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두 편의 단편을 함께 읽기로 했었고 그 중 하나는 <산책 The Walk> 이라는 짧은 단편이었다.


데니는 저녁을 먹고 산책하러 나간다. 걸으면서 자신의 자식들이 이상한가에 대해 생각했고, 그 애들은 왜그렇게 결혼을 빨리했던 걸까, 생각한다. 다른 집 자식들은 좀 더 늦은 나이에 했고 늦은 나이에 해도 잘생긴 누군가는 예쁜 여자랑 결혼했던데. 내 아이들은 어딘가 좀 이상한가, 하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고등학생시절, 그는 학교에 '도리 페이지'를 보기 위해 간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학생.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학생. 자신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는 기쁜 마음으로 도리와 친구가 된다. 도리는 가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너에 대해 말해봐, 라며 그를 궁금해하던 학생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그정도의 친밀함을 유지해왔지만, 둘은 갈 길이 달랐다. 도리 페이지는 너무나 예쁘면서 동시에 너무나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도리 페이지는 당연히 대학에 진학할 터였다. 그러나 데니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 페이지는 뉴욕주의 대학에 진학했고,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데니는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와 고등학교 졸업후 일년도 되지 않아 결혼했다. 그렇게 다시 만날 일 없었던 도리의 소식을, 어느날 데니가 일하던 가게에 찾아든 동창으로부터 듣게 된다. 도리가 바사대학을 졸업하고 자살했다는 거였다.



But he remembered where he was-right outside the main gorcery store here in town-when he found out that she had vinished Vassar and then killed herself. It was Trish Bibber who told him, a girl they had been in school with, and when Denny said, "Why?, " Trish had looked at the ground and then she said, "Denny, you guys were friendly, so I don't know if you knew. But there was sexual abuse in her house."

"What do you mean?" Dinny asked, and he asked because his mind was having trouble understanding this.

"Her father," said Trish. And she stood with him for a few momints while he took this in. She looked at tim kindly and said, "I'm sorry, Denny." He always remembered that too: Tisht's look of kindness as she told him this.

So that was the story of Dorie Paige. -p.144-145


하지만 그녀가 바사를 졸업하고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했다-타운의 큰 식료품점 바로 앞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트리시 비버였다. 데니가 "왜 그랬대?" 하고 물었을 때 트리시는 땅을 내려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데니, 너희 둘이 친하게 지내서 혹 알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집에서 성적 학대가 있었대."

"무슨 뜻이야?" 데니가 물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대." 트리시가 말했다. 그리고 데니가 그 말을 이해하는 동안, 잠시 그와 함께 서 있었다. 트리시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안됐어, 데니." 그는 그것 역시 늘 기억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할때 트리시가 보여준 다정한 얼굴.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책 속에서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이다. 

이 단편은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데니의 이야기니까.

저 학창 시절의 일을 생각하고 그간 생각하지 않았던 도리를 떠올리면서, 내 자식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데니는 자기네 집이 사실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저 일과, 잘생겼던 마을 청년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 마약중독자가 되어 길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고서. 그러니까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나가는 이야기이다, 데니에게는. 학창 시절 도리를 아주 많이 좋아했고 그녀와 친한게 기뻣어도, 어느 순간 소식이 끊기고 죽고 나서야 죽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는 그만큼의 관계였다. 그렇게 데니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도리 페이지.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것이 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생 자체가 끝나버렸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가 더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우리는 그녀의 가능성에 대해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신의 소설 [롤리타]를 통해, 어린시절 성적 학대를 받았던 생존자는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해 기술한다. 그 아이는 가장 잘할 수있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없고 인생이 다른 식으로 진행되어 버린다. 성적 학대가 그녀로 하여금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게, 재능을 꽃피울 수 없게 만들었다. 롤리타는 험버트를 피해 도망쳐야 했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학업도 특기활동도 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재능있어도 그녀는 또다른 학대의 희생자가 되어야만 했다.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는 그녀의 현재를 짓밟았으며 미래의 방향도 다르게 설정해버렸다.

나보코프는 그 점에 대해 자신의 소설에서 짚고 넘어가고 있다.




그녀는 테니스보다 수영을 좋아했고, 수영보다 연극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주장한다. 만일 그녀 내부의 어떤 것이 나에 의해 부서지지 않았더라면-아, 그때는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그녀는 그 완벽한 폼에다 이기겠다는 의지를 덧붙여 진짜 여성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라고. 팔 밑에 라켓 둘을 끼고 윔블던에 있던 돌로레스. 아라비아의 낙타를 선전하는 돌로레스. 프로 선수가 되었을 돌로레스. 영화에서 여성 챔피언을 연기할 돌로레스. 돌로레스와, 흰 머리에 겸손하고 말 없는 코치인 남편, 늙은 험버트. (p.316)









성적학대의 생존자가 반드시 부서진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비극적인 결말만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당한 성적 학대는 그 희생자의 미래를 아예 다른 식으로 틀어버릴 수 있다는 거다. 만약 도리 페이지에게 아버지의 성적 학대가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도리 페이지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메인 주에서 뉴욕 주에 있는 바사대학으로 진학한 것은, 순전히 학업 때문이었을까? 데니에게 형제가 많아 부럽다는 얘기를 했던 그 이면에는, 나에겐 나를 이 상황으로부터 꺼내줄 형제가 없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게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학생으로 그리고 가장 똑똑한 학생으로 소문난 채 학교에 다니면서 그녀의 내면은 얼마만큼 많은 걸 감당하고 겪어내야 했을까.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보여주는 게 내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지금 어둠 속에 있다고, 나를 꺼내 달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뉴욕주의 바사대학까지 가서, 졸업까지 하고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살아보지 못하고 끝내 삶을 마감해야 했던 도리 페이지의 그 다음 생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사대학을 선택하고 진학하기까지, 그리고 대학 내내 공부하면서, 일년만 더 일년만더, 그리고 졸업까지만, 하면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저 버텼던 것은 아닐까. 괜찮아질거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는 아마도 수백차례였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생을 스스로 끝내고 말았다. 그것이 그녀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왜 내내 버티다가 이제와서 죽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해전 보았던 티비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왔었다. 어린시절 성적학대를 당했던 여성이 대학까지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버틸 만큼 버텼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나는 할 수 있어.. 하면서 그렇게 몇 년을 더 살아내었을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신디 쿰스에게 네 뒤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죽기 마련이라고, 네 다음이라고.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도리 페이지도 언젠가는 죽었을 것이다. 기어코 죽음은 도리 페이지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죽음에 예외는 없으니까. 그러나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닐 수는 있었다. 데니에게 '여기까지가 도리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이다'가 아니라, 그 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도리 페이지는 살아서, 살아 남아서 더 긴 이야기를 쓰고 더 화려하고 더 반짝이는 이야기를 쓰고, 아니 어쩌면 그저 소소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를 쓴다 해도, 조용한 이야기를 쓴다 해도, '여기서 끝'은 아닐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인게 너무 안타깝다. 누가 그녀의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도록 만들었는가. 왜 그녀가 여기서 그녀의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가. 우리의 이야기는 언젠가는 끝나지만, 그러나 그 이야기는 최대한 길게 이어져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더 길게, 더 길게.



그러므로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는 말자고.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라는 말을 할 수 없도록 하자. 우리의 이야기는 살아서 계속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더 긴 이야기를 쓰자. 더 긴 이야기를 쓰면서 그 안에 더 많은 승리의 이야기들을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당연히 고통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아픔이 있을 것이지만, 더 긴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기어코 승리를, 성취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하자.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는 그 다음으로도 이어진다, 로 계속해서 전해지고 전해지고 전해질 수 있도록. 


나는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인게 너무 안타깝다.



원서를 읽을 때는 소리를 내면서 읽는다. 어쩐지 소리를 내면서 영어 문장을 읽어야 머릿속으로 해석이 더 잘 되는 기분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만 보면 내가 읽는지 아닌지를 모르겠는 거다. 그렇게 혼자 내 방에서 소리 내어 읽다가, she had finished Vassar and then killed herself 를 읽는데 더 이상 소리를 내어 읽을 수가 없었다. 이미 번역본으로 읽어 아는 내용인데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번역본으로는 울지 않았는데 원서로는 내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so that was the story of Dorie Paige 에서 울었다. 왜, 왜, 왜!! 왜 이게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인거야, 왜. 더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지, 어째서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인거야. 그건 불공평해, 그래서는 안돼.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더 들려줘, 더! 나는 한동안 소리 없이 읽었다. 그러나 마음 속은 한껏 시끄러웠다. 



여러분, 여기까지면 안돼, 더 길게 가자. 우리, 더 길게 가자. 더 긴 이야기를 쓰도록 하자. 우리의 이야기는 더 길어야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티나무 2021-05-09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 읽으면서 저도 울었어요.ㅠㅠ

공쟝쟝 2021-05-09 23:35   좋아요 0 | URL
저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더 길게 가자. 더 길게 쓰자. 살아남자. 많이 쓰자.

다락방 2021-05-10 10:38   좋아요 0 | URL
너무 이른 나이에 여기까지가 인생이라니 너무 짜증나요. 우리는 오래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래 길게 가자, 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울지말고 힘차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