는데, 요즘 정말 입맛도 없고 요리하기도 귀찮아지기만 하는 터에 할머니의 레시피를 보니 입에 절로 침이 고인다.

살림도 요리도 예쁜 게 좋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각종 채소의 화려한 색감이 입맛을 돋우는 닭고기 냉채. 소식과 저염식, 하루 두 끼 식사로 동안을 유지하는 김복희 할머니는 꽃과 나무에 푹 빠져 사시고 원피스와 밥그릇까지 온통 꽃그림이다. 보고 있는 동안 웃음꽃이 절로 피었다.

 

옛이야기 속 사람 인 코너에서는 신동흔 교수(한국 구비문학)가 여우 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야기 자체가 무섭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내서 오늘에 비추어 들려주는 교수님의 말씀이 더 오싹하다.

 

진짜로 무서운 일은 요즘 세상에 여우 누이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에서는 딸이라 했지만 아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보호 속에서 절제를 모르고 제멋대로 자란 아이들은 십중팔구 여우가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가지려 든다. 그렇게 키워졌기 때문이다.

-51

 

오~ 잠시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먹거리에서부터 오싹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에 잠시 푹 젖어들 수 있었다.

보글보글...특집으로 다루었던 여름밤 야식 때문에 오늘 밤 또 야식, 열심히 즐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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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2015-09-1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견우직녀(牽牛織女)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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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패스 5416M에서 하울링 [히말라야 환상 방황]

 

 

 

 

정유정, 그녀가 편하게 훌러덩 벗어 놓은 옷을 주섬주섬 집어 들어 입었더니, 그녀의 옷이 내게 꼭 맞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전생, 아니 과거의 기억들이 옷을 통해 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부모님과 두 남동생 이야기, 집안을 짊어지고 가야했던 젊은 처자의 가혹한 성장기,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의 이야기까지 그녀는 히말라야 높은 고지대에서 하나씩 보따리로 만들어 “영차” 내게 던졌다.

"그래, 높이 오르려고 고생하는 동안 많이 무겁고 버거웠을 짐을 내려놓으니 이제 좀 가벼워지셨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눈이 새까만 새끼 하마를 품에 안고 있는 어미 하마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야무지고 당차면서 속이 꽉 찬,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일지라도 쉽게 덜렁거리고 어질러놓기 대마왕인 그녀의 진면목이 여행기의 첫날부터 쏟아져나오는 대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에세이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반전매력 덩어리인 그녀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 문학상 -그것도 제1회-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을 하고 싶어서 [내 심장을 쏴라]에 도전하여 제 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그녀. 그렇게 쓰기의 영역을 넓힌 그녀는 [7년의 밤]과 [28]로 연이어 히트를 쳤다. 기나긴 습작의 기간 동안 혹독한 쓰기 훈련을 했다고 알려진 그녀의 문장은 살아 있는 동물의 거친 숨소리와 더불어 뒷덜미의 곧추세운 털, 불끈거리는 혈맥 밑으로 꿀렁꿀렁 흐르는 피의 요동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팔딱팔딱 뛰는 문장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 그녀가, 이른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28]을 쓰는 동안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고, 초고도 두 번 이나 쓴 데다가 슬럼프도 겪었던 터라 좀 쉬고 싶기도 했을 것 같다.

후배가 내놓은 처방은 여행이었고, 그 처방을 덥석 받아든 그녀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환상종주(Circuit) 코스를 골랐다.

소설가 김혜나를 동반자로 선택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준비가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17일간의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시작되었다.

 

세수도 못하고 용변도 못 본 채 아침을 대충 때우고 길을 나서야 하는 날의 반복, 반복.

사남매의 맏이 근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강인함’을 발산하는 정유정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그녀가 왠지 안쓰러웠다. “나”를 잠시 벗어놓고 떠나는 여행인데, 아직 여행 초반이어서인지 그녀의 “나”는 지나치게 꼿꼿하게 살아 있었다.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벗어지면 도통한 것이지...암.

커피믹스와 마살라 없는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는 그녀의 매 끼니는 참으로 눈물겹다. 같이 떠난 혜나는 카레도 마살라 든 음식도 잘도 먹던데..

내가 여행기를 적었다면 아침 점심 저녁 메뉴만 쓰고 땡일 텐데, 그녀의 17일은 참으로 다채롭기 그지없다.

주 활동 인물은 그녀와 혜나와 베테랑 가이드인, '뷰에 살고 뷰에 죽는' 검부 라이가 전부이지만 히말라야를 정복하면서 만나게 되는 길 위의 사람들과 음식점 혹은 작은 호텔의 주인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을 은근히 기대하게 될 정도였다.

특히 그녀가 전해준 쉬운 한국말 , “까자”, “뭐라꼬?” “까꽁” 3종 세트는 유머러스함의 서막에 불과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패턴의 트레킹일지라도 정유정의 입심을 만나면 군데군데 포복절도할 일이 생긴다.

아마도 유머는 그녀의 힘?

드디어 10일째 되는 날, 안나푸르나의 환상종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점인 쏘롱라패스 등반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세 번의 흉통을 느꼈고, 손전체가 짙푸르게 변하는 말단청색증까지 겪었지만, 한 발짝에 관세음보살, 두 발짝에 옴마니밧메훔 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더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패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186

 

세상을 홀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이 앓고 있던 망막색소변성증의 증상을 구현해낼 수 없었던 그녀. 절박함에서 용기를 짜냈다는 그녀는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밤에 맹수 중의 맹수 호랑이의 하울링을 들으며 야간산행을 감행했고, 승민은 호랑이의 포효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쏘롱라패스를 정복한 소감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뛰어가는 모습으로 살짝 눙쳐지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겨울왕국의 엘사여왕이 폭풍처럼 회오리치는 바람의 하울링을 정면으로 맞받아서 두 손 부르쥐며 당찬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Let it go를 외치던 그 모습과 한치 어긋남 없는 모습으로 그녀가 5416M의 쏘롱라패스를 밟고 있는 것을.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304

 

현재의 내가 납득되지 않아서 험난한 여정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했을 만큼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결국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일까.

한층 홀가분해진 듯한 그녀의 에필로그에 괜시리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나는 꿈속을 거닐다 온 듯한 기분으로 읽었지만 그녀에게는 지독히도 현실적인 여행이었을 터.

“정유정 작가님, 저도 작가님의 책 다 읽어보았고, 다 좋았었답니다.”

이 말이 그녀에게 또 글 한 줄 더 써나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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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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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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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면 언젠가...[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어젯밤 귓가를 앵앵거리다가 밤새 작은 아이의 얼굴이며 종아리를 사정없이 물어뜯어 놓았던 모기 녀석을 이 아침에 꼭 잡고야 말겠어. 붉은 실핏줄 드러난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대다가 서둘러 아이들을 씻기고 분주히 아침을 차린다. 남편과 큰 아이를 보내고 종종걸음으로 유치원 가는 녀석을 데려다 준다.

드디어 혼자만의 공간을 내주려고 나를 기다리던 집의 품에 안...기려는 찰나,

발치에 채이는 훌훌 벗어던진 옷가지에 무심히 눈길을 주게 되고 널브러진 장난감 조각들을 허리 굽혀 집어 올리게 되고 맨발바닥에 닿는 먼지에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에잇,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리하자.

그러다 보니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아직 세수도 안 한 얼굴이 유난히 번들거리며 기름져 보인다.

샤워하자.

욕실에 들어서니 또 가족들이 사용한 흔적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몇 올부터 뚜껑 안 닫은 치약, 욕조 안에 떠다니는 거품까지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눈에 띄고 또 띄는 잡다한 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 새 11시.

배가 꼬로록 거리기 시작한다. 아침밥도 안 먹고 이러고 있었던 거야, 나.

한 가지를 끝내면 또 한 가지가 맞물려 시작되기 때문에 뭐 하려던 거였지,를 자주 까먹게 되는 주부성 치매가 이래서 생기는 거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의 무게가 버거울 때, 현실과 완벽하게 단절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TV 보기와 독서다.

드라마 시청의 기본인 본방사수를 꼬박꼬박 지키고 있는 나이기에 아침 시간에 TV는 잘 보지 않는다.

그러면, 독서.

특히 추리소설이 빚어내는 환각과도 같은 어찔함과 한 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글맛에 나는 중독되어 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 긴박한 사건 전개와 대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신선한 매력을 가진 각양각색의 탐정들이 너무 매력적이다.

머리가 쿵쿵 울리고 심장이 빨리 달리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이게 되는...그렇게 한 두 시간 책 속을 헤매다 보면 일상은 쉬이 잊혀졌다.

개다 만 빨래며, 저녁 거리 장 봐야 할 장보기 목록들은 가서 낮잠이나 자라지. ^^

 

그러나 추리소설의 세계만으로는 완벽한 도피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의 현실이 아닌 남의 현실을 엿보고 싶어지는 이상한 심리가 내게는 있다. 그럴 때는 에세이를 찾아 읽는다.

번잡한 일상이 사라진, 완벽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여행기들은 추리 소설 못지 않게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있다.

 

변종모의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흐릿한 낙타를 쳐다보니 매직아이를 쳐다보는 듯, 이상한 나라의 폴이 끌려들어가는 사차원의 세계로 들어서는 듯...

호이호이 호잇~ 이다.

 

어느 곳을 걸어도 그가 걷는 길에서 말과 글을 제대로 건져낼 줄 아는 변종모. 그는 길을 나섰다가 훈자에서 5년 전, 매일 그를 찾아오고 그의 어깨에 목말타고 그에게 구구단을 배웠던 까까머리 꼬마 칸을 보고 고마워했다.

눈시울이 뜨끈해졌고 잠시 눈물도 났다던가.

나는 오히려 그의 글을 보며 행복해하는데...

 

그가 펼쳐놓은 말을 쳐다보다가 하나씩 하나씩 똑, 똑, 하고 따서 꼬로록거리는 배 속에다 던져 넣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렇지?”(...)

아무래도 좋다. 다만 살면서 정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이 사막을 기억하리라. 단단히 땅에 박힌 이 소금별의 편린을 떠올리리라. 그렇게 꿈인 듯한 비현실을 불러다가 이 반짝이는 순간들로 나머지 흐린 날들을 위로받을 것이다.

-207

 

나 대신 소금 사막을 건너온 그가 전해 주는 말들로 나는 비현실을 떠올린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 쌓인 빨래와 먼지 수북한 바닥과 널브러진 책들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진저리가 난다. 가끔은 소금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만으로도 숨쉬기가 조금은 편해진다.

 

 

그 언덕에서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언어가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곳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

차라리 바위처럼 침묵하자. 남은 것이 있다면 더 버릴 것이 있다면 이 벼랑 아래로 전부 팽개치고 슬며시 돌아서고 나면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높이. 내가 발설하지 않아도 당신이 듣지 않아도 과거로 흩어져 나부낄 일들. 침묵만이 증언할 수 있다. 때로는 묻어두고 쌓아두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누르고 숙성시켜 진실을 이루게 할 것이다. -235

 

어쩜. 지금 내 안에서 굳게 닫힌 이의 단단한 성문과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 말들에게 꼭 필요한 단 한 마디, “침묵하라.”를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지?

화를 꾹꾹 누르고서 차마 그 사람 면전에서 쏘아주고 싶은 말을 삼키고 대신 어깨를 꾹꾹 짚어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잘 하고 있는 거겠지.

나의 고통스런 기다림은 바람에 실려 떠다니는 여행자가 품어 온 지혜를 제대로 실천하고 잇는 것이겠지.

 

카톡.

아아, 카톡.

이놈의 카톡 때문에 왕 진지모드가 헤실헤실 풀어져 버렸다.

심하게 감정이입되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봐, 동생아, 사탕 크러쉬는 좀 쉬는 게 어때?’

 

 

붉은 사막 와디럼. 말이 되는가? 붉게 죽어 있다니. 말은 되는가 말이다! 죽은 것이 붉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 사막이 그랬다. 붉은 사막. -258

(...)

어쩌면 차가운 외면보다 홀로 선 뜨거운 열정이 더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외로움의 온도마저도 뜨겁게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 외로움이야 어떠랴. 자신만 좋아서 자신만 이해되는 일, 이것도 열정이다. -261

 

바람처럼 이곳 저곳을 떠돌지만 굳건히 뿌리내린 말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작가도 있는데, 일상의 삶에 완벽하게 뿌리박은 나는 왜 흔들리는가.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열정이 없어서인가,

잼을 만드는 동안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솥처럼 화악 솟아오르는 화를 참아내기만 하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인가.

혼자 남겨진 집 안에서 꼬로록 거리는 배를 안고 참, 혼자 생쑈를 다한다고 하겠다.

그래도 말들을 집어먹고 있으니 괜시리 포만감이 들어서 다시 배시시 웃음을 베어문다.

참 속도 없지. 참 무던하기도 하지.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

무엇을? 무언가를.

 

아직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두어 시간은 남았다며 기뻐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변종모는 참 글을 잘 쓰네. 나는 언제나 되어야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나 되어야 홀로 구름에 달 가듯이 떠날 수 있을까나.

 

문득 이승철의 애절한 음색으로 읊조려지는 노래의 이 가사를 흥얼거린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결코 입밖에 내지 않았을 , 몹쓸 노래. 훗.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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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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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내 베스트 프렌드 - 프레너미들의 우정과 경쟁 이야기 샘터 솔방울 인물 16
김학민 지음, 조은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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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내 베스트 프렌드]

 

 

 

 

 

배를 깔고 드러누워 열심히 TV시청 중인 딸래미에게

 "숙제는?"

하고 물어도 답이 없다.

"준비물은 챙겼니?"

"나중에 할게."

또 다시 침묵.

곧 이어 깔깔거리는 웃음.

슬그머니 열이 뻗친다.

누구 생각해서 지금 하나 하나 체크해 주고 있는데, 엄마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TV에 빠져서 "꺄르르?"

목소리를 가다듬고 일부러 심상한 어투로 말한다.

"옆 반 원준이는 '쎈 수학'이 쉽다면서 벌써 반 넘게 풀었대."

그러자 바로 반응이 날아든다.

"정말?"

"그래."

"사실은 나도 풀 수 있는데, 피곤해서 좀 쉬고 있었던 거야. 이제 가서 바로 할게."

 

으~

가장 악수 중의 악수, 비교하기  카드를 집어들기는 싫었지만, 울 딸은 밀어붙여야 성과가 나오는 타입이라 이 방법이 의외로 잘 먹힌다.

'엄마를 용서해라~'

라고 조용히 빈 다음, 씩 웃고 만다.

 

라이벌이라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용하면 얼마든지 상승의 효과를 가져오며 득이 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기에 아이도 엄마도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이벌은 내 베스트 프렌드]

이 책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훌륭한 라이벌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조명한다.

어른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쓰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더불어 다양한 직업의 세계까지 구경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먼저 라인업을 살펴 볼까.

 

 

첫 번째 비교대상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나온다.

협력자이자 경쟁자로 서로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려 손을 잡았지만 결국엔 등을 돌려야만 했는데, 소송으로까지 번진 사태를 일단락하기 위해 만났던 장면이 찰칵! 찍히고...

 

 

바로 이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말하길 ,

"잡스와 슈미트는 '프레너미'다!"

라고 했다.

 

최근의 일화이지만 시간과 장소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역사 안에서 이런 경우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아직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초등 저학년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인물들이지만, 위인전의 형식이 아니라 일화를 중심으로 서술된 이야기라서 아이들이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할 듯 싶다.

 

'은빛 테너'라 불리던 호세 카레라스는 '오페라의 제왕'이라 불리던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앙심을 품고 절교를 선언했지만 도밍고가 백혈병에 걸린 호세를 재단 명의의 기금으로 도와준 사실을 알고 우정을 되찾았다.

샤넬과 동시대를 살며 남다른 도전 정신을 뽐냈던 엘사 스키아파렐리. '리틀 블랙 드레스', '플래퍼룩'등을 유행시킨 샤넬과 '트롱프뢰유', 치마바지, 파고다 슬리브, 세계 최초로 지퍼가 달린 이브닝드레스 등을 만들며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던 엘사. 과연 누가 승자일까?  결국, 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던 샤넬이 패션 오스카상을 받으며 승자의 왕관을 거머쥐었지만,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디자이너였어요. 그녀의 옷은 한 편의 예술작품 같았습니다. "-70

라고 말하며 엘사를 인정함으로써 두 디자이너의 대결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 외에도 유명한 고흐와 고갱의 이야기, 전설적인 야구 투수 대결을 펼쳤던 최동원과 선동렬, 꼿꼿한 절개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신숙주와 성삼문, 진화론을 세상에 내놓은 두 사람 찰스 다윈과 러셀 월리스의 이야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만 한 게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동시대에 태어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면 라이벌 하나쯤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 만큼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들은 라이벌을 선의의 경쟁자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여러 상황에 의해 겉으로 보기에는 라이벌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다.

상대평가 때문에 서열이 중요해진 만큼 성적에서 앞서기 위해 쉼없이 상대를 앞서가려고만 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라이벌은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다는, 아니,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려주고 싶다.

나만 잘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뼈저리게 깨달은 부모들이 내 자식에게 똑같은 길을 걸어라라고 밀어대는 현실이 싫다.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친구가 모두 성장해나가면서 좋은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험 점수에 연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좋은 친구 관계가 좋은 라이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읽혀야 겠다고 생각한 책이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읽고 아이의 친구 관계나 인생 전반의 성장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라이벌이면서 최고의 친구가 되었던 역사 속의 그들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끈해지기도 했다.

아이보다 엄마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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