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가족의 꽃무늬는 내가 만드는 것.[가족의 두 얼굴]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 얇은 옷깃에 스며드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서서히 식어가는 손과 발과 볼을 녹이려고 생명과도 같은 성냥을 그어대며 그 속에서 따스한 환영을 보려 했던 아이.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줄 알면서도 그 불꽃 속에서 어른거리는 털외투와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에 한없이 매료되었던 아이였다. 언제까지고 소녀의 편이었고 한없이 넓은 품으로 폭 싸안아주었을 소녀의 어머니...또한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소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온기가 그리워 자꾸만 성냥을 긋고, 긋고, 그었었다.

 

성냥을 팔러 돌아다니는 동안 지나쳤던 수많은 집들의 창으로 보이는 모습들-온기가 피어오르는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바알갛게 달아오른 두 뺨을 부모의 무릎에 부벼 대는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소녀는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가 지친 몸을 의지하려 잠시 기대어 앉아 있던 그 집의 담벼락은 가족이 아닌 소녀에게는 냉랭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소녀는 얼마나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을까. “나의 가족은 어디에...”

소녀의 쓸쓸한 목소리는 휘잉 휭~하는 바람소리에 묻혀 공허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소녀가 기댄 담을 경계로 확실히 나뉜 삶.

내 가족과 남 사이에는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경계가 그어져 있다.

 

그렇지만, 정작 한 가족 안에도 경계가 있고 두 얼굴이 있다면?

이유 없이 슬퍼지고 외로워지는 때, 평범한 어느 날의 한 장면 속에서 문득 남편이 나의 아버지와 닮아 있다는 걸 느낄 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감정이 폭발할 때...

그럴 때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성냥팔이 소녀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온전하고 따뜻하며 행복의 장일 것 같았던 가족이 낯설게 느껴질 때, 섬에 홀로 고립된 듯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사랑하는 가족이 내게 아픔을 주다니...

 

수많은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나날들이 모여서 가족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무늬를 자랑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무늬는 날씨의 변덕에 따라 해가 나면 빛이 나는 광택을 선보이고, 구름이 가리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거무튀튀한 색조를 드러낸다. 그나마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명한 모양이 두드러져서 볼 만하지만 세월이 가면 빛이 바래고 얼룩덜룩한 얼룩이 생겨 세월의 흔적이랄지, 손때 랄지가 묻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명이 다한 가족은 새 가족을 만들며 새 가족에게 그 무늬를 전수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역사란 가족의 역사이고, 나는 가족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이다. 내가 가족에 대해 느끼는 불합리하달 수 있는 상처들은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트라우마.

 

혼자였었기에 외로웠던 건 외로움도 아니었었지. 너와 있어도 홀로인 듯한 그건 외로움을 넘어서는 절망.

 

유행가의 가사 한 줄이 무던히도 나를 울린다.

마음의 상처는 비누로 한 번에 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 그 끝을 알고도 모를 심연의 바닥에 새겨져서 유행가 가사 한 줄에도 쉽게 떠올랐다가 좀 토닥토닥해주면 다시 가라앚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이 책 <가족의 두 얼굴>을 읽기 시작했다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라기에.

그러나 확실한 해답은 나와 있지 않았다.

 

치유라는 말은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날의 상처는 깨끗하게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날의 상처로 더 이상 현재의 내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마음의 짐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가족’에 대한 갈등을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에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밝은 얼굴 뒤의 숨겨진 얼굴들을 살피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 보고 내가 가진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나가야 하는가를 배워나가면서 묵은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

 

 과거의 유약했던 나를 기억하고 한 번씩 불쑥불쑥 떠오르고야 마는 고약한 엄마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달라져야만 한다. 손수건을 건네던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상처로 인해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이렇게 떡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고 불쌍한, 상처입은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내 가족의 무늬를 선명하게 직조하며 꽃을 피워야 한다. 경계에 서서 불안에 떠는 아이는 꽃을 보면 안심할 것이다. 한결 평온해진 마음으로 꽃을 피워 올리도록 단단한 다짐을 해야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부러워하던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성냥팔이 소녀를 초대할 것이다.

김이 나고 밥이 익어가는 냄새에 매혹당한 소녀는 간장과 바스락거리는 김의 만찬이라도 웃으며 참여할 것이다. 가족의 두 얼굴에 상처받은 나는 더 이상 없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어른’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므로. 불행하게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마저도 감싸 안을 만큼 마음자리가 넓어지고 있는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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