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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앞으로의 내 삶에서 내가 부모가 될 일은 아마도 없을거라고 나는 지금은 생각한다. 사람의 일이야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니 나는 당장 내년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내가 내년에 엄마가 된다면 예순이 될 때까지 내 아이의 양육에 힘써야 하고, 내게 이것은 아주 멀고도 험난한 길로만 여겨진다. 그러니 나는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 힘들지 않은 삶을 위해 부모가 되는 것을 내 인생에 어떤 목표나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질 않는다.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니 이기적으로 보일테지만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하기에는 그 선택이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섣불리 다른 길을 생각해보기 벅차다. 그런데 여기, 아들은 삼십대이고 아버지는 구십대인 부자가 있다. 계산해보니 58세에 아들을 낳은 셈이다. 이미 은퇴를 생각해야 할, 은퇴가 닥쳐올 나이에 새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을 해내고자 했던 사람들이라니.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생각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했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세상엔 나처럼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어쨌든,
그 아버지가 단기기억상실에 걸렸고, 아들은 이에 사진을 찍어 아버지의 시간들을 아니, 아버지와 자신이 함께하는 남은 시간들을 일지로 기록한다.
아흔 여덟의 생일까지 맞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주름 잡힌 얼굴.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애틋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해 몇 번이고 너의 엄마가 어디있느냐 묻고, 화장실에 가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나올라치면 바지를 추켜 올리며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마음은 아프고 아프다 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한 장 한 장 사진들을 넘기다가, 나는 자꾸 나의 부모를 생각한다. 나도 늙어가고 있지만 내 부모도 자꾸 늙어가고 있고,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 발악을 한다한들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텐데.
저자의 아버지는, 가끔 자신이 단기 기억상실임을 떠올린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는 다들 어디로 간거냐고, 노트에 글을 적는다. 우리는 이토록, 백 세에 가까워져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것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버지가 창 밖으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가만히 감상하는 사진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찍어준 아들의 사진도.
아마도 이 사진을 찍으며 아버지는 자신의 기억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아들의 모습을 저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아들.
빈 의자.
눈물과 빈 의자의 이유.
시간이 흐르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고, 그 시간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그저 늙어갈 뿐 다른 것들로 그 시간들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가 늙어간다는 걸 의미하고,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는 이별할 것임을 의미한다. 싫지만, 고통스러움에 발악하지만, 그렇다한들 우리의 이별을 막을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기록했다. 그것은 본인에게 의미있는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마지막 시간들을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할 필요는 없을 터.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지금 함께 있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보다는 우리 엄마가 이 책을 읽을 때 더 마음에 찬바람이 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는, 시간의 흐름으로만 봤을 때는 가장 죽음에 가까울 테니까. 내가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보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이 더 빠를 가능성이 있으니까.
나는 이 책을 나의 엄마께 읽어보시라 드릴것이다.
이별을 준비한다고해서 그 이별이 덜 슬퍼지는 것은 결코 아닐테지만, 이별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채로 있다가 이별이 들이닥친다면 그 때는 버텨내지 못할테니까. 무너져버릴테니까.
할 수만 있다면 이별의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