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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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여자의 독서]

 

지금껏 책을 읽어오면서 '여자의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책을 골라 읽느냐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는다'에 초점을 두어 온 것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지 5년차 되었나~
스스로 생각해도 '잡식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책읽기를 해왔다.

지나간 기록을 살펴보면 굳이 카테고리에 넣어서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중구난방으로 읽고 써 온 것이다.

[여자의 독서]를 읽고 나서, 이제까지의 내 책 읽기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읽고 쓴 것까지는 좋은데 그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기본적인 반성에서부터, 도저히 '취향'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닥치는대로 읽기'가 남긴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목적 없는 독서의 초라함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여자의 독서]는 여자가 쓴, 여자를 위한, 여성 작가의 책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목차를 훑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거릿 미첼,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콰이어트 수잔 케인,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등등

모두 8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여성 작가의 책을 리뷰했다.

주제는 각기 8개의 코드를 담고 있다.

자존감, 삶과 꿈, 여성, 연대감, 긍지, 용기, 여신, 양성성.

 

저자 김진애는 800명 동기 중 유일한 여학생으로 서울대 공대의 '전설'로 통했던 이라 한다. 도시건축가,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자유인으로 돌아와 공부와 저술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삶이 길러낸 독특한 시선으로 책읽기를 하면서 써모은 '리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도 강한 어조로 내 목소리를 싣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 속 리뷰들에는 한결같이 저돌적이고 씩씩하며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 가득하다.

살아온 날들의 이력이 고스란히 글에 녹아나는 느낌이다.

1남 6녀의 딸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건축, 도시 분야에서 일하면서 남성성이라는 옷을 입었던 저자는 '자매애'와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렸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선입견은 그렇게 심하고, 틀렸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딸들이건 사회적 자매들이건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그 무엇을 할 용기를, 스스로 변화할 용기를, 그 무엇을 바꾸겠다고 나설 용기를 찾기 바란다...

우리 속에 있는 그 겁남, 그 분노, 그 두려움, 그 불안, 그 상처를 마주하고 딛고 이겨내며 새로워져보자.

우리 안에 있는 바람과 희망을 길어 올리고, 내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꼭 이루어낼 꿈을 꾸자.

그렇게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이 시간, 이 공간에 있는 존재의 뜻을 찾아내보자. '여자의 독서'를 통해서!-21

 

저자는 남성 작가의 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데 매혹되었다고 한다. 박경리, 한나 아렌트, 버지니아 울프, 제인 제이콥스, 정유정 등등...

여성의 시각과 감성, 여성의 현실과 이상, 여성의 심리와 행동, 여성의 상처와 고통, 여성의 불안과 꿈, 여성의 희망과 절망, 여성의 실패와 성공, 여성의 삶과 꿈을 섬세하게 다루는 여성 작가들의 책을 어찌 읽지 않겠느냐며...

 

여성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책에 들어갔다 나올 줄 안다며 여자의 독서는 특별하다는 말이

찌르르 울린다.

[여자의 독서]에 나오는 책을 찾아 읽는다고 내가 저자처럼 하루아침에 목소리를 드높이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이 많은 여성 작가의 책을 읽고 당당하게 용기를 내라고 독려하는 '잔다르크'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나는  그저 약간의 자극을 받았을 뿐이다.

내가 책을 읽고 '아하'하는 순간이 어느 지점이었던가를 먼저 찾아봐야겠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필이 꽂히는 '카테고리'를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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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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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보다 더 어두운 건...[개들이 식사할 시간]

 

 

 

선입견을 안고 작품을 읽어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책을 읽었다.

알고 있는 건, 작가의 전작 작품 제목이 [하품은 맛있다], [신문물검역소] 라는 것 뿐.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모두 9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 단편집인데 첫 번째 작품이 표제작이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장갑 아저씨, 라는 인물이 나온다. 장갑이라는 이름이 직업과의 연관성- 조만간 알게 되는데 그는, 과거  살인 전과자였고 지금은 불가촉천민 개도살자이다-에 힘입은 것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진짜 이름이 '장갑' 이었다. 이름 한 번 묘하게 잘 갖다 붙였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 후에도 나오는 단편들에서 주인공의 이름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유들유들하면서도 넉살좋게 의붓아들을 '우리 아드님'이라 부르는 장갑 아저씨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밝은 대낮에 읽기엔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음습했다.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아들은 어찌하여 지금 현재, 장갑 아저씨에게 '병신'이라 놀림받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가 재혼한 것도 놀라운데, 그 대상이 수십년 간 삼촌 숙모라 부르던 이웃지간 장갑 아저씨이며 어머니는 치매를 앓았다는 것까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칼을 갈고 도사견을 무정하게 해체하는 장갑 아저씨가 입밖으로 뱉어내는 말은 살 떨리는 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후 네 시, 개들도 배가 고플 시간이라며 은근하게 깔아놓는 한 마디가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한다.

 

 

어둠보다 내가 더 검었으므로 나는 두려울 것이 별로 없었다.-41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놈은 싫고, 개이면 개같이 굴어야 하는 법이라며 직설적으로 소통하는 장갑 아저씨와 그 아저씨 앞에서는 그저 개밥 정도의 위상 밖에 얻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속시원히 하겠다, 라고 마음 먹은 듯,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거칠 것이 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이 세상 이치를 다 까발려버리겠다~~

꽤나 강심장이 아니면 쉽게 엮으려들지 않을 법한 잔혹한 묘사 장면에 꽤나 아연실색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지를 접하는 것이려니, 하며 다음 단편을 기대하게 된다.

 

 

<눈물>

30년 전 대기업 방수공장이 들어선 이래, 불상리라는 마을은 '불쌍리'로 통용된다. 방수공장에서 흘러나온 독극물 때문에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암, 심근경색, 뇌졸중 등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그 사실을 눈감아 준다. 마을의 유일한 처녀였던 향순도 한량처럼 살다가 원치 않는 아이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가 세눈박이 딸이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은 진주와 흡사한 보석이어서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다. 우르르 합심하여 보상금을 받았을 때처럼,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눈물을 팔면 얻게 되는 용돈 한두푼 때문에 외지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눈물이 돈이 되는 것이었기에, 아이는 툭하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누군가 달려들어 몸을 꼬집거나 매운 돌팔매질을 했고, 뜨거운 물을 퍼붓거나 불에 달군 부지깽이를 들이댔다. 그 뿐인가? 생니도 집게로 부러뜨려버리는 것을...

 

방수공장 회장이 구속되자 마을에 기자와 공무원, 경찰들이 득시글거리자 특히 입단속을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의 존재가 기자에게 드러나 버렸다.

기자는 소녀를 구출해 도시로 데려가지만 그것은 또다른 불행의 시작.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예전부터 돌고돌았던 구전동화에서처럼 입에서 보석이 튀어나오는 소녀는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식의 해피엔드는 없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단편들 또한 쉽게 드러내서 까발리기 어려운 종류의 비밀과 세상의 비정함이 팔할 이상은 차지하는 이야기들이다.

<핑거 스미스> 류의 퀴어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 청소년, 성인 불구하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성매매 문제 등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되도록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읽을수록 입맛이 쓰다.

이렇게 밖으로 보이게 끌어올려 줄 터이니 좀 움직여보는 건 어때? 하는 듯이

독자를 도발한다.

그저 발끈하고 말 것인가, 목소리를 내어 용기있게 말하기 시작할 것인가.

알고 보면 이 사회에 건드리지 않고 묻어두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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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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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뱀파이어가 아니라 스파이다! [케미스트]

 

 

 

#시크릿 #에이전트 #스릴러#트와일라잇#스테프니메이어#다시로맨스 #북폴리오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접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새로운 이야기의 등장을 반가워할 것이다.

뱀파이어 종족과 늑대인간 종족 이야기로 판타지의 신기원을 열었기에 그녀의 스토리텔링을 의심할 이 없을 것은 명백하다.

이번에도 역시 이야기 전체에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뱀파이어의 오싹함과는 차원이 다른 서늘하고도 뜨거운 피라는 점이 다르다.

줄리아나라는

실제 이름을 숨기고 케이시 혹은 알렉스 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예전에는 소속된 에이전트가 있어 훌륭한 케미스트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소중한 동료를 잃은 채 도망다니는 신세다.

임시 거주지를 찾아 옮겨 다니며 가짜 신분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외 그녀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다양한 화학 약품과 실험 장비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녀는 심문 전문가. 일명 '케미스트'였다.

 

케미스트는 기계다. 냉혹하고 끈질긴 괴물이 이제 풀려났다. -107

 

그녀는 CIA를 비롯한 다른 조직들의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3년 전, 누군가 그녀가 속한 부서의 두 가지 자산을 제거하기로 했다. 바로 그녀와 그녀의 멘토 조지프 바나비 박사.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바나비 박사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도망자 신세로 숨어 지냈는데, 그들은 그녀를 네 번 찾아냈고 세 번 죽이려 했다.

 

 

 

그녀는 자는 동안 전기가 통하면 아이패드가 진동하게 설치하고 누군가 침입하면 하얀 가루가 유독한 가스로 활성화되는 트랩을 설치해놓은 채 방독면을 쓰고 잔다.

그 시스템을 그녀는 자신만의 거미줄~

이라고 부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낸 추적자는 그러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테러. 커다란 폭발물. 대규모의 학살.

누군가 대량 파괴 생물학 병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언제 사용될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되었다. 그러니 그 누군가를 찾아라!!

엄청난 재난이 벌어진 뒤에 자신에게 그런 재난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녀는 살아가기 힘겨울 것이다. 추적자의 제안이 그녀에게 먹혀들었다!

 

알렉스라는 이름 아래 숨은 그녀는 추적자들이 제공한 정보대로 한 남자를 납치한다.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영어를 가르치는 남자 대니얼이다. 그를 잡아 심문해야만 하는 의무를 띈 그녀는 그에게서 유죄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그가 사이코는 아니길 바랐다. 진짜 자신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둠이 주는 해방감은 필요한 사람이기를.-100

 

알렉스는 대니얼을 밀어붙이며 심문하다가 불현듯 이 사람이 자기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직감한다.

묵한 대니얼은 그녀와 함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조작된 자료를 가지고 엉뚱한 사람을 찾아낸 알렉스에게 닥친 또 한 명의 비밀스런 남자.

 

그는 바로 대니얼의 쌍둥이 형제  케빈이었다.

케빈은 대니얼에게 있어 죽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은밀한 비밀 공작원이었던 것이다. 대니얼을 염려해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둔 탓에 죽음이 임박한 대니얼을 구할 수 있었다. 이제 이들은 추적자의 진의를 파악해야 하고 신변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긴박하게 펼쳐지는 스파이들의 작전 속에서도 묘하게 피어나는 로맨스.

이것이 바로 스테프니 메이어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다.

알렉스는 공공의 안전이라는 대의 하에 잔혹한 행위들을 해왔던 추적자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한배를 타게 된 동료가 된 대니얼과 케빈.

첫만남의 순간부터 찌르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했던 알렉스와 대니얼은 생사를 왔다갔다하는 혼란 속에서 더욱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시크릿 에이전트 스릴러, 라는 독특한 장르에 로맨스가 결합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로맨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릴러를 가미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그들 사이에 피어난 사랑은 생명이 경시되는 스파이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펄떡이는 혈관에 거침없이 약물이 든 주사를 찔러 넣고 상대의 입에서 진실을 얻어내려는 냉혹한 케미스트의 면모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을 함께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활약이 간만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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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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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스릴러 소설 [ 굿 미 배드 미]

 

 

 

"어제까지는 엄마의 인형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당신의 심판자야..."

 

열다섯 소녀의 섬뜩한 읊조림에 동공 확장~

소녀 애니는 엄마를 경찰에 신고한다.

죄명은 열 명 정도의 어린이들 납치, 감금, 살해다.

 

위로 여덟 계단, 그리고 또 네 계단

문은 오른쪽에 있다.

 

엄마는 아동 보호소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다.

아들을 잃은 뒤, 보호소의 아이들을 한 명씩 집으로 데리고 와 '놀이방'에 감금해두고 은밀한 놀이를 벌인다.

애니가 보기에 그것은 감금, 학대, 그리고 살해에 다름아닌데...

어마어마한 심리적 압박과 신체적, 정신적 학대가 애니에게 가해진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고 심리학자인 마이크의 집에 임시로 입양된 애니는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밀리로 바꾼다. 마이크의 집에 도착한 밀리는 즉시 집안의 분위기를 훑어보고 적응하기 시작한다. 마이크의 아내는 신경병을 앓은 전적이 있으며 젊은 요가 강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중이고, 밀리와 동급생이 된 피비는 밀리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 생각해 밀리를 공격한다.

남달리 불안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피할 것만 같았던 밀리는 그러나 임시 보호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마이크에게는 학대 가정의 피해자인 척, 연약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리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굿 미, 배드 미.

어떤 쪽이 밀리의 진짜 얼굴일까?

엄마를 신고하고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엄마를 다시는 사회에 나오지 못할 거라고 칼을 갈고 있는 마음 한켠에선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엄마의 잔혹한 가르침이 쓸모있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스스로 벌이기 시작한 게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다 계산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 존재를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지하 세계의 여왕에게, 평범한 모습이지만 내면에 악마를 키우는 엄마에게, 사이코패스의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확률을 생각해 보았다. 80퍼센트가 유전이고 2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다.

그러니 나는,

100퍼센트다.

 

-104

 

안도감과 편안함을 주어야 할 엄마라는 존재가 연약한 어린 아이의 영혼에 낸 상처는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다.

감응성 정신병. 밀접한 두 사람이 유사한 정신 장애를 지니는 것. 부정하고, 조종당하고, 거짓말하고.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했지만 결국 밀리는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냥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걸가?

 

더이상 착한 척하는 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것에 흥미가 생길 뿐. -401

 

불안불안하게 자신을 부여잡고 있던 밀리가 결국 끔찍한 일을 저지른 뒤 내뱉은 싸늘한 말이

보는 이의 핏기를 싸악 가시게 한다.

한여름 더위를 물러가게 하는 오싹한 심리 스릴러.

 

 

 

 

 

 

 #심리스릴러,#굿미배드미#여름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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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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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식 24시간,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짤막한 기사를 봤다.

한 여인이 결혼식에서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껴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기쁨에 겨우 함박웃음 지어야 할 결혼식과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 의아했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는 바로 자신의 아들의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

남편이 아내 몰래 결혼 선물로 준비한 이벤트라 했다.

아들의 심장을 받아 들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를 안고 여인은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아들의 흔적을 더듬었으리라.

심장이식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인연이 만든 행복하고 가슴 찡한 장면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준비운동을 하려고 그랬는지, 며칠 전에는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들의 3일을 근접촬영한 다큐멘터리도 보게 되었다.

쉴새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은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의사들은 연이은 당직, 응급수술에 찌들어 피곤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떤 환자는 다행히 회복해서 의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하는데, 또 다른 환자는 그 날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환자의 죽음이라는 것은 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담당의사, 간호사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여러 환자를 대하는 의사에게 있어 죽음이 흔한 것이어서는 안되기에,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에도 어떤 의미부여는 할 최소한의 시간은 있어야겠기에,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흉부외과의 침통한 표정은 예사로 보아넘길 수가 없었다.

바쁜 일상에 '죽음'이라는 것을 잠시 묻어둘 뿐, 그 죽음을 애도하고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의사에게도 주어져야 하는데...

애써 미소지으며 또 다른 환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의사의 모습에서, 보통 각오가 아니고서는 함부로 아이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와 영혼 모두 건강한 상태에서 시작해도 언젠가는 피폐해지고 어딘가가 닳아 없어질 것 같은 것이 바로 의사의 삶인 것 같다.

 

흔한 외과의사, 흉부외과 의사, 심지어 북한에서 넘어온 천재의사 등을 다룬 의학 드라마가 한동안 봇물처럼 터져나왔었는데, 그 때는 드라마 구성상 흔한 대결구도나 애정전선 등에 신경을 쓰느라 의사와 환자라는 기본적인 관계를 등한시했던 것 같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독특한 제목은 체호프의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장기이식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그것도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펼쳐보인다.

서핑을 즐기던 청년이 주인공이라 그런가, 문장이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해일처럼 밀어닥친다.

극도로 감정을 붙잡아둔 채 건조하게 이어나가는가 싶다가도 래퍼들이 쏟아내는 랩처럼 힘차고 운율감 있게 흐른다.

스무 살 청년 시몽은 친구 둘과 새벽 서핑을 즐기고 돌아오는 도중, 자동차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다.

아직 등에는 여드름이 흩뿌려져 있고 어깨에는 당당하게 마오리 부족의 문신을 새긴, 앞날이 창창한 청년의 삶은 격렬한 서핑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달빛이 그대가 된다>라는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영국의 흔한 장례풍습-땅에 묻힐 사람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풍습. 혹시라도 땅밑에 묻힌 사람이 깨어난다면 지표면에 놓인 종을 울릴 수 있게 끈과 묶어 놓은 반지임.)소생의학과 의사 레볼이 청년의 죽음을 부모 앞에 담담히 언도한다.

드라마였다면 의사의 무뚝뚝한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가족들. 이라는 장면을 보여주고 끝이었을 텐데...

 

"시몽은 뇌사 상태예요. 사망했어요, 죽었습니다."-116

 

의사는 부모에게 자식의 죽음을 통고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쉼표를 찍고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차갑고 푸르스름하고 꼼짝 않는 시신을 앞에 두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는 아직 따뜻하고 선명한 선홍색이었으며 움직이고 있으니까...라며 부모 앞에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 의사의 역할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소상하게 나열한다.

 

공유할 수 없는 언어. 말 이전의, 문법 이전의 언어. 아마도 고통의 다른 이름일 언어. 그들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들은 그 어떤 묘사로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그들은 그 어떤 이미지로도 그것을 재구축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로부터 단절된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도 단절된 상태다.-122

 

(의사) 레볼이 잔다. 잠에서 깨면 기록을 할 수 있도록, 꿈에서 얼핏 본 이미지, 행동, 맥락, 얼굴을 기술할 수 있도록 손 닿는 곳에 노트가 놓여 있다. 어쩌면 시몽의 얼굴(응고된 핏속에서 뻣뻣하게 굳은 검은색 머리 타래들, 거무스레하고 부어오른 피부, 하얀 돔 모양의 감은 눈꺼풀, 자줏빛 얼룩에 먹힌 이마와 오른쪽 관자놀이, 사후 반점)이나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머틸다의 어머니 비어트리스 헌스도퍼 역으로 출연한 조앤 우드워드의 얼굴이 거기에 묘사될지도 모른다. (...)

심장이 터질 것 같구나, 심장이 터질 것 같구나.-137

 

 

시몽의 심장이 이식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절차들이 필요했다.

의사의 입장, 부모의 입장.

그럭저럭 평온을 유지하며 사건의 흐름들을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 쪽으로 감정이 이입되고 있었는지,

어느 순간 울음이 확 터져 버렸다.

 

침묵의 흐름. 그러다가 다시 마리안의 목소리. 얇은 막을 통과해서 나오는 듯 둔탁하다. 그러면 누가 시몽 곁에 있게 되나요? (돌멩이처럼 꾸밈없고 힘이 얹힌<누가>)-186

 

청년의 어머니 마리안이 이식을 권하는 의사에게 질문하는 순간이었다.

누가 곁에 있어 주나요?

의사가 선고를 내린 이후부터 땅에 묻힐 때까지 부모로서 언제까지고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함이 이식을 거부하는 마음과의 충돌에서 한걸음 비켜서는 순간, 부모가 쳐놓은 철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아니었을까.

 

청년의 심장은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로 옮겨진다.

심장은 아들의 몸에서 떼어지고 분초를 다투며 장기 이식을 위해 이동핸다. 장기 이식 전문의들의 영예를 드높이려는 텔레비전 르포용의 긴급 상황 연출이나 방송에서 보이는 영웅적이고 인간적인 흔적은 하나도 없이 매끄럽게 운송된다.

방송용 연출 없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식 수술은 그래서 더욱 긴장감 넘치고 숭고하다.

심장의 수축, 경련, 미약한 박동, 좀 더 분명게 툭툭 튀는 움직임, 최초의 박동. 여명을 알리는 박동.

 

새벽 5: 50. 시몽의 휴대폰 알람이 울림으로써 시작한 이야기는 수술모를 벗고 마스크를 내리는 의사가 확인하는 시각 5시 49분에 막을 내린다.

 

드라마로 보았다면 스쳐 지나가듯 찍히고 말았을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이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로 그려진다. 아들이 죽음을 맞이한 직후 장기 기증을 제안받는 부모, 기증을 제안하고 설득해야 하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와 의사, 수혜자 선정, 운송을 담당하는 총괄국 담당자, 이식수술을 담당한 각지 병원에서 달려오는 적출 팀, 청춘이라 흔들리는 수술 간호사 등등...

쓸데없이 감정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지극히 냉철하고 분석적인 장면장면들 틈에서 가끔씩 해일처럼 몰려드는 감정의 격랑.

심장이식 24시간 내내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과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동시에 느슨하게도 타이트하게도 만들면서 완급조절을 할 줄 아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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