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실비'의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를 읽고 있다. 하루에 페이퍼를 두개 이상 쓰지는 않기로 나름 결심 했었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또 써야겠다. 이 책에 대해서는 다 읽고 나면 아주 할 말이 많아질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미안해'에 대해서만 얘기해야겠다. 아주 길어서. 밑줄긋기로는 감당이 되질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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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보면 볼수록 그 말은 착한 사람이 쓰는 좋은 말임이 분명하다. 아무도 진정으로 선하지 않고 아무도 슬금슬금 다가오는 저주를 피하지 못한다.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한 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아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그 선을 넘게 되는지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비난을 감수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겸손한 태도다. 진심으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내 고통은 물론 상대방의 고통도 같이 느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함에 있다. 그렇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 상대방처럼 짓밟히고 물에 흠뻑 젖도록 해 주는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다시 채워진 빈 구멍과도 같다. 빌린 돈을 갚는 것과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한 행동의 결과물이다. 이는 심하게 상처 입은 결과가 수면 위로 보낸 잔물결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슬픔이다. 아는 것이 슬픔인 것처럼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때로 자기연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 자신을 연다는 뜻이다. 껴안건 조롱하건 복수하건간에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는 말이다. 착한 사람의 메트로놈은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진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는 할 수 있다. 틈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성찬식과 같다. 제물이며 선물이다.
그렇다. 미안하다는 말은 착한 사람들이 괴로운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회로망의 끊어진 틈을 통해서도, 마음속에 난 구멍을 통해서도, 그걸 느끼지도 말하지도 혹은 나무에 새기지도 혹은 손에 키스를 해서 날려 보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pp.33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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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는 세글자다. 그런데 이 세글자를 말하는것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빈번하게 잘못은 일어나는데 그 잘못들에 해당하는 만큼의 미안하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찰리의 말대로라면, 미안하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는 말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러놓고 용서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하려고는 하질 않으면서, 용서 받기는 원하고 있다. 나부터도 할 말은 없다. 나 역시 잊지 못할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고, 그것에 대해 아직까지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아직 내 자신을 열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열세 살, 찰리를 통해 나는 미안하다는 말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미안하다는 말의 슬픔과 용서를 깨닫는다.
열세 살, 찰리가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하퍼 리'이고, 좋아하는 작가는 '마크 트웨인'과 '잭 케루악'과 '켄 키지'다. 나는 그 작가들의 책을 검색해서 읽지 않은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 작가들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찰리처럼 어른스러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