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평점 :
내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알고자 읽었는데 읽고난 지금은 차라리 모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안다는 것은 괴로워진다는 걸 뜻한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적합하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죄책감과 불편함을 끌어안도록 한다. 알지말걸, 모를걸.. 계속 후회하고 있다.
그런 한편 읽는 내내, 다른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전생애를 다 걸지는 못하더라도, 생애 몇년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가 아닌 거기에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가지지 못한 인간의 권리를 조금이나마 누리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생애 몇 년쯤은 그렇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은 누구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닐까.
장 지글러는 모르지 말라고 이 책을 썼을 테다. 또한 생애 몇 년쯤은 당신도 다르게 살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 글을 쓴 것 같다. 나는 계속 생각한다. 생애 몇 년쯤은 다르게 살아보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2019년, 내가 현장 조사 임무를 수행하던 시점에 모리아 공식 수용소 내부와 외부, 즉 "올리브나무 숲 캠프"라고 이름 붙을 정도로 엄청나게 확대된 수용소 주변 올리브나무 숲엔 무려 58개 국적을 가진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수단 출신으로, 대부분 자기 나라에서 교사나 엔지니어, 자영업자, 상인 전직 공무원, 회사원, 수공업자 등 중산층으로 살던 사람들이었다 농부나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했는데, 이는 도시 또는 마을에서 도주하기 위해서는 이동에 필요한 교통비, 부패한 국경 관리들과 공갈범에 버금가는 경찰들의 입막음용 뇌물, 밀입국 안내인들에게 지불할 비용등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17
시리아 출신 젊은 여성 사라 마르디니는 여동생과 같이 레스보스 해안에 발을 딛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유럽 쪽 바위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 두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난민들(거의 다 시리아 출신의 가족 단위 난민들)을 태운 고무보트의 엔진이 고장 났고, 통제를 벗어난 보트는 제멋대로 표류했다. 사라와 여동생은 둘 다 수영선수였으므로 바라도 뛰어들으 고장 난 보트를 섬까지 끌고 갔다. 그때가 2015년 이었다. - P43
그 후, 사라는 독일에서 난민 자격을 얻었으며, 베를린의 바드 컬리지에서 학업을 이어 나갔다. 하루는 모처럼 시간이 나서 난바다에서의 구조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레스보스섬을 찾았다. 그런데 사라가 베를린으로 돌아가려 하자 그리스 경찰이 미틸레네 공항에서 그녀를 체포했다. 소식을 들은 사라의 동료 숀 빈더가 수감된 사라를 면회하려 하자, 스물네 살의 이 청년마저 체포되었다. 2015년에 고장 난 고무보트를 레스보스 해안 기슭까지 끌고 갔다는 이유로(그리고 그 때문에 십중팔구 일정 숫자의 난민들을 구했다는 이유도 더해졌을 것이다)그리스 법무부는, 프론ㅌ넥스 측의 고발에 따라, 현재 사라와 여동생을 "불법 인신매매" 혐의로 고소했다. 2019년 현재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P43
장 자크 루소는 1755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경우는 자신의 운명이 상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P144
내가 물었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신체를 훼손하는 겁니까?" 데메트리우스가 답했다. "이 소녀들은 정기적으로 경찰이나 일반 범죄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도둑질도 하죠. 그러면서도 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본드 덕분입니다. 제일 값싼 마약이죠." 내가 또 묻는다. "그런데 왜 자기 신체를 훼손하느냐고요?" 데메트리우스가 답한다. "소녀들 말로는 나쁘게 살고 있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거라더군요." - P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