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네 인생의 영화는 무엇이냐, 고 물어오면 자신있게 [더티 댄싱] 이라고 말한다. 더티 댄싱은 진정 내 인생 최고의 영화였고, 더티 댄싱을 본 이후로 나는 영화를 닥치는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여름이었던 것 같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겠다. 어른이 되어 더티 댄싱을 처음 봤다면 그렇게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그 이후로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흠뻑 빠져 엄청 좋아했는데 (그가 더티 댄싱에서 춤 추는 걸 보았다면 안 빠질 수가 없다!), 고등학교 1학년때인가,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영화가 개봉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아흑, 얼마만의 패트릭 스웨이지냐 싶어 냉큼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아. 이 영화속에서의 패트릭 스웨이지는 도둑이었다! 별로....매력이 없었다. 대신 나는 젊고 잘생긴 FBI 요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키에누 리브스. 두둥- 사춘기 여고생에겐 역시 도둑보다 FBI 인가, 혹은 늙은 남자보다는 젊은 남자인가, 혹은 조금 더 잘생긴 남자인가. 나는 패트릭 스웨이지로 가득찼던 마음에 키에누 리브스를 가득 채운다. 뭐,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 이 남자 누구야, 너무 잘생겼어, 하고 호들갑을 떨자 내 친구는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다른 영화를 보여준다.
그 친구는 '리버 피닉스'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좋아하고 있었고, 키에누 리브스를 좋아한다는 말에 가지고 있던 비디오 테입을 보여준 것인데, 와, 나는 또 이걸 보고 너무 좋은거다. 남창이라는 소재에 열일곱인데도 거부반응을 갖기는 커녕, 오히려 키에누 리브스가 결국 여자랑 커플이 됐을때 안타깝기까지 했다. 나는 돈을 받지 않고도 너를 사랑할 수 있어, 라고 말했던 리버 피닉스는, 이제 대체 어쩌라고! 이 영화를 보고 며칠 후, 리버 피닉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 전에도 또 그 후에도 연예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곤 했지만, 열일곱의 내게 들려온 리버 피닉스의 죽음은 너무 충격이었다. 리버 피닉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이 영화를 내게 소개시켜줬던 친구도 또 그 친구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던 나도, 교실에서 한동안 패닉에 빠졌었다.
키에누 리브스가 나온 모든 영화를 다 본 것 같지는 않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나는 대부분 좋아했고, 그 영화속에서의 그를 좋아했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오와- 정말로 절대자(ONE) 같았다! 나는 매트릭스의 1편이 제일 좋은데, 1편에서 자신이 절대자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총알을 피하며 허리를 휠 수 있었을 때,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얼마나 황홀했던가! 그러나 2,3편은 재미 없었다. 그리고 트리니티가 싫어..
[콘스탄틴] 에서의 귀신을 쫓는 그도 좋았고, [필링 미네소타]에서 카메론 디아즈랑 호흡을 맞춘 그도 좋았다. [스트리트 킹] 홍보차 내한했을 때 말이 많았지만, 난 그때도 그 영화속의 키에누 리브스가 좋았다. 그의 광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팬심은 부족한 여자사람) 그를 싫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 물론 [드라큘라] 에서의 그는 너무 찌질했지만..바보같았어.. 그러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한참이나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다정한 남자를 연기하는 그는 너무나 근사했다!! [구름속의 산책] 에서 제복을 입은 그는 멋졌고(!), [스피드] 에서의 그는 날쌘돌이였다. [스피드] 보면서 얼마나 산드라 블럭을 부러워 했었던가! 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구출할때, 나는 박수도 쳤었다!
얼마전에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키에누 리브스를 무척 좋아했고, 그에게 청혼을 받아 그와 결혼하게 됐다. 그런데 나는 그의 네번째 부인이었다. 이 사람은 나 말고도 세명이나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 하는 마음에 그와 결혼하지 않으려던 나는, 그러나 정말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하고 그와 결혼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한집에 살았는데(그러니까 그의 다른 세 부인들도) 어느날 나는 키에누 리브스와 단둘이 외출을 하게 되고, 사람 많은 거리를 걷게 된다. 그 사람많은 거리를 걸으면서 키에누 리브스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나는 또 걷다 말고 서운해지는 거다. 이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너무 많아, 이 거리의 많은 사람들도 그를 알면 사랑하게 되겠지, 나 따위, 하면서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돌아서 다른 길로 가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놓은 손을 키에누 리브스가 다시 잡아왔다. 그 사람들 많은 틈 속에서! 나는 다시 그만 몽글몽글해져버리고 말아, 아, 어쩔 수 없구나, 네번째 부인으로서 사랑해야 겠구나,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내 꿈은 항상 나에게 뭔가를 말해..
그리고 나는 며칠전부터 갑자기 키에누 리브스의 젊은 시절을 보고 싶어서, '폴라 압둘'의 『rush rush』를 듣기 시작했다. 이 노래속의 뮤직비디오에는 아주 젊은 키에누 리브스가 등장한다. 고등학교시절, 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이 뮤비를 보고, 다음날 흥분해서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러니까 나는 허구헌날 이런걸로만 수다를 떨었구나!
어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겨울에 손이 시렵다면 가을에는 가슴이 시리다는 것을. 어쨌든 그 밤과 새벽은 지나갔고, 나는 금요일을 살고 있으며, 이런 시린 가슴을 위로해 줄 것은 차디찬 소주 뿐이라는 사실도 알고있다. 소주로도 채 시린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는다면, 집에 돌아가는 길, 우동을 한그릇 먹자.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