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좆같은 일들이 마구잡이로 일어나다가 툭, 하고 좋은 일이 끼어들면서 연속되는 것 같다. 구겨진 얼굴로 다른 부서에 업무차 내려가 남자과장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가려고 하자 잠깐만 기다리라며 서랍을 열었고, 서랍 속에는 딸기맛 초코파이 한 박스가 들어 있었다. 이거 드세요, 하면서 꺼내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순간 웃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남자 과장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스타벅스에서 화이트캬라멜초코 인가..화이트모카초코...인가 암튼간에 우라지게 단 커피를 벤티 사이즈로 매일 마시는 캐릭터다. 단 거 무지 좋아하는 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딸기맛 초코파이라니, 고맙게 받아가지고 올라왔다. 좆같은 일들 속에 드물게 일어난 기쁜 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을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그러면 좆같은 삶을 살아온 다른 여자의 얘기를 잠깐 해보자.


















'호노르'는 젊은 시절부터 출판사에서 근무하는데, 그녀가 맡은 역할은 출판사 대표인 '모리아니'의 비서겸 경리이다. 회사가 아주 어려울 때부터 늘 거기 있었고, 그리고 자기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대표 모리아니를 좋아하고 있다. 그 대표의 나이가 일흔이 되었고(정확히 기억안나는데 그쯤이다), 그녀의 나이 역시 그에 비슷하게 되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대표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자신이 대표의 아내가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다. 자기는 계속해서 대표의 옆에 있었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도 신경써서 대표를 배려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징표를 믿었다. 그것은 숨겨진 이정표와 같아서 진심으로 길을 찾는 사람들을 목적지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금씩, 그러나 아주 체계적으로 모리아니의 환경을 바꿔나갔다. 달력을 산뜻한 그림으로 바꾸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재고를 책장에서 치우고 모리아니가 마시는 디카페인 모카커피에 카르다모(소두구. 중동지방에서 커피에 넣어 먹는 향신료_역주)을 아주 조금씩 넣었다. 생강과의 이 식물은 긴장을 해소시키는 효능이 있어 세계대전도 막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모리아니는 그녀가 만들어낸 이런 좋은 영향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계량이 정확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모리아니의 사무실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졌고 아랍 박하와 백단향의 향기가 풍겼으며 꽃이 시드는 일이 없었다. 그 뒤로 모리아니의 상태는 훨씬 좋아졌다. (p.114)



파산을 앞두고 우울에 쩔어 있는 모리아니를 위해, 비서인 호노르는 은밀하게 그를 늘 배려해왔던 거다. 그런데, 그 출판사에, 호노르의 절반쯤 되는 나이인 베티가 들어온다. '매끈하고 빵빵하고 예쁜' 아가씨. 그리고 모리아니는 사십년정도의 나이차이가 있음에도 그런 베티에게 청혼하겠다고 하는 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진짜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지만, 오늘 만큼은 욕을 좀 계속 하기로 하겠다. 참, 호노르의 삶이 너무 좆같지 않은가. 몇 십년을 옆에서 배려하고 신경써줬는데, 자기 나이의 절반쯤 되는 여자에게 청혼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아무리봐도 그여자는 다른 남자랑 사귀고 있는데, 늙은 이 남자에게 관심도 없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생 헛살았다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건가. 아니, 그런데 호노르는 왜 진작에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지? 왜 그렇게 기다리기만 한거야? 만약 고백했다면 모든 일들이 다르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는데. 물론 모리아니가 그녀를 거절했을 확률도 크지만, 설사 거절했다한들, 호노르는 아예 다른 삶을 꿈꾸는 쪽으로 바뀌었을 수 있잖아. 이게 뭐야 완전 죽쒀서 개주고.... 모리아니는 '하이든'이라는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남으로써 출판사가 갑자기 엄청 돈을 많이 벌게되면서 자기 돈도 많아지게 되는데, 그 모든 재산을 매끈하고 빵빵한 젊은 여자 베티에게 줄 생각인 거다. 평생 자기 옆에 있었던 여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로.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모리아니야, 베티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단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생.... 




모리아니는 베티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고 베티를 포기한다. 암은 그를 갉아먹고 있었고, 그는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럴 때, 그에게 호노르가 간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비스킷을 챙겨준다.




"호노르, 혹시 지금 울 거면 그 전에 내 영국 비스킷 좀 갖다줘."

호노르는 그가 말한 알루미늄 통을 값비싼 식재료들이 부패해가는 식료품 창고에서 찾아냈다. 스페인산 훈제육 위에도 파란 곰팡이 잔디가 깔렸고, 소시지는 거의 미라가 됐고, 과일들은 비쩍 말라 버렸고, 통조림 깡통들은 팽팽하게 배가 불러 위험해 보였고, 식료품 선반 사이에는 수많은 거미줄 터널이 창궐해 있었다. 이 집에는 분명 여자의 손길이 필요했다. 호노르는 비스킷 통을 열기가 겁났지만 다행히 내용물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호노르, 우리 집 지붕에 독수리들이 앉아 있지 않았어? 시체 냄새 맡고 기다리는 거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가 그녀에게 그렇게 격 없는 말투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p.266)




나는 가급적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나 이 호노르 에 대해서라면 무자비하게 스포일러가 되고자 한다. 살면서 이런 일 한 번쯤 한다고 벌받지 않겠지. 후훗. 그래서 호노르가 어떻게 되냐고?




클라우스 모리아니는 베니스의 병원에서 죽었다. 그리고 죽기전 병상에서 그의 비서였던 호노르 아니젠드라트와 결혼하고 출판사와 개인 재산 전부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p.317)



크- 그간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고, 함께 지낸 시간도 짧았지만, 아하하하하, 출판사와 재산 전부를 유산으로 받았다. 만쉐! 이제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일만 남았구나. 후훗. 글쎄,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간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노년에 돈이 많아진 것에 대해 '좋은 삶이구나' 할지,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외롭고 긴 날들이었다고 할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거야 이미 벌어진 일이니, 노년에 돈이 있는 건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호노르, 맛있는 것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아요!!! 








역시 짝사랑을 하더라도 돈 많은 남자를 짝사랑하는 게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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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5-1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이런 스포일러 좋아요. 카르다모, 처음 들어봐요.

다락방 2017-05-17 10:50   좋아요 0 | URL
전재산을 다 받았다는 거에 제 마음도 좋아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같다면 2017-05-1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는 보이지 않는 징표를 믿었다. 그것은 숨겨진 이정표와 같아서 진심으로 길을 찾는 사람들을 목적지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많이 담아서 쓴 문장같아요

다락방님과 제 마음을 건드리네요

다락방 2017-05-17 11:37   좋아요 0 | URL
어휴, 나와같다면 님의 댓글을 읽고 저 문장을 다시 읽으니 마음에 휭-하니 바람이 불어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