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하고 싶었다. 초록숲을 보고 싶었다. 나는 아침밥 먹는 것도 뒤로 미루고는 집을 나섰다. 그렇게 일자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마도 미세먼지 최악인 날이라서인지 산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앞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을 때면 마스크를 내렸다. 덕분에 나는 산입구에서 시작되는 아카시아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내가 산에 오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너무 좋잖아. 아, 어떡해. 아카시아 향이야! 게다가 초록초록하게 저마다 잘 자란 나무들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서있다. 너무 좋다.










산으로 더 올라갈수록 더 초록숲이 펼쳐졌고 더 아카시아 향도 강하게 났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면 거기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아 너무 좋다. 진짜 좋아. 비단 아카시아 향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게 아니라, 숲의 향이 그렇게 했다. 숲은 향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나무와 흙이 만들어낸 것일 터였다. 미세먼지 앱에서는 최악이니 외출을 피하라고 했지만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았고 내가 올려다보는 나무들을 초록이었고 내가 느끼는 향은 숲의 향이었다.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아니까 여기에 올랐는데, 올라보면 항상 숲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줬다. 어제 토요일은 정말이지 이 초록과 이 초록이 주는 향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너무 좋다고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 초록이 가득한 숲을 내가 걷고 있다는 게 좋았다. 흙을 밟고서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좋았다. 저기 저 앞에 쭉 뻗은 나무들로 가득한 길을 보는 것도 좋았고, 그 안에 내가 있는게 너무 좋았다. 어제는 특별히 더 좋아서 와,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마 다들 그런 기분 알지 않을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바로 어제 숲에서 내가 그러했다.


언젠가부터 초록이, 숲이 좋아졌는데, 날이갈수록 더 그 마음이 커진다. 좋아진다는 건 그 안에서 내가 평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걸 뜻한다. 나는 나무들이 가득한 초록숲을 걸으면 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 그래, 괜찮아. 세상은 한 번 살아볼만한 곳이지. 이런 생각이 조금씩 스며들어 버리는 것이다. 나무들이 가득한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는 걸 보는 것도 좋다. 이 모든게 좋아, 너무 좋다. 집 가까운 곳에 이렇게 걸어갈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 작은 언덕이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너무 좋구나.

















이번주에 다시 읽은 [올리브, 어게인] 의 단편은 <햇빛 Light> 이었다. 



신디 쿰스는 마지막 치료를 앞두고 있는 환자다. 자신이 곧 죽게될거라는 사실 때문에 두렵고 무섭다. 외출하면 사람들이 아픈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아 그 시선이 싫고, 다정했던 친구들은 자신을 찾지 않는다. 마트에서 신디 쿰스를 우연히 마주쳤던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녀의 쇼핑을 끝낼 수 있도록 돕고, 며칠 뒤에는 그녀의 집에 찾아온다. 신디 쿰스의 남편은 올리브 키터리지를 싫어해서 왜 저 늙은이가 우리 집에 오나 싶지만, 신디 쿰스에게는 반가운 손님이다. 다른 친구들은 더이상 나를 찾지 않는데, 그런데 올리브 키터리지 선생님은 나를 찾아온다. 선생님도 그 나이에 죽음이 두려우신가요? 그녀는 묻고,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렇다, 나도 죽음이 두렵다고 답한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내는 두려움 때문에 친구들은 그녀를 찾지 않는것 같지만,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올리브는 신디 쿰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 신디 쿰스를 찾아가 올리브는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자기의 일을 얘기하고 또 신디의 얘기를 들어준다.


신디는, 자신이 어머니가 죽기 전에 보여줬던 모습 때문에 자신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크리스마스에 집 실내 게단에서 엉엉 울어버렸고, 남편과 아들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좋은 모습만을 남기고자 했지만 그렇지 못해서, 그 기억이 가족들에게 각인될 것 같아 두렵다. 그런 두려움과 기억들을 신디는 올리브에게 얘기한다. 신디를 찾는 사람중에는 그래도 동서인 '애니타'가 있다. 애니타는 여전히 연락을 매일하고 자주 방문해준다. 신디가 올리브의 방문을 얘기해주자 애니타는 나는 항상 그 선생님이 좋았다고 얘기한다. 올리브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늙은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신디는 햇빛을, 특히나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시를 쓰고 싶었던 신디는, 자신이 2월의 햇빛에 대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월의 햇빛, 남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은 특별히 사랑하는 2월의 햇비에 대해서. 이 부분은 이 단편의 거의 시작에 나온다. 자, 조금 길지만 옮겨보겠다.



What she sould have written about was the light in February. How it changed the way the world looked. People complained about February; it was cold and snowy and oftentimes wet and damp, and poeple were ready for spring. But for Cindy the light of the month had always been like a secret, and it reamined a secret even now. Because in Rebruary the days were really getting longer and you could see it, fi you really looked. You could see how at the end of each day the world seemed cracked open and the extra light made its way across the stark trees, and promised. It promised, that ligth, and waht a thing that was. As Cindy lay on her bed she could see this even now, the gold of the last light opening the world. -p,123-124


신디가 쓸 수 있는 것은 2월의 햇빛에 대해서였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2월에 대해 불평했다. 춥고 눈이 오고 이따금 비가 오고 눅눅하다고 불평했고, 얼른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신디에게 2월의 해빛은 늘 비밀 같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2월에는 낮이 점점 길어졌는데, 잘 관찰하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의 끄마다 세상이 조금씩 더 열렸고, 더 많은 햇비이 황량한 나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약속했다. 그 햇비이, 약속했다. 그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침대에 누워 신디는 지금도 볼 수 있었다. 하루의 마짐가 금빛이 세상을 여는 것을. -책 속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의 책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도 햇빛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야구장! 내가 야구장을 보고 감탄했던 게 기억나고, 선수들이 안타를 치고 달리던 게 기억나고, 관리인들이 밖으로 나와 흙을 판판하게 고르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해가 지면서 햇빛이 근처 빌딩들, 브롱크스 지역의 빌딩들에 가 닿던 장면이다. 그렇게 햇빛이 그 빌딩들을 비추고 나면, 이어 여기저기 도시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앞에 그 세상이 돌연 펼쳐진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p.203




루시 바턴을 두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햇빛을 언급한 저 장면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저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햇빛, 햇빛에 대해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라니. 너무 좋지 않은가.


작가는 자신이 아는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쓰고자 한다면 모르는 것이 글로 나타날 것이다. 등장인물이 햇빛을 사랑하는 걸 쓰고자 한다면, 햇빛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작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작품들로만 평가하자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딱히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일상의 사소한 기쁨과 슬픔을, 삶의 애환을 들여다볼줄 아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늙어가는 것, 늙어가면서 혼자라는 것,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 삶에 그런 시간들이 다가오면서 느끼게 되는 복잡한 감정들에 대해 알고 들여다보고 그걸 표현해내는 작가이다. 햇빛, 햇빛이라니.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시를 쓰고 싶었던 여자가 사랑하는 2월의 햇빛에 대해 쓰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단편 <햇빛>에서 그간 퉁명스러웠던 올리브가 자신의 단점에 대해 돌이켜보게 되고 외로움에 대해 고백하기도 하고, 특히나 자신이 이제 예전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는데 그걸 전남편인 헨리에게 보여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장면은 진짜 나의 페이버릿 이다. 너무 좋은 장면이다. 그런데, 이 단편의 압권은 마지막에 나온다.


지난번처럼 신디를 찾아온 올리브가, 아, 우리의 올리브가, 침대에 앉아 있는 신디에게, 아아, 무려, 2월의 햇빛을 언급하는 게 아닌가.



But Olive had turned to gaze out the window. "Would you look at that," Olive said.

Cindy turned to look. The sunlight was magnificent, it shone a glorious yellow from the pale blue sky, and through th bare branches of the trees, which the open-throated look that came toward the end of the day's light.

But here is what happened next-

Here is the thing that Cindy, for the rest of her life, would never forget: Olive Kitteridge said, "My, God, but I have always love the light in February." Olive shook her head slowly. "My God," she repeated, with awe in her voice. "Just look at that February light." -p,138-139


올리브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저길 좀 봐." 올리브가 말했다.

신디가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장엄했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를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쳤다. 

그리고 그 다음 일어난 일은 이것이다-

신디는 이 일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한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책속에서




신디는 2월의 햇빛에대해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디 자신은 2월의 햇빛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 그녀에게 찾아와서는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그간 친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심지어 남편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신디를 찾아와주고, 말을 걸어주고, 말을 들어주고, 그리고 아아, 2월의 햇빛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신디가 그 사실을 올리브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올리브는 올리브대로 2월의 햇빛을 사랑하고 있었어!



나는 같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 어떤 것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인생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한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같이 읽는 친구들과 올리브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좋아지고, 숲을 거닐면서 좋다 좋다 말해주는 친구와 함께라면 또 인생이 아주 괜찮아지는 것 같다. 신디는 2월의 햇빛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올리브를 만났다.


2월의 햇빛은 사실 아주 사소한 일이며 매해 돌아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언급하면 아 그래? 비로소 한 번쯤 생각해볼 무엇인 것. 그러나 신디에게 2월의 햇빛은 기꺼이 사랑할 만한 특별한 것이다. 늘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소중한 것, 그것이 2월의 햇빛인데, 그것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이 그녀를 들여다보기 위해 찾아와 주었다. 나는 신디의 인생에 대해 무엇도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신디의 인생에 올리브가 찾아들었다는 것, 찾아들어서 대화를 하다가 기어코 2월의 햇빛에 대해 언급해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다. 자지러지게 좋다. 그랬기에 신디 역시도 '이 일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도리 페이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이 페이퍼에 덧붙이고 싶지는 않아 따로 페이퍼를 작성하도록 해야겠다. 

도리 페이지는 덧붙여져서 언급되면 안되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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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0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5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1-06-1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 햇빛, 마지막의 지평선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목가적인 감성이 있는 스트라우트 짱이예요. 저도 이 책을 시간이 지난 후에 몇 번 더 읽을 거예요.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난 후에 페이퍼에 댓글달러 올게요~ 올리브도 읽고~ 또 놀러올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