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벌써 24일이고, 오늘 아침 나는 아이쿠, 그런데 이 책의 아주 조금 밖에 읽지 못하였으니 어쩐담, 완독을 위해서라면 이 책을 출근길에 함께 해야 한다! 하고 들고 왔고, 그러나 지하철안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후회를 이천번쯤 하였다. 정말 무거워서..진짜 무거워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누가 날더러 이렇게 살라고 했나.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의 내 무릎 위 풍경..





내게는 좋아하는 작가가 몇 있다. 그 작가들의 책은 전부 다 읽고 싶고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그동안 이 서재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겠지만,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샤론 볼턴이 그렇다. 물론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라면 한나 아렌트에 대해 말하는 책들까지도 차곡차곡 모아볼 생각이다.


줌파 라히리의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에는 <뭍에 오르다>라는 단편이 있다. '헤마'와 '코쉭'이 주인공인 단편인데, 헤마는 코쉭을 만나 사랑하지만,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이다. 코쉭은 왜 그 사람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약혼했냐고 묻고, 이 때 헤마는 대답한다.


 

"그러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 《그저 좋은 사람》중 〈뭍에 오르다〉, 줌파 라히리, p.378

















나는 책 속 헤마와 꼭같은 이유로 결혼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사회는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고, 그래야만 행복하다고 세뇌하고, 그래서 비연애나 비결혼인 상태의 사람에게 끊임없이 연애연애 결혼결혼 하게 만들므로(나는 너가 행복해지도록 연애했으면 좋겠어, 라는 십여년 전의 친구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고 생각했다. 왜 연애 안하냐는, 왜 결혼 안하냐는, 결혼 언제 할거냐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더이상 그런 질문을 듣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거기다 대고 늘 대꾸하는 일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했었더랬다. 결국 그 관계는 결혼으로 이르지 못했고, 나는 상대에게 미안함만 가진채 끝내게 되었다. 일단 결혼을 해두면 세상이 내게 잔소리를 멈출 거라고 생각했고, 게다가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살기에 나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랑 결혼해 살면서 세상의 잔소리를 차단하고, 그리고 사랑은 내 마음대로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가짐 이었으며, 그래서 동시에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책 속 헤마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답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결혼은 답이 아니다.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우리 둘 다 구원을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서로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110


'에리카 종'이 자신의 책 《비행공포》에서 만들어낸 '이사도라' 역시도 연애와 사랑이, 함께해줄 남자를 찾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끊임없는 시행착오속에, 자존감을 개박살 내가면서 사랑(남자)를 찾아 헤매인다. 그러나 그녀가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깨달은 것은, 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파파게노에 어울리는 파파게나. 그것이야말로 내 모든 망상 중 가장 심각한 망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553



그러니까 나는, 로맨스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로맨스가 답이기를 기대하지만,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로맨스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로맨스가 답인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세상은 로맨스가 답이라고 얘기해왔고, 그래서 실제로 로맨스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답이라니까 그 길로 뛰어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제 읽은 책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는 스물 한살에 이미 아빠가 다른 세 명의 사생아를 낳은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잘 살고 싶었고, 이 남자는 좋은 남자일 거라고, 다른 남자랑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섹스하지만, 그러나 그 남자는 다른 남자랑 다르지 않은 남자였다. 첫번째 아이를 아버지 없이 낳았을 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고, 그 때 그녀와 섹스한 남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 제이슨이 태어났다, 드와이트의 아이였고 사고였다, 그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잘 빼겠다고 했지만, 분명 제때 빼지 못했다(제때 빼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녀에게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84


다행히도 엄마와 언니가 아이를 같이 돌보아 주기 때문에 그녀는 마트 점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두번째 남자를 만난다. 나이트클럽에서였다. 그는 풋내기였고, 노골적으로 성기를 비벼대지도 않았고, 그녀를 위해 문도 열어주는 남자였으므로, 그녀에게 한시라도 빨리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남자였는데, 그러나 콘돔 없는 한 번의 섹스 후 그녀는 임신이 되었고,



그러나 둘의 관계가 가져다준 유일한 결과는 잰텔이었고 그녀는 아직 아버지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마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였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1



세번째 남자는 예전 같은 반 친구의 오빠였다. 직업이 체육선생이고,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인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 조용한 곳에서 식사하자며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남자, 결국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사정해버린 남자. 그렇게 그녀는 또 임신했다.


그가 다음 주에 전화를 걸 거라고 반쯤은 기대했다, 잘 있었어? 너랑 정말 좋았다고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가버렸더라,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그녀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녀에게 온 건 조던 뿐이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5




내가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줄거라고 생각했던 헤마를, 구원은 결국 자기 몫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이사도라를, 번번이 기대했지만 번번이 아이 아빠이기를 포기한 남자들을 만났던 라티샤를 떠올린 건, 오늘 출근길에 무겁게 들고 읽었던 책,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즉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남성들이라는 유혹에 관해 여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남성 폭력의 근원에 자리한 고통을 탐색하고자 시도하는 순간, 여성들은 다시 파괴적인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은 흔히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숱한 여성들이 처음부터 '나는 폭력당할 것이다'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라티샤처럼 그의 '다른 남자랑은 달랐던' 부분들을 보게될 것이고, '이 남자는 달라'로 생각하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로맨스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 폭력 안에 침몰 되어 체념하게 된다. 또한, 그 폭력 후에 다정한 순간이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견디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 학대를 견디면서 남성 권력의식을 회복할 남자의 권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폭력이 분출한 뒤의 '허니문' 기간에 남자들에게 권리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이 동학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그이가 가끔 폭발하면 저는 참고 견뎌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화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저를 도와줘요. 자기가 한 번 발끈했으니 이제 빚을 진 셈이죠."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자, 한 번 빚졌으니 이제 내 차례야, 라며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관계를 감내한다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걸까. 폭력은 빚으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견뎌내려면, 하루 또 하루 살아가려면 '빚을 졌으니 이제 내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이라고 했을 때, 바로 거기에 딱 맞는 책이 있다.
















나도 사두고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일전에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의 이 책 내용에 관련한 테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뉴욕에서 직장을 다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 소울메이트라고 여겼던 남자로부터 여러번, 총으로 협박을 당했던 경험으로 강연을 시작한다.







남자의 여성폭력에 대해서라면, '토머스 J. 하빈'의 《비욘드 앵거》에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때리는 것은 결코 여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 남자를 고치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남자들을 고치는 것은 그 남자들 자신의 몫이니 그를 떠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화가 난 남자들이 자기 삶에 존재하는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고통과 슬픔, 죄책감을 가져다준다. 어머니부터 여자 형제, 여자 친구와 아내에 이르기까지 화가 난 남자들은 주로 여자들을 공격한다. 대체로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힘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남자들은 제멋대로 세상을 휘둘러 왔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서 여자를 강제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육체적으로 학대했을 뿐 아니라 정치, 종교 같은 모든 모든 권력 제도에도 성차별이 존재하도록 만들어놓았다.
화가 난 남자들 다수가 주로 여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여자들이 남자의 행동을 참고 견딜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참고 인내하며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04



일단 한 번이라도 폭력을 쓰게 되면 아주 획기적인 계기가 생겨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과거의 폭력은 미래의 폭력을 예측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다. 더구나 거친 논쟁은 폭력을 부르는 전조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자주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즉시 태도를 바꾸어야만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폭력을 쓰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22



삶을 통제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통제해야 한다. 늘 소파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우울증, 불안, 분노가 줄어든다. 자제력도 자존감도 높아진다. 신체가 건강해지면 정신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22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자기 통제의 문제이다. 특히 자제력의 문제이다. 여자를 때릴 때 자제력을 잃는 이유는 여자가 손쉬운 표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조차 내팽개치고 덤비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상사나 경찰이나 자기보다 몸집이 큰 남자를 때리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위험한 상대여서 자기가 다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려고, 논쟁에서 이기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폭력을 쓴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하고, 남자처럼 폭력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논쟁을 끝내려고 폭력을 쓰는 것은 자제력이 없고,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자기가 폭력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37



그나저나 이 두껍고 무거운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제 고작 1/3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언제 다 읽나... 무겁다.......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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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1-03-2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면 답일 그 간단한 문제를, 온세상이 로맨스를 하도 들입다 퍼먹이니까, 사는 건 또 힘들고 그르니까...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맞아. 연애가 또 재미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나는 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각자의 재미와 행복을 찾고 살아가자. 빠샤.

공쟝쟝 2021-03-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맨스 유해해..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아 요즘 읽는 책들 때문에 로맨스 꼴도 보기 싫어졌다가 로맨스 소설(브리저튼) 읽으면서 아 재밌어.. 이러고 있어요. 인간 뭘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연애는 구경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6 17:30   좋아요 0 | URL
남연애의 스펙타클 구경🙄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