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완벽하지 못한 캐릭터였다. 그들은 갈등하고 흔들리고 심약했다. 자신의 직관보다는 주변의 말들에 휩쓸리기도 했다. 간사한 이야고를 마냥 욕할수만은 없지만, 휘둘리는 오셀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을 가지고 있고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리어왕도 답답했다. 그들 주변에는 언제나 지혜롭고 심지가 굳고 총명한 여자들- 데스데모나, 코딜리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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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줄리엣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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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니다. 나는 그들 모두의 그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그의 글 자체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로미오는 싫다. 그의 그 유약함은 도무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성향이다. 줄리엣에게 하룻밤만에 사랑을 맹세하는 그는, 사실 줄리엣을 보기전에는 다른 여자를 향한 연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남자였다. 영원한 사랑의 맹세따위는 그래서 송골매에게 던져버려야 하는 것. 사랑은 움직이는거고 관계는 변하는거라는 걸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로미오를 좋아할 순 없지만, 줄리엣은 좋다. 오늘, 영원한 사랑의 맹세 따위는 존재할 수 없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로미오의 맹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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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부인하고 그대 이름 거부해요.
그렇게 못한다면 애인이란 맹세만 하세요.
그럼 난 더 이상 캐풀렛이 아니에요.
더 들을까, 아니면 이쯤에서 말을 걸까?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 뿐이에요.
몬터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터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황벽성을
유지할 거에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그 말 듣고 가질게요.
애인이라 불러만 준다면 다시 세례받은 뒤
앞으로는 절대로 로미오라 안 할게요.
누구신대 이렇게 밤의 장막 속에서
제 비밀과 마주치게 된 거죠?
이름으론
누구인지 그대에게 말할 수 없군요.
성자시여, 제 이름을 제가 미워합니다.
그것이 그대의 적이기 때문이죠.
만약에 써 놨다면 찢어 버릴 겁니다.
그대 혀가 내놓은 말 내 귀로 마신 것이
백 마디도 안 되지만 그 음성은 알아요.
로미오가 아닌가요. 그리고 몬터규죠?
아가씨가 싫다면 어느 쪽도 아닙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말해 봐요, 뭣 때문에?
정원의 벽은 높고 넘어오기 힘들며
내 친척 누군가가 그대를 발견하면
그대 신분 고려할 때 여긴 죽는 곳이에요.
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을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면 과감히 하니까요.
그러므로 그대 친척 나를 막진 못합니다.
만약 보게 된다면 살해할 거에요.
아! 그들의 스무 자루 칼보다도 더 큰 위험이
그대 눈에 있답니다. 그대만 즐거우면
그들의 적개심은 날 찌르지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못 보면 좋겠어요.
밤의 외투 걸쳐서 그들 눈엔 안 띄지만
그대 사랑 없다면 찾아내라지요.
그들의 미움으로 내 생명 끝나는 게
사랑 없이 지연된 죽음보다 낫답니다.
누구의 안내로 이곳을 찾아낸 거에요?
사랑이 맨 처음 알아보라 귀띔했죠.
그는 내게 조언했고 난 눈을 빌려 줬답니다.
난 선장은 아니지만, 가장 먼 바닷물에 씻기는
불모의 해안만큼 그대가 멀리 있다 하여도
이런 상품 구하려고 모험했을 겁니다.
알다시피 밤의 가면 내 얼굴을 덮었어요.
안 그러면 오늘 밤에 들으신 말 때문에
처녀 뺨은 수줍어 붉어졌을 거에요.
격식을 차리고 싶어요. 했던 말을 기꺼이, 기꺼이
부인하고 싶어요. 하지만 관습은 버리자!
날 사랑하세요? "네"라고 말하실 줄 알아요.
그 말을 믿을게요. 그래도 맹세를 하신다면
거짓될 수 있답니다. 연인들의 위증에
조브 신이 웃는다고 하니까. 오, 로미오,
사랑하고 있다면 성실하게 선언해요.
만약 나를 너무 빨리 얻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구애하도록 심술궂게 찌푸리고
"안 돼요." 할 테지만, 아니라면 절대로 안 그래요.
참말이지 몬터규 님, 난 너무 좋아요.
그래서 내 행동을 가볍다 여길 수 있겠지만
날 믿어 주세요. 교활하게 쌀쌀맞은 여자보다
더 진실된 사람임을 입증할 테니까.
고백컨대, 그대가 나 몰래 참사랑의 감정을
엿듣지만 않았어도 그대를 더 쌀쌀맞게
대했을 거랍니다. 그러니 날 용서하고
어두운 밤중에 들켜 버린 이 허락을
가벼운 사랑의 탓으로 돌리지는 마세요.
과일나무 가지 끝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저기 저 축복받은 달님에게 서약컨대
오, 둥근 궤도 안에서 한 달 내내 변하는
지조 없는 달에게 맹세하진 마세요,
그대의 사랑도 그처럼 바뀌지 않도록.
어디에다 맹세하죠?
아무 맹세 마세요.
하겠다면 품위 있는 자신에게 맹세해요,
이 몸이 우상으로 숭배하는 신이니까.
그럼 믿을 거에요.
내 가슴의 사랑이
저, 맹세하지 말아요. 그대가 좋긴 해도
오늘 밤 이 언약은 즐겁지 않답니다.
너무너무 성급하고 무모하고 빨라요.
"번개 친다." 말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번개와 너무나 꼭 같아요. 잘 자요!
이 사랑의 새싹은 여름의 숨결로 자라나
우리 다음 만날 땐 예쁜 꽃 필 거에요.
잘 자요, 잘 자요! 내 가슴속에 있는
감미로운 휴식이 그대의 마음에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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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못 보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줄리엣이라니!
도대체 왜! 줄리엣은 로미오를 사랑하는 걸까. 알 수가 없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