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프로이트를 더 잘 읽게 도와주기 위해 쓴 책이다. 잘 읽도록 돕기 위해 프로이트의 글들을 시기별, 패러다임-인식이나 생각이 만들어질 수 있는 틀-별로 나누어 강연하듯 쓴 책인데, 우리가 프로이트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꿈의 해석은 첫번째 패러다임에 속한다. 히스테리와 무의식이 바로 이 패러다임의 상징적 단어.


나는 아직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고 그가 꿈의 해석을 썼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 책을 앞으로 읽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꿈을 매우 자주 꾸고 또 선명하게 기억하곤 하기 때문에 특별한 꿈을 꾼 날, 아 이건 뭔가 뜻이 있는 것 같다 라고 생각되는 날이면 네이버에 꿈해몽을 검색해보긴 하지만, 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 2020년에 꾼 꿈에 대해 프로이트가 무언가 잘 말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이 책의 첫번째 패러다임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된다.




사건의 표상이나 기억이 정신에 불쾌감을 만들어낼 때, 정신이 그러한 불쾌감 앞에서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령 히스테리의 경우에는 기억이 불쾌한 정동을 유발할 때, 그 기억을 억눌러버립니다. 그런데 기억이 억압되면서 기억과 정동이 쪼개진다는 겁니다. 즉, 기억은 억눌리지만 정동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기억은 억압되어 무의식이 되지만, 불쾌한 정동은 그대로 남아서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 정동이 억압된 기억과 연관성이 있는 어떤 다른 표상, 특히 육체의 어떤 표상에 달라붙어버릴 때 뭐가 발생할까요? 히스테리 증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는 애초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면서 그 대신 육체의 수준에서의 어떤 표상이 정동과 결합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p.72-73)



기억이 억압된다고 해서 그 때 느꼈던 나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감정은 여전히 내게 남아 내 안에서 혼자 돌아다닌다. 그러다 직접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해도 어떤 일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내 안에 돌아다니던 그 불쾌한 감정은 그 사건과 만나 폭발해버린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주디스 허먼'이 《트라우마》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잊고 살려고 해도 어떤 외부의 사건들이 나의 기억을 건드려 나로 하여금 재경험을 하게 만들 때가 있는데, 재경험을 맞닥뜨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바로 그 때 히스테리가 나타나는 것이로구나 했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접하고 이런 분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닌가. 그런 한편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그리고 맹정현이 작정하고 다락방을 위로하자 쓴 글은 전혀 아니겠지만, 기억이 억압되어 해소되지 못한 내 감정이 내 안을 떠돌고 있다는 걸 인식하자 나를 달래주고 싶어지는 거다. 내가 지금은 지금을 이렇게 살고 있어도 어떤 감정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내 안에 있겠구나, 하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거다.



정신분석학의 답변 중 하나는 정동은 억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죠. 억압된 것은 오히려 그러한 정동을 불러일으켰던 관념, 기억, 흔적입니다. 그러한 기억과 내가 화해하지 못하면 당연히 그것이 불러일으켰던 정동은 완전히 해소될 수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언제든 나를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p.94)



일전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언제나 어느 때나 꺼낼때마다 눈물 나는 얘기였다.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그러나 더 얘기하면 내가 펑펑 울 것 같아 그만하자고 했는데, 그 때 친구가 내게 "너 그거 얘기해야 돼, 그렇게 안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부한 친구였고 또 강의도 하는 친구였는데, 그래서 내가 그렇게 자꾸 울까봐 안으로 삼키는 것에 대해서, 그 정동이 내 안에서 돌아다닐 걸 알아서 그런거겠구나 싶었다. 또한 며칠 전에 친구가 내게 한 말도 떠올랐다. 나의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그 친구는 내게 "지금의 너가 그냥 된 게 아니구나, 너 많이 애썼겠구나" 했더랬다. 그 친구 역시 정신분석을 공부했던 친구였는데, 그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표출되지 못한 감정은 기어코 내 안에 머물러서 수시로 다른 사건들과 부딪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겠구나 싶었다.


내 친구들... 럽 ♡



그리고 이렇게 뜻밖의 위로를 받으면서 드디어 나는 꿈의 해석에 다가간다. 아니지, 꿈에 다가간다. 저 옛날에 태어났던 유럽의 백인 남자가 아시아의 지금을 살고 있는 여자 꿈에 대해 뭘 알겠어? 했다가, 나는 이런 문장을 보게 되는 거다.



꿈은 보편적인 것이 표현되는 장이 아니라 꿈꾼 사람, 그 사람만의 특수한 무언가가 표현되는 장입니다.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참조할 필요는 없는 거죠. 꿈의 해석은 그 꿈을 꾼 사람의 경험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꿈을 다시 꿈꾼 사람의 경험과 연상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꿈을 해석하기 위해 참조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p.99)



너무 당연한 말인데 이 문장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몇해전에 내가 꾼 꿈에 대해 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 때 친구가 너는 그 꿈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왜 꿨다고 생각해? 라고 내게 물어 나는 이러이러해서 꾼 것 같아~ 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친구는 '네가 꾼 꿈은 네가 생각하는 해몽이 맞을거야' 했었는데, 나의 꿈은 내 삶으로부터 그리고 내 욕망이나 억압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일테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나는 맹정현의 저 99쪽 문장을 보고 맞아, 그렇지! 내 꿈은 보편적일 수 없지, 내 것이지! 하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사실, 내가 꿈해몽을 네이버에서 찾아보는 것도... 당연히 정확할 수 없을테고. 물론 어떤 상징성들은 있을 것이다. 뱀은 돈이라든지... 하는 것. (  ")



꿈작업이 원하는 것은 할 말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다만 의식의 검열이 있기 때문에 할 말을 있는 그대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요컨대 한편으로는 할 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의 검열을 피하겠다는 것이죠. 무슨 말이냐면, 꿈은 그 꿈을 꾼 사람의 의식과의 관계 속에서만, 검열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p.100)



하아.. 나는 내 자신을 안아주고 싶다. 내가 나를 쓰다듬고 싶고 내가 나를 포옹하고 싶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정말 애쓰는 시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토록 많은 꿈을 꾸었을까. 왜 그렇게 못다한 말들이 많을까. 왜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걸까.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해결해가는 게 많은 사람이 바로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들은 있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관계는 나 혼자만 지켜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꿈이 만들어진 원동력은 무엇일까? 증상이 만들어진 원동력은 정동, 즉 불쾌감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건의 표상이 만들어낸 불쾌감이죠. 그렇다면 꿈은 왜 만들어질까요? 불쾌감 때문도 아니고 불안 때문도 아니죠. 바로 여기서 프로이트는 한 걸음 더 내디디게 되는데, 그는 꿈의 원동력이 어떤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욕망일까요? 낮에 바랐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이죠. 여기서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이라면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욕망도 이에 속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상황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욕망입니다. 심리적인 갈등으로 인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바로 억압된 욕망, 무의식적인 욕망입니다. 앞서 꿈을 의식의 검열을 피해서 의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된 말이라고 했는데, 결국 꿈의 내용이란 의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되는 욕망인 것입니다. (p.104-105)



오래전에 한 친구는 내게 꿈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약 A 라는 사람의 꿈을 꾼다면, 그건 그 A가 나를 생각해서라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더랬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인걸 알면서도. 어쩌면 신비한 우주의 힘 혹은 영적인 힘..그게 뭐든,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만약 당신의 꿈에 나온다면, 그건 내가 지난 밤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찾아간....이라고 하지만 내가 다른 이의 꿈에 찾아간 기억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자는 동안 영혼은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혹은 그리워하는 이의 꿈을 꿀 때마다 친구의 그 말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렇지만 ..... 낮에 바랐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이라는 쪽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자, 내가 최근에 꾼 꿈들이 생각나면서... 내가 너무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내 욕망 때문이었어?

이게, 낮에 내가 바랐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거야?



내 욕망이 도대체 왜때문에 길을 잃어. 그것은 나의 심리적, 내적 갈등 때문이었지... 가여워. 나 가여워. 가엽고 또 가엽다.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어떡해. 이거 언제 이루어져.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그런 꿈을 꿀 거 아냐. 나 어떡해. 나 가여워서 어떡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ㅠㅠ



그래서!

꿈의 해석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프로이트가 꿈에 대해 그리고 꿈의 해석에 대해 하는 말들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꿈의 해석을 검색해본다.

















뭐가..많아? 참 .. 많네?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네? @.@ 걍 다 사서 다 읽어? 어느 세월에...



아무튼 나는 꿈의 해석을 읽어볼 것이며 내 꿈을 해석해보도록 하겠다. 물론 그래봤자 이루어지지 않은 나의 욕망만 수두룩하게 나오겠지만..내 욕망 불쌍하네... 욕망아,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갈비 먹을래? 내 욕망..... 내가 미안해..... 해소해주지도 못하고 ㅠㅠ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꿈에 나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갈비 2인분 혼자 다 먹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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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 너무 좋네요.

전 이 책 힘들었거든요. 이게 뭐여 하면서요. 다락방님은, 제게는 너무나도 먼 단어와 단어들 사이에서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 듯 해요. 프로이트 읽기가 우리한테 이런 기쁨을 주네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공감의 기쁨.
궁금한 거는, 자신의 꿈을 자신이 분석하는게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뭐랄까요. 짧은 제 생각으로는, 무의식의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추적하는데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도움이 될테고요. 또 프로이트를 잘 아는 친구들을 잘 후원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석을 맡겨보심도 괜찮을 거 같네요.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이니셜로 말하지 않아도 다락방님 아실 테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에게 프로이트를 읽혀요. 막막 읽혀요!!!!!

다락방 2020-10-29 17: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전문가가 들어주고 해석해준다면 훨씬 더 좋을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아예 저를 모르는 타인이어야지 우리의 친구들이라면... 제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또 얼굴 시뻘개지지 않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한 얼굴 시뻘검 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는 저도 전문가를 만나 제 안에 돌아다니는 이 감정,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 이 감정에 대해 터뜨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고 갈 길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인생이 그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단 프로이트 할배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읽어본다면 아마 안읽었을 때보다 조금 더 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로이트 읽기를 잘한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공쟝쟝 2020-10-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꿈을 해석하는 다락방님만의 글을 읽을 생각을 하니, 설렘의 눈물이 차오릅니다.. 아.. 뚜벅뚜벅 자신을 알아가는 여성이란, 얼마나 멋진가..

다락방 2020-10-30 07:47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자신을 알아가는 그 길에 우리 함께합시다, 쟝쟝님!! 뽜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