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미러링의 발화자들은 자신의 언어가 남성 청자에게 거부감없이 수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러링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원본이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고, 미러링(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중잣대와 이를 만든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통해 젠더 권력의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잡음 없이 받아들여졌느냐‘는 기준은 미러링의 성공적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잡음과 거부감의 유발이 미러링의 목적 달성을 돕는다.
미러링을 통해 표현된 언어의 원본은 ‘일간베스트‘ 뿐만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엠엘비파크‘ 등 온라인 공간의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생산되고 누적되어온 여성혐오 발언과 철저하게 대립쌍을 이루고 있다. 이 대립의 구조는 미러링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순간그의 원본이 되는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함께 비판하지 않을 수 없도록짜여진 언어적 전략이다. 못마땅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러링을 수용하는 사람의 존재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성차별주의자로 만드는 구도인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 발화 방식을 통해 이뤄낸 목적 외의성과 중 하나는 언어 시장의 청자 일반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바꾸고있다는 것이다. - P72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 발화 방식을 통해 이뤄낸 목적 외의성과 중 하나는 언어 시장의 청자 일반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바꾸고있다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에서는 원본의 폭력성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격한 표현들이 미러링의 전부인 것처럼 재현되지만, ‘여자가큰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좀 할 수 있지‘, ‘역시 큰일은 여자가 해야‘ 등 일상에서 오가는 언어를 비튼 표현도 존재한다. 온라인 공간의 여성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이런 종류의 표현은 원본의 차별성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자체로 여성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 P72

미러링의 발화자들은 자신들의 언어 생산물이 ‘절대로 원본(의 폭력성과 현실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기에 미러링을 만들 수 있었다. 여성들의 신체적 감각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는 누적된 경험의 결과물로, 여성들이 그동안 노출되어왔던 여성혐오적인 게시물의 규모와, 거기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평가 기준에 얼마나 주목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 P73

오프라인 시위 현장에서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이용해 얼굴을 가리는 행위는 1차적으로는 신변과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지만, 그동안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닌 여자로서의 내 얼굴이 말의 가치와 진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던 경험에서나온 것이기도 하다. 주류 언론과의 개인 인터뷰를 철저하게 통제하는것 역시 그동안 여성들이 언론과 맺어온 관계에서 비롯한다. 여성들은자신의 말을 언론이 보태고 자르기를 통해 어떻게 소비시킬 수 있는지를알고 있으며, 노출된 한 사람에게 위험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있다. 한때의 ‘영웅‘이 어떻게 ‘마녀‘로 몰려 매장당하는지를 보아온 탓이기도 하다. 더불어 여러 가지 의제가 뒤섞인 사회운동이 그 ‘배후‘와
‘순수성‘을 묻는 질문 앞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한국인으로서의 여성은 시위를 하나의 의제를 목적하는 것으로 통제하고, 개인이아닌 조직의 이름을 내세워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을 차단하기도 한다. - P74

다음의 사진은 디지털 매체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싸움 성과가 가장전통적인 매체에 의해 재현된 모습이다. 『타임』 지는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을 선정했다. 표지는 여성들이(2016지금까지 무엇을 이뤄왔는지를 영광스럽게 재현하면서, 우리가 불안 때문에 무엇을 ‘못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상징적 기호를 담고 있다. 표지의 오른쪽 아래에 드러난오른팔의 모습이 그것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이 여성은 이미 당한성폭력에 이어 자신과 가족들이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려움을 이기고 침묵을 깬공로를 인정받는 상황에서조차 여성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 P75

여성들의 불안이 사회적이고 젠더화된 감정인 만큼, 익명의 여성이느꼈을 불안은 자신이 달성한 성취의 영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개인적 차원의 안타까움 이상의 파장을 갖는다. 가령 이화여대의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위한 시위가 끝난 뒤, 학교 본관을 점령했던 기간 동안쌓아왔던 시위 관련 데이터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여전히 공포의 기억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교내의 모니터에는 시위 관련 장면을 띄울 수 없고,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시위와 관련된 기억을 모든 세상이 다 잊어줬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학생도 있다. ‘여성혐오‘라는 말이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 나오기전부터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던 학생들은 끝내 익명성을 선택했다(진명선, 2017.11.13). 이렇게 여전히 내재된 불안이 여성의 성공 경험 명명과 기록을 방해하는 탓에, 우리는 그녀들이 누구이고 무슨 일을했는지 아직 다 알 수가 없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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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변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
    from 마지막 키스 2022-09-21 08:09 
    아, 진짜 이 책 너무 좋다. 두번째 꼭지 백지연의 <불안에도 불구하고>까지 읽었다. 제일 처음 김예란의 글도 너무 좋았는데, 백지연의 글도 진짜 너무 좋다. 그간 학자들도 그렇고 스스로 옳다고 확신을 가진 많은 사람들도 여성들의 미러링 말하기에 대해 비난하는 걸 익히 들어왔는데, 백지연은 미러링이 왜 생겼는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잘 밝혀주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말하기를 시도하는 지금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젊은 여성
 
 
공쟝쟝 2022-09-2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해하는 부장님 💪

다락방 2022-09-21 07:49   좋아요 1 | URL
페이퍼 쓰는 중입니다 ㅋㅋ

공쟝쟝 2022-09-21 10:4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은 다락방에게 글을 쓰게 한다! 참 조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