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한 생활철학 [오늘도 비움]
슬쩍 지나가는 눈길로 표지를 훑었을 땐, 저 갈색의 일렬로 서 있는 것이 무엇일까, 했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도 저렇게 일자로 날지는 않을 텐데...
자세히 보니 옷걸이다.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은 옷걸이.
우리 집에도 많이 걸려 있지만 세탁소에서 옷을 맡기고 함께 받게 되는 하얀 철제 옷걸이도 아니고
옷을 사면 하나씩 따라 오는 어깨 부분 두툼한 플라스틱 옷걸이도 아니어서
눈에 익히는 데 한참 걸렸던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읽어나가자 드디어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딱 50개로 한정된 원목 옷걸이.
저자는 이 개수에 맞게 옷을 걸어 놓고 나머지는 더이상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패션에서 시작해 생활에 관한 여러 주제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리빙센스> 에디터로 활동한 이 치고는 꽤 소박하면서도 취향과
안목이 높은 선택이다 싶었다.
역시, 그녀는 과거에 패션에 심취했던 20대를 거치는 동안 쇼퍼홀릭이자 워커홀릭으로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쇼퍼홀릭 라이프를 청산하고 미니멀 라이프에 입문한 지 4년차.
실제 경험이 녹아 들어 있는 산뜻한 문체의 글을 읽으며 절로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4인 가족이 살고 있는 번잡한 우리 집의 분위기와는 꽤 상반된 삶이지만
(즉,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뭐든지 줄여나가는 게 힘들다는 뜻이다.)
그녀의 생활철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원목 옷걸이 50개로 대변되는 그녀의 미니멀 라이프.
고급 부티크에 걸려 있는 옷처럼 보이게 만드는 부티나는 원목 옷걸이에 맞춰 옷을 정리하려고 마음 먹자 후줄근한 옷들이 쉽게 버려졌다고
한다.
고가의 옷은 지인 중심으로 나눠 주고 피도 눈물도 없이 불필요한 옷을 버린 뒤 남은 것은 결국 유행과 무관한 것들.
편안한 팬츠에 면티 또는 셔츠를 받쳐 입고 실크 스카프로 포인트를 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다니냐며
물었다지만,
자신은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 것 같아서 칭찬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결국,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라이프에 맞춰 나만의 스타일을 갖춰 가면 그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남들 하니까 유행 타는 옷차림을 하기 위해 쇼핑을 하고 또 한다든지
이거 하나쯤은 있어야 기죽지 않으니까 명품백을 사야 한다든지
손님 왔을 때 내놓을 번듯한 그릇 정도는 갖춰야 하니까 또 그릇들을 사서 넣어두게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결국은 나의 만족이 아닌 남들 시선 탓이라는 걸 인정하면
진짜 나만의 길이 보일 것이다.
책의 내용 중 이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
"생활철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선택이 필요한 순간 기준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다면 늘 유행에 휩쓸려 나의 고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어색한 타인의 모습을 하고 있게 된다."
에코백을 애용하고 하이힐에서 내려왔으며 '노 브라'로 사는 것을 당당하고 거침 없이 말하고 다니는 사람.
심플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소식 대신 느리게 먹으며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
역시 저자는 자신만이 생활철학에 의거해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아직도 책장 가득 책을 채워 넣은 채 살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자주 솎아 내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몇 몇 부분에서는 작가의 미니멀
라이프나 심플한 생활철학과 맞닿는 습관을 나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이 보인다.
아마 아이들이 다 크고 나와 남편 둘만 남게 되면 본격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먹다 보니 뭐든지 조금씩 놓아 버리고 살고 싶어지니까 말이다.
사진도 되도록이면 많이 찍지 않고 추억들을 소유하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말은,
음...그러니까 기억 하나에 의지하는 것이 아직은 버거운 나에게 큰도전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세세하게 다 따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움의 철학, 자신만의 생활철학을 확고히 하면 자연 내 주변의 삶도 정리가 되어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특히 물건은 비우고 취향은 채운다, 는 방식이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