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인 [기생충 열전]에 등장하는 기생충과는 중복되는 기생충이 없는, 완전히 전혀 새로운 책이다. 사실..고백하자면...중복되는 기생충이 나왔다고 해도 내가 알아챘을 리가 없다. 요충이 아니고서야...[기생충 열전]에서 요충이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아이들이 엉덩이를 자꾸 긁으면 요충이 있는 거라는.... 휴... 세상에 기생충이 이렇게나 많구나. 전혀 다른 기생충만으로도 책 한 권이 완성되다니.
각 기생충마다 풍부한 사례가 나와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기생충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얘기를 읽고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뭔가 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듯 하지만. 뭣보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날음식을 먹는다는 데 놀랐다. 나도 생선회며 육회를 먹기는 하지만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또한 생소한 음식은 익힌 것 먹기도 어려워하는데. 커다란 달팽이를 보고 날로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니...아니 무슨 달팽이도 개구리도 날로 먹는 사람들이 있지 ㅠㅠ 난 익힌 달팽이도 삼키느라 애를 먹었었는데 ㅠㅠㅠㅠㅠ
어쨌든 다 읽고나서 음식을 가급적 날로 먹지 말자는 생각과 동시에 '섹스를 끊자'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심하고 나자, '닐 게이먼'의 [금붕어 두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났다.
엄마는 내게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맹세하라고 하셨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와 다른 물건을
바꾸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약속했다.
다시는 아빠와 다른 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을 놓고선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음.. 그래, 섹스를 끊자 대신 '이성과의 섹스를 끊자'로 결심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겠다.
하지만 나는 동성을 놓고선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느라 헐레벌떡 나와서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버스가 막 출발을 했다. 꼼짝없이 6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맞은편 정류장에는 고깃집이 있고 그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차량에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트럭 뒷편에 숨어서 이 쪽을 기웃거리는 아저씨가 눈에 띈다. 하아- 또 저아저씨다. 일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옆에 서 계신 아주머니 한 분이 경찰에 신고하는 걸 들었었다. 이 시간이 되면 저 트럭뒤에 숨어서 성기를 꺼내어 흔든다는 신고 전화였다. 아주머니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내 떨려 하셨고, 나는 옆에서 신고 전화를 듣다가 나도 일전에 떨면서 경찰에 신고한 경험이 있던 터라, 잘하셨다며 다독였던 적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그 아저씨를 몇차례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나무 뒤에 숨었었는데 반복되다 보니 경찰에 신고하신 거라고.
그런데 오늘은 내가 그 아저씨를 본 거다. 세워진 트럭의 큰 덩치에 숨어서 헤드 부분 유리창 사이로 이쪽을 계속 쳐다보는 아저씨. 처음에 나도 깜짝 놀라 큰 나무 뒤로 숨었다. 그러다 이게 숨을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 아저씨가 무슨 짓을 하는지 지금 본 건 아니고 놀랐을 뿐이지만, 어쨌든 이 시간에 저 트럭 뒤에 숨어서 이 쪽을 쳐다보는 아저씨라니..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번에 신고 전화를 옆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아저씨가 저 아저씨인것 같아, 순찰 한 번 해달라, 고 요청했다. 우리 집 근처였으므로 주소와 위치를 대고는 늘 숨어 다니는 트럭을 사진 찍어 보냈다. 잠시 후에 내가 타고 가야할 버스가 왔고 나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순찰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자주 순찰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휴..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뛰었지만 지하철도 놓쳤다. 뭐,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아침에 라디오를 틀어두고 듣게 된 첫 곡이 you raise me up 이었는데 나는 왜 자꾸 버스를, 지하철을 놓치는가..
어쨌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7분간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데 어딘가에서 뭔가 꾸리꾸리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 밥을 싸가지고 가는 냄새인가..그렇지만 좀 고약하다...아...안 씻은 냄새인가... 그렇게 기다리다 지하철을 탔는데, 계속 그 냄새가 난다. 내 옆자리에는 아까 기다리던 사람들 대신 다른 사람들이 타 있었는데..그렇다면 이건...나한테서 나는 냄새인가? 나는 가방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의 냄새도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금역에서 갈아 타려고 일어나 출입문 앞에 섰는데도 계속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이건 내게서 나는 냄새인데... 아침에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고 버스 안에서도 안났는데, 아 미치겠네, 이 냄새가 뭔데 나를 따라다니지.. ㅠㅠ
그러다 3호선을 갈아타 자리에 앉았는데도 계속 나. 나는 진짜 냄새를 너무 잘맡고 예민해서 엄청 스트레스 받는 타입이다. 내 옷을 킁킁대봤다. 내 옷에서 냄새가 난다. 아, 대체 버스 안에서는 안그랬는데 이 옷에 무슨 문제가 있는거지, 하고 살펴보다가..아...목과 가슴 사이 부분에 무언가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청록색과 갈색의 그 사이 어디쯤인데, 이..이...이게 뭐지 하고 코를 갖다 대자 냄새가 코를 찌를 것 같더라.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게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에 가고 싶어, 가서 이 옷 세탁기에 넣고 다른 옷 입고 오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체 이게 뭐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약간 젖어 있는 상태로 보아 지금 막 묻은 것 같았다. 핸드백에 물티슈를 가지고 다니던 터라 얼른 꺼내어 삭삭 닦았다. 한 장 더 꺼내어서 또 닦았다. 냄새는 거의 사라졌지만 계속 잔향이 남아있는듯해..
이게 뭘까? 뭐였을까?
나는 품에 아무것도 끌어안지 않았다. 어딘가에 부딪치지도 않았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 나올 때는 묻지 않았더랬다. 그렇다면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까지 걸어오는 동안 묻은 것인데, 그 짧은 시간안에 이렇게 냄새나는 무언가가 내 옷에 묻었다면..그것은.... 새똥...이 아닐까.
새가 날다가 똥을 싸고 그게 내 옷에 떨어진건데, 그렇다면 .. 나는 왜 새 똥이 옷에 묻는 걸 보지 못했을까? 똥이 떨어지는 속도가 그렇게나 빠른가?
사무실에 도착해서 그 부분을 다시 비누로 빨고는 자리에 앉아서 새똥냄새로 검색해봤다. 새똥이..원래 이렇게 냄새가 나는건가?
새똥..냄새 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아침에 맞은 그것은 .. 새똥이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5월31일 아침, 나는 새똥을 옷에 묻히고야 말았고나. 흑흑. you raise me up 이라며 ㅠㅠ
아침부터 새똥 때문에 멘붕왔는데 동료가 아이스아메리카노 줘서 신났다. you raise me up 이구나. 우후훗
오늘 퇴근하고 집에 일찍 가서 세탁기 돌려야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