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음악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언젠가부터 듣지 않고 있다. 아마 이것도 나에게는 노화의 한 과정이려니, 한다. 연말에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2차로 까페를 갔는데,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직원들이 이야기를 했다. 요즘 귀는 잘 들려? 난 이제 귀도 잘 안들려, 하고. 그 말을 듣던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노안이 와서 고통스러운데, 이러다가 귀도 잘 안들리게 된다는거에요? 하아-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내가 오늘은 아침 출근길에 노래를 들었다. 얼마전부터 김동률과 이소라가 부른 <사랑한다 말해도>를 좋아서 듣게 됐는데, 그거 듣다 보면 끝까지 못듣고 반드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재생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오늘도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들으면서 왔다.


새삼 운명의 흐름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몰랐던 노래도 아니고 싫어했던 노래도 아니지만 한참동안 딱히 들을 일은 없는 노래였는데, 언제였지, 요가 수업 마치고 수련실 나서는동안 선생님이 이 노래를 틀어둔 거였다. 평소 가요는 틀어두지 않으셨었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이 노래로 수련생들을 보내셨고, 그런데 그 때 그 노래가 그렇게나 좋았던거다. 그 후로 간혹 듣게 되었고 요즘에는 아침에 반복해 듣게 된다.


얼마전 언급한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외출하지 않는 삶을 사는 친구가 운동은 격한 걸 즐기고 맨날 싸돌아다니는 나는 운동할 때는 요가 매트만큼의 공간만 필요한 것은 나름의 균형을 맞추는 삶이 아니겠는가 했는데, 음악에서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조용하고, 혼자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은 노래는 발랄하고 경쾌한 걸 듣는다. 그런 한편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빨빨거리는 나는 음악은 발라드를 듣는다. 가사 있는 발라드. 나는 시끄러운 음악도 싫고 소리 빽빽 지르는 음악도 싫다. 일전에 여행 갔을 때 내 여행 친구는 블루트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내 플레이 리스트들 들으며 '왜이렇게 축축 쳐지는 음악뿐이야?' 라고 물었더랬고, 나의 이모는 '이거 다 니가 선택해서 나오는 곡이야?' 를 물었더랬다. 아, 내 음악, 나 혼자 듣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각설하고,


그렇게 오늘 아침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듣는데, 가사가 아주 명문이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괜한 우려였는지

서먹한 내가 되려 어색했을까

어제 나의 전활 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 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그땐 우리 너무 어렸었다며

지난 얘기들로 웃음 짓다가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기다려왔다고

널 기다리는 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여전히 난 부족하지만 받아주겠냐고

널 사랑하는 게 내 삶에 전부라

어쩔 수 없다고 말야

그땐 사랑인줄 몰랐었다며

가끔 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항상 미안했단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언젠가는 내게 돌아올 운명이었다고

널 잊는다는 게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이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좋은 친구처럼 편하게 받아주겠냐고

다시 태어나도 널 사랑하는 게

내 삶에 이유란 말야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 



나도 아직 혼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감성 촉촉해져 듣고 있다가, '널 기다리는 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에서 감성이 폭죽처럼 폭발한다. 팡팡- 파바바바팡- 그러다 불쑥, 어, 이거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그랬는데, 그런데 그건 내가 잘한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것 뿐이었다고, 촉촉한 감성을 건드리는 그런 문장이 있었는데, 최근이었는데, 뭐였지? 하고 생각하게 된거다. 헌치백? 아냐 그거 아니야. 아니 에르노? 노노 아니야, 아 뭐지? 있었는데, 촉촉했는데, 내 가슴 후벼팠는데? 하다가 퍼뜩 떠올랐다. 하루키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p.681)











아! 하루키였어, 하루키였다.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노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기다리는 게 나에게 제일 쉬웠던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아 오늘 아침, 감성 폭발한다. 


아아, 스타벅스 다녀오자. 커피 사러 다녀오자. 나는 사무실에 들러 업무할 준비를 대충 해놓고 텀블러를 들고 나간다. 여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다.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한 마음이 되어 나도 노래한다. 그리고 앱을 통해 주문한다. 개인컵에 체크하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따뜻하게 주문해놓고 포부도 당당하게 까페로 향했다. 까페에 도착해 텀블러를 내밀며 사이렌 오더요, 했다. 직원은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물었고, 나는 다락방이요, 했다. 그러자 그는 이미 종이컵에 담겨 있는 음료를 들어올리며 아, 제가 개인컵인 줄 모르고 종이컵에 담아놨네요, 금방 옮겨 드릴게요, 하고는 내 텀블러에 커피를 옮긴다.


저기요..

나는 욱하고 한마디를 하고 싶다.

저기요, 그러면 제가 텀블러에 주문한 의미가 뭐가 되나요? 하아-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참는다. 오늘은 나 감성 포텐 터지는 날. 다른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기 말자.

나는 웃으며 커피를 받아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감사해요!"


그리고 다시 카운터로 가, "하트파이 두 개만 주세요"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다시 걸으며 '아직 혼자'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 혼자. 아직 혼자라는 말은 앞으로도 혼자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고 앞으로는 혼자가 아닐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쩔 것인가? 나는 혼자일 것이고, 나는 혼자이기로 결심했다. 왜인고 하니,



내가 너무 코를 골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주말에 남동생 집에 가서 여동생, 조카2 와 함께 잤는데 흑흑 내가 너무 코를 심하게 골았대. 나는 내 코고는 소리를 내가 듣진 못하지만 함께 잔 사람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남동생도 나 잘 때 깨운 적이 있다. 술 마시면 더 심하게 코를 고는데, 술을 매일 마시는 게 함정.. 아무튼 그래서 내가 주말에 다같이 밥을 먹으면서,


"나는 그냥 평생 혼자 살거야. 사는 것도 혼자 살 거고 여행도 혼자 갈거야. 그게 모두가 편한 길인 것 같아. 난 혼자야."


이러자 동생들이 뭐 그럴 것까지 있냐, 결혼하게 되면 각방 쓰면 되고 여행 가면 방 두 개 잡으면 되지, 했다. 뭐, 그건 그렇네. 그렇지만, 내가 코를 골아.. 심하게 곤다. 나는 혼자다. 나는 혼자이기를 선택한다. 그렇지만 하루키식으로 하자면,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혼자인 것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아- 그러다 동료의 권유로 며칠전에 들어가봤던 <포스텔러> 앱의 외로움 지수 생각이 났다.


나 외로움 지수 몇이게 얘들아? 

짜잔-





외로움을 전혀 타지 않는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절당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여자 어떤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해보라고 동료가 말하면서 '너 근데 외로움 안느낀다고 나올 것 같아' 라고 했는데, 진짜 해보니 외로움 안느낀다고 나온 부분… 역시…나는 정말 얼음나라 공주였던건가? 휴… 그러나,


저기 나와 있는 것처럼 나도 외로움 느낀다. 이 외로움이 그 외로움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코를 너무 골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쉬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니 왜 나를 코골게 나으셨나요?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혼자뿐!! 아무튼 코를 심하게 고는 나는,



아직 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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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1-11 17:24   좋아요 0 | URL
웃다 날아간 괭

다락방 2024-01-12 08:25   좋아요 2 | URL
저에게 가족이 있는것은 맞지만 친구가 많은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베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고독이 나의 친구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가슴 깊은 곳의 고독.. ㅋㅋㅋㅋㅋ
저는 혼자 먹는게 너무 편한데요, 혼자 먹으면 불편한 건 많은 종류를 맛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데 죄다 시키면 남길 수밖에 없고.. 그래도 혼자가 편하긴 합니다. 제 취향과 제 속도에 맞춰서 먹을 수 있어서 말이지요. 후훗.

맞습니다, 각방 쓰면서 같이 살면 되지요. 같이 안살아도 되고요. 넌 니 집 살아 난 내 집 살게. 가끔 오고가는 걸로 하자~ 이러면 또 괜찮으니까. ㅋㅋㅋㅋ아 그런데 잘 때가 문제니까 역시 침실 두 개를 갖춘 집을 가져야겠어요. 핀란드에도 집 한 채 사놓고..(뜬금)

잠자냥 2024-01-12 08:49   좋아요 1 | URL
엥??? 락방아 혼자서도 충분히 많은 메뉴 먹고 있잖아…?!

다락방 2024-01-12 09:04   좋아요 1 | URL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건 그보다 더 많다구욧!! ㅡㅡ^

감은빛 2024-01-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읽고 댓글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안 달았군요.
이상하게 최근에 몇몇 사람들하고 코고는 문제에 대해 대화하게 되었어요.
친한 친구가 최근 집에서 먼 지역으로 발령받아서, 집을 떠나 다른 직원들과 숙소에서 지내는데,
룸메이트로 배정받은 아저씨가 코를 엄청 심하게 골아서 밤에 잠을 못 잔다는 얘길 들었어요.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분이 너도 코 골던데 하고 말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고 하더라구요.

또 최근에 다른 자리에서 누군가가 코를 심하게 골아서 걱정된다는 얘길 나눴었거든요.
제 주위에 코골이가 심한 사람들이 제법 많아요.
그리고 저도 심하지는 않지만, 있다고 들었어요. 피곤한 날, 술을 많이 마신 날엔 그렇대요.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코골이가 아예 없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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