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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런과 모리스의 컬렉션
린 섀프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한 커플의 경매 물품으로 꾸며진 책이라고 해서 대체 그게 무슨말인가, 어떤 책이란 말인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니 '읽는'다기 보다는 '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에 쓰여진 글자들은 경매물품들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니까. 물론, 그 경매 물품들 중에는 엽서나 메모, 편지가 있고 그에 대한 해석도 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대의 음식칼럼니스트인 여자와 30대의 사진작가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함께 공유했던 물건들을 경매로 내놓는 데서 시작했다. 그들의 경매 물품에 대한 브로셔, 카탈로그 라고 보면 딱 맞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전시회에 가서 한 커플의 물건을 직접 보고 엽서나 편지를 읽고 그들의 사진을 보는 일들이 흥미로울 수는 있으나, 딱히 그것들을 '보고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 역시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했으나 책장을 덮을 때 만족할만한 책은 아니랄까.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책이라기 보다는 경매물품 안내책자에 가깝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었는데, 케이크 서버와 자몽 껍질 벗기는 칼을 봤을 때 그랬다. 그들의 귀여운 소품. 손수건, 티셔츠, 모자, 스커프, 시디, 책, 사진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 그리고 해마다 여자가 일기를 써서 손 때묻은 '스미슨 오브 본드 스트리트'의 다이어리. 아, 그 다이어리는 어찌나 갖고싶던지. 검색창에 쳐봤지만 국내에서 파는 다이어리가 아닌 것 같다. 약간 몰스킨 비슷하게 생겼는데. Irish Countryhouse Cooking은 요리책인데, 하하, 이것도 갖고 싶어서 알라딘에 외국도서로 검색해보니 이 책에 실린 사진과는 커버가 다르다. 다른책인지 같은 책인지를 모르겠어.
The Voyeur
케이크 서버
존 업다이크, 커플
irish Countryhouse Cooking
Edna O'brien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상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위의 사진은 정말 사랑스러운데 1052번의 사진은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22살때의 사진을 준 것이고, 밑에 사진은 여자가 그런 남자에게 답장으로 보낸 사진이다. "당신이 스물두 살일 때 난 아홉 살이었어. 키스허그.L." (p.28) ㅎㅎㅎㅎㅎ 이런건 나중에 써먹어도 좋을 것 같은 러블리한 대화다.
파티의 좌석배정표와 동전이 가득 든 양념 병 세 개도 경매물품으로 나와있다.
이게 내가 책장을 넘기다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다이어리. '스미슨 오브 본드 스트리트'의 제품.
책에 껴져있던 '둘런(여자)'의 전 남자친구 다섯 명의 사진. 하하하하하.
시디들. 내 방 어딘가에 나도 누군가 복사해준 시디가 있는데.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구매한 속옷들.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한 책. Irish Countryhouse Cooking
나는 개인적으로 와인 선물을 엄청 좋아하는데, 이 와인 두 병은 모리스(남자)가 밸런타인데이에 '둘런'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이 적혀있다.
모리스가 2005년 밸런타인데이에 이 와인 한 상자를 둘런에게 보냈다. 메모지가 붙어 있었는데(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그녀에게 동거를 제안했다. (p.76)
와- 완전 좋아. 와인 한 박스라니!! 와인 한 박스 선물하는 남자라니. 아..동거할 만 하다!! 뭔가 엄청나게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와인 한 박스를 선물하며 동거하자고 하면 어쩐지 예스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대신 조건이 있어. 와인이 다 떨어지기 전에 꼭 다시 한 박스씩 채워놔야 해!!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매해 쓰는 다이어리에, 둘런은 2005년 8월 13일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핼을 미워하는 것 같다." (p.103)
이런 메모도 메모장에 쓰기도 했다.
"권위적으로 좀 굴지 마/ 당신 스트레스를 내게 풀지 마/젠장, 제발 좀!" (p.103)
2003년에 핼은 둘런을 '버터 타르트' 라고 불렀는데.
이런 것이다. 이 책이, 그리고 그와 그녀의 관계가, 혹은 당신과 나의 감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