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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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잘룸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하지만 네가 내 제안을 모두 따른다고 해도 치잘룸이 네 바람과는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점 잊지 마. 산다는 게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잖니. 중요한 건 네가 노력한다는 거야. 

그리고 항상 네 직감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믿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의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 (p.1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자신의 친구 '이제아웰레'에게 한, '네 직감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믿어'에 동의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 그 때 괜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구나' 할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대화중이나 행동중에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돌이켜봤을 때 그건 아닌 게 맞더라. 어째서 그런지에 대해 바로 그 순간 낱낱이 짚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것 같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은 있고, 그 느낌은 대체적으로 맞다. 우리는 우리 안의 도덕에 어긋나는 것들을 잡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친구에게 한말, 네 직감을 믿으라는 말은, 충분히 그러해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조카가 두 명있다. 지금 현재 여덟살 여자아이와 다섯살 남자아이이다. 이모가 꼴페미인만큼, 조카들을 페미니즘 장착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모이고, 매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는 게 아니다. 설사 내가 매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매순간까지 함께할 순 없다. 아이는 학교나 유치원에 갈 것이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있을 것이도,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순간에 조카들이 보게 되는 사람들과 그 대화들이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이모가 하는 말과 텔레비젼 속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걸 알게될 것이고, 자라나는 과정에서 그 모든 이야기들중 어떤것들을 취하거나 혹은 버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조카들이 내 바람과는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 바람대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해 강한 확신으로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충분히 필요하다 보여진다. 차별이, 비하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가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는 건 충분히 해도 되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페미니즘은, 조카가 있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절실한 것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있는 학교에서, 그리고 앞으로 직장에서, 거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차별과 비하, 혐오, 괴롭힘에 노출되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어른도 아이를 모든 상처로부터 막아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나아갈 길은, 설사 상처받는 일에 맞닥뜨려도 극복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일테다. 페미니즘은 혐오와 비하, 차별을 없애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로부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네 고통이 네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는 데에도 페미니즘이 당당히 버티고 서있다. 


얘야, 네가 반드시 머리를 기를 필요도 없고, 괴롭힘에 묵묵히 참을 필요도 없어 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고 네가 괴로운 것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중요하니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가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얼마나 명료한 해결책이며 완벽한 방법이란 말인가. 우리가 멈춰야 한다. 




책은 얇고 가볍다. 한 손을 쫙 편 사이즈이고 장수도 적고 심지어 그림까지 있다. 그러니 나같은 이미 헬페미인 사람들이 굳이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 경우에도 이 책을 읽고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나는 이것보다 더한 것이 필요해... 이정도는 이제 내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어떤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시 되어야 할까, 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맞춤한 책일테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텐데, 이 책에는 아주 기초적인 가르침들이 나와있으니까. 


이렇게 기초적인 걸 굳이 알려주기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이렇게 기초적인 게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기초적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행동이 어떠해야할지를 다잡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란 어른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곤 하는데, 책 읽으라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는 책 읽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테고, 가사일은 가족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천번 말하는 것보다는 모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일 테니까. 





가사와 육아는 성 중립적이어야 하고, 우리는 여자가 ‘만능‘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부모들을 지원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해. (p.20)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해. ‘동등하게‘가 무얼 의미하는가는 물론 너희 두 사람에게 달렸어.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똑같이 주의를 기울이면서 맞춰 나가야 할 거야. 말 그대로 50대 50으로 나눈다든가, 매일 점수를 기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만약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했다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거야. 네가 화가 나지 않을 테니까. 진정한 평등이 있는 곳에는 분노가 존재하지 않아. (p.23)

치잘룸이 책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을 보이는 거야. 네가 책 읽는 모습을 아이가 본다면 독서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설사 치잘룸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책만 읽는다 하더라도 단언컨대 제도권 교육을 받은 아이보다 훨씬 더 박식할 거야. 책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의문을 품도록, 자기표현을 하도록, 자기가 되고 싶은 게 무엇이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거야. 요리사든, 과학자든, 가수든 독서를 통해 배우는 기술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돼. (p.44)

치잘룸이 이런 남자들에게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쳐.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만 공감할 수 있는 남자들. 강간에 대해 얘기할 때 매번 ‘내 딸이나 아내나 여동생이었다면‘ 같은 말을 하는 남자들. 이런 남자들이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굳이 자신의 형이나 아들이라고 상상하지 않아도 공감을 잘하지. (p.49)

그토록 많은 여자애들이 ‘머리‘하면 고통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른들이 ‘너무 바짝 당긴‘, ‘두피를 상하게 하는‘, ‘두통을 일으키는‘ 종류의 단정함에 순응하기로 결심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멈춰야 해. (p.76)

사회규범의 근거가 정말로 생물학이라면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속한 것으로 봐야지.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생물학적으로-이론의 여지 없이-확신할 수 있는 부모는 엄마 쪽이잖아. 엄마가 애 아빠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빠일 거라고 추측하는 거고. (p.82)

아이에게 자신의 기준이나 경험을 절대 일반화하지 말라고 가르쳐. 그 애의 기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고 가르쳐. 그 애에게 필요한 겸손은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라는 깨달음‘ 뿐이야.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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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7-10-19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을 한 백권정도 사서 딸가진 엄마들에게 마구 나눠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단 한권 더 사서 친한 친구에게 줬답니다. 너무나 기초적이지만 옆에 두고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다락방 2017-10-19 17:24   좋아요 1 | URL
저는 읽고 제 여동생에게 주었어요. 여동생은 딸도 아들도 가진 엄마이니, 여동생의 페미니즘이 딸과 아들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여동생에게는 제가 페미니즘을 전달하고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