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 긍정의 건축으로 다시 짓는 대한민국 교육
김경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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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공간에 관하여 생각하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학교가 규격화된 성냥갑처럼 지어지던 근대 시기, 교육의 목표는 실상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길들여 표준화시키는 것’이었다. 근대 국가는 교육과 법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했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바로 학교, 군대 그리고 감옥이었다. -21

 

 

이런 말을 들으면 곧바로 반발심이 일어나지만 그러고 잠시 후에 동조의 의미를 나타내는 미소 혹은 고개 끄덕임이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주 오랜 시간 -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오랜 시간일-동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야간 자율학습을 명목으로 공부에 힘을 쏟는다. ‘별보기 운동’을 일삼으며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할 학교. 그런 학교가 감옥과 같은 곳이라면...아이들은 죄도 없이 감옥 같은 환경에 길들여져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창의를 논할 것이며, 인간적인 것을 논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허용된 10분의 휴식 시간조차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어 정서적 편안함, 활기를 기대할 수 없는 학교.

“학교가 집보다 더 편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겨울 방학 동안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교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나는 도서관 도우미를 하고 있어서 도서관을 먼저 챙겼는데, 그 흐지부지한 일처리란~~책들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고, 책장은 원래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게 내팽개쳐져 있는 모습. 연휴 끝이라 개학 전에 선생님들이 체크도 안하셨는지. 도서 도우미 엄마들에게 비상연락을 돌려 아이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책을 읽고 쉴 수 있도록 청소를 해야 했다. 먼지 닦아 내느라 땀이 주르륵~

학교든 집이든 아이들을 위해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데 이럴 수는 없었다. 무지 속이 상했다. 이런 먼지구덩이에 아이들을 몰아 넣고 개학을 하면 어쩌잔 것인가.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혹은 엎드려 앉아 책을 읽을 것이고, 대출반납을 하러 들락거릴 것인데...

도서관 담당 선생님은 물론 학교의 책임자라는 교장, 교감 선생님은 개학날이라 바쁘셔서인지 도서관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결국 청소용 걸레를 마련한답시고 교무실에 직접 찾아가서야 “아~ 도서관”이라는 짧은 한마디나마 얻어들을 수 있었다.

“책은 아이들더러 옮기라고 하면 되고 청소는 다 되어있지 않던가요?”

이건 앞뒤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것이고 학교를 책임진다는 선생님의 입에서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들의 무관심속에 아이들을 맡긴 학부모만 애가 타는 현실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부모의 마음. 초등학교부터 이런 방임 속에 아이들이 길러지고 있다면...중학교, 고등학교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으리란 생각에 식은땀이 주루루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론 선생님들의 편에 서서 얘기하자면 영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아니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학교 문제나 기본적인 복지조차 누리기 힘든 답답한 환경에서 선생님들 역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일분 일초라도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 공간에서 과연 양질의 교육이 꽃필 수 있을까?-29

 

아이의 학교 외관은 리모델링 공사 후에 노랑, 빨강, 아이보리의 블록 형태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균형 있게 배치되어 한층 발랄하게 변하기는 했다. 역사가 50년이 넘는 동안 이렇게 혁신적인 외관의 변화는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그러나 외관을 바꾼 것은 공사업자의 힘이었을 뿐. 도서관에 관심 쏟는 정도를 보아하건대, 선생님들의 마음까지 움직일 정도의 리모델링은 아니었단 생각이다.

 

학교의 삭막한 공간이 문화적인 공간으로 바뀌고 나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학교 폭력이 줄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

불결한 이미지였던 화장실에서는 향긋한 향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폐쇄적이던 옥상은 산책을 하고 캠핑을 하는 곳으로 바뀌고 나니 아이들의 거친 말투와 행동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9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는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책에서 공간이 아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의 학교도 비록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외관이 전보다 확연히 밝아진 것을느낄 수 있었는데, 공간의 변화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으슥하고 어둡던 학교를 무섭다고 하던 아이들이 밝아지면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도 좀 처진 어깨를 펴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공간에 쉽게 마음을 내주는 아이들로 인해 학교가 활기차 진다면 먼지 들이마시며 도서관 청소한 것 쯤. 뭐, 너그럽게 흘려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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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콜드 머시 톰슨 시리즈 1
파트리샤 브릭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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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내추럴들의 향연[문콜드1]

 

보드레한 달빵을 야금야금 먹고 차츰차츰 차올라 동그스름한 얼굴로 어둔 밤을 밝히다, 또 조금씩 조금씩 이지러져 새초롬한 눈썹 모양이 되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 달.

강한 빛으로 대낮에 우리 머리 위에 군림하는 태양과는 달리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밤을 감싸안은 달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만든다.

달을 보며 하루를 반성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는데...

달을 주제로 또는 모티프로 하여 탄생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 작품 [문 콜드]

이 소설에서는 유난히도 달빛의 부름에 호응하는 무리들이 많이 등장한다.

판타지의 세계에서 허용하는 거의 모든 초자연적인 존재-슈퍼내추럴-들이 한자리에 모인 듯하다. 뱀파이어,늑대인간, 요정, 그리고 코요테.

 

[문콜드]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나레이터는 코요테로 변신가능한 워커, 머시 톰슨이다. 트라이시티즈에서 독일 클래식카 전문 정비소를 운영하는 그녀는 배꼽에 코요테 발자국 무늬의 문신을 한 정비사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행동파. 그녀의 옆집에는 섹시한 이혼남 아담이 딸 제시와 함께 살고 있는데, 사실 그는 컬럼비아 분지 무리의 알파인 늑대인간이다. 우어어~

코요테 워커도 모자라 옆집엔 늑대인간이라....

다행히 아담의 딸 제시는 아담의 전부인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이다.

남자들의 세계라 여겨지는 정비소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다소 거친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그런 머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함께 사는 고양이 메데아와 바로 옆집의 제시이다.

머시의 주변에는 왠지 모르게 그녀를 보호해 주고싶어하는 “천사”들이 있는데, 우선은 은퇴하면서 그녀에게 정비소를 물려주고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준 인물 ‘지’가 있다. ‘흑림의 지볼트’라는 전설적인 존재로 추정되지만 대장장이 요정으로 ‘그렘린’이란 현대식 호칭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또, 전화응답기에 <스쿠비 두> 주제가를 쓸 정도로 괴짜이며 머시에게 폭스바겐 미니버스의 수리를 맡긴 이탈리언 뱀파이어 스테판이 있다.

 

핵시대의 여명이 밝을 무렵을 배경으로 했으므로 정확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없으나, 이 시기에는 인간 이외에 슈퍼내추럴 즉, 초자연적인 존재 중에서 커밍아웃을 한 존재는 아직 “요정”뿐이었고 그나마 커밍아웃을 한 요정들은 격리조치되거나 외면당하는 등의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늑대인간의 매록인 브랜은 바야흐로 커밍아웃에 대한 압력을 받고 있으면서 조만간 늑대인간들에게 중대발표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머시의 집 앞에 머시의 정비소에서 일하기로 했던 풋내기 늑대인간 맥이 죽은 채 놓여 있었고, 옆집의 아담은 다른 늑대인간과 싸우다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것을 머시가 겨우 살려내었으며, 설상가상 아담의 딸 제시는 납치를 당했다!

아담의 무리 중 누군가가 내부고발을 하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될 리 없다고 판단한 머시는 부상당한 아담을 태우고 늑대인간의 우두머리인 매록, 브랜이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때 늑대인간을 양부모로 두고 브랜의 무리에 살았던 머시는 부모로부터 늑대인간의 서열을 들은 적이 있다.

늑대인간 서열 1위는 브랜, 2위와 3위는 브랜의 아들들인 찰스와 새뮤얼, 4위는 아담.

도대체 서열 4위인 아담을 노리고 그의 딸 제시를 납치해 간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속셈으로?

제시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요정의 제보로 머시는 뱀파이어 친구 스테판의 도움을 얻어 뱀파이어의 여왕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뱀파이어와의 전쟁이 일어날 뻔한 순간, 머시의 마법이 위력을 발휘해 그들은 제시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아내고 무사히 여왕의 소굴에서 벗어나게 된다.

 

“팔은 어쩌다가 그런 거야?”

“사악한 마녀와 마약 조직의 보스가 납치한 여자애를 구하려다가 늑대인간이 밀치는 바람에 나무 상자들이 잔뜩 쌓인 곳에 부딪혔어.”

“음, 어쩌면 ‘마약 조직의 보스’는 좀 과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잘생기고 섹시하다는 말도 더붙여야 했고.”-435

 

달빛의 부름을 받은 슈퍼내추럴들이 인간과 섞여 살고 있다는 상상. 그리고 그들이 너무나도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되살아나 있고 진정,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인물들로 착각할 만큼 현실적인 느낌 때문에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내 볼을 꼬집어야 했다.

정신 차려~ 아담이나 새뮤얼은 섹히하고 남자답고 멋지지만. 나이가 아~ 주 많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늑대인간이란 말이야~~

 

새뮤얼-늑대인간 서열 2위. 보통의 늑대인간과는 달리 쾌활한 성격에 인간을 좋아한다. 강력한 포식자의 본능을 누르고 의사로 활동할 정도로 자제력이 강하나 머시와 관련된 일은 예외다. 머시의 첫사랑.

 

아담 하웁트만-섹시한 외모에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지닌 이혼남. 컬럼비아 분지 무리의 알파로 매록인 브랜과 그 아들들을 제외하면 북미 지역에서 가장 힘센 늑대이다. 머시와는 이웃사촌. 그녀를 놀리는 걸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남몰래 배타적인 무리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기도 한다.

 

생생한 슈퍼내추럴들의 캐릭터에 푹 빠져 내 눈자위가 푹 꺼지는 것도 모른 채 끝까지 다 읽고서야 눈을 드니 주변이 어슴슴해보인다. 아! 내 시력도 이제 다 되었구나. 단 두 시간의 집중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밀려오는 커다란 고민 하나가 잠자리까지 나를 따라와 괴롭힐 모양이다. 눈의 고통보다 더~ 과연, 머시는 아담과 새뮤얼 중 누굴 택할 것인가.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 끙끙대며 이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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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두고두고 읽는 세계명작 3
카를로 콜로디 지음, 마사 판슈미트 그림, 이재영 옮김 / 파랑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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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어드벤처 [피노키오]

 

 

아이들은 모험을 좋아한다. 특히나 요즘같이 밖에 나가 놀 시간이 없고 공부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모험”에 대한 갈망이 더욱 클 듯하다. 어쩌다 한 두 시간 친구들과 실컷 놀 기회가 주어지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놀아주리라~ 하면서 신 나게 노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앞 뒤 재지 않고 실컷 뛰고 구르는 것이 아이의 본모습인데도 엄마인 내게조차 낯설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짠~해져 온다. 진정한 탐구, 진정한 자아 찾기를 부모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보면서 피노키오 완역판을 집어들었다. 세계 명작이라고는 해도 축소판, 혹은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많이 간소화되고 “명랑화”된 작품들만 접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어렵게 완역판을 만나게 되고 보니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든다. 과연, 내가 알던 피노키오는 카를로 콜로디가 형상화한 “완전한” 피노키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많이 변형된 피노키오가 내게 심어져 있었나...말썽꾸러기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본모습을 파헤쳐 보리라...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피노키오]는 원래 카를로 콜로디가 어린이 신문에 연재하던 작품인데, 말썽 끝에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노키오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원성에 못이겨 다시 살아나고 피노키오의 모험은 계속 이어진다.

 

 

 

이 책에서는 신문 연재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게 각 챕터별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모두 36장에 이르러서야 사람이 되는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피노키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요인물인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나무 인형으로 만들었지만 아이처럼 울고 웃는 나무토막을 처음 발견한 것은 목수 버찌 할아버지였다.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마침 잘 됐구나. 이걸로 책상 다리를 만들어야겠다.”

“저를 너무 세게 때리지 마세요.”

버찌 할아버지가 말하는 나무 토막 때문에 겁에 질려 있는 사이에 제페토 할아버지가 들어왔고, “옥수수 머리”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화가 난 제페토 할아버지는 버찌 할아버지와 서로 두들겨 패며 싸우고 말았다. 피노키오의 말썽쟁이 기질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제페토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나무 인형이 된 피노키오는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나무 인형이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피노키오를 잡으러 나온 제페토 할아버지는 졸지에 불쌍한 인형을 난폭하게 다루는 사람 취급을 당하다 결국은 교도소에 끌려가고 만다. 이제 제멋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 피노키오.

백 년 넘게 제페토의 방에서 살던 참을성 있고 지혜로운 귀뚜라미는 피노키오에게 공부를 해야 하며 학교에 가기 싫으면 정직하게 밥벌이 할 수 있는 지혜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냐며 충고를 하지만, 잘 먹고, 푹 자고,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어하는 피노키오는 귀뚜라미에게 망치를 던져 죽게 하고 만다.

 

 

 

집에 돌아온 제페토는 발을 태워버린 피노키오에게 새 발을 만들어주고, 글자 공부 책을 사기 위해 한 벌뿐인 외투를 파는 등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인형극을 보려고 책을 팔아 치운 피노키오는 나쁜 인형 조종사에게 붙들려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제부터 끝도 없이 펼쳐지는 피노키오의 모험들.

 

 

실로 피노키오의 모험을 따라 가다보면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어린아이 혼자 감당하기에 힘들어 보이는 일들에 직면하며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위험들에 부딪힐 때에는 피노키오의 말썽 보다도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를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사회의 여러 제도들, 선악에 대한 판단, 허위에 가득 찬 도덕 관념 등 아이의 동화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마무시한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기도 했다. 나무에 목이 매달리고 금화를 도둑맞고, 경찰관에게 끌려가고, 서커스단 단장에게 팔리고...어찌보면 너무나도 섬뜩한 이야기들이 모험을 가장하여 서슴없이 까발려지는데...과연, 이런 텍스트를 아이에게 “축소” 또는 “미화”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들이밀어도 되는 것일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역할을 대신하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의 심성도 그렇게 밝고 착한 것이 아니어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노는 것, 재미있는 것에 쉽게 현혹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우며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없이 게으름에 빠져 지내는 피노키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나 살짝만 비틀어서 생각해보면 이런 피노키오를 보면서 무조건 동조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열이면 열, 피노키오의 흥미진진한 모험에 끌려 그 이야기에 동화되기는 해도 피노키오처럼 행동해야지...하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몇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깊은 성찰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든 게으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우화이자 생동감 넘치는 판타지인 [피노키오]

피노키오가 겪게되는 기상천외한 사건사고를 함께하면서 실제로는 저지르지 못하는 일을 이야기로 대신하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을 직접 겪어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원작을 그대로 읽게 하면서 세상이라는 험난한 바다에 나아가기 전에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읽는 동안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어떤 성장을 이루어낼지 확인해간다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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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의 기적 - 시각 장애 아이들의 마음으로 찍은 사진 여행 이야기
인사이트 캠페인을 만드는 사람들 지음 / 샘터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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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언어다.

흔하게 입에 올리는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다.

 

시각장애아들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뭐 대단한 것 있을라고?

도대체 상식 밖의 일을, 동정심을 가미해 미화시킨 이야기일 뿐...이라고 밀어내 버리면 그만이었을텐데...솔직히 호기심이 동하여 이 책을 다시 끌어다 놓았다. 아이들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예술적인 면에서나 기교적인 면, 그리고 일반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저 그런 편에 속했다. 그러나 그 사진에 곁들여진 아이들의 노력, 사진을 찍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함께 하자, 사진 한 장 한 장은 먼저의 느낌과 크게 다르게 다가왔다.

바람을 느끼고, 파도를 느끼고,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담아낸 사진 한 장.

세상에 대해 닫힌 마음이 거칠 것 없는 자연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시각장애아들에게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 또한 나의 시큰둥한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보지 못하는데 무슨 사진?”

하지만, 때로는 춤을 추며, 때로는 독특한 분장을 한 채로 내면 세계를 표출하는 실험적인 사진을 찍어 ‘춤추는 사진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사진작가 강영호는 보이지 않는데 사진을 찍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예술에 대해 평범한 나와 생각하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진 예술’이 시력을 넘어서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믿는다는 데에야...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눈에다 사진기를 가져다 대지 않고 귀 옆으로 사진기를 대고 찍었다고 한다. 그 포즈 자체가 예술!

어떠한 구도도 광선도 가르칠 필요 없이 그저 숲의 향기, 파도의 소리만 일러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강영호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사진이 한갓 ‘기술’이 아니라 “언어”임을 증명해 내었다.

 

 

 

 

감각으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청각과 후각 그리고 촉감이 풍부한 강릉으로의 3박 4일 사진 여행을 떠난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한 일정은 6개의 Part로 나뉘어져 책에 실려 있다.

1. 세상을 담다

2. 감각을 깨우다

3. 다가가다

4. 들여다보다

5. 마주보다

6. 멀리보다

 

굳이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아도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지는 듯하다.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암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시각 뿐만 아니라 “장애”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는 순간 냉랭하게 달라붙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움츠러들면 들었지, 어떻게~~(개콘 버전) 그 편견을 뚫어나가기가 녹록했겠는가...

 

사진 찍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랄 생각했던 “시각”을 배제한 채 찍어 낸 아이들의 사진은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진여행에 동참한 아이들의 후기가 가슴에 남는다.

 

 

 

신나라-사실, 안 보이는 우리에게 뭘 기대하나 싶었어요. 이런 걸 왜 하는지.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이번 여행으로 사진에 더욱 재미를 느꼈어요. 그동안은 만지고 느끼면서 기억하려고 애썼는데, 이제 사진으로 저장할 수 있으니, 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얻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걸 사진에 담을 거예요.-248

 

김정완-처음엔 내가 사진을 찍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진을 찍을수록 자신감이 생겼죠. 내 감각을 믿게 되었고 보이지 않아도 본다는 말의 의미를 알았어요-250

 

이범빈-사진을 찍는 것도 좋았지만 제가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오리면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제가 보고 느낀 걸 공유하고 사람들이 공감해 주는 건 멋진 일이에요.-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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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2-2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각장애인도 다른 사람도
그저 느끼는 대로 찍으니
저마다 즐거운 빛이
사진에 감돌 수 있어요.

남희돌이 2014-02-2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자체만으로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해요~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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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이런 일이...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응답하라, 1994>가 히트를 치더니 이제는 1980년대를 추억하기란다!!

단, 이 책 [더 스크랩]은 하루키의 눈을 통해 읽은 1980년대이기에 우리나라의 실정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는 나로서는 하루키에게 좀 더 가까이 다다갈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에서 읽어지는 약간의 이질감을 덮어두기로 했지만, sex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것이나 커피는 역시 도쿄가 최고다 하는 등의 말에서는 역시...좀처럼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었다.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인데 하루키는 정말 즐겁게 쓴 글이라 스스로 밝혔다.

한달에 한 두 번 <넘버>에서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스>일요판 등을 왕창 받고는 뒹굴거리며 읽다가 재미있을 법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하여 원고를 쓴 것이라니 진정 즐거워할 만 하다.

 

 

<에스콰이어>와 <뉴요커>의 엄정함에는 감탄했다며 일본의 잡지는 어째서 그렇게 연재와 험담과 소문과 대담이 많으냐고 의문을 표하는 점에서는 일본 잡지 역시....우리네 잡지와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고소를 머금기도 했다. 우리가 그런 일본의 잡지 시장 경향을 따온 것이라는 지적에는 고개를 떨구며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마이클 잭슨이 세계를 석권했던 1984년의 그 여름을 필두로 해서 198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요소들이 81편의 스크랩으로 모여 책이 되었다.

호랑이 눈․로키 스탤론, 카렌 카펜터의 죽음,<에스콰이어>오십 주년과 스콧 피츠제럴드 비화, 스타워즈의 츄바카, 올림픽 유니폼에 관해, 콜라 전쟁, 에릭 시걸을 이야기하다 ...등등. 1980년대를 추억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방법은 없으리라.

 

그럼, 나는 이 책에서 작가 하루키가 다른 작가에 대해 쓴 짧은 의견들만을 스크랩!!해볼까...왠지 다른 많은 이야깃거리보다 하루키가 다른 작가에 대해 쓴 글에 더 신경이 쓰이고,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꽤 많기도 하다. 하루키도 작가인 이상, 미국의 작가에 대해 은근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

 

 

 

 

1. 1951년의 파수꾼-그런데 가만히 내버려둬도 한 달에 이삼만 부가 팔리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16

2. <뉴요커>의 소설-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잡지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훌륭한 단편소설을 만나는 것이다. (...)술술 읽히는 데다 다 읽고 나면 마음에 뭔가가 남는다. 훌륭한 단편이란 그런 것이다. -28

3. 존 어빙과 부부 불화-존의 갑작스러운 성공은 우리 결혼생활에 좋은 영향을 가져오지 못했어요-라니, 참 슬픈 대사다. 미국에서 ‘성공’의 기준은 대체로 연수 100만달러 이상이니 나 같은 사람은 아직 한참한참 멀었다. -38

4. <에스콰이어> 오십 주년과 스콧 피츠제럴드 비화-살아있는 동안은 비평가들에게 실컷 욕먹고 죽은 뒤에는 성기 크기까지 이러니저러니 말을 들으니 작가란 짓도 참 쉽지 않다.-101

5.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는 죽기 직전에 TV드라마화를 승낙했는데, 조건은 원작료 75만 달러(!!)와 캐스팅 및 감독 선정에 대한 승인권이었다. (...)앤 마그렛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나지 못한 것을 몹시 유감스러워했다. “내가 출연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화요일인데, 금요일 아침에 그가 세상을 떠났어요. 말도 안돼요.”

6. 스티븐․공포․킹-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만, 공포소설작가가 진지하게 공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유머소설작가가 진지하게 유머란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만사가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112

7.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죽음-데뷔 때 인상이 너무 강렬하면 작가는 뒷감당이 힘들어진다. 나 같은 사람은 적당히 팔리니 적당히 즐겁게 지낼 수 있지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군.-179

8. 에릭 시걸을 이야기하다-항상 경의를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데에 신경질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24

 

잡지를 읽듯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1980년대의 맛이 혀 위에서 슬슬 굴러다닌다.

스크랩을 스크랩하기도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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