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훔치는 스릴러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은 형사 아담스베르그 시리즈인 [죽은 자의 심판], [트라이던트]로 먼저 접했다. 후덜덜한 두께 덕분에 심호흡을 먼저
하고 나서야 책장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번 책은 상대적으로 얇아 심리적 부담이 덜했다.^^
이번 비채에서 나온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는 2008년 웅진 임프린트 '뿔'에서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로 나왔던 적이 있다고 한다.
'복음서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전직 형사 방두슬레와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 드 각각 복음서 저자의 이름을 닮은 역사학자 마르크,
뤼시앵, 마티아스가 등장한다.
사실, 아담스베르그 시리즈와 닮은 듯 다른 분위기에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되기도 했는데~
이 네 명의 남자들이 내뿜는 매력에 약간 어찔~한 것 말고는 부작용은 없었다.
"마당에 나무가 한 그루 있어요. 그런데 어제는 없었다고요.
난 저 나무 때문에 무서워요."-9
한때 유명한 성악가였던 소피아는 어느날, 자신의 정원에 전에 없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남편은 아무 관심이 없고,
나무를 보며 섬뜩한 생각을 떠올리며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 뿐이다.
때마침 소피아의 이웃집, '쓰러져가는 판자때기' 5층집에 4명의 남자가 이사온다.
퇴폐적인 중세 전문가, 검은 옷에 은색 벨트만 매고 다니는 우아한 차림새에 끈질긴 성격을 지닌, 쓸모없는 공부에 매달리는 학자, 희망을
모두 빼앗긴 전형적인 고급 백수 마르크는 2년간 방황하다 겨우 마땅한 집을 찾았는데 돈이 모자란다.
그 즉시 주변의 친구들을 물색하는데, 친구들 또한 특이하기가 마르크 못지 않다.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금발 마티아스에다 제1차 세계대전 전문가인 뤼시앵까지.
뤼시앵은 창백한 얼굴의 정서 불안 현대사 전문가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인물이라, 이 셋의 조합은 뭐랄까, 뜻하지 않은
부분에서 여심저격하는 부분이 있다.
추리 소설이자 스릴러를 읽으면서 만나게 되리라 예상하는 인물과는 상당 부분 거리가 있지만 이런 예기치 못한 만남이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 만화를 읽는 것만큼 콩닥대는 이 가슴을 어찌한다지?
게다가 의외의 복병인 마르크의 외삼촌이자 대부인 방두슬레는 전직 형사였고, 예순이나 일흔 정도 되어 보이고 성깔도 있어 보이지만 네 사람
가운데 제일 미남이란다.
이래서야 십 대 이상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훔칠 밑밥을 쫙 깔아 놓은 형국이 아닌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스릴러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때때로 튀어나오는 이들의 대화와 행동거지 묘사는 짐짓 여성의 마음을 꽉 잡았다 풀기를
반복한다. 이야기에 집중!! 하지만 곧 스르륵 풀려버리는 마음~
자신의 집 3층 방문에서 낯선 이웃들을 관찰하던 소피아는 그들을 찾아가 자신의 정원 나무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며 구덩이를 파달라고
부탁한다. 사례금으로 3만 프랑을 제시하자 그들은 더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가까워진 이들은 또 다른 이웃인 쥘리에트의
식당에서 열린 파티에도 참석하며 발을 넓혀가는데...매주 목요일이면 식당에 나타나는 소피아가 홀연 사라져 버렸다.
예전 그리스인 애인으로부터 엽서를 받은 소피아는 남편에게 리옹에 다녀 오겠다며 나간 뒤, 그 길로 흔적을 감춘 것이다.
마가복음 마르크, 마태복음 마티아스, 누가복음 뤼시앵. 어느샌가 복음서 이름이 별칭이 되어버린 이들과
전직 형사 방두슬레는 사라진 소피아의 행적을 찾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소피아의 남편으로, 역시나 아내 몰래 만나는 정부가 있었다.
게다가 시기 적절하게도 이모 소피아를 찾아온 조카 알렉상드라는 소피아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와중에 불에 탄 자동차 안에서 소피아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자 소피아의 행방불명은 사망 사건으로 커지게 된다.
4명의 남자는 상속, 원한 관계, 치정 관계, 성악가들 사이의 암투 등등 다양한 '왜'를 염두에 두고 경찰과 함께 또는 따로 사건을 수사해
간다.
어느날 갑자기 정원에 생겨난 너도밤나무 한 그루 아래에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예전 성악가 시절 소피아에 관해 악성 비평을 남긴 두 명의 남자도 차례차례 죽음을 당한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역사 고증을 하듯 끈질기게 파고들어가는 복음서 탐정들의 역할 배분이 멋들어진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방두슬레는 또 어떻고.
고래잡이에 나선 에이해브 선장처럼 고래가 어디로 지나갈지 예상할 수 있었다며 사건을 풀어내던 마르크의 완벽한 사건 해설 부분이 장관이다.
이제 그는 사자 위에 올라타서 그 갈기를 붙잡고 있었다. 자기 다리를 뜯어 먹은 사악한 고래의 등에 올라탄 에이해브
선장처럼...-333
평범한 집, 평범한 이웃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두려울 줄이야.
편안한 말투와 사근사근한 웃음으로 쉽게 다가오는 사람이지만 그 겉모습이 조각상에 불과하다면...
그 마음 속은 웬만해서는 파헤치기 어렵다면...
진실이 드러났을 때의 배신감은 훅 치고 들어오는 권투선수의 한 방보다 갑절이나 크고 오래 가리라.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어두운 진실을 묻어 두고 사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상상만큼은 하기가 싫어진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날이 오지는 않겠지.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 나른하게 감고 있던 눈을 확 뜨게 해 주는 작품이다.
복음서 탐정들의 톡톡 튀는 매력 덕분에 어둡고 추악한 사람의 마음 들여다보기를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능수능란하게 일을 마쳤다. 몰락한 영주의 우아한 자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뤼시앵은 생각했다. 마르크가 우편물을 붉은
봉랍으로 봉할 수 있도록 도장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분명 굉장히 좋아하겠지.-123
왜, 사건 해결을 줄줄 풀어나가는 멋진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에 심쿵하냔 말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