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합법화하는 제도 또한 중요하다. 바로 그 때문에 아름다움이 절대 선호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좋아서 좋아하는 거야" 라는 말은 자본가들의 영원한 거짓말이다.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순수한 의미에서 선호의 문제에 그쳤다면 자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자본은 아름다움이고압적이기를 요구한다. 아름다움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제도권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는가, 내게어떤 규칙들이 적용되는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등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개념이라면 그것은 곧 양식과 제도와 교환의 체계임이 틀림없고, 우리의 선택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내면화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심리적으로 둘로 쪼개지고 만다. - P73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도 하고,
추하니까 추해 보인다고도 한다. 둘 다 거짓말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해진 모든 것이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여정의 일부다. - P88

여성들이 법적, 정치적, 경제적 도전 없이 주장할 수있는 자산은 아름다움뿐이다. 여성에게 용인된 합법적인 자본으로 아름다움이 유일한 세상에서, 흑인 여성들은 우리의 가치를 재규정하는 반대 담론을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앞 문장에서 "법적, 정치적, 경제적 도전 없이"라는 부분에 주목하기 바란다. 아름다움은 바람직한 자본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한 성별에 대한 억압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에 반하여 그들을 제약한다. 아름다움은 돈이 들어가고 돈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식민지화하고,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고, 절대 만족을 모른다. 그것은 인류가 융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자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도 사회 속에서만 가치를 갖는다. 아름다움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흑인 여성들은 우리도 아름답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전 세계 비백인의문화적 상상의 세계를 방방곡곡 여행해가며 우리를 배제하지 않는 미의 기준을 모아왔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아름다움에 관한 문화를 창조한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합법화하기 위해 흑인 남성들과 협상을 한다. - P71

통증은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통증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바꿔버린다. 물리적 통증이 너무 심하면 뇌는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 임신과 마찬가지로 통증은 관료적 효율성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다. 의료진 전체가 흑인 여성들이 통증을 견디며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통증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통증을 감소시키거나 치료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면 의료 산업은 우리를 무능한 관료주의적 대상으로 낙인 찍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우리를 거기에 맞게 처우한다.
흑인 여성이 무능하다는 추정, 즉 자신을 잘 모르고, 자신이 처한 맥락을 이해시키거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주체적 존재로 대하게 만들도록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추정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배하는가장 강력한 위상의 문화, 즉 부와 명예마저도 대체해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 2017년, 세리나 윌리엄스가 딸을 출산했다. 유명인사가 출산을 하면 늘 그러듯 그녀도 딸의 탄생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세리나는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간호사를 설득하기 위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서의 위력을 총동원해야 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 당시 제대로 치료를받지 않았으면 세리나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만큼 운이 좋지 않은 흑인 여성이 수없이 많다. - P102

나는 어려운 문장과 어른들이 쓰는 단어, 이해하기 힘든 배경지식이 많이 나오는데도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겼다.(앤 무디의 자서전, 미시시피에서 성인이 되다Coming of Age in Mississippi) 오로지 그 흑인 여성의 소녀 시절이나오는 부분을 읽고 싶어서 말이다.
소녀들이 나오는 책은 별로 없었다. 책벌레였던 나는 소녀에 관한 웬만한 책은 거의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라모나 킴비가 주인공인 동화 『라모나Ramona』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고, 『스위트 밸리 고등학교 Sweet ValleyHigh』에서 그려지는 10대들의 세계에 흥이 나 어깨를 들썩이며 책장을 넘겼으며, 『베이비시터 클럽Baby-SittersClub』을 읽을 때면 내가 주인공 중 하나인 클라우디아라고 상상했다. 그것들은 학교에서 읽는 책이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읽는 책은 『안네의 일기』말고는 죄다 소년들이 뗏목을 타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거나, 남자들이 대부분인 화자들이 순례길에 나누는 이야기를 모은 『캔터베리 이야기』 이거나 못된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이나 왕을 배신하는 이야기뿐이었다. - P198

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흑인 소녀의 이야기를 읽으려면 흑인 여성의 전기를 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앤 무디의 자서전에서 찾아 헤맸던 것이 바로그것이었다.
흑인 소녀의 삶에 대해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것은 한 여성의 삶을 담은 이야기에서 소녀 시절은 흔히 성적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일은 항상 벌어졌다. 추잡한 삼촌, 재혼한 엄마의 새 남편,
정신 나간 오빠, 같은 학교를 다니는 못된 소년, 나쁜 백인 남자, 모든 나쁜 남자. 강간을 당하고, 성희롱을 당하고, 주무름‘을 당하는 경험은 짐크로법과 미용실, 흑인영가와 함께 모든 흑인 여성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인듯했다.그것은 나, 오프라 윈프리, 개브리엘 유니언Gabrielle Union 그리고 내가 알 켈리R. Kelly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내게 글을 보낸 수백 명의 흑인 여성들을 한데 묶는 공통점이 확실했다. - P199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것은 네다섯 번인가 랩 그룹을 결성했다 해체한 경력이 있는 손위 사촌이었다. 그는 자기가 눈을 번히 뜨고 살아 있는 한 여자 친척 중 어느 누구도 알 켈리랑 단둘이 있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말하면 나뿐 아니라 우리 친척 중 누구도 알 켈리를 만날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그런 식으로 소식을 전했다. 거드름과 사명감이 반반씩 섞인 목소리로 말이다. 알 켈리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상한 사실은 그보다 몇 년 전, 내 앞에서 어떤 흑인 여자아이들은 당해도 싸다는 말을 한 것도 바로 그사촌이라는 점이었다. 숙모 집에서 저녁으로 립 요리를먹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남자들이 내게 어떤 짓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허용되는 한도에 따라 여자로서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 나는 열네 살이었고, 마이크 타이슨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권투선수였다.
내가 아는 흑인들은 모두 마이크 타이슨이야말로 흑인 스포츠 스타의 최정상에 오른 인물이라 여겼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돈과 명예를거머쥐었다. 그러나 때는 1992년으로, 그가 데지레 워싱턴이라는 18세 소녀를 한 호텔에서 강간한 사실로 유죄를 선고받은 직후였다.
"모두들 그 여자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촌은 말했다. "그 애는••• 아, 이모 앞에서 이런 말 해서 죄송하지만, 그 애는 창녀야."
립 요리를 앞에 두고 앉아 있던 그날의 기억에서 가장 뚜렷이 남은 것은 그 대목이었다. 그 사촌은 한 명 빼고는 모두 자기와 피를 나눈 흑인 여성이 가득 앉아 있는 방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강간범을 옹호하고 있었다. - P201

그자리는 아버지가 내 남편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두사람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금세 친해졌다. 아버지는 흡족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녀석이 너를 때렸다고 나한테쫓아와도 네 말을 다 믿어주지는 않을 거다. 뭐든 양쪽입장을 다 들어봐야 하거든." 내가 믿는 남자가 내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빌어먹을 행동을 재는 내 머릿속의리히터 척도상, 때리는 남편과 강간하는 남편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예전에 사촌이 한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흑인 여성의 소녀 시절은남성이 이제 끝이라고 말할 때 끝난다는 뜻이었다.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하거든. 거의 준비가 됐잖아. 그 여자는 창녀야.
나는 이런 말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넘게 들었다. 모두 흑인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을 감싸기 위한 말이었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남성일 때도 있고여성일 때도 있었다. 남성이 여성에게서 원하는 것이
‘준비되었으면’, 그 여성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남성이 자신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짓에 동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곧 동의 이고 허락이었다. - P207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다 컸다고 인식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매우 많고 다양하다. 흑인 소녀와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그 아이가 ‘준비됐다고 생각하면, 법 또한 그 아이에게 성인에 준한 기대치를 적용함으로써 ‘준비됐다‘고 보는 시각을 강화한다. 거기에더해 우리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에 대해 법이 얼마나 무관심한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폭행을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폭행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증명해야하는 부담이 오롯이 여성에게 지워진다. 폭행 사실 자체를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공평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자신이 감정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후 강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을까? 자신이 술에 취했거나 마약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은?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려고할 때는 ‘싫다‘고 말했지만 그가 ‘일을 끝내는 도중에는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면? 여성이 범죄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P209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이 소녀를 성인 여성으로, 성인 여성을 창녀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목격한 경험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숙모 집에서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 이전에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은많았지만, 그날의 대화로 나는 절대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들어갈 때는 친구, 자매, 여성이지만 나올 때는 창녀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 문을 조심하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게 만들었다. - P211

흑인 소녀들과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폭력 통계는 아주 최근까지도 ‘여성’이라고 하는 큰 범주 안에 숨겨져 있었다. 거의 모든 여성 희생자들에게 비슷한 패턴이 적용된다. 우리는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남성들의 공격이 가장 취약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목소리를 내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진다. 게다가 흑인 여성과 소녀들은 흑인남성과 소년들의 평판을 보호해야 하는 짐까지 추가로떠안아야 한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 그 짐은우리를 침묵의 문화 속에 가둬버렸다. 성별 간에 이루어지는 폭력이라는 큰 그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는진짜 문제를 포착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백인들이 구축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비백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다. 우리는 스스로농담과 웃음과 감정과 마음의 짐을 자기검열한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관리해서 일자리를 잃거나 고립되거나 오해를 사거나 의도가 잘못 전달되거나 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나마 돌아갈 집이 있을 정도로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잠시나마 경계의 스위치를 끌 수있다. 우리는, 내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발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흑인 소녀들에게 집은 피난처인 동시에 가장 은밀한 배신을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서마저스위치를 끌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집 식탁에서 삼촌의 유명한 립 요리를 먹는 동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가정은 사랑을 받는 곳이지만 그곳에서마저 우리는언제 창녀로 둔갑될지 모른다.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