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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상실을 철저하게 애도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삶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중이다.

텀벙텀벙 건너 뛴 계단도 있고, 잠시 주춤하였는데 꽤 오래 머물게 된 계단도 있다.

젊은이다운 호기를 부리다가 뾰족구두 뒤축이 계단에 걸려 삐그덕, 와장창 무너져 내렸을 때처럼 엄청 넘어지고 깨지면서호되게 앓았던 적도 있다.

기고, 앉고, 서고, 걷고, 뛰고.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해 온 어린 아이가 이제 중년이 되었다.

계단은 이미 많이 지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다.

세상은 너무도 살기가 어려운지  "힐링"에 열광하거나 쉽고 가볍게 삶의 단계를 통과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렇지만 한바탕 가슴앓이를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실컷 웃을 때는 웃어야 한다.

대충 얼버무리고 뭉개려다가는 뒤에 몰아서 겪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는 아직 이것을 겪어보지 못하여 정신적 성숙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만치 그 "상실"의 아픔을 겪게 해줄 계단이 보이고 있는데 마냥 시간아 느리게만 가라...하고 빌고 있는 중.

 

마침 맞은 시기에 예방접종 맞는 기분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정을 딱 끊어야 합니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놓아버려야 더 이상 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떠난 사람에 대해 좋은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집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오욕칠정이 들끓는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이렇게 산뜻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일정 기간의 장례기간동안 의식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자각하고 자신을 추스르게 된다.

그러나 머리로는 정리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그 사람과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네의 "49제"라는 상징적인 애도의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의정도에 따라 기간은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애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줄리언 반스는 문학 에이전트이자 평생의 문학적 동지였던 아내 팻 캐바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글로 남겼다.

그의 글은 열기구를 열망하는 19세기 실존 인물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사진가 나다르의 이야기로 득특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3부에서 아내를 잃은  비탄, 애도, 슬픔을 두루 경유하는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글 전체를 통틀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구절.

 

그래서 기분이 어떠냐고?

가령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왔다면 어떨까. 기분이 그러한데, 무슨 이유로 그러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 -127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상실감이 손에 잡힐듯이 전해져 온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자유를 대변하는 기구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라고 했다.

사랑의 시작이야 어떠했건 간에 사랑의 끝은 바람과 날씨에 좌우되는 열기구처럼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134

 

아내와의 사별 이후 5년간 숙성된 "애도"는 독특한 간명함을 품은 채 세상에 나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함께 흘릴 거라 예상했지만 나의 사랑은 아직 "진행형"이라 그의"애도"에 공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커다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저 너머의 계단에 도사리고 있을 상실의 아픔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죽음"에 대한 의미 또한 내게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의 죽음, 더불어 나의 삶도 반추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완전한 소멸은 아닐진데...

법륜 스님의 말처럼 죽은 사람에 대한 정은 딱 끊어야 할 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죽음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연장하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줄리언 반스가 마음 속에 그의 아내를 품어왔기 때문에 아내를 쉽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내면화함으로써 새로운 계단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

한 두 시간의 숙고와 한 두 줄의 요약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책을 덮으면서 아주 오랜 동안 여운이 남았다.

아마도 이 생을 마칠 때까지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질문.

생과 사의 경계는 아득히 멀지만 , 아직 인생 반도 못 살았지만, 때때로 허공에다 던지게 될 질문 하나 품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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