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는 왜 후진하는가 - 반 글로벌 사회 정치 문화
이만희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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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체원인 알고보면 우리에게 약이 될까 [일본열도는 왜 후진하는가]

 

한 때 일본의 가전제품이며 게임제품, 만화상품 등이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일본은 작은 것을 잘 만드는 나라이며 독특한 문화로도 우리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전후 이룩한 경제 대국의 이미지 때문에 본격적으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본다.

국가 리더십(일본주식회사), 기업의 도전 정식(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사회 문화(일본인의 협동 및 합의 중시 문화) 등을 꼽을 수 있다. 1970-80년대 일본의 '소프트파워'가 퍼져나가면서 사회 문화에 초점을 둔 보겔 교수의 저서 [Japan as No.1] 같은 책이 출판되어 많은 이들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열도는 왜 후진하는가]의 저자는 일본 사회의 반 글로벌 문화 부분을 다루는 데 있어 [Japan as No.1]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을 다소 부정적으로 보면서 우리가 일본의 경우에서 배워야 할 점, 경계해야 할 점 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 직접 겪은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한 메모와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다양한 사회, 정치, 문화적 현상 그리고 일본인들과의 대화 등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다소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적인 경향으로 몰아가는 편향적인 시각이 보이긴 하지만

현재 일본의 상황을 세심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일본의 글로벌 문화의 원형과 변형, 장기 불황 이후 고착화된 일본 사회의 반 글로벌 문화, 그리고 아베 정권의 반 글로벌 민족주의로의 회귀 등을 다룬다.

 

2000년대 들어서 경제력이 휘청거리고 있는 일본.

1992년 버블 붕괴 이후 불황의 늪에 빠져 버린 일본은 2012년 아베 노믹스가 탄생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일본 사회 자체가 자신감을 상실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일본 지식인들로부터 "일본은 끝났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지금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인 독일에 추월당할 것은 분명하다. 일본 찬양론자인 보겔 교수가 지금의 일본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19

 

저자는 장기 호황 속에서 꾸준히 이어 내려온 글로벌 마인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본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본다.

산업사회의 왕좌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안주하고 정보화 사회에는 한참 뒤처지고 있는 일본.

14년간 일본을 겪은 저자는  일본의 '반 글로벌 사회 문화'의 흔적을 기술한다.

일본의 '합의형 의사결정'이라는 번듯한 마인드의 뒤편에는 누구든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뿌리깊은 문화가 숨어 있다며 이것이 일본 기업의 경쟁력 추락의 한 원인이라 본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할 때 과정과 결과에 상벌 논리가 엄격하게 적용되며 이런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재량권 없는 조직 문화에서는 이노베이션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은 팀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상어급의 선수를 투입하면 상어에 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는 포맷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종신고용 제도,연공 서열제도에서 빚어진 매너리즘에 빠져 반 글로벌 문화로 역행하고 있다. 상어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활기를 잃고 갇혀 있는 사회, 정체된 사회가 바로 지금의 일본이다.

경제 대국의 이미지가 약화된 일본 사회에는 초조감,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고 이런 사회 문화를 토대로 아베 정권의 민족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은 발빠르게 정보화 시대로 이전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일본의 정체원인, 나아가 후진하고 있는 이유를 한 번 짚어보며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 속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저자는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젊은 인재의 글로벌화를 부르짖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동일본 대지진 및 원전 사태에서 보여준 일본의 매너리즘 문화는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대학에까지 뿌리깊게 박혀 있다고 했다.

젊은 인재들의 유연한 사고가 펼쳐질 수 있는 대학문화를 만들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일본의 현재를 거울 삼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사회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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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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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들어가 봅시다. 폴 오스터의 과거 속으로 [내면 보고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이 떠오를까.

표지 속 내면을 꿰뚫는 예리한 눈빛은 '나'를 보는 것일까, 책을 읽는 '당신'을 쏘아보는 것일까.

 폴 오스터의 [내면 보고서]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자화상을 담은 회고록치고는 독특한 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이 된 지금,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는 대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폴 오스터는 (얼핏 보기에) 쉽게 해내고 있다.

 

 

자신을 '당신'이라 일컫는 독특한 설정 때문에 처음에는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부르는 말 같아서 몇 번을 움찔거렸는지 모른다.

내 기억이 아닌데도 내 기억인 것마냥 '당신'을 불러대는 통에.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가장 작은 물체조차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녔고 구름들조차 이름이 있었다. 가위는 걸을 수 있었고 전화기와 찻주전자는 사촌 간이었으며 눈과 안경은 형제지간이었다.(...)

사람 얼굴 모양을 한 달 표면의 반점을 보며 진짜 사람이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서 당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당연히 사람의 얼굴이었다.

 

환상 소설의 첫 시작인 것마냥 알 수 없는 풍경으로 시작되는 [내면 보고서].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의 3장에 해당하는 장면들 중 일부는 4장의 '앨범'에 소개된 사진과 함께 하면 그 시절의 기억에 자연스럽게 덧씌워진다.

유년기,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그의 성장과 맞물려 자신의 내면이 자라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린 "당신"은 TV만화 흑백 인물 '필릭스'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굳게 믿었으며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을 사랑하여 지금까지도 피터 래빗이 그려진 머그잔을 소중히 여긴다.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깨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 정도로) 어려서 몸이 약해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어머니와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던 "당신"은 운동을 할 만큼 튼튼해지자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열정적으로 운동, 특히 야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당신은 결국 남은 평생 그런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 한 채 계속 책을 읽고 짧은 이야기와 시를 썼다.-102

 

"당신"은 아홉 살에 포를 읽었고, 이듬해 스티븐슨에게 직접적으로 영감을 얻어 첫 번째 시를 썼다고 했다. 버질과 단테의 번역자로 널리 알려진 이모부가 맡긴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에 빠졌던 "당신". 자신의 단골 이발사가 에디슨의 머리를 손질했었던 이발사라는 사실에 흥분했지만 에디슨은 정작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해고해버렸던 과거의 기억까지도  떠올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폴 오스터는 "글은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묻혀 있는 비밀들', 즉 '우리 스스로는 가닿을 수 없는 부분들'에서 받는 '압력의 일부'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쓴다고 말이다.

 

당신은 소년 시절, 사춘기 때, 청년기의 흔적 등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전처였던 리디아에게 보냈던 1백여 통의 편지가 타임캡슐이 되어주었다. 과거를 향해 직접 열린 유일한 문을 연 당신은 치열하게 글을 썼던 청춘 시절의 추억까지를 되살려내서 섬세하게 정련된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내면 보고서] 속 회고록은 스스로를 "당신"이라 부르며 어떨 때는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고 어떨 때는 냉정하게 떨어져서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이다. 다작 작가인 만큼 자전적 에세이 여러 편, 다수의 소설, 영화 대본들을 냈고, 그 안에서 폴 오스터의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엿볼 수밖에 없었다. [내면 보고서]는 오롯이 자신의 모습만을 써내려간 책이기에 집중해서 읽으면서 그가 지금의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확실히 그려볼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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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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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거침없이 사는 지혜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

무엇이든 열심해 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고 뿌리깊은 가치관일진대

그것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제목이어서다.

어디 감히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떳떳이 입밖에 낼까...

소심하고 마음 약한 나로서는 질러보지 못한 이 한 마디가 책 제목에 떡하니 적혀 있으니

왠지 눈길이 저절로 가고

'이거 괜찮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어느샌가 손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된다.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곁에 두고 있는 푸근한 인상의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허를 찌르는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과연,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답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동화는 대개 감수성을 건드리는 아름답고 유한 분위기의 그림이 많이 실려 있는데

[백만 번 산 고양이]는 그런 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눈이 쭉 째진 고양이가 멋진 줄무늬를 입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았지만 여러 번 죽음을 거듭했다. 어린이 동화책에서 '죽음'을 그렇게 대책없이, 툭 던지듯이 다루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생각외로 아이들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을씨년스러운 죽음이 이어지고 삭막하달 정도로 정 없이 세상을 대하던 고양이는 드디어!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느끼면서 백만번째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은 앞의 내용에 비추어 완전한 반전이라 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고, 그래서 그 여운이 오래 남았다. 교훈조의 따스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아이들의 동화에 혜성같이 나타난 비극 속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그래, 사노 요코는 반전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을 적은 에세이는 처음이지만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어딘가 거침없고 무덤덤하면서 솔직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것저것 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자식을 둔 늘그막의 부모가 자식의 효도를 뻔뻔하게 바라는 것조차 너무나 솔직해서 그만 웃음이 나고 만다.

 

오로지 일상이란 것으로부터 울고 싶을 정도로 마구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적절하게 바로 병에 걸린다. 병을 좋아하는 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나는 단 하나뿐인 저금통장을 가지고 입원한다.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서 좋고, 비실비실 병원으로 외출하니 '돈'얘기밖에 입에 담지 않는 아들조차도 얌전해지는 것이, 어디 깊은 산 속 고원의 뭐라는 호텔의 트윈룸에 가는 것보다도 좋다. 정말로 병에 걸린 거니까 노란 링거주사를 맞는다.-168

 

'그래 , 분명 다들 그런 마음일 테지만 겉으로 표현 안 한 것일 뿐이야. 유별난 할머니는 아닌 것 같아.'하고 말았다.

계산하고 재서 일상 속의 소재를 끌어와 일부러 교훈을 끌어내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그마한 일상도 재치있게 다루어 나갈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공녀 속 주인공같은 소녀들이 나오는 소녀소설에 지나치게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며, 그녀의 눈에 '인테리'였던 아버지와 인테리 아닌 마누라였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독특한 개성을 풍긴다. 함께 키우는 고양이며 개에 관한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사실은 알고 보면 가족과 같이 느끼고 있기에 다른 개와 고양이로 바꿀 수 없다는 반전 멘트로 마무리 짓고 있으며,

연애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상에 연애 소설 아닌 소설은 없다며 소세키에게 새삼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조금 더, 조금 더 곁에 있게 해 주시지 않겠어요? 당신님은 이리저리 주무르거나, 여기저기 핥거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요, 곁에 있게 해 주세요,'라고 나는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은 대충 80년 전, 우리 증조할아버지 시절만큼이나 옛날 옛적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메이지 시대의 남자와 여자 쪽이 단연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더 진지하고 성실하며, 연애의 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소세키의 남자는 여자를 이리저리 주무르고 여기저기 핥으며 마치 플라스틱 완구 조립 솜씨를 자랑하는 것처럼 여자를 다루지 않는다. 소세키의 여자는 온전한 사람이다.

나는 <산시로>, <그 후>, <문>이야말로 일본인에게 연애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299

 

각각의 글들은 짧고,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고 할 만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이것저것 글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 자신이 겪어왔던 삶의 지혜가 다량 녹아들어 있다.

MSG를 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맛이라고나 할까.

짜고 시고 달고 맵고 한 다양한 맛들이 각각의 맛을 죽이지 않고 되살아난다.

너무 솔직해서 엉뚱하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너무 거침 없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연륜 속에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다.

[백만 번 산 고양이] 라는 동화책처럼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가감없이 담고도 마지막에는 격한 감동을 안겨 준다.

아, 멋진 분.

그 입담을 좀 더 오래 들려주시지 그랬어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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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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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의 쪽빛 바다는 물색없이 푸르고 난리야..[봄날의 바다]

 

제주를 다녀와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너무 깨끗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푸르고 ...결국은 다시 가 보아야 한다고.

제주는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낙원과도 같은 자연 풍광을 지녔지만 제주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마고할멈의 설화 이래로 숨겨져 온 핏빛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제주의 쪽빛 바다는 그 이야기들을 날름 받아 먹고는 흔하고 흔한 바람에 실어 멀리멀리 보낸다.

 

[섬, 짓하다]의 작가 김재희의 손끝에서 봄날의 제주 애월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 편의 잔혹 동화가 피어났다. 흑백이 분명한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듯 보인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남겨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범인에 대한 단죄를 아주 간단하게, 너무도 분명하게 물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선명하게 드러난다.

 

희영은 열두 살 때부터 스물두 살 까지 제주도에서 살았다. 10년 전 제주를 뜰 때만 해도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희영은 동생 이준수의 사건 기록과 탄원서를 들고 제주에 닿았다.

 

동생 준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던 엄마의 유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생의 사건을 다시 한 번 되돌려보는 것은 분명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쫓기듯 떠난 제주에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게, 혹은 어디서라도 홀가분하게 살려면 과거의 꺼림칙함은 떨쳐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매일 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이 올린 문서들을 뒤지며 사건관련 글을 찾고 지워나가던 중, 희영은 '제주도 여대생 살인사건 범인은 김수향 사건과 동일한가?'라는 글을 읽고 제주행을 결심한다.

동생 준수는 10년 전 17살 나이에 김수향 살인사건 용의자로 잡혀간 뒤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그런데 그 글에서는 새별오름 근처에서 발견된 여대생 사건을 김수향 사건과 상세하게 비교해 놓고 동일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써 놓았고, 인근 게스트하우스 'B'의 주인이 용의자일 것이라고 특정해 놓았다.

정말 동생이 범인이 아니었다고?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한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 희영은 심하게 마음이 동요한다.

인터넷을 뒤져 그 곳이 '바다 게스트하우스'임을 알아낸 희영은 그 곳에 묵으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주인장 오영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그는  '체 게바라'를 닮은 외모와 독특한 행동 때문에 '체 형'이라 불린다고 했다.  그에 대한 것은 게스트하우스 스탭인 현우가 전해주는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첫날부터 이상하게 희영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선한 인상의 현우. 새별 오름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게스트하우스는 어수선했고 형사마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오영상을 의심하는 듯했다. 희영은 현우에게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고 현우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욱 마음을 놓게 된다.

희영은 현우와 함께 어린 시절 친구 소정을 찾아갔다가 동생에 관련된 뜻밖의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바다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묵었던 오수경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것 또한 주인장 오영상이 벌인 일일까?

언론에서는 유명 프로파일러를 대동하고 제주에 내려와 10년 전 준수의 일과 현재의 새별 오름 여대생 살인사건을 엮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면서 희영에게 접근한다.

희영은 '살인자'의 누나로 비칠 것인가, 아니면 동생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새로운 증거를 내놓아 동생의 결백을 주장할 것인가.

10년 전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과연 준수의 결백을 입증해줄 수 있을 것인가?

동생 준수는 결코 범인이 아닐 것이라 믿었던 희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동생에 관한 감추어진 진실, 알면서도 덮어두었던 진실을 하나하나 대면하게 된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사건의 추이를 좇거나 미묘한 심리 묘사를 통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봄날의 바다]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추리소설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그 후'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 가족 못지 않게 가해자의 가족 또한 상처 받으며 괴로워한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범죄가 일어나게 된 과정에도 주의를 기울여 가족간의 틈새를 잘 살펴보라고 경고한다.

도미노처럼 하나가 넘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주루룩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은 가족, 친구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에 난 상처는 무릎이 까지고 손가락이 베이는 상처에 비하면 엄청 깊고도 넓다고.

 

제주 애월의 쪽빛 바다는 아무 것도 모르고 물색없이 푸르고 난리야...

애월 봄바다가 지켜 본 그날의 진실은 그렇게 아리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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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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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의 시니어, 힘을 내요!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이들어도 곱게 늙기란 참, 동서고금 막론하고 어려운 일인가.

여든 셋의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칩거생활을 하면서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사서 얻고 다닌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사셨어요?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

괴팍하고 톡 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인다.

자기 자신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며 가가이 가기도 무서울 만큼 가부장적인 권위가 철철 넘쳤던 아버지.

어쩌다 칭찬 한 번 얻고 싶어서 죽어라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덤덤한 말 한 마디, "수고했다."뿐.

갈등이 불거져도 찬찬히 앉아 대화 한 번 나누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그저 잘못했다고 고개 숙이고 묵묵히 앉아 몇 시간이고 내게 쏟아지는 타박을 들어야만 겨우 놓여나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도 질려했다.

잘못 입이라도 떼서 반박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버지가 고된 역사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용감한 바로 밑 여동생은 과감하게 쏘아붙이고 독기 있게 노려 보며 제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낸 후, 처절하게 맞았다. 나는...용기가 없어서 차마. 그리고 내게는 인내심이라는 미덕이 넘치고 넘쳤기에 그냥 기다렸다.

언젠가 당신이 나이 들어 늙으면 그 비참함을 어찌 견디시려고 그러시나요...되뇌이고 되뇌이면서.

내 또래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은근슬쩍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내 아버지를 닮은 페르디낭에 대한 연민인가.

내 아버지가 그래도 페르디낭이 가진 것만큼의 유머감각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것은 너무한 기대인가.

 

 

지금 페르디낭 할아버지가 고독하게 늙어가는 것은 어쩌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와 쉴 새 없이 싸우고 그 사이에 하나뿐인 딸을 끼워넣자, 딸은 커서 부모로부터 멀리멀리 떠나려고 외교관이 되었다.

딸은 반항기 어린 한 때의 실수로 경찰관과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이혼했다.

딸은 가끔 페르디낭 할아버지에게 안부차 전화를 하지만 페르디낭이 딸에게 급한 전화를 할 때는 결코 제때에 받는 법이 없다.

 

고독, 노쇠, 권태를 잊기 위해 페르디낭이 찾아낸 유일한 활동은 못되게 구는 것이었고 이 모든 행동은 쉬아레 부인을 겨냥했지만 정작 겁먹은 것은 아파트 이웃 노파들이었다.

페르디낭은 이웃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법이 없고, 거주 공동구역에서 시가 연기를 피우고 쓰레기를 결코 분리해서 버리는 법이 없으며 그의 개 데이지는 아파트 정문 앞에 보란 듯이 개똥을 눈다.

페르디낭의 이혼한 전부인인 루이즈가 죽자, 아파트의 노파들은 페르디낭을 쫓아내기 위한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물론 가장 앞장 서는 것은 아파트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이다. 

어느날, 페르디낭이 애착을 갖고 기르던 데이지가 사고로 죽어 한 줌 재로 그의 손에 놓여진다. 일주일을 무기력하게 있던 페르디낭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외출을 감행하지만 버스사고를 당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어찌된 영문인지 데이지가 죽은 후 바깥출입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만나는 아무한테나 까칠하게 굴고, 급기야 버스에 달려들었다는 것이 순순히 딸의 귀에까지 도달한다. 딸은 멀리서 페르디낭을 걱정한 나머지 양로원에 보내겠다고 한다.

"양로원에 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딸과의 협상 끝에 쉬아레 부인이 그를 관찰하기로 하고 양로원행을 미룬 페르디낭.

그는 아파트에서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웃들과 얽혀들 수밖에 없다.

마귀같이 생긴 앞집 이웃노파 꼬부랑 할멈은 아흔 두 살이지만 시대에 잘 적응하는 초활동적인 할머니이며 페르디낭에게 파출부를 소개해 준 것을 계기로 페르디낭의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게다가 위층에 새로 이사온 꼬마소녀 줄리엣은 막무가내로 페르디낭의 집으로 밀고 들어와 쉴새없이 수다를 쏟아내며 페르디낭을 무장해제시킨다.

결코 이웃들과 다정한 말 한 마디 나눌 것 같지 않은 페르디낭은 서서히 변화해가기 시작한다.

우아하고 가족 관계 원만한 앞집 노파와 새롭게 인생을 꾸려갈 장밋빛 미래를 꿈꿔보기도 전에 거절당한 페르디낭은 낙심을 곱씹고 있던 찰나, 관리인 쉬아레 부인 살해 용의자로 경찰에 끌려간다.

이 무슨 황당무계한 해프닝이란 말인가.

평소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앙숙이었던 것만으로 용의자가 되다니...

게다가 겨우 아파트의 이웃들과 왕래하나 싶었는데 다 늙어서 손자 병간호를 위해서 딸이 있는 외국으로 살러 가야하게 생겼다.

황혼녘에 와르르 쏟아지는 사건들.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튼튼한 심장으로 이 모든 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황혼녘의 시니어, 힘을 내요!

 

 

 

이 일을 계기로 페르디낭은 자신의 주변에도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결정적으로 가족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툴툴거리기를 멈추지 않지만 이런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노인에게도 마음 속에는 따뜻한 혈액이 퐁퐁 솟아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짜증내고 괴팍하기만 하던 페르디낭의 투박한 외면 속에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남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려고만 할 때는 완전히 어두웠고 답답하고 힘겨웠지만

한 발짝 걸음을 떼자, 그의 곁에는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인생의 황혼녘에야 장밋빛 인생의 진정한 묘미를 찾았다고나 할까.

속좁고 답답한 노인네라며 처음에는 그의 기이한 행동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는데

이제는 그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동감의 기운이 차오른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닫힌 마음이 열릴 텐데, 그 조금의 관심을 보내기가 힘들어서 괴팍한 노인네라고 치부하는 부족한 딸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이 책의 끄트머리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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