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삐딱함에 용기를 얻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의 에세이로는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책이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만년의 사노 요코가 쓴 에세이라면, 이 책은 사노 요코의 첫 번째 에세이로 40대의 그녀를 만나볼 수 있다.

마냥 젊다고만은 할 수 없는 40대의 나는 어딘가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든다.

꽤 자주 멍하고 꽤 오랜 시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뭐랄까...인생이 심심하고 휑한 기분.

사노 요코의 어린이 그림책에서 본 고양이는 왠지 반항적이었다.

거칠고 무서울만큼 자유분방했던 고양이가 결국엔 100만번이나 사는 동안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깨우쳐 간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린이책이 이래서 되나? 아이들한테 읽혀도 될까?

싶은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나도 꼰대가 다 됐네.'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기억이 난다.

귀염성이라곤 전혀 없는 줄무늬 고양이의 지나친 솔직함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 작가 사노 요코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는데

일전에 읽었던 그녀의 에세이로 그에 대한 갈증은 조금 해소한 셈이다.

40대의 사노 요코는 좀 더 거침 없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다소 삐딱하다.

마음 속 생각들을 그대로 내뱉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일기장을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써내려가듯이 담백하다.

가족의 이야기도 일절 과장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도 거리낌 없다.

'뭐 어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하는 듯이 .

여전히 '나'를 스스로의 자아 찾기 위주로 보지 못하고 '타인이 보는 나'를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텍스트다.

내가 지금 나만의 일기를 쓴대도, 이렇게 직설적이고 자유롭게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만의 본질을 스스로 파악하며 살아야 할 텐데.

그 유명한 격언 "너 자신을 알라."처럼 말이다.

 

 

책에는 사노 요코 원작 삽화가 15점 수록되어 있다.

하나같이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결코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찾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약간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옆으로 치켜 뜬 눈 하며,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선들이 마음 속 불안감을 슥슥 긁어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들을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고 그림의 이미지가 꽤 오랫동안 기억 속을 돌아다닌다.  어른과 아이의 기묘한 공존이 묘한 엇박자를 이루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나 할까.

 

 

 

보통은 활짝 피어난 갖가지 꽃을 보며 찬탄해 마지 않지만 사노 요코는 꽃을 보고도 독기 서린 마음을 품었다고 고백한다.

의외의 문장에서 평소 그녀가 지니고 있던 삐딱함이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이런 삐딱함을 직설적으로 툭툭 내뱉으며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부럽다.

이렇게 독설을 내뱉으면 좀 '센 언니'로 보일까, 싶어 나 자신을 억누르고 살지 않았나...

버릇 없이 보이는 것만 아니라면, 나도 내 스스로의 속에 담아 놓은 '발칙함'을 조금씩 내놓으면 어떨까...생각해 본다.

 

 

 

나는 싫어하는 말이 많다. 지금 현재는 '삶의 태도', '자유분방하다', '개방되었다', '해방', '여성의 자립' 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특히 여성의 정신 해방이란 말은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다. ...

나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여자들이 윤리와 역사와 여성의 생리 구조 등을 거론하며 어려운 말로 자기주장을 역설하면 왠지 무서워진다. 너무 어릴 때 아무 자각 없이 자신의 벽을 간단히 허물어버린 나는 의식과 지식을 축적해 '해방'이란 것에 도달한 잘나가는 여자들과 닮은 듯 보이면서도 아주 많이 다르다.-170

 

싫은 것은 싫다고 딱 잘라 말하며

남들과 나의 다른 점을 확실히 들여다보고 인정할 줄 알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이기적일 수 있는 당찬 여자

 

사노 요코의 40대는 그렇게 멋지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더 눈부시게 보일 수도 있다.

솔직 담백하게 일기 쓰듯이 자신의 삶을 써내려가자 그게 또 그것대로

사노 요코의 삶의 철학이 된다.

나의 일상도 멋지게 엮여서 하나의 철학이 보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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