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첫번째 이유는 '재미'다. 나는 책을 재미있어서 읽는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된 순간부터 나는 책을 읽었다.

집에는 책이 없었고, 그래서 책을 볼 수 있는 다른 집들이 좋았다. 친척이나 친구네 집에 갔다가 책장에 책이 꽂혀 있으면 나는 얼른 한 권 빼내 읽었더랬다. 어떤 어른들은 신기하다고 '너 정말 글자를 읽을 줄 아니?' 하며 내게 책을 읽어보라 했다. 그때도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도, 책을 재미있어서 읽는다. 책 안읽는 사람들은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책 읽으라고 하면 잔소리가 되겠죠..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기쁨에 재미 플러스 다른 것들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앎의 쾌락과 약간의 통증... '(네? ㅋㅋ) 이라 할 수 있을텐데, 그러니까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좋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툭 건드려주는 것도 좋은거다. 여기, 크리스틴 델피가 유산 상속에 대해 말할 때, 아 맞네 맞네 정말 맞다 하고 고개 끄덕이면서 나는 기뻐했다.



나는 유산 상속을 연구 주제로 택했다. 이 연구에서 나는 첫 번째 발견을 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재산이 시장을 통해서 이동하지 않고 가족 안에서 순환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 재산은 '유산'이라고 불린다. 나는 또한 재산에 대해 모든 것을 다룬다고 알려진 경제학이 사실은 생산, 순환, 소비 체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부분, 즉 시장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p.6~7



아니 진짜 맞잖아? 어마어마한 양의 재산이 가족 안에서 순환해!! 아니, 맞잖아?!

나는 여기에서 인도의 결혼을 생각한다. 가족간의 재산의 흐름, 지참금.


여성들은 결혼할 때 부모의 집을 떠나 매우 멀리 떨어진 남편의 가정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성들은 일단 결혼하고 나면 죽은 뒤에라야 남편의 집을 떠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과 굴육을 참아내야 한다는 권고를 받는다. 며느리는 새 자겅에 적응하려면 늘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한다. 며느리는 시가 식구들에게 고분고분 순종해야 하며,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대해서도 사심 없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편의 가족은 현금은 물론 특별히 지참금 용도로 제작하거나 구입한 보석 및 가정용품을 받는다. 지참금을 딸이 받는 상속 재산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Goody 1976).

이와 관련해서 집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페미사이드], 다이애나 E.H.러셀 &질 래드퍼드, p.231-232
















여자가 시집가기 위해 필요한 게 지참금이라면, 그러나 그 지참금은 그 여자의 재산인가? 시집가는데 필요한 그 돈은, 여성이 집으로 부터 받은 돈이 아니다. 사유재산이었던 적이 한 순간도 없다. 유산으로 받은 것도 당연히 아니다. 크리스틴 델피와 맞닿는 지점은, 가족 내에서 받게 되는 이 유산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러나 여성으로서 이 유산에 대한 지분이 얼만큼이냐 하는것이 아닐까. 인도에서 여자가 결혼할 때, 여자의 아버지가 쥐고 있던 돈은 이제 여자가 결혼할 남자에게로 그리고 그 남자의 부모에게로 간다. 딸을 낳으면 지참금 마련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러나 그 돈은 단 한 순간도 여자에게 가본 적이 없다. 여자는 그 돈을 만져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뿐인가. 여자는 사유재산을 가져본 적도 없는데 얼라리여, 그건 그녀가 또한, 사유재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여성의 노예상태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는 더 나은 지위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아킬레스가 그의 막사에서 화를 내고 싸움에서 후퇴하게 만든 그 사건에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스를 위협하고 무력으로 브리세이스를 강탈한 뒤로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그녀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아킬레스에 대항해서 명예를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이것은 여성의 사물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 [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P149



내가 처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회계약이 가부장적인 계약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계약이 아버지들-그들이 동의함으로써 가족이 묶여지는 것이라고 여겨지는-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범주가 아무나와 누구나를 뜻하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개인들'은 사회계약을 맺지 않는다. 거기에 여자들의 몫은 없다: 자연적 주체들로서 여자들은 [계약에서]요구되는 수용력과 능력을 결여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에서의 '개인들'이란 남자들이지만 그들은 아버지로서 행위하지 않는다. 결국 이 이야기들은 아버지의 정치적 권력이 패퇴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남자들은 더이상 아버지로서의 정치적인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남편들이기도 하며-로크의 친구 티럴(Tyrrell)은 아내들이 '남편들에 의해 체결된다'라고 적고 있다-또 다른 관점에서, 사회계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아들들 내지는 형제들이기도 하다. 계약은 형제들-혹은 형제애적 집단(fraternity)-이 맺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형제애가 자유와 평등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출현한 것도, 형제애가 정확하게 그것이 말하는바- 즉, 형제들 간의 사랑(brotherhood)-를 의미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여자들의 무질서], 캐롤 페이트먼, p.72-73

















자, 계속 읽어보도록 하자!! 빠샤!!



가정 내 생산 양식은 여성 종속의 다른 요소들, 특히 억압-경제적 착취처럼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예컨대 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성화된 폭력(대상이 여성이냐 혹은 남성이냐와 연결된)과 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성적 폭력(해부학적 기관으로서의 성기와 연결된)-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폭력의 일부를 여성의 노동력 전유와 연결 지을 수 있다. - P31

오직 여성에 대해서만 우리는 결혼 여부를 사회 직능적 지표로 활용한다. 그러니 여성들이 사회 직능 범주(CSP)에 따라 평가받는 ‘남편과 같은 계급‘에 속하게 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어디 있겠는가.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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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09 16: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재미있어서 읽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앎의 쾌락과 약간의 통증...’(네? ㅋㅋ)도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번에 인용하신 구절들 보니까 게일 루빈 <일탈>이 좀 떠오르는데요, 루빈은 그 책에서 여성 억압의 시작이 친족의 기원에서부터 비롯한다고 봤어요. 레비스트로스의 친족 구조 개념을 빌려와서 근친상간 금기 때문에 최초로 섹슈얼리티 통제가 발생한다고 봤거든요.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근친상간을 금기하는 이유가 사실은 어머니, 여자 형제, 딸들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낼 수 있도록, 즉 여성을 선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이라는 거죠. 족외혼이나 혼인을 통해 여성을 물건처럼 교환하고 이런 과정에서 남성은 거래의 주체로서 존재하고 여성 거래는 결국 남성들 간의 연대를 굳건히 해주고 기타 등등.......

단발머리 2024-04-09 22:44   좋아요 1 | URL
제가 항상 궁금했던 부분이 그 여성의 사물화잖아요. 그니깐 왜 여성을 물건처럼 교환했을까. 다른 부족과 친해지기 위해 왜 여성을 교환했을까. 왜 여성이 선물이었을까. 결국엔 재생산이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여성 억압의 시초도 재생산이 가능한 신체의 문제로 좁혀지니깐요. 다시 몸인가... 하는 회의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기타 등등 .......

다락방 2024-04-11 09:49   좋아요 1 | URL
저는 근친상간 금지인 사회에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혹은 거기에 플러스 알파된 다른 많은 이유들 때문인지 여하튼 근친상간 진짜 너무 싫어하는데 말입니다, 근친상간을 금기하는 이유가 여자 구성원들을 다른 사람에게 재산으로 보낼 수 있기 위해서였다면, 그러니까 만약 여자를 재산으로 보지 않았다면, 근친상간은 금기가 아니었을 거란 말이 되는걸까요? 그건 그것대로 진짜 너무 싫고 징그러워서 ㅠㅠ 클레오파트라 아버지였나, 권력을 위해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할 계획이었다고 했는데 ㅠㅠ 너무 역겹고 토나와요 ㅠㅠ

단발머리 님 말씀대로 결국은 여성의 재생산, 생산능력, 자궁.. 이 되는걸까요. 우리가 함께 읽은 [여성 괴물]이 그렇다고 말해주긴 했는데 말이지요. 결국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남자는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여성 억압이 시작되고 사유재산화가 시작되고... 후아-

단발머리 2024-04-09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읽으면서 키워드를 세 개 (책 읽으면서 키워드 뽑는 편) 뽑았는데, 유산, 결혼, 가정경제였습니다 ㅎㅎㅎ
여성의 손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재산이 오로지 그 외부에서만, 아버지, 남편, 시부모를 통해서만 순환한다는 건,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크리스틴 델피는 참 정교하게 잘 집어내는 거 같아요. 저도 오늘 이 책 다 읽었고, 이제 글 쓰려고 부릉부릉 준비중입니다.
네 권이라 한 주에 한 권씩 읽으려 했는데 벌써 둘째주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11 09:46   좋아요 1 | URL
저도 일단 서문을 끝내놔서 한 권 마쳤다 얏호~ 하고 있지만 서문 뒤로는 책이 점점 더 분량이 많아지더라고요? 뭐하러 네 권으로 쪼개놨나 싶다가도 가지고다니기 너무 가벼워서 매우 만족중입니다. 열심히 읽어봅시다, 단발머리 님!! 똑똑한 여성들의 글을 읽는 건 넘나 짜릿합니다.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