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그러나 그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걸.

엊그제 저녁, E 와 함께 오사카짬뽕을 먹고 있었다. 홍합을 골라내고(싫어..) 전복을 건져 먹고 면발을 먹는데 갑자기, 정종집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의 가사가 귀에 쏙- 들린다. 

좋아했어요- 

나는 오사카짬뽕을 먹다 말고 E 에게 물었다. 이거 휘성이야? 아, 모르겠는데요? 휘성 새노래 나왔대? 글쎄요.. 목소리가 휘성인데? 잘 모르겠어요.. 나는 스마트폰으로 휘성의 새노래를 검색해본다. 그리고 내가 들었던 노래의 제목이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고, 휘성은 나야말로 '아웃오브안중'의 가수인데, 제기랄, 이 노래 때문에 시디를 사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다음날 오전 시디를 검색하는데, 도무지 살 마음이 안생기는거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엠피삼 파일을 샀다. 마일리지 660점으로. 노래를 듣는데 가사가 진짜. 이모양이다. 


요즘 그대 밝은 표정 좋은 일이 있나봐요
혹시 전에 얘기했던 그 사람과 잘됐나요
(축하해) 해줄 수 있는 말 
(슬퍼도) 꼭 해야 하는 말
나도 기쁜 나머지 눈물이 다 흐르네요 Baby 

좋아했어요 세상 누구도 모르게 
그댈 욕심 냈어요 
내게 과분한 그댈 알지만
포기할게요 그만 꿈을 깰게요
좋은 친구 되줄게요

몸이 조금 아픈 탓에 얼굴빛이 좀 어둡죠
걱정해줘 고맙지만 약이 없는 병인걸요
(그대만) 고칠 수 있는 병 
(영원히) 낫지 못하는 병 
그대 때문에 걸린 사랑이란 아픈 병 


my girl 그래도 그댄 my girl 
되돌릴 수 없는 맘인걸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없다해도 my girl

좋아했다고 혹시 뒤늦게 말하면 
그대 날 안볼까요
내가 부담스러워 질까요 
그대 맘속에 단지 난 아는 사람
단지 그냥 편한 사람

좋아했어요 세상 누구도 모르게 
그댈 욕심 냈어요
내게 과분한 그댈 알지만
포기할게요 그만 꿈을 깰게요
좋은 친구 되줄게요


 

아.. 진짜 가사 어쩔거야. 왜이렇게 쩔어. 아이고.  

 

휘성아, 나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혹시.. 너 나랑 술마신거니? 술을 잔뜩 퍼마시고 오바이트 하러 갔다와서 내가 너에게 담배 한개비를 다오, 한거니? 담배를 받아 물고 술집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눈물 한줄기 흘리는 내 옆에 있었던 거니? 그때 내가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너한테 말한거야? 그래서 너는 옳다구나, 하고 메모장을 꺼내어 이 가사를 쓴거야? 그래? 그런거야? 나는 기억나지 않는 이 일들을 우리는 한거야? 아니면 이 세상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거야? 길을 걸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 직장일에 몰두하면서, 사실은 다들 이런 마음을 감추어 가면서 살고 있었던 거야? 그래? 후아- 가사 어쩌면 좋니.  

 

왓섭메신저로 친구에게 이 노래를 건네고 서로 들으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노래를 들려주며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 라고 나의 머저리에게 말하면 나는 그의 미져리가 되겠죠.]

 

그리고 퇴근길, 이 노래를 반복청취 해가며 실컷 쩔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듣는 내내 자꾸만 이 아픈 가사에 가슴이 아픈게 아니라, 머저리에게 이렇게 말하면 나는 미져리, 라고 했던 내 말이 생각나 너무 웃긴거다. 귀에서는 이 노래가 계속 들리는데 나는 자꾸만 실실 쪼개고..도무지 웃음이 참아지질 않는거다. 이건 뭔가..싸이코스러워. 

 

좋아했어요, 세상 누구도 모르게, 그댈 욕심냈어요.. 후아- 포기할게요, 그만 꿈을 깰게요, 좋은 친구 되줄게요.. 히융 ㅠㅠ 좋아했다고 혹시 뒤늦게 말하면, 그대 날 안볼까요, 흑흑 진짜 구질구질하구나. 흑흑. 휘성 만나 진짜 술 한잔 하고 싶다. 휘성아, 누나랑 술 한잔 하자. 우리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올림픽공원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자. 한 박스를 사가자(계산은 니가 해라. 니가 나보다 돈을 훨씬 잘 벌잖니). 마시다가 우리 울자. 울다가 마시자. 그러다가 오바이트하고, 또 마시자. 오바이트 할 때는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자.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또 술을 마시자. 우리 그러자. 니 맘 내가 알고 내 맘 니가 알고. 그렇지만 휘성아, 나는, 그에게,  

단지 '편한 사람' 이 될 마음은 없다. '좋은 친구' 따위가 되어줄 마음도 없다. 편한 사람이나 좋은 친구는 내가 아니어도 된다. 그게 너랑 내가 다른점이구나.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더블린 사람들]을 출근길에 들고 나왔다. 내가 이미 다른책에서 읽었던 단편, [애러비]가 있다. 한 여자를 향한 연정에 가슴 태우는 한 남자의 소중한 이야기. 오늘은 이걸 좀 읽어야겠다. 
 

   
 

나는 스스로도 종잡기 힘든 이상한 기도와 찬송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수시로 불쑥불쑥 되뇌었다. 눈에는 자주 눈물이 가득 고이고(그 까닭은 나도 말할 수 없었다) 때때로 심장에서 피가 확 솟구쳐 가슴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앞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말을 걸 수나 있을지 어떨지, 말을 건다 해도 나의 혼란스러운 연모의 감정을 어떻게 전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의 몸음 하프이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하프줄을 뜬는 손가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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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 2011-03-3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제임스 조이스 제발 율리시스 좀 해결 해 주세요. ㅠㅠ

다락방 2011-03-31 12:51   좋아요 0 | URL
단편을 보고 있자면 율리시스..읽는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미친 생각이 들어요, 버벌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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