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le 2006-12-07
언젠가 다락방님이 로맨틱하고 아름다우며 영혼을 울리는 시를 추천해달라고 했던 게 떠오르네요. 오늘 화장실에 가면서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를 빼들었다가 아래 시를 읽고 이 시가 어쩌면 다락방님이 찾던 바로 그 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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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 심장 속 새집의 열쇠를 빌려드릴께요.
내 몸을 맑은 시냇물 줄기로 휘감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몸 속을 작은 조약돌로 굴러다닐께요.
내 텃밭에 푸른 씨앗이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창가로 기어올라 빨간 깨꽃으로
까꿍! 피어날께요.
엄하지만 다정한 내 아빠가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너그럽고 순한 당신의 엄마가 되드릴께요.
오늘 밤 내게 단 한 번의 깊은 입맞춤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예쁜 아이를 낳아드릴께요.
그리고 어느 저녁 늦은 햇빛에 실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저무는 산 그림자보다 기인 눈빛으로
잠시만 나를 바래다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뭇별들 사이에 그윽한 눈동자로 누워
밤마다 당신을 지켜봐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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