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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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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거침없이 사는 지혜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

무엇이든 열심해 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고 뿌리깊은 가치관일진대

그것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제목이어서다.

어디 감히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떳떳이 입밖에 낼까...

소심하고 마음 약한 나로서는 질러보지 못한 이 한 마디가 책 제목에 떡하니 적혀 있으니

왠지 눈길이 저절로 가고

'이거 괜찮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어느샌가 손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된다.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곁에 두고 있는 푸근한 인상의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허를 찌르는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과연,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답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동화는 대개 감수성을 건드리는 아름답고 유한 분위기의 그림이 많이 실려 있는데

[백만 번 산 고양이]는 그런 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눈이 쭉 째진 고양이가 멋진 줄무늬를 입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았지만 여러 번 죽음을 거듭했다. 어린이 동화책에서 '죽음'을 그렇게 대책없이, 툭 던지듯이 다루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생각외로 아이들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을씨년스러운 죽음이 이어지고 삭막하달 정도로 정 없이 세상을 대하던 고양이는 드디어!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느끼면서 백만번째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은 앞의 내용에 비추어 완전한 반전이라 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고, 그래서 그 여운이 오래 남았다. 교훈조의 따스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아이들의 동화에 혜성같이 나타난 비극 속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그래, 사노 요코는 반전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을 적은 에세이는 처음이지만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어딘가 거침없고 무덤덤하면서 솔직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것저것 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자식을 둔 늘그막의 부모가 자식의 효도를 뻔뻔하게 바라는 것조차 너무나 솔직해서 그만 웃음이 나고 만다.

 

오로지 일상이란 것으로부터 울고 싶을 정도로 마구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적절하게 바로 병에 걸린다. 병을 좋아하는 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나는 단 하나뿐인 저금통장을 가지고 입원한다.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서 좋고, 비실비실 병원으로 외출하니 '돈'얘기밖에 입에 담지 않는 아들조차도 얌전해지는 것이, 어디 깊은 산 속 고원의 뭐라는 호텔의 트윈룸에 가는 것보다도 좋다. 정말로 병에 걸린 거니까 노란 링거주사를 맞는다.-168

 

'그래 , 분명 다들 그런 마음일 테지만 겉으로 표현 안 한 것일 뿐이야. 유별난 할머니는 아닌 것 같아.'하고 말았다.

계산하고 재서 일상 속의 소재를 끌어와 일부러 교훈을 끌어내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그마한 일상도 재치있게 다루어 나갈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공녀 속 주인공같은 소녀들이 나오는 소녀소설에 지나치게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며, 그녀의 눈에 '인테리'였던 아버지와 인테리 아닌 마누라였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독특한 개성을 풍긴다. 함께 키우는 고양이며 개에 관한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사실은 알고 보면 가족과 같이 느끼고 있기에 다른 개와 고양이로 바꿀 수 없다는 반전 멘트로 마무리 짓고 있으며,

연애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상에 연애 소설 아닌 소설은 없다며 소세키에게 새삼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조금 더, 조금 더 곁에 있게 해 주시지 않겠어요? 당신님은 이리저리 주무르거나, 여기저기 핥거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요, 곁에 있게 해 주세요,'라고 나는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은 대충 80년 전, 우리 증조할아버지 시절만큼이나 옛날 옛적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메이지 시대의 남자와 여자 쪽이 단연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더 진지하고 성실하며, 연애의 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소세키의 남자는 여자를 이리저리 주무르고 여기저기 핥으며 마치 플라스틱 완구 조립 솜씨를 자랑하는 것처럼 여자를 다루지 않는다. 소세키의 여자는 온전한 사람이다.

나는 <산시로>, <그 후>, <문>이야말로 일본인에게 연애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299

 

각각의 글들은 짧고,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고 할 만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이것저것 글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 자신이 겪어왔던 삶의 지혜가 다량 녹아들어 있다.

MSG를 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맛이라고나 할까.

짜고 시고 달고 맵고 한 다양한 맛들이 각각의 맛을 죽이지 않고 되살아난다.

너무 솔직해서 엉뚱하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너무 거침 없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연륜 속에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다.

[백만 번 산 고양이] 라는 동화책처럼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가감없이 담고도 마지막에는 격한 감동을 안겨 준다.

아, 멋진 분.

그 입담을 좀 더 오래 들려주시지 그랬어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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