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을 다니다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생기곤 하지만, 포르투갈에 대해선 딱히 그런 게 없다. 어떤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거나, 특별한 누군가를 만난 기억도 없다. 내가 포르투갈 리스본에 머무른 시간은 아주 짧았고, 머무른 그만큼의 시간만큼을 비행기 안에서 보냈으니까. 어떤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고, 그저 아침에 밥 먹으러 식당에 가서 와인을 마셨고, 점심을 먹다가 와인을 마셨고 저녁을 먹다가 또 와인을 마셨다. 어딜 가든 와인을 자유롭고 저렴하게 마실 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연신 하늘을 보며 좋다고 감탄했던 기억과, 골목들을 걸으며 멈춰서 아름답다고 했던 기억. 나는 포르투갈어를 몰라서 굳이 길을 물을 때는 영어로 물었는데, 그렇게 그곳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채로 짧은 시간 있으면서도, 와 여기 왜이렇게 좋지 너무 좋다, 자꾸 말했다. 함께한 친구들에게 '나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어' 라고 말했더니, 친구들은 '너무 멀어서 놀러오기 힘들어 다른 데로 가' 라고 했더랬다. 직항도 없어서 어딘가를 경유해서 아주 오랜 시간을 날아야 포르투갈에 닿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 비행기 안에 오래 있는 것은 무척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포르투갈에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나는 지금은 아주 많은 다른 곳들을 가보고 싶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티켓을 예매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또다시 포르투갈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서 내가 어떤 특별한 일을 하거나 특별한 누군가를 만난 게 아닌데도. 자꾸자꾸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을 넘기다보면, 아아, 포르투갈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이 책 속의 남자는 포르투갈에 있는 친척으로부터 그림을 그릴 집을 빌리게 되는데, 아아, 너무 이상적인 삶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포르투갈에 좀 장시간 머무르면서,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살게 된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집 앞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사람들과 눈인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삶은 아름답지 않을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생각보다 더 오래 포르투갈에 머무를 것 같아요. 이 나라를 그리고 싶어졌거든요. 이걸로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라고 시작하는 편지. 


생각보다 더 오래 포르투갈에 머무를 것 같아요.

이 나라를 그리고 싶어졌거든요.

이걸로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이 부분을 읽는데, 당장이라도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두렵고 낯설고 힘들겠지만,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건 어떨까, 또 잠깐 생각해봤다.

배우고 포르투갈에 가는 것보다는, 포르투갈에 가서 배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은 외국에서 영주권까지 받으며 장기체류하게 될 나라가, 어쩌면 포르투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했다.



이 책 역시 나의 여행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 형제 이야기까지 나와서 그 구성원들에 대한 가족사가 딱히 내 흥미를 끌지도 않더라. 그런데 매사 의욕 없던 주인공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원하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주인공이, 포르투갈에 머무르면서 '여기 더 머무르기로 했다'고 하는 게, 왜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두근두근.. 정말 두근두근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각양배추 2017-01-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달에 한 도시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제일 길게 갔었던 여행이 혼자 이탈리아로 11일이었어요. 그 11일도 쪼개서 세 도시를 돌아다녔는데...피렌체가 참 좋았거든요,저는. 그래서 아 여기서 한 달만이라도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곳은 몰라도 피렌체만큼은 살면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다락방 님처럼 피렌체에서 저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어요. 그래도 오롯이 혼자 그 곳의 골목길들을 걸어 다니고, 길가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던 그 기억들이 저에겐 특별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음엔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길들을 다시 걷고 싶네요^^
항상 아침에만 글 올려주셔서 저녁엔 안 들렸었는데, 반갑게 글 발견해서 너무 좋았어요. 좋은 저녁 되시길!

다락방 2017-01-17 08:23   좋아요 0 | URL
히힛. 사각양배추님, 안녕?
이탈리아 11일이라니, 길게 다녀오셨네요. 저는 11일간 나가본 적도 없어요. 기껏해야 9일을 가지고 그 안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하는 시간까지 다 써야 하기 때문에 짧게 다녀오곤 하는데,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저에게는 이게 최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게 갈 수 있을 때 가야지, 하고 기다렸다가는 그 때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 직장을 관둬야 가능한데, 그때는 제 체력이 바닥일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저는 짧게 다녀오더라도,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자!! 고 힘차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포르투갈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말도 안통했으면서 뭐가 좋다고 거길 그렇게 또 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히힛. 그렇지만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살아가는 작은 기쁨인 것 같아요. 나중에 사각양배추님도 피렌체에 가시고 저도 리스본에 가서 장기간 머무르다가, 그 시간들속에 언제쯤은 중간지점에서 만나요! 같이 와인 한 잔 하십시다! ㅎㅎ


아, 제가 가끔 기분이 동하면 저녁에도 글을 쓰곤 하는데, 대체적으로 아침에 다다다닥 쓰는 편이기는 해요. 어제 아침에 쓴 길고도 긴 페이퍼는 읽으셨습니까? 애쉬톤 커쳐와 데미 무어가 등장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라면서 내 친구처럼 말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각양배추님!

무해한모리군 2017-01-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르투갈에 가보지 못했네요. 계획을 짜봐야겠어요. 가본곳중에 저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어요. 음식도 딱 입에 맞고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1-17 17:49   좋아요 0 | URL
저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살고 싶어요. 사는 건 미국에서 살고 싶은데, 포르투갈에서도 장기 체류 해보고 싶어요. 길면 육개월 쯤이요. 짧으면 한달에서.
아.. 떠나고 싶네요. 회사가 사람을 갉아먹는데... ㅠㅠ

보슬비 2017-01-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았어요. 뭔가 따뜻한 느낌도 좋았고, 와인 마구 마실때도 좋았어요.^^

다락방 2017-01-18 08:13   좋아요 0 | URL
이 책 신기하게 좋더라고요, 보슬비님. 뭔가 이렇다할 에피소드라든가 흥미로운 줄거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묘하게도 포르투갈에 가고 싶은거예요. 주인공이 포르투갈 좋다고 막 찬양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포르투갈에 가서 장기체류하고 싶어졌어요. 포르투갈 가서 아침 점심 저녁 와인 마시면서 여유롭게 지내다 오고 싶네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