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이 책의 상권을 선물했다. 그 친구는 그 책을 가지고 주말에 영월에 있는 자신의 집에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차 안에서 이 책을 다 읽고는 얼른 중권을 읽고 싶어 영월에 있는 서점 두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이 책의 중권을 구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쉽게 읽어내릴 수 없는 책이라 상권만 선물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중권과 하권까지 한꺼번에 선물할걸 그랬나보다. 

이 책의 하권은 상권이나 중권과는 다르다. 반전이라고 해야할지, 그 안에 담겨진 사연이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그러나 이 책의 하권도 슬프다. 

-너는 사라와 결혼할 수 없어. 너희는 오누이잖니. 너희는 결혼할 수 없어. 그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내가 말했다. 

-그러면, 저는 그냥 사라와 함께 살 거예요. 사라와 함께 사는 것을 아무도 못하게 하지는 않겠죠. 

-너는 앞으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을 얼마든지 만나게 될거야. 

나는 말했다.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p.166)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실제로 클라우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는 다시 한번 가슴에 와서 박히고만다. 

-너는 일부러 다른 얘기만 하는구나. 

-그래, 난 일부러 그러는 거야.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할 얘기도 없구. 

사라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잊어버렸어? 난 너를 잊지 않았어, 클라우스.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다시 만나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넌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군. 

-아니, 방금 깨달았어. 

그녀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렸다. (p.195)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라니. 하! 의미 없는 관계, 답 없는 관계란 얼마나 허망하고 가슴아픈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슬픔은 클라우스와 사라의 사랑만이 아니다. 아니, 이것은 가장 작은 슬픔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때 총을 맞은 루카스가 더 아픈 삶을 사는건지, 총을 맞은 루카스를 기다리는 엄마와 함께 사는 클라우스가 더 슬픈건지, 그들의 삶을 저울질 할 수나 있는지. 그건 슬픔, 바로 그 자체다.  

이 책을 읽고 났더니 사실, 다른 책들이 좀처럼 재미있게 느껴지질 않는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너무 쎈 까닭이다. 

이 책도 내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얇은 책. 그런데 이 책속의 사랑도, 죽음도..도무지 내게 와서 닿질 않았다.

이 책은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집중도 안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양 미간을 찌푸리다 보니 신경질이 나서 읽다가 포기했다. ㅠㅠ 

 이 책은 지난번에 몇장 읽었을 때 꽤 흥미로웠는데, 오늘 다시 읽으니 재미없다. 졸립다. 이것도 그냥 포기할까 말까 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이후에 집어드는 건 어떻게 된게 이렇게 다들 재미없기만 한건지. 흑.  

 

 

 

지인이 짝사랑중인데, 그 상대에게는 말도 못하고, 그저 혼자서 '그 사람은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울타리를 쳐 놓은 것 같다'는 표현을 내게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떠올랐다.  책 속에서의 남자는 시집을 냈고 그 시집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물한다. 그 책속에 이런 헌사를 써서. 

 

내 사랑은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내 庭園(정원)으로 들어왔네. 허락하지 않아도. (p.418) 

그녀가 그의 정원으로, 허락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뭐, 내가 남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토요일에는 2개월만에 만난 여동생과 산책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못보기는 살면서 처음이다. 임신 8개월째인 여동생과 올림픽공원을 갔고, 우리는 그 안에 있는 빵집에 들러 빵 구경을 했다.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빵집은 자리 때문인지 여느 빵집보다 훨신 빵값이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도 사가지고 나오진 않았다. 그저, 구경했을 뿐. 아, 나는 냄새도 좀 맡아봤다. 하핫. 



가끔 결혼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페트병의 뚜껑을 딸 때와 통조림의 뚜껑을 딸 때가 그렇다. 아 제길, 내가 왜 힘줘서 이 뚜껑들을 따고 있어야 하지?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신경질이 팍, 나면 잠깐 결혼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다행이라면, 그것들의 뚜껑을 딸 일이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거. 

토요일, 이 비싼 빵집을 나오면서 돈 많은 남자친구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돈이 아주아주아주아주 많은 남자친구. 나는 그와 이 비싼 빵집에 들어가 이렇게 말하는거다. 

"나 빵 사줘요." 

그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빵집을 사줄게요." 

이것이 진정 멋진 남자친구.  

 

아! 일요일이 가버리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미친 헛소리를 지껄여대고 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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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5-10 22:55   좋아요 0 | URL
전 갈비살 먹고 왔더니 배가 터져요, 레와님.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stillyours 2010-05-1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나는 오늘부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를 잡는데요, 벌써부터 팔다리가 후들거려요;ㅁ;

다락방 2010-05-10 22:55   좋아요 0 | URL
나더러 책을 또 사라는거에요? 응? ㅠㅠ

2010-05-10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0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icia 2010-05-1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 참참 다락님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미술관 너무좋지 않아요?
예전에 잠실 살 때 몇번 갔는데 거기 빵집 있었던것도 같아요, 예전엔 커피도 팔았는데 지금도 파나요?
이모부랑 아침에 운동하러 가서 조각공원 보고 미술관구경도 하고 집에 돌아올 땐 자반고등어 사주셨던 기억이 나요. :)
아이들만 기억력이 좋은게 아니라 사람이란 좋은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는가 봐요..

또 덧. 다락님 오늘 새벽세시 반값입니다. 아아 두권을 질러야 할까요? ㅠㅠ

다락방 2010-05-14 18:02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저 소마미술관 안가봤어요. ㅎㅎ
일전에 피카소전 할 때 올림픽공원에 갔었는데, 그 때 피카소전이 소마미술관에서 한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조각공원 보고 미술관구경 같이하는 이모부라니! 멋지잖아요 ㅠㅠ 그래도 우리 이모부는 농사지어서 과일같은거 잔뜩 주니까, 뭐. 괜찮아요. ㅎㅎ

네, 좋은 기억은 잊을 수 없죠. 좋은 사람을 잊기 힘든것처럼. 제게도 잊지 못할 기억들이 몇개 있어요. 아- 근데 갑자기 이 댓글을 쓰는 동안 뭔가 달달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기억. 배고파서 머리아픈데 이런 기억이 떠오르다니. 죽음이네요. ㅠㅠ


새벽 세시 반값이라 저도 하나 더살까 하는 미친(?!)생각을 했어요. 저 두권이나 있는데도! ㅎㅎ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도 전 이제 제 주변에 새벽 세시 안읽은 사람이 없어놔서리 ㅋㅋ심지어 회사 동료들까지도 다 읽었네요.

2010-05-14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1-01-10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댓글을 달 수 없는 페이퍼도 있군요!
잡으러 왔다가 그냥 갑니다....^^

다락방 2011-01-11 09:34   좋아요 0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정말이지 무척 좋아서(무척 아파서) 상권 중권 하권 읽을때마다 페이퍼를 썼더랬어요. 나중에 잡으러 다시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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