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서 다 인용을 하지는 못했었지만, 1권에서 트랙터 운전사와 농부의 대화가 압권이었다. 읽으면서 감탄을 했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감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2권에서도 마찬가지. 지금 이게 길어서 인용을 할까말까..엄청 갈등되는데, 왜냐하면 그러니까, 그거 인용할 시간에 뭔가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다가...그렇지만...이 박진감을, 그러니까 이 터질듯한 순간의 긴장을 너무나 알리고 싶어져서.... 아아, 어디 한 번 인용에 도전해볼까?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다. 작게나마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트랙터가 들어와 다다다닥 땅을 파헤쳐버림으로써, 이제 사람이 아니라 트랙터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일을 할 수 없게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일할 수 있는 곳, 과일을 따면 돈을 준다고 했던 전단지를 들고, 그쪽으로 모든 짐을 싸서 차에 싣고는 온가족이 이동하게 되는데, 그 전단지가 한두장 뿌려진 게 아니라서 꿈의 땅 캘리포니아로 가는 사람과 차는 고속도로를 채운다. 쉼없이 달리다 멈춰서 밥을 해먹고 또 쉼없이 달려 그렇게 꿈의 땅까지 이르렀는데, 


아아,


여기오면 고생 끝 행복시작이겠지, 여기에 오면 이제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정착할 수 있겠지, 했던 바람은... 아아.... 여러분 책을 읽자.



당연히,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민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어, 우리 여기 잘 살고 있었는데, 저렇게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이 몰려오면, 어어, 내 꺼 뺏기면 어쩌지..하는 고민을 하고, 아아,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빚을 얻어 가게를 하고 있는데, 저렇게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이 빚없이 시작한다면 나보다 더 잘살게 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가진 걸 뺏기게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을 떠나 돈 좀 벌어서 살아보겠다고 이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약속의 땅에 이르러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 도착해보니 자기들을 내쫓을 생각만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아아,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자, 모두 21장에서 가져온다.




고속도로로 몰려 나온 이주민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서부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재산이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했다. 배를 곯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배고픈 자의 눈을 처음으로 보았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은 이주민들의 눈에서 욕망의 불꽃을 보았다. 도시 사람들과 온화한 교외의 시골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좋은 사람이고 침입자들이 나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원래 싸우기 전에는 반드시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야 하는 법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망할 놈의 오키들은 더럽고 무식해. 놈들은 타락한 색광들이야. 저 망할 놈의 오키들은 도둑이야. 놈들은 뭐든지 훔칠 거야. 놈들은 소유권이라는 걸 전혀 몰라.

마지막 얘기는 사실이었다. 재산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재산을 가진 사람의 고통을 어찌 알겠는가? 마을을 지키러 나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놈들이 병을 퍼뜨려. 놈들은 더러워. 놈들이 학교에 다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놈들은 이방인이야. 자네 누이가 그런 놈하고 데이트를 한다면 어떻겠어? 

(중략)

대지주들과 기업들은 또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대지주가 통조림 공장을 사는 것이다. 복숭아와 배가 익으면 지주는 과일 값을 키우는 값보다 싸게 후려쳤다. 통조림 공장 사장 자격으로 과일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통조림 가격을 높게 유지해 이윤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하지 못한 소규모 농부들은 농장을 잃어버렸고, 그 작은 농장들은 대지주와 은행과 역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한 기업들 차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장의 숫자가 적어졌다. 소규모 농부들은 도시로 이주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돈을 빌려 쓸 곳도, 그들을 도와줄 친구나 친척들도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고속도로로 나섰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p.117-120)




주인공 톰 조드는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떠났다가 그 곳에서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마다 성질 같아서는 확 받아버리고 싶지만, 자기는 지금 가석방 신분이고 또 가족들과 함께 있으므로, 본의 아니게 어머님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성질대로 받아버리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지금의 상황 즉,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부조리하다는 것은, 톰 조드 뿐만이 아니라, 지금 거기에 천막을 치고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 모두에게 부조리와 불합리가 반복될수록 그것은 분노가 되어 쌓일텐데, 그러니 저 21장의 마지막,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는 예사로 보이질 않는 거다. 아아, 이것은 어마어마한 복선일 것이야... 그렇다면 22장부터는 어떤 얘기가 펼쳐지려는거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역시 책은 진짜 소설이 짱이다. 소설이 최고되는 것이야. 소설이 좋다.



나는 소설이 좋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이렇게 이야기로 가득차고 생각할 거리가 가득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 생각이 난다. 섹스파트너였던 여자와 남자가 각자 연애를 시작해보자며 상대를 찾으려할 때, 남자가 공원에서 책 읽고 있던 한 여자를 가리키며 '나는 저여자 꼬셔볼게' 라고 했더니, 그때 여자가 그러는 거다. '저거 소설책일걸?'


난 그 부분이 진짜 드럽게 기분 나빠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때 당시에는 니네가 빅토르 위고 소설을 읽어봤다면 진짜 그렇게 말 못한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또 그 장면 생각나면서, 니네가 분노의 포도를 읽어봤냐...읽었는데고 그렇게 소설 무시하는 발언 나오냐 싶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면 진짜 모르는 상태에서는 욕하기가 너무 쉬운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는데, 소설 안읽는 사람들이 꼭 소설을 무시한다. 이게 뭐가 됐든 그래, 모를 때 욕하기가 제일 쉽다. 모르면서 욕을 해 모르면서.....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또 사실인가보다. 어느 한 쪽이 소설 읽는 사람들에 대해 무식하게 욕을 했다면, 상대가 '야, 너 소설 읽어봤으면 그렇게 말못해' 라고 했어야지, 똑같다 똑같아 진짜....


아무튼지간에 분노의 포도 21장 너무나 멋지고요, 통찰력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아아, 분노하는 이들이여, 행동할 것인가!!





나는 노동자이고, 근무 이래로 지금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빡치는 사람으로서, 내 가슴에도 분노 너무 들끓고 있고..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이 분노에 들끓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나는...글쎄 모르겠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내가 분노에 들끓는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집해서 회사에 대고 반항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그럴것 같진 않고, 아마도 나는 혼자서 사표내고 이 땅을 떠나지 않을까..

응?

이 땅은 왜 떠나?

회사 때문이라면... 이 회사만 떠나면 되지, 이 땅은 왜 떠나?

왜냐하면..

나는 다른 땅에서 살고싶어서?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내일 대한극장에서 《여배우는 오늘도》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모양인데, 너무 가고 싶은데.... 평일이고 다음날도 출근이라, 아아, 퇴근 후에 갔다가 영화 보고 대화하고 다음날 출근하면 너무 힘들겠지...싶어서 아침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집에서 쉬어야 되는 거 아닐까, 이제 이런 일정을 소화해내기엔 나는 너무 지쳤어.....




그나저나 얼른 분노의 포도 다 읽고 연애소설 좀 읽고 싶다. 분노의 포도에다가 페미니즘 서적까지 읽었더니 마음에 말랑하고 스위트한 부분이 사라져버려서...그 감각을 다시 일깨우려면 연애소설 좀 읽어야 쓰겄다. 내가 원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인데, 아아, 요즘 너무 싸나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어제는 갑자기 윤김지영 쌤도 막 보고싶고 ㅠㅠ 헬페미 충전받고 싶고 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헬페미 충전 넘나 필요하고요 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 근데 집에 어떤 연애소설이 있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지금 그냥 후다닥 한 권 사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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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9-20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다닥 한 권... 사버리세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7-09-20 16:20   좋아요 2 | URL
역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09-20 16:2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