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

무슨 주술과도 같은 제목의 [아레오파기티카]는 [실락원]으로 유명한 존 밀턴의 저서다.
아직 [실락원]도 읽어보지 못한 처지이지만 문학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밀턴의 [실락원] 만큼 문학적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는 책인가 싶지만
부제로 '언론자유의 경전'이라 붙어 있어 문학적 저서는 아닌 것을 알겠다.
일단 '전면개정판'을 내면서 쓴 옮긴이의 각오를 읽어 보니, 그가 이 책에 들인 공이 어마어마함을 짐작할 수 있다. 1999년 솔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완전히 새로 고쳐 썼다 한다.

책은 그다지 두꺼운 편은 아니지만 절반은 원전이고 절반은 번역하면서 옮긴이가 연구, 고찰한 부분이다.
원전의 경우에도 원전보다 주석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원전 보랴 주석 보랴 눈이 바빴다.
그만큼 옮긴이의 수고로움도 컸다 하겠다.
옮긴이에 따르면 '아레오파기티카'란, 그리스어로 전쟁의 신 '아레이오스'와 언덕이란 뜻의 '파고스'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아테네의 변론가인 이소크라테스의 일곱 번째 연설 <아레오파고스 연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아레오파기티카]에서 밀턴은
'잉글랜드의 아레오파고스'인 의회를 상대로 연설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구두가 아닌, 읽혀질 것을 전제로 한 점, 일개 시민의 자격으로 공적인 기구에 대해 정책의 시정을 촉구한 점 등에서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과
유사하나 목적에서는 다르다.
그렇다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언론 자유의 경전, 또는 표현 자유의 "마그나 카르타"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밀턴이 1643년 의회가 공포한 출판 허가법을 철회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회의 출판 허가법은 이른바 출판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령이며 "향후 어떤 서적이나 팸플릿이나 논고일지라도 임명된 검열관들 또는
검열관들 중 적어도 한 명에 의해 사전 승인 및 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 출판을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밀턴은 언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단호하고도 논증적인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검열제의 기원에서부터 선과 악의 지식, 검열제의 비효율성, 검열제의 해악을 따져 묻고 시대적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잉글랜드인의
위대성을 부각시킨 후 관용이 가치, 관용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논지를 맺는다.
가히 흐르는 물처럼 도도하게 막힘없이 이어지는 그의 글은 지금에 와서 읽어보아도 대단한 명문장이다.
현재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 시대의 잉글랜드에 살지 않는 한, 주석이 없이는 한 문장도 제대로 술술 읽혀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나마 옮긴이의 주석이 빛을 발해 당시의 시대상, 사회상을 짚어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몇 장도 채 읽지 못하고 길고 긴 문장과 언뜻 와닿지 않는 비유 때문에 책을 홱 덮어버릴 뻔 했다.
온갖 책들을 읽고 온갖 논거를 귀담아 듣는 것 이상으로 안전하게 그리고 위험이 적게 죄악과 거짓의 나라를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이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데서 얻는 유익이라 하겠습니다.-71
우리가 바보같이 안이하게 지식 탐구를 중지하면 국민 사이에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고야 맙니다. 이런 식의 복종적 만장일치는
얼마나 바람직하고 좋은 것입니까! 의심할 나위 없이 정월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견고하고 단단한 얼음덩어리입니다.
그 결과는 성직자들 자신에게도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풍족한 성직록을 받으며 자신의 헤라클레스 기둥 안에 안주하는 편협한 교구 성직자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21
자신의 의지를 관철함에 있어 송곳같이 날카롭게 찌르는 비판, 풍자도 서슴지 않았다. [민수기]24장 5절에 나오는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를 패러디한 반어법을 적절하게 쓰면서 글쓰기를 한다.
출판 허가법을 철회하고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밀턴은 이 책을 저술했다.
[아레오파기티카]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구절은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라는 말이라고 한다.
17세기 밀턴의 말을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자유주의자라 말하는 것은 그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옮긴이의 연구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차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밀턴의 시대와는 다른 지금에 요구되는, 진정한 언론 자유란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며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