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남자 두 명과 나를 포함한 여자 두명(혹은 세명)과 함께 고깃집에 가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함께 있던 남자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는 한껏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듣기에도 너무 시끄러운데 주변 테이블은 얼마나 더 시끄러울까 신경이 쓰였다. 남자1이 유독 큰 목소리로 떠들때마다 우리 옆 테이블 아저씨들이 쳐다보았고, 나는 죄송합니다, 대신 사과했다. 그리고 남자1에게 좀 조용히좀 하고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취한 사람에게 내 말이 가 닿겠는가. 그는 여전했고, 나는 이제 그만 마시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기 전에 남자들이 화장실 가겠다고 자리를 비웠는데, 고깃집의 사장님이 왜 벌써 가느냐고 물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러워서요, 했더니 괜찮다고 다른 테이블들 다 이미 갔다는 거다. 아뇨 우리 옆테이블한테 너무 미안해요, 했더니 옆테이블도 자리 정리중이라면서, 디저트를 준비했으니 이거라도 먹고 가라며 새로운 테이블에 디저트를 놓아주시는 거다. 인원 수대로 앞접시에 디저트가 담겨 있었는데, 그 디저트는 치킨과 과일이었다. 음.. 치킨이라니...


화장실에 갔던 남자들이 돌아왔고 나는 그들에게 여기 새로운 테이블로 와서 사장님이 준비해주신 디저트를 먹고 집에 가자 했다. 새로운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은 남자 1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가 남긴 술, 그거 다 마셔야지!' 하는게 아닌가. 나는 굳이 다 마시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디저트만 먹자고 했더니 부득이 우리 테이블로 가 소주 반병 이상 남은 걸 챙겨와서는 잔에 따르고 마신다. 어휴 꼴보기 싫어.... 잔뜩 취해가지고 또 술 마시는 꼴이라니..저 술 다 마시고 간다하니 나랑 나눠마셔야 빨리 끝나겠다 싶어서 나도 좀 달라 했는데, 아니 글쎄 이놈이 술을 마시다가 "나는 락방이 집에 데려다주고 갈거야!" 하는게 아닌가. 뭐래..잔뜩 취해서 제정신도 아닌 놈이 누굴 데려다준다는 거야. 나는 그에게 "야, 술 그만 마시고 너나 잘챙겨!" 했는데, "너 데려다 줄거야! 여기 올 때부터 생각했어!" 하는 거다. 으윽 말이 안통해. 나는 더이상 대꾸를 안하고 이것만 다 먹은 다음에 어차피 저새끼 취해서 휘청거리니 나 데려다준다고 깝죽대기 전에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자마자 생각한 건 '언행불일치' 였다. 언행불일치하는 새끼네...라는 생각.

아니, 나를 데려다주고 싶었으면 술을 그렇게 쳐마시고 취하지를 말아야지, 그렇게 취해서 뭘 데려다주겠다는건지. 아무리 자기의 마음이 나를 데려다주길 원했다고 한들, 몸이 휘청이고 흔들리는데 뭘 어떻게 데려다준다는거야. 게다가 나랑 술마실 정도면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사람인데 술 처음 마셔보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나는 오늘 저사람을 데려다줄것이다'가 있었으면, 술을 마시면서 좀 절제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말은 '나는 널 데려다줄거야' 하면서 술을 먹고픈대로 다 마시면 데려다준다는 생각이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지나. 말과 행동이 너무 달라도 다른게 아닌가 말이다.

행동, 행동이 중요하다 그 말이다. 자신의 생각, 의지, 욕망을 나타내기 위해서라면 말만으로는 안된다. 그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 날 데려다주고 싶은 그의 마음이 설사 진심이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는 나를 데려다주지 못했다. 남은건 그가 나를 데려다주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남아. 거기다 대고 내가 '그의 마음만은 진실했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그렇게 술을 마셔서는 안되었다.


그는 진심으로, 한 점의 거짓없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을 수 있다. 꿈의 그 단편적 상황만으로 그가 나를 왜 데려다주고싶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나를 데려다주고자 했다면 거기에는 그의 어떤 목표, 의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마음을 보이겠다는 생각.


1. 지난번에 신세진 것도 있으니 집에 데려다주면서 고마움을 표현하자.

2. 늦은 밤길 여자 혼자 가기 무서우니 내가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자.

3.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둘만 있을 때 하자.

4. 한껏 나를 어필해서 가급적 섹스를 하자.


뭐가 됐든 그러니까 목표가 있었을 거라는 거다. 의도. 그러나 그는 술을 마셔버렸기 때문에 결국 자기의 의도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취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었다. 취해서 횡설수설,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의도가 2번이었다면 휘청거리는 몸짓으로 누굴 보호해. 치한이 시비라도 걸면 주먹질이라도 할 수 있겠냐. 4번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잔뜩 취해가지고 발기는 되겠냐? 쓰러지기나 하겠지. 의도가 뭐였든 아무것도 못한다고, 아무것도.

그러나 술을 누가 마셨나? 자기 자신이 마신 거다. 자기에게 술을 누가 부었나? 자기가 부었다. 그렇게 취하게 만든게 누구인가? 자기가 그런 거다. 결국 집에 데려다주지 못한건 누구 탓인가? 자기 자신이다. 진짜 세상 제일 싫다. 말 해놓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재수없어.



연애상담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이미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면, 사랑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면 상담이 필요 없죠. 또 상담을 해 봤자, 자신이 변하든 상대가 변하든 해야 하는데, 그게 상담으로 가능한가요? 자기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 저도 연애 상담을 많이 받는데, 실은 정보를 제공할 뿐이에요. 좋게 끝내고 싶다? 좋으면 왜 끝나겠어요? 상대방의 진심? 그런 건 없어요. 모든 것은 행위가 말해줍니다. 행위로만 판단하면, 의외로 인생이 편해집니다. 쓸데없는 기대와 고민이 사라지니까요. -정희진, 2015.04.29 경향신문 中


출처: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150429191012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




꿈에 나온 저 언행불일치 남자가 내가 아는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저렇게 취해서 헤롱거리는 거 진짜 내 타입 아니라서. 누군지 모르겠지만 꿈에서도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잔뜩 취해서 네가 너를 데려다줄거야! 하는데 꼴보기 싫다고 생각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데려다준다고 말했으면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데려다주는 걸 행동으로 옮겼어야 해. 이 미련한 놈아. 으이그..별로야 진짜.

천개의 진심을 꾹꾹 눌러담았다고 천 번 말해보았자 데려다주지 않은 행동만이 남았다.


갑분꿈속남자욕하기.... 인생이여.....




어제 퇴근길에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8월 도서인 '캐슬린 배리'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읽으면서 갔다. 지하철에서 읽는데 와 너무 좋은 거다.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나는 지금 매우 피곤한 바, 씻고 바로 잘게 뻔해. 조금만, 조금만 더 읽다가자, 하고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 근처의 까페로 쏙- 들어갔다. 사이렌오더로 그 뭣이냐... 그 민트맛 나는 티..를 주문하고서는 자, 책을 읽자고 펼쳤다. 어떤 페이지는 숫제 한 장 전체에 밑줄을 긋고 싶은, 그런 책이다.


















한시간은 읽어야지 마음 먹었는데 까페 안이 너무 추워서 한 30분 있다가 나온 것 같다. 히히히히히.



그리고 어제는 책들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생일이라고 또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는 이유로, 아무튼 별별 이유로 사람들이 책을 보내줘서, 어제 내가 주문한 것까지 총 네 개의 알라딘 박스가 내게로 왔고, 저 책들 중에서 6권이 선물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생일 좋아. 생일 짱이야. 매일매일이 생일 같아라. 책 선물 넘나 기분 좋은 것...





그나저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 디게 두껍네...



아무튼 언행불일치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자. 딱 싫어, 딱.

뭐, 나도 다시태어나자는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있지 않긴 하지만... 음... 킁킁...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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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8-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이거 정말 꿈 맞아요? 꿈 디테일 돋네... ㅋㅋㅋㅋㅋ
(왠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4번일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생일선물로 받은 책들이 다 엄청 좋은 책이네요.선물하신 분들 안목이 휘유~ +_+

다락방 2020-08-14 10:16   좋아요 0 | URL
몇 번이어도 다 한심하지만 4번이면 진짜 더 한심하죠. 술 잔뜩 취해서 어떻게 섹스를 해요. 지 몸 하나 버텨내지를 못하는데. 한심하기 짝이없는 언행불일치 새끼에요. 꿈속의 남자한테 분노 터지네요 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분노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슴에 화가 많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국 섹스를 못해서인가?)

네, 다 좋은 책들이라서 또 초조해요. 아 이거 언제 다 읽지, 이제 진짜 책 그만 사자, 이 책들 다 언제 읽지, 뭐부터 읽지 이러면서 초조해요. 아오 성격 진짜 빡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0-08-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침부터 웃습니다.

다락방 2020-08-14 13:44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 안녕하세요, 가슴 속에 화가 많은 다락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