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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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서 최고인 왕은 누구? [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21세기를 G2 시대라고 한다. 중국이 어느새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저자 신동준은 G2 시대를 동양의 역사에 비춰볼 때 왕조교체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데, 그것은 위기일수도 기회일수도 있다. 이 책은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난세의 시기에 재위한 인물을 선정해 그들의 리더십을 집중 분석하였다. 우리가 이제껏 평가해왔던 잣대와는 사뭇 다른 잣대를 들이대어 조선의 왕들을 평가한다. 조선의 역대 군왕이 G2시대의 난세를 얼마나 슬기롭게 타개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저자 자신도 말했듯이 몇몇 왕의 평가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에서 조선왕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한편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이렇게 조선의 왕들에 대하여 감히 신랄하고 과감하게 비평할 수 있겠는가.

 

책 뒤편의 참고문헌만 보아도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그냥 이어다 붙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수학한 사람이 아닌가. 대학 시절, 답사 코스 중에 태동고전연구소(혹은 지곡 서당)가 있어 한 번 들른 기억이 있는데, 한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알고 있다. 청명 임창순 선생의 생전에 참관하여 기념사진도 찍고 거기서 수학하는 이들의 개인 연구실 구경도 해보았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학을 공부하는 석사급들의 연구실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고즈넉한 도서관에 책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각 연구실 안에서 기숙하며 연구자들은 줄줄줄 경을 외고 있었다. 무엇이든 외는 것이 기본이라 들었다.

어쨌든, 신동준의 해박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고, 그의 특이한 견해는 현재의 난세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에서 빌려온 지혜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허투루 들어 넘길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리더십’의 의미는 휘하 사람을 다스리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다. 똑같은 리더십일지라도 통치와 통할은 ‘특수한 리더십’에 속한다. 안철수의 “수심 2미터의 수영장에서 수영할 줄 알면 태평양에서도 가능하다.”는 말은 상사(相似)와 상동(相同)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한 대표적인 실례라고 말하면서 스포츠 지도자의 리더십과 제왕의 통치 리더십을 엄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세를 뜻하는 ‘수영장’과 난세를 뜻하는 ‘태평양’을 같이 논할 수 없듯이 난세에는 난세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며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었을 뿐 속내를 보면 조선조 왕들의 역사 문화적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역사문화의 배경이 다르면 그 해석은 물론 대응까지 달라야 한다. 조선조 역대 군왕의 리더십을 거울로 삼아 21세기 스마트 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한국 모델’의 리더십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조선조 때 출현한 3번의 G2시대를 총망라해 분석하면서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명군(明君)으로 태조와 태종, 세종, 세조, 광해 등을 들었다.

G2가 아닌 G1의 시기에 재위한 인물 가운데 조선조 사대부들에 의해 성군의 칭송을 받은 성종과 중종, 숙종, 정조 등은 엄밀한 재평가를 요한다면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 평범한 군주를 뜻하는 용군(庸君)으로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명 사대주의자들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보위에서 끌어내려 호란을 자초한 것을 두고두고 반성할 일이라 평하면서 반정의 주역인 인조를 왜란을 초래한 선조와 함께 암군(暗君)의 전형으로 꼽았다. 세 번째 G2의 시대인 구한말에 민비(명성황후를 민비라 일컬었다. 신동준의 신랄함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의 치맛자락에 휘둘려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한 채 나라를 일제에게 고스란히 상납한 고종도 다를 게 없다고 평가한다.

 

어디까지나 부국강병을 잣대로 삼은 하나의 견해라고 소개하는 이 책은 21세기 경제전쟁 시대의 일선 사령탑에 해당하는 기업 CEO를 비롯한 각계의 지도자들이 ‘부국강병’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라 한다.

난세를 타개한 ‘리더십’을 주제로 역사를 보니, 또 한껏 새롭다.

한편 의아하면서도 한편 통쾌한 분석이 아니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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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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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꽃무늬는 내가 만드는 것.[가족의 두 얼굴]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 얇은 옷깃에 스며드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서서히 식어가는 손과 발과 볼을 녹이려고 생명과도 같은 성냥을 그어대며 그 속에서 따스한 환영을 보려 했던 아이.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줄 알면서도 그 불꽃 속에서 어른거리는 털외투와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에 한없이 매료되었던 아이였다. 언제까지고 소녀의 편이었고 한없이 넓은 품으로 폭 싸안아주었을 소녀의 어머니...또한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소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온기가 그리워 자꾸만 성냥을 긋고, 긋고, 그었었다.

 

성냥을 팔러 돌아다니는 동안 지나쳤던 수많은 집들의 창으로 보이는 모습들-온기가 피어오르는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바알갛게 달아오른 두 뺨을 부모의 무릎에 부벼 대는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소녀는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가 지친 몸을 의지하려 잠시 기대어 앉아 있던 그 집의 담벼락은 가족이 아닌 소녀에게는 냉랭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소녀는 얼마나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을까. “나의 가족은 어디에...”

소녀의 쓸쓸한 목소리는 휘잉 휭~하는 바람소리에 묻혀 공허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소녀가 기댄 담을 경계로 확실히 나뉜 삶.

내 가족과 남 사이에는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경계가 그어져 있다.

 

그렇지만, 정작 한 가족 안에도 경계가 있고 두 얼굴이 있다면?

이유 없이 슬퍼지고 외로워지는 때, 평범한 어느 날의 한 장면 속에서 문득 남편이 나의 아버지와 닮아 있다는 걸 느낄 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감정이 폭발할 때...

그럴 때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성냥팔이 소녀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온전하고 따뜻하며 행복의 장일 것 같았던 가족이 낯설게 느껴질 때, 섬에 홀로 고립된 듯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사랑하는 가족이 내게 아픔을 주다니...

 

수많은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나날들이 모여서 가족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무늬를 자랑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무늬는 날씨의 변덕에 따라 해가 나면 빛이 나는 광택을 선보이고, 구름이 가리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거무튀튀한 색조를 드러낸다. 그나마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명한 모양이 두드러져서 볼 만하지만 세월이 가면 빛이 바래고 얼룩덜룩한 얼룩이 생겨 세월의 흔적이랄지, 손때 랄지가 묻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명이 다한 가족은 새 가족을 만들며 새 가족에게 그 무늬를 전수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역사란 가족의 역사이고, 나는 가족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이다. 내가 가족에 대해 느끼는 불합리하달 수 있는 상처들은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트라우마.

 

혼자였었기에 외로웠던 건 외로움도 아니었었지. 너와 있어도 홀로인 듯한 그건 외로움을 넘어서는 절망.

 

유행가의 가사 한 줄이 무던히도 나를 울린다.

마음의 상처는 비누로 한 번에 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 그 끝을 알고도 모를 심연의 바닥에 새겨져서 유행가 가사 한 줄에도 쉽게 떠올랐다가 좀 토닥토닥해주면 다시 가라앚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이 책 <가족의 두 얼굴>을 읽기 시작했다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라기에.

그러나 확실한 해답은 나와 있지 않았다.

 

치유라는 말은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날의 상처는 깨끗하게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날의 상처로 더 이상 현재의 내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마음의 짐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가족’에 대한 갈등을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에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밝은 얼굴 뒤의 숨겨진 얼굴들을 살피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 보고 내가 가진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나가야 하는가를 배워나가면서 묵은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

 

 과거의 유약했던 나를 기억하고 한 번씩 불쑥불쑥 떠오르고야 마는 고약한 엄마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달라져야만 한다. 손수건을 건네던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상처로 인해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이렇게 떡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고 불쌍한, 상처입은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내 가족의 무늬를 선명하게 직조하며 꽃을 피워야 한다. 경계에 서서 불안에 떠는 아이는 꽃을 보면 안심할 것이다. 한결 평온해진 마음으로 꽃을 피워 올리도록 단단한 다짐을 해야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부러워하던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성냥팔이 소녀를 초대할 것이다.

김이 나고 밥이 익어가는 냄새에 매혹당한 소녀는 간장과 바스락거리는 김의 만찬이라도 웃으며 참여할 것이다. 가족의 두 얼굴에 상처받은 나는 더 이상 없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어른’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므로. 불행하게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마저도 감싸 안을 만큼 마음자리가 넓어지고 있는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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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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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랑무늬 영원]

 

이 소설집은 여러 인생들을 보여 주고 있는 단막극이라서인지 내가 기대하던 드라마의 초반부에 꼭 있어왔던 “설렘”의 코드가 없다.

중반과 후반으로 그냥 치닫는다. 칼로 스-윽 베어진 각자의 인생 단면에서 그간의 사연들이 스르륵 빠져나온다. 쌓이고 쌓인 감정의 다발들이 꾸역꾸역 비어져 나온다.

그 물결에 손을 얹으면 그들의 삶에 같이 몸을 싣게 되고 책을 읽는 잠시 동안 그들의 인생을 함께 호흡하게 된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상처 입었고 회복하는 중이다.

TV 드라마에서 보여 지는 반짝반짝 하는 설렘이 보이지 않아서 심드렁했을까? 아니다. 비록 상처입고 회복하는 중인 우중충한 내용들뿐이어도, 나는 한강이 그려내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 행복했다.

 

표제작인 <노랑무늬 영원>의 한 부분을 볼까.

 

빛이 화면 뒤에서 비쳐 나온다. 구원의 -떠오르는-잠잠한-승화된 눈물의 빛. 서로 다른 빛깔의 동그라미들이 겹쳐져 더 진해지고 어두워져야 할 바로 그 자리에 떠오른, 물을 섞은 유채꽃 빛깔의 노랑. 간혹 그보다 강렬한 주황. 멀리서 보면 이 그림들은 결코 위력적이지 않다. 가까이 갈수록 착시처럼 더 밝아지는, 실제로 튀어나오며 확장되는, 눈과 혼을 홀리는 노란 빛방울들.-260

나무와 하늘, 빛을 받은 잎사귀들, 내가 찍은 그의 프로필, 내 사진 석 장. 얼음 덮인 바위틈의 연둣빛 싹. 거기 겹쳐진다. 더운 김이 피어오르는 그의 목덜미, 흰 피부의 잔 솜털들. 거기 입술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의 아득함.-296

 

화면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보다 더욱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선명한 색채의 어른거림 속에서 각각의 삶들은 무늬를 뽐내었고 비록 짧은 꿈을 꾼 후에 남는 단속적인 기억과 아련함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 감정의 들쑤심들은 잠시나마 남들의 인생을 엿보는 짜릿함과 연결되고 있었다.

 

활짝 열린 결말. 진행 중인 이야기들로 인해 장면 하나를 나의 삶 어딘가에 이어 붙여 보기도 하고, 더욱 더 나은 결말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특히 [노랑무늬 영원]의 가장 처음 작품인 <회복하는 인간>은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했다.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비밀로 인해 언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급기야 언니의 죽음을 맞게 되는 한 여자. 남겨진 여자는 상처 입었다. 그러나 발목에 난 화상의 상처가 회복되는 것이 의사조차 놀랄 만큼 심하게 늦게 회복되는 케이스였어도 여자의 상처는 회복 중이었다. 천천히...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32 <회복하는 인간> 中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18 <회복하는 인간> 中

 

갈등과 반목 후에 언제나 풀어지고 결국은 화해를 이루고 마는 것이 드라마의 법칙이다.

첫 만남의 설렘은 싹둑 잘려진 상태로 진행되는 진지한 인생 한가운데서 동생과 나의 띄엄띄엄한 사이가 회복되는 일. 나의 짧은 드라마는 이제 엔딩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 하나가 남았다.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따지지 말고 손을 내밀어야겠다. 뒤늦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소설 속의 여자는 결국 언니를 잃고 말았지만, 그러면서도 회복되기 시작하는 자신의 상처를 보며 후회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현실의 나도 상처 입은 인간이고, 나의 동생도 상처 입은 인간이라면,

그럼, 이제 나는 회복하는 인간인가? 하고 자문하면서 책을 덮는다.

지치지만 견디는 것 뿐이야...라는 책 속의 말이 울림을 준다.

“어디가, 아팠니?”라는 말로 다가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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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는 일본여자들처럼 - 매일 채소를 찾게 되는 놀라운 변화
강한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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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는 일본여자들처럼]

 

 

 

세 권의 일본 여행 에세이를 썼던 작가인데 이번에는 ‘채소’에 주목했다. 일본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터득한 채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에세이화한 것. 글 쓰는 방송인인 그녀는 한국에서의 방송활동을 잠시 접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연예계에 늦깎이 데뷔를 했다. 한류 방송 프로그램을 비롯해 일본 공중파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깊이 있는 책의 다채로운 집필을 위해 일본 현지 대학원에서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고 있다. 일본의 ‘식재료’가 아닌 일본인들의 ‘식습관’ 그리고 ‘채소 혁명’을 조명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단다.

세계적 장수 국가로 꼽히는 일본인들의 건강 식습관의 중심에 서 있는 ‘채소’.

강한나는 전 세계의 채소 섭취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에 감탄한다.

 뿌리채소와 네바네바(끈적끈적) 채소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레시피, 일본 전통 밥상에서 발견한 제철 채소의 위력, 그밖에 발효 식품과 디톡스 효소 시럽, 채소 수프, 채소 카레, 그린 스무디, 50도에서 채소 씻기 열풍 등 이들의 다채로운 채소 연구를 발전적인 노하우들이라 평하며 소개하고 있다.

 

 

1장. 채소와의 만남에서는 일본에서 채소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의 채소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2장. 일본여자들의 시크릿 레시피에서는 7인의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하나같이 따라해보고 싶어지는 비법들이다. 사토코의 바냐 카우다, 가스파초, 마유미의 그린 스무디, 미치루의 디톡스 효소 시럽, 세이코의 두유 그라탕, 두부 덮밥, 에츠코의 채소 카레, 마리아의 토마토 어묵, 토마토 셀러리 소면, 노리코의 여름채소의 차가운 모둠 요리, 호두, 된장 구운 주먹밥 등이 소개되어 있다.

 

3장. 신 채소혁명

전 세계에서 채소에 관한 새소식,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뉴스를 전해준다.

채소도 따뜻한 물을 좋아하며, 식물의 심장 뿌리채소를 주목하라는 내용에서부터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지는 사찰음식, 전 세계 식탁에 부는 오리엔탈 바람, 간식도, 요리도 드라이 채소 등등...메모하기 바빠지는 내용들이 빼곡하다.

 

 

소고기와 고구마, 시금치와 멸치, 당근과 오이 등은 '안 좋은 궁합'에 속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윤손하도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 보유자란다...

 

 

낫토, 야채 겨절임 등 몇몇 요리들만을 알고 있었던 내게 이 책은 새로운 일본 채소요리 레시피의 신세계다. 소설 <달팽이 식당>이 다채로운 일본 요리를 접하게 해주었다면, 이 책은 하나의 소재인 ‘채소’를 위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절대로 단조롭지 않은 다양하고 화려한 채소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음...맛있겠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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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誤讀 誤讀) 책 씹어먹기의 즐거움

 

책 먹는 여우는 책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리지 않고 아무 책이나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어치웠다. 처음엔 책을 사서 먹어치우다가 그걸론 모자라 도서관의 책에까지 손을 뻗다가 급기야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서 할 일이 없어진 여우는 이제까지 먹었던 책들을 토대로 자기의 글을 쓴다. 여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책 먹는 여우처럼 작가가 될 만큼 많은 책을 먹어치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독서인이라 자칭하며 책을 조금씩 조금씩 씹어왔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맛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서 저자는 사적인 연애와 사적인 책 읽기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오독(誤讀)의 즐거움을 말했다. “아마도 그 학자나 작가를 연구하거나 좀 안다 싶은 선생님들의 눈에는 큰일 날 독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낸 물길과는 영 딴판인 어느 곳에 독자가 멈춰 서 있으니. 그러나 때때로 오독은 진실이다.” 라는 말에서 나는 큰 용기를 얻었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국가 권력을 이야기하려 하든 말든 그 파놉티콘 안의 감시자가 자기 안의 다른 누군가가 아닐까 생각했고, 프로이트가 어린 시절을 성적 욕망으로 해부하려 리비도를 들이밀어도 “그딴 건 모르겠고, 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꿈의 해석이 꽤 마음에 드는데?“라고 말하며 감히 <이방인>의 뫼르소를 지인들의 강력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연애와 결부시키려 드는 그 배짱.

이렇게 당당하게 스스로의 책읽기를 할 수도 있구나.

 

나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나서 많이 부끄러워 했었다.

작가의 메이킹 스토리를 죽 읽고나니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할까. 책에 무슨 엑기스가 더 이상 남아 있을까...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없다.” 작가의 확고한 선전포고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이만큼 으름장을 놨으니 소설은 정말 어려울 거야. 읽어봐야 내가 이해나 할 수 있겠어?

늙은 살인자, 그것도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담이라는데...그 세계에 들어가서 헤엄치다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물귀신처럼 뭔가가 내 발을 죽 잡아당겨서 ,나, 다시 숨도 못쉬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읽을 생각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조용한 새벽 시간 잠을 쫓으며 읽기를 1시간 남짓. ‘어서 어서 이리로~’하는 소리에 이끌려 걸어 들어간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었다. 생각한 것만큼 어렵지 않네? 술술 읽히잖아.

시인이자 살인자, 치매환자라는 묘한 조합 속에서 살인자는 유유히 살아 있었다. 철학자 니체와 반야심경, 금강경을 읽는 살인자.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누가 말했건 간에 이 구절을 보게 되자, 책이 “어이구~바보야.”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약이 화~악 올랐다. 기껏 잠도 양보해가면서 읽었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라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 툭 툭 내뱉는 말들을 그냥 저냥 흘려보냈더니 내가 바보가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체험에 관한 기록이다.-157

라고 해설자가 말했다.

그래서, 뭐?

나는 금강경과 니체를 읽는다는 살인자가 신기했을 따름이고 더불어 감성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설정이 신선했다. 다만, 쾌감을 위해서 살인을 한다는 그의 말에서 ‘기괴함’과 ‘섬뜩함’이 아닌 ‘연민’을 읽을 수 있었다. 살인자의 첫 살인이 존속살인, 즉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행해진 것이었다는 점이 턱 걸렸다. 계륵(鷄肋)인가...그 한 군데가 심장을 콕콕 찔렀다. 나 또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큼 강한 증오의 감정을 품은 때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어도,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었는데...

고독한 자유의 왕국에 틀어박혀서 다음번에는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감옥 속에 갇혀 살아왔던 김병수. 그는 악마적 자율성을 제로로 수렴시키는 세계, 그 곳이 바로 감옥방이고 징벌방이라 말했다. 김병수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잠시 수런수런 겨울바람에 갈대가 울어대듯 내 마음 속에서 조그마한 동요가 일었다고 해도, 그는 응당의 징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김병수를 치매 속에 가두어버림으로써 관대한 처분을 내린 듯하다. 나의 숨겨졌던 잔인함이 발휘된 부분일까? 유황불과 뜨거운 기름이 들끓는 무간지옥에서 팔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혀가 뽑혀 나가며 손톱발톱이 빠져나가는 괴로움을 맛보여주어야 마땅한 살인자에게 치매는...약과다.

아, 나는 잔인한 여자...

이제라도 곧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어떤 날은 정신이 또렷하고 어떤 날은 그저 멍한 70세 치매 노인에게조차 30년간의 살인의 책임을 물어 마땅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냉정한 여자...

니체와 금강경, 반야심경을 읽고 작가처럼 자비의 마음을 베풀지어다...

 

 

맞선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 은근히 주고받는 기싸움 중에도 거리낌 없이 쏘아지는 남자의 속사포 랩과 같은 대사를 따라가느라, 내 40 좀 못 미치는 평생의 독서력에서 기를 써가며 키워온 속독의 내공을 첫 단편을 읽는 데 소진해버렸다. 허탈~무슨 놈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도 없으며 , 적당히 웃을 타이밍도 주지 않고 그렇게 주욱~ 이어나가느냔 말이다. 이 인간은 정말~~^^그러다 마지막에서 빵 터질 시간을 주신다.

“됐다, 새끼야. 제발 그만 좀 해라.”

과연 실시간으로 그 자리의 믿기지 않는 상황을 눈앞에서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실감나는 대화와 그 대화를 한 방에 종결짓는 센 “마무리”가 아니었나 한다. 좀 부드럽게 다루었다면 달달한 연애드라마에 약방의 감초처럼 한 번씩 나오곤 하던 재벌의 아들과 돈을 보고 선자리에 나온 여자의 에피소드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성석제식의 필터를 거치고 나면 이렇게 신랄하면서도 함부로 웃지 못할 포스를 갖게 된다.

자동차 사고와 보험 처리의 상황을 다룬 <론도>, 특이한 사기꾼 동창생 이주선의 모습을 그린 <홀린 영혼>, 어린 시절 부잣집 딸로 찬미의 대상이었으나 고아로 전락한 민주가 살아온 인생편력이 소설의 화자 서정우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서술한 <찬미>, 라오스 여행길에서 만난 자칭 사업가 박씨의 이야기 <남방>, 어쭙잖은 한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의 역사를 떠벌리고 다니다 누군가 진실을 지적하면 발끈해버리고 마는 엉터리 해설가 <해설자>, 아버지의 외투에 관한 이야기 <외투>, 임진왜란의 와중에 나랏일에 소홀한 복수장 기원에게 바른말을 했다하여 억울한 죽음을 하게 된 유희의 억울한 사정을 밝힌 <유희>,그리고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 인간이 정말>

하나하나 해부하기엔 능력이 부족하여 성석제 소설의 미덕을 자세히 다루지는 못하지만, 정신없이 읽기를 밀어붙이는 통에 이야기의 줄거리조차 읽을 당시에는 머리에 제대로 입력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그래, 맞다. 살아간다는 건...”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제자리에 돌려보내주는 예의 있는 작가. 성석제.

밀려오는 글자의 파도에 정신없이 떠밀려 후다닥 읽게 만들어도, 읽는 중간에 나의 삶과 비교해보고 나의 상황에 대입해볼 수 있게 쉬어갈 수 있는 섬 하나는 만들어주는 사려 깊은 작가. 성석제.

그는 이번에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인간이 정말...>

 

안~주면 가나봐라~, 그~칸다고 주나 봐라~

한동안, 이 책을 읽고 내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려진 말이다.

키들키들 거리면서 한 번씩 소리죽여 그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즐거움이 퐁퐁 솟아오른다.

옛날 옛날~하면서 시작된, 과부와 스님의 어이없는 줄다리기 한 판 이야기이다.

어쩌다 푸르디 푸른 몽골 초원에서 열 두 명이 여섯 명씩 편을 갈라 술병을 두드리며 한 편은 -안~주면 가나봐라~를, 다른 한편은 -그~칸다고 주나봐라~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점점 염불소리처럼 장중해졌다.

한 외국인 여자의 원더풀, 원더풀 소리와 뭐에 홀린 듯한 얼굴 때문에 일행은 끝없이 반복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 사이에 초원의 풀꽃들이 입을 다물고, 먼 길을 떠났던 말들이 돌아오고, 해가 저물고, 초원에 살던 몽골 소년은 밥 먹으러 집으로 불려들어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대.-160

이야기에 곁들여진 달의 모습은 독자의 양손에 안겨주는 작가의 보너스다.

 

신경숙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고, 급기야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침잠하고 만다.

내 안에 고치를 틀고 한동안 그 안에서 끙끙대야 한다.

한 뼘 자라고, 또 한 뼘 자라 우화할 때까지 고치 생활이 계속된다.

실로 칭칭 동여매어진 그 속에서 나는 내 영양분을 보충 해야 하고, 스스로 상처를 보듬어 안아보고, 핥아보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어루만져야 한다.

신열이 나도 참아야 하고, 온몸이 땀에 젖어도 어찌할 수 없다. 네 활개가 웅크려진 몸속에 가두어져 있어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신은 말짱하다. 날개를 달고 나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하나만을 빛줄기로 삼아 기도한다. ‘어서 빨리 날개를 달고 나가게 해 주세요.’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덜 자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바이올렛>, <외딴 방>, <깊은 슬픔>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찔러 대는 가시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를 드러내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한없이 관대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망해온 삶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 이야기’인 듯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다.

은은한 달빛 아래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한 치 거스름도 없이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내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나라도 아마 그랬을 거야.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한없는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미소짓는 동안, 어느새 책장은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휘영청 떠오른 밝디 밝은 보름달 아래, 갈색 줄무늬와 어두운 청회색의 잔등을 가진 고양이 두 마리가 담벼락에 서로 기대어 앉아 있다.

신경숙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러했을 것처럼 부드럽고 영리한 시선으로, 담벼락 아래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고, 소곤소곤 얘기해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말이다.

가족에게도 한 발짝 먼저 다가가 한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나로 변신시켜주는 마법의 가루가 달빛 속에서 흘러나오기나 한 듯이 말이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했다.

마음 먹은 대로, 글을 쓰고 그 글의 의도대로 이루어졌으니...작가님. 마음 놓으세요.

 

내 마음대로 오독(誤讀)하는 즐거움.

오독오독 씹을수록 입 안에 고소함이 퍼지는 누룽지를 먹는 맛이다. 글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일을 평론가에게 맡기자 책읽기의 재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오독하리라! 그리고 다시 또 오독하리라! 책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작가가, 평론가가 나를 위에서 두 눈을 치뜨고 내려다보아도 사적인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련다.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고 싶을 때 김영하. 미치도록 웃고플 때, 삶의 진실을 울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을 때 성석제. 나는 누구인가, 제대로 살고 있나가 궁금해질 때, 라면의 참맛이 궁금해질 때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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