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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하다.

나들이 하기 딱 좋은 날씨다. 규원이와 손을 잡고 지하철 역까지 걸었다. 맘이 설레고 기분이 좋은지 규원이는 연신 조잘조잘이다.

“엄마, 엄마. 내가 얘기 하나 해 줄까?” 전에 없이 이야기도 지어 주려나 보다. “응. 해 봐.”

 “있잖아. 한 유령이 살았어. 그런데 유령은 아주 더러웠어. 어느 무시무시한 집에 유령이 들어갔거든. 사람을 잡아 먹었어. 그리고 깨끗이 씻었어. 끝.”

줄거리가 간단 명료한 것이. 무슨 이야기를 흉내낸 이야기도 아니고, 독창성은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끝나고 너무 짧다는거.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 이후로도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 몇 개나 지어냈지만, 거짓말해서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가 등장한 것 외에는 더러운 것이 깨끗해졌다는 얘기의 반복이다. 그래도 규원이의 이야기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역에 닿아서 부산 시민회관으로 고고.

성철스님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갔다가 후기를 썼더니, 성철스님 테디 베어(누더기 두루마기 의상을 입은 곰)를 준대서 받으러 가는 길이다.

사실은 김*아 라는 이름이 3등,탈모 시술권 10만원권에 당첨이 되었다. 그런데 왜 테디베어냐? 1등 국내 왕복 항공권부터 3등까지 상품이 나뉘고 나머지는 모두 묶여 테디베어에 당첨되게 되어 있었다. 1등 5명, 2등 3명, 3등 5명, 4등 100명이니 말이다. 사실, 100명 넘게까지 후기를 남기진 않았단 말씀. 1등이 아니면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 선물들 뿐이지만 테디베어는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해서 후기를 남겼었다. 그런데 내가 후기를 쓰려는데, 이미 김*아 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글을 올려 놓았더라. 그래도 실명을 써야지, 하면서 내 이름 그대로 썼더니, 3등에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2명이면 하나는 3등, 나머지 하나는 다른 곳에 이름이 있어야 할 터였는데, 이름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테디 베어에라도 이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말이다. 그것은 주최측에서 김*아를 한 명으로 알고 3등에 당첨시켜 준 것이 아니냐 말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 봤더니, 역시나 그들은 2명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잠시 확인하는 것 같더니, 날짜상으로 앞의 글, 내가 쓴 글이 아닌, 다른 김*아의 글이 3등이었다. 그러더니, “테디베어 받으러 오세요.”했다. 연락처 남기는 것도 없이, 로그인도 없이 덩그러니 이름만 남기고 후기 쓰는 이벤트여서 본인 확인 절차가 따로 없다. 받으러 갈 때, 신분증 지참이 다다. 내가 그냥, 신분증 가지고 가서 3등 경품을 꿀꺽 했으면 어쩔 뻔했냐. 그러나 내가 가져봤자 휴지 조각 신세일 것 같아서, 나는 자진 신고하고, 테디 베어를 받아왔다. 동명이인의 그늘에 가려 정당하게 순위경쟁도 못해 본 내 신세. 두 명의 이름을 하나로 보아 3등을 준 것이면, 난, 테디베어 2개 요구할 권리 정도는 있을 테지. 그래서 테디 베어 2개를 받아왔다. ^^

예상대로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스님의 누더기 두루마기 입은 테디베어를 보고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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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서 영원으로 - 불필스님 회고록
불필 지음 / 김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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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필스님의 회고록이다. 올해는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딸이지만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다던 불필스님이 여러 차례 거절 끝에 정진수행 해온 바를 여러 대중들과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1937년 생이니, 불필스님 나이도 적지 않다. 올해로 일흔 일곱 되시는가. 희수로구나. (희수(喜壽): 77 - '희(喜)'자를 '칠'로도 썼기 때문에 喜壽는 77세)

불필 스님이 불필이라는 이름을 받고 “하필(何必) 왜 불필(不必)입니까?”하자, 큰스님께서는 “하필을 알면 불필의 뜻을 안다.”고 하셨다.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인가, 불필스님은 법명을 ‘아주 바보 등신처럼 공부만 하라’는 뜻으로 새기면서 살아오셨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애들은 봄방학을 맞았다. 그래서 주말에 뮤지컬 공연을 보여주려고 부산시민회관을 찾았더랬다. 그런데 소극장의 1,2층 한슬 갤러리에서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무교인지라 기독교니, 불교의 행사에 무관심하게 살아왔는데, 마침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책을 읽는 도중 만나게 된 성철스님인지라 퍼뜩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불필스님의 목소리로 성철큰스님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여 그 향기를 맡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런 기회를 맞닥뜨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도 다 인연의 힘이려니...(불교신자인 양^^)하며 전시회장 문을 밀고 들어섰다. 갤러리 전시 모습을 잠시 소개한다.

1층의 입구에 나를 마중하듯 정중하게 걸려 있는 스님의 누더기 두루마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말 그대로 누덕 누덕 기운 흔적이 역력하다. 두루마기 밑에는 검정 고무신. 이것 역시도 고무에 덧대어 뒤축을 댄 것이 보인다. 하다 못해 덧신과 양말마저도...

 

 

 

<성철스님 오도송>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희구름 속에 섰네

      성철스님 오도송-1940년

 이 날, 산도 울고 물도 울었다는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 장면이다.

 

 

 

 

 

다비 후에 남은 스님의 사리. 아이들에게 사리에 대해 설명해 주자, 아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다. ‘진짜 저 스님 몸에서 나온 거야? 사람 몸에서 나온 거 맞아?’하는 듯이.

 

 

전시회장 한 구석에는 <금상산 마하연> 이야기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불필스님 회고록에도 나오는 이야기인 터라 반가웠다. 아! 유명한 일화였구나-.

할머니는 때로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계절 따라 음식과 의복을 준비해서 큰스님이 공부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큰스님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다. 한 번은 천 리 길을 물어물어 금강산 마하연까지 찾아갔는데 “이렇게 먼 길을 왜 오셨소!”하니, 할머니께서는 “아니, 난 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하도 금강산이 좋다고 해서 금강산 구경하러 왔제!”할머니로 인해 선방 전체 회의가 열렸고 다음 날부터 큰스님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할머니를 모셨다. “아들 등에 업히기도 하고 떠밀리기도 하고 험한 곳에서는 손과팔을 잡혀 이끌리기도 하믄서 보낸 일주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는기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제. 하도 좋아서 극락 세계가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했는기라.”

만폭동, 보덕암, 묘길상, 장안사, 삼불암, 표훈사, 정양사 등의 내금강과 신계사, 옥류동, 법기암,구룡폭포, 상팔담, 만물상 등의 외금강까지...고집스럽게 혈육을 멀리했던 출가한 아들과 잠시라도 함께할 수 있었던 어머니.

짧은 애니메이션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구구절절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일제 강점기에 금강산 마하연에서 맞닥뜨린 출가승과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는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출가를 꿈꾸었던 언니, 평생 화두를 여의지 않은 채 불교에 귀의하여 임종을 앞두고 삭발한 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완고한 유학자였으나 돌아가실 때는 “이놈들아, 나는 성철스님에게로 간다”고 말씀하시면서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 오십 대 중반에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어머니. 이러니 ‘우리 집안은 전부 전생의 스님들이온 것 같다.는 내 생각을 누가 틀리다고 하겠는가. -85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서 막내 손녀로 애지중지 키워진 ‘아만이 센’ 불필스님. 천진무구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 갑작스럽게 언니의 죽음을 맞았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다가 진주 사범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천제굴로 아버지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천제는 ‘부처조차 될 수 없는 존재’, ‘불성을 갖지 못한 존재’라는 뜻으로 ,부처조차 될 수없는 천한 사람이되어야 도를 닦을 수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그래,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문답에서 일시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출가 이후 자유로운 운수납자(雲水衲子)로 해인사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등 제반 선원을 다니며 공부했고 1993년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석남사 심검당에서수행 정진하고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책에는 참선, 발우공양, 하근기, 도반, 하안거, 동안거 등 알아볼 수 있는 말도 있는 반면에 중근기, 상근기, 시봉, 상좌, 법전수좌, 가피, 회향, 장좌불와, 능엄주, 대참회, 용맹정진 등 불가에서만 쓰는 말들도 있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불자의 삶은 이만치도 일상인과 동떨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출가하여 공부를 업으로 삼고 이 절에서 저 절로 다니며 “만고의 진리를 향해 나홀로 걸어가노라!”하시며 살아 오신 불필스님.

나로서는 그 삶이 언뜻 짐작하기에도 어려웠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요즘 생각 같아서는 진주 사범 학교 졸업하면 선생님이 되어서 별 걱정없이 살 수 있지 않나?

여자로서 최고의 직장, 최고의 신붓감이라 할 정도로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대우받을 것이고, 결혼도 무난하게 하여 재미있는 삶을 꾸려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어린 나이에 평생을 지고 갈 화두를 얻었고, 한 순간의 후회도 없이 용맹정진하며 한 길로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성철스님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에잇. 머리 깎고 중이나 되지. 이 더러운 세상. 왜 여기서 안달복달 하면서 사나.”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중노릇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평생을 바쳐 전심전력 해야 겨우 법문의 한 귀퉁이에 겨우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큰스님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장좌불와 수행을 할 때도 머리에 열이 솟구쳐 상기가 날 정도가 되어야 겨우, ‘조금 노력했구나.’ 소리를 듣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의 참선을 통해 수행을 이어나가는 불필스님의 수행과정과 가지산 호랑이라 불렸다는 스승 인홍스님의 이야기, 대중들을 감화싴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를 읽고 나면 “중이나 되지”라는 말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가고 말 것이다.

나는 그저 드라마나 보면서 가끔 인생사의 도를 깨우치는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하고 마음을 비우게 된다.

일례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내 딸 서영이>를 들어보자.

서영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살아 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이고 재벌가에 시집을 간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보다 미움이 더 컸던 것이다. 사업 실패로 엄마와 가족을 버리고 혼자만 살 길을 찾아 꼭꼭 숨어 나타나지 않았던 아빠로 인해 엄마는 돌아가시고 서영이와 동생 상우는 고생을 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과 성공을 손에 쥐었지만, 모든 게 다 들통나고 마음을 비우게 된 서영이는 아버지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싹트는데, 그 때 회상하는 장면이란, 어린시절 아버지와 등산 갔던 일, 초콜릿을 챙겨주던 아버지, 보물찾기로 지구력을 길러주려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좋은 일만 생각하면 좋은 쪽으로 일이 풀리고, 나쁜 일만 생각하면 나쁜 쪽으로 일이 풀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생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마음 내려놓기와 통하는 맥락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불가의 비의를 전수받은 듯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다고 자위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앞 부분에 성철스님이 두 번째로 딸을 만난 자리에서 거두절미하고 물으신 것.

“그래,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

불필 스님은 단번에 “행복을 위해 삽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직 그 대답을 찾지도 못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당장에 내놓을 대답이 없는 것이다.

말문이 막혀 묵묵부답이겠지.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나만의 화두를 심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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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메시지

 

나는 글쓰기로 힐링한다.

 

 

이유는? 게을러지기 쉬운 나이기에 매일 일기를 쓰면서, 책 읽고 리뷰도 쓰면서, 나의 내면을 지그시 응시하기 위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메시지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3가지로 요약한다.

 

1. 나의 아이들-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는 존재들

 

2. 고전 읽기-그 중에서 박지원의 글을 골라 보았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딱 걸린 삐딱 남아, 중국 기행문<열하일기>로 당대의 인기를 한몸에 끌었던 박지원

그도 글쓰기를 통해 힐링을 했을까?

그의 누이가 향년 43세에 세상을 등졌을 때, 나루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지었던 묘비명의 구절이다.

무뚝뚝할 것 같은 조선 선비의 속내가 절절이 드러난다. 자, 보시라.

 

嗟乎。姊氏新嫁。曉粧如昨日。余時方八歲。嬌臥馬效婿語。口吃鄭重姊氏羞。墮梳觸額。余怒啼。以墨和粉。以唾漫鏡。姊氏出玉鴨金蜂。賂我止啼。至今二十八年矣。立馬江上。遙見丹旐。翩然檣影。逶迤至岸。轉樹隱不可復見。而江上遙山。黛綠如鬟。江光如鏡。曉月如眉。泣念墮梳。獨幼時事。歷歷又多。歡樂歲月長中間。常苦離患憂貧困。忽忽如夢中。爲兄弟之日。又何甚促也。

去者丁寧留後期。猶令送者淚沾衣。扁舟從此何時返。送者徒然岸上歸。

 

아, 슬프다!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응석스럽게 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을 내어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댔다. 누님은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랬었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구나!

강가에 말을 멈추어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 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는데,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니, 유독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 뿐더러 또한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노상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으니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촉박했던고!

 

떠나는 자 정녕히 다시 온다 다짐해도 / 去者丁寧留後期

보내는 자 눈물로 여전히 옷을 적실 텐데 / 猶令送者淚沾衣

조각배 이제 가면 어느제 돌아오나 / 扁舟從此何時返

보내는 자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 送者徒然岸上歸

 

극에 달하면 통한다고 했다. 그의 슬픔이 극에 달하여 글로 풀어낸 이 묘비명이 그의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을까..

 

3.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뭘 써?” 쇼타가 물었다.

“그러니까, 답장 말이야. 이대로는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바보냐, 너?” 아쓰야가 말했다. “그런 게 마음에 걸려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31-32)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158-159)

 

세 가지를 꼽고 나니, 노래 한 구절이 입에서 맴돈다.‘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데, 내게 기쁨을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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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2-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 자체로 감동이네요 ㅎㅎ
힐링이 뭐 따로 있나요 ㅎㅎ 내게 소중한 '그대' 가 있는데 ^^
책과 아이와 글쓰기 , 아름다운 삶 이어가세요 ^^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특별전

-부산 시민회관 한슬갤러리 1,2층

 

 

 누더기 두루마기가 나를 마중 나와 있습니다.

환한 웃음 띄며 "어서 오너라."하시는 성철 스님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려 집니다.

 

 

 

 

 

 

 

 수행이란...

 

 

 

 

 

 

 

 

 

 

 

 

 

 

 

 

 

큰스님이시니 이런 영롱한 사리가 나왔지. 나는 죽고 나면 한 줌 사리로조차도 남지 못하는 미천한 몸.  

 

 

 

 

 

 

 

<열반의 종소리>

가야산 단풍이 빨갛게 타오르던 1993년 늦가을 창밖에 환해질 무렵이었다. 큰스님께서 해인사 퇴설당에서 11월 4일(음력 9월 19일) 열반에 드셨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참선 잘 하그래이"하시고는 앞의 열반송을 남기셨다

 

<영원에서 영원으로>불필스님 회고록-363P.

 

 

 

오욕과 칠정에 사로잡혀 내가 내 속을 팔팔 끓이고 있을 때---

 한줄기 청량한 소나기, 산사의 고요함을 내리치는 죽비소리 처럼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열반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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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는 법 - 인간의 모든 가능성에 답하는 과학의 핵심 개념 35가지 사이언스 씽킹 3
알록 자 지음, 이충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도 재밌고, 저자의 이름-알록 자-마저도 재미있다.

 

모두 35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는 법’으로 제목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에 3장<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장이 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또는 상실의 시대)을 읽다가, 거기 나왔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찾아 읽는다. 읽다보니, 소세키에 관심이 생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을 연속해서 읽는 식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이 책의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장을 보니,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이 기억났다. 화려한 그림에 아이들과 푹 빠져 들었었다.

 

***피터는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과 영원히 사는 아이의 존재를 찾다가 드디어 다락방의 컴컴한 책장 위에서 마침내 책을 찾아내지만, '어리면서 늙고, 열 살쯤이며 동시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영원한 아이'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며 그 책을 읽지 말라고 충고한다. 피터는 오래 생각한 끝에 그 말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영원한 아이는 너는 네 나이 적 나보다 현명하다면서 피터를 다시 '세상'으로 안내한다. ***

 

 

역시, 과학과 문학은 영역이 다른가 보다.

환타지의 세계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와 보니, 과학의 영역에서는 오래 사는 비결을 척척 가르쳐 준다.

 

1. 음식 섭취량을 줄인다.

2. 효모 실험-두 유전자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효모 세포를 정상적인 효모 세포보다 6배나 오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효모보다 훨씬 복잡한 생물이라는 거--

3. 손상을 복구하는 유전자 치료

4. 사람의 몸에 특별한 세균을 집어넣어 노폐물과 자유 라디칼을 제거하는 방법

5.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유지하라.(채소섭취, 금연, 젊을 때 운동)

 

 

5번이 제일 쉬울 거라는 거, 설명 안 해도 다 알 것이다.

 

 

진짜 과학이 어떤 건지, 재미를 느끼면서 빠져 든 적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과학에 대한 시각을 바꿔서 좀 더 흥미있는 과목임을 일찍 깨닫고 과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생각만(?) 해 본다. 문과 체질임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요즘은 과학자가 꿈이라는 어린이들이 많이 없다. 부모들의 일방적인 꿈 강요에 의사니, 판사 검사니, 교사 등등. 틀에 박힌 직업군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고, 창의적인 아이들은 괴짜 취급을 받는 세상인 것이다.

좀 더 과거이긴 하지만,  하다못해 이 시대의 소설 작가, 김영하도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하다가 “너는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는 거야. 인마”하는 핀잔 듣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학교 과학 시간에 간단한 실험 몇 번 하고, 이쯤 했으니 원리는 알아서 터득해라. 하는 한심한 교사들 때문에 과학에 흥미를 잃은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투명인간이 되는 법, 외계인을 찾는 법, 사이보그가 되는 법, 쌍둥이 형제보다 천천히 늙는 법 등 기상천외하고 재기발랄한 제목들을 보면 일단 흥미가 솟구칠 것이다. 어른인 나도 재미있었으니까.

그리고 찬찬히 글을 읽어 나가면, 우주, 공룡, 기후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의 분야에 풍덩 빠져들게 될 것이다.

 

 

어느 학생이 폴로 민트를 깨면 파란색 빛이 희미하게 난다고 말하면, 선생님은 우리를 사진반의 암실로 데려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그날 우리는 폴로 민트의 비밀을 입증하진 못했지만, 그 사건은 기묘한 질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6P.

 

위 글에서처럼 과학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하는 과학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면, 이 책을 만나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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