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고난의 한주였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난 한 주는 더했다. 손정우는 숱한 아동성착취물이 가득한 사이트를 만들고 또 영상 제작까지 하였음에도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뒤 석방되었고, 성폭력 가해자인 안희정의 모친 장례식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두루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유죄를 받고 감옥에 있어야 하는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이나 유력한 사람들을 장례식에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 광경을 뉴스로 지켜봐야 할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고소까지가 지난 한 주 일어난 일이다.


물론 이런 굵직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런 대형 사건들 사이사이로 늘 있어왔던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교사가 학교 여자화장실에 불법촬영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했던 것도, 다투던 여성을 살해한 일도, 술취한 여성을 끌고 가 강간한 남성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일도 있었다. 일주일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내 실수다. 대형 사건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피해자들에게는 평생을 안고 갈 트라우마가 될것이고 마찬가지로 똑같은 고통일 것인데.



손정우에 안희정에 박원순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멘탈을 나가지 않도록 붙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지난 한 주 내내 멘탈을 붙잡으려 노력해야 했고, 그러다가도 아차 싶으면 멘탈이 나가버려서 눈물이 차올랐다.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자신의 멘탈을 붙잡고 있을지 너무나 걱정되었다. SNS 에서는 다들 서로에게 격려하고 힘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연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지은입니다]는 그런 연대의 표시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지은이 쓴 [김지은입니다]는 내가 전혀 읽고 싶지 않은 류의 글이었다. 그래서 내내 미뤄두었고 애써 모른척 하려고 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그 구체적 피해를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 피해와 피해 후의 감정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울리 없을 테니까. 아마 많은 여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책 읽기를 미뤄왔을 것이고, 그리고 또 많은 여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제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내 짐작대로 처음부터 힘들었다. 저자는 마지막 성폭행을 당한 일부터 기록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퇴근 후의 피해자를 자신의 숙소로 부르고 그간의 성폭행에 대해 미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다시 성폭행을 한다. 이 일은 범죄라는 측면에서도 비난받아 마땅하고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전과 후의 배경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고약하고 괘씸하다. 범죄(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를 끝내고 나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아침에 아내가 오기로 했으니 청소를 하고 가라."(p.17) 며 청소도구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거다. 그렇게 피해자는 아내가 오기 전에 먼지 제거 테이프로 침구를 정리해야 했다. 피해자가 청소를 하는 중에 가해자는 티비를 보고 있었고, 왜 빨리 끝내고 가지 않냐며 재촉한다. 피해자는 그 날의 비참했던 상황과 마음에 대해 길지 않게 썼지만, 책 밖으로 내가 느끼는 그 비참함과 모멸감의 크기는 너무나 컸다. 사건이 드러난 후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륜관계 혹은 연인사이라고 2차가해 했는데, 설사 그들이 연인이었다고 해도 '아내 오기 전에 청소해놓고 가'라는 말은 해서는 안될 말이 아닌가. 상대를 도대체 어떻게 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연인이었어도 개쌍놈이 하는 짓이고, 연인이었어도 어떻게 그런 놈을 만나냐고 당장 헤어지라고 했어야 할 싸가지없는 일인데, 그런데 이 일이 심지어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벌어진 일이다. 상대를 철저히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책장을 덮어야 했다. 사람들 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었을까, 이게 가능할까를 생각하며 한참을 쉬어야 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가해자의 편에 서 위증을 하고 모략을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피해자의 말은 구체적 증거조차도 무시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편에 서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해주는 동료들이 있다. 그중에 영상제작에 참여했던 한 동료는 실제적으로 안희정과 함께 일하는 그 공간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한다. 수평관계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그 직장 내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잘 알면서도 왜 수평적이라고 얘기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측근들도 그렇고, (…)어떤 말씀도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잘못된 것에도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지 못했다. 보이는 직업이면 보이는 직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때로는 들어주셔야 하는데 듣지를 않았다. 제일 중요한 건 도지사가 불편하지 않은 거. 도지사가 편하게 일하는 것. (…) 마이크 차는 거 하나 말하지 못했다. 3초면 차는데, 다들 무서워하면서. 왜 이제 와서 수평적 분위기였다고 우기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 안희정은 우아하게 품위 있게 사람 좋게 민주적인 정치인으로 있는 동안 우리는 모든 스텝이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하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영상 제작 직장 동료의 발언) -p.205



민주주의, 젠더, 소통을 강조했던 사람이 사실은 민주주의, 젠더, 소통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다. 대외적으로 부르짖는 가치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했던 일들-가족과 직장 동료들-은 자신이 추구한다고 말해오는 가치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드러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안희정의 피해자는 김지은만이 아니었는데, 이미 충남 경찰청장, 검사장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안희정을 보면서 어떻게 자신의 피해를 드러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체념 말고는 답이 없었을 것이다. 이 싸움은 누가 봐도 이기는 쪽 지는 쪽이 분명하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성들이 도덕 코르셋을 가장 먼저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에 대한 믿음은 도덕 코르셋의 가장 강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김지은은 성폭행을 당하고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말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말을 믿었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믿었다. 안희정 주변의 사람들, 안희정의 팬들은 민주주의를 말하는 안희정을 믿었고, 성평등을 말하는 안희정을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피해자에게 폭행으로 되돌아왔고 2차 가해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너무 잘 믿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말했었다. '오빠 믿지라는 말을 절대 믿지마' 라고. 오래전부터 그런 말도 무수히 해왔다. '이 남자는 달라' 는 없다고. 다른 남자는 없다. 이 남자나 저 남자나 다 똑같다. 안희정이 젠틀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그걸 부지런히 챙겨주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트빨 때문에 자기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고 싶지 않았던 사람, 때문에 자기 옷에 굳이 주머니까지 만들어야 했던 것은 수행 비서의 몫이었다. 




재판이 끝났다고 해서 김지은이 에전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자신이 당한 성폭행을 폭로하고 난 뒤로 그녀는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고 죽을 생각도 했다. 매일 아팠고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외출할 때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였다. 낯선사람을 경계하게 됐고 핸드폰의 문자메세지 알림음에도 위축됐다. 돈벌이를 할 수 없으니 굶는 날들도 많았다. 연대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챙겨주고 찾아와주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지은이 원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스스로 사회에 나가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그녀를 돕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책을 사고 읽는 일이 그 중에 하나가 될터였다. 인세가 들어오는 것은 경제적 도움이 될것이고, 책을 읽는 행위는 가해자쪽이 퍼뜨린 숱한 유언비어들로부터 진질을 구분해낼 수 있는 일이 될것이다.



놀랍고 다행스럽게도 김지은은 살아갈 일을 찾는다. 돈벌이도 할 수 없고 위축되는 상황에서 성폭력센터에 봉사하러 갔다가 그 일에 대한 교육을 받기로 결심하고 이수하는 거다. 



활동가의 제안으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듣기로 결심했다. 교육 접수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접수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매일 같은 공간에서 수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게다가 약 4주간 꽉 짜여 있는 커리큘럼으로 100시간을 공부하는 일이, 일상조차 어려워 병원을 오가던 내게는 벅찬 일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교육에 참가했다. 

뜨거운 여름 시작된 교육 첫날에는 강한 긴장으로 몸이 너무 아팠다. 온몸이 굳은 채로 수업을 들었다. 사실 교육 일주일 전부터 걱정에 내내 잠을 못 자기도 했다. 둘째 날에는 수업을 듣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했다니,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다시 나로 살고 있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다. 피해자가 아닌 학생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p.314



쉽지 않았을텐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자 마음을 먹고 교육을 듣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어 보려는 저자를 보는데 같이 힘이 났다. 앞으로도 힘을 내서 살아주기를, 단단하게 살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됐다. 




몇해전 직장내 회식이 있었을 때다. 직원 한 명이 음식이 나오기 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에 임원은 그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 '식탁 매너가 없다'는 거였다. 어디 예의를 모르고 식탁 앞에서 핸드폰을 보느냐며 소리치던 임원은, 그에게 다른 것들까지 끄집어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이 찌고 담배까지 피면 빨리 죽는다, 운동을 좀 하라는 거였다.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직원은 고래고래 임원이 지르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고, 그런 분위기가 다른 직원들까지 달가울 리 없었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다. 회식하는 자리가 얼른 끝나기를 나를 포함해 모두가 바랐다. 임원은 다같이 먹자고 했다. 그 때 음식을 먹는 우리들에게 식탁 매너가 없는 건 누구였을까? 직원을 향해 온갖 소리를 지르고 밥 먹는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그 임원은, 스스로 식탁 매너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숱하게 드러나는 성폭력 사건 때문에 이 세상은 답이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러나 이제는 참지 않고 드러내 말하려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바뀌고 있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피해자에게 연대하겠다는 발언들에 호통치는 늙은 남자 정치인들이 있지만, 피해자에게 연대하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들도 있고 언론사 기자들도 있다. 피해자에게 연대하고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데, '젊은' '여성으로서' 세상의 손가락질과 호통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아직도 싸가지없고 예의 바르지 못한 사람들로 호명되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이 멘탈을 잡을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우선 나부터 멘탈을 잡는 일이 중요한데, 이것 저것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시도하고 있다. 지극히 사적으로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일이 있었고, 엄마를 모시고 미술관에 가는 일이 있었다. 엄마는 평생 미술관 한 번 가보지 못한 분이셔서 이번 기회에 함께 가자고 모시고 갔다. 물론 가기 전에도 '돈 내고 가야할텐데 안가' 라고 하셨고 나는 비싸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거듭 제안해야 했다. 미술관에 가서는 너무 좋아하셨고 다녀와서는 그런데 데려가주어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운동도 방법이었다. 수시로 눈물이 차오를만큼 고통스러운 한 주였는데, 토요일에 빈야사 한 시간을 하며 땀을 흠뻑 흘렸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우리는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시위에 나가야 할 것 같아 시위를 나갔었다면 어떤 순간에는 후원을 해야 할 것 같아 후원을 했다. 이번 손정우 석방을 보면서는 여성의당에 후원금을 보냈고, 지금은 여성의당 권리당원이 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각자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고 무너질 것 같다면 뉴스나 SNS에서 멀어지는 것도 답이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나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일들도 모두 다 염두에 두면 좋겠다. 시위를 나가는 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며, 김지은이 이 책을 썼던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버티는 방법이 될것이다.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이 모든것들이 한데 몰려와 무너질 것 같다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써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더 위안이 된다. 내 감정을 토로하고 정리하는 일이 글을 쓰면서도 가능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걱정한 건, 김지은이 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김지은은 친구들과 식구들 직장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응원을 받는다. 일하는 내내 너무 성실했다는 것을 증언하며 그녀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그건 너무나 다행한 일이지만,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옆에 있어줄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김지은은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성실히 일했던 사람인데, 만약 성실하게 일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친하게 지낸 동료도 없다면.. 그 점에 대해 계속 걱정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김지은입니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책이다. 책속에서 김지은은 여성운동 활동가들과 단체의 도움을 받는데, 그런 일들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는 이 책을 읽고 아는 것이 훨씬 나을테니까. 일상이 무너지는 다른 피해자들이 결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너무 똥같다고 절망하게 되지만, 그 똥같음을 드러내주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용기를 내는 여성들, 그리고 그 여성들의 곁에 서고자 하는 연대자들. 대한민국의 정치권이나 법조계에 있는 많은 기득권의 남자들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피해자들과 피해자에게 연대하고자 하는 이 많은 여성들은 더이상 착해빠지기만 하지도 않고 참고있지만은 않으리라는 것,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고자 한다는 것, 꼰대의 지적질에 맞서서 으르렁 거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도 투표권이 있다는 것. 


눈물을 삼키고 멘탈을 잡기 위해 이를 악무는 시간들이 있었고 분명 내가 느낀 건 절망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조금씩 안게 된다. 무력함을 느끼는 많은 여성들이 용기와 희망을 결국은 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민주주의자 안희정의 정치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던 내게는 이런 괴리가 고통스러웠다. 대선 경선 당시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겠다는 연설을 하며 환호받았지만, 정작 그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노동 시간에는 한계가 없었다. 안희정의 수행비서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했고 휴일도 거의 없었다. 한밤중이라도 지사의 메시지에 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호된 질책을 들었다. 고통스러웠던 일은 노동자로서 내가 할 이유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희정이 아들과 가는 요트 강습을 예약하거나 의약품을 대리 첩아받아 전달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 P105

이곳에서 나는 암묵적 제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안희정의 일부 측근들은 모임이 있을 때면 대부분 안희정의 좌석 옆에 여성들을 앉게 했다. "지사님은 여자밖에 몰리." "지사님 가까이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좋아져." "지사님의 기쁨조가 되고 싶어도 우린 남자라서 못 하니까 너희가 최선을 다해." 여성 참모들에게 그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 P107

나의 미투로 세상의 무엇이 바뀔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벗어나고 싶었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고 싶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잘못을 하면 있는 그대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명확히 하고 싶었다. 한 인간의 힘으로 다른 이의 인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P118

나의 미투 이후, 안희정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백하는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가 있었다. 이 두 사례 외에도 추가로 접수된 피해 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원이 노출될까 두려워, 마음으로 지지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사만 밝힌 분들이었다. 다른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들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동안 우리는 이렇게 숨죽이며 살고 있었다. 가해자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불쾌한 터치가, 알 수 없는 성애적 말과 행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고발하지 못했다. 잠재적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야기될 상황을 두려워했고, 만약 그것이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피해자인 나만이 홀로 구겨지고 버려질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어려워했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작은 창을 통해서 말이다. 그 두려움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P159

측근들도 그렇고, (…)어떤 말씀도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잘못된 것에도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지 못했다. 보이는 직업이면 보이는 직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때로는 들어주셔야 하는데 듣지를 않았다. 제일 중요한 건 도지사가 불편하지 않은 거. 도지사가 편하게 일하는 것. (…) 마이크 차는 거 하나 말하지 못했다. 3초면 차는데, 다들 무서워하면서. 왜 이제 와서 수평적 분위기였다고 우기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 안희정은 우아하게 품위 있게 사람 좋게 민주적인 정치인으로 있는 동안 우리는 모든 스텝이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하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ㅇ영상 제작 직장 동료의 발언)- P205

그 팔찌를 차게 되면, 우선 내가 사는 곳을 경찰에 공유해야 했고 해당 파출소에서 그 주변을 지속적으로 순찰하게 된다. 그 팔찌를 통해 내 위치가 작은 단위로 특정되어 실시간으로 경찰에 전송된다. 나를 보호하는 그 방식이 오히려 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노출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위험한 상황에 처해 버튼을 눌렀음에도 정작 오작동이라도 난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보호 장치만이 유일한 안전이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장치 차는 것을 고민할 때 보호시설에서 이미 그것을 손에 차고 있는 다른 피해자를 본 적이 있다. 보호시설의 그 피해자는 미성년자였고, 가해자가 계속해서 찾고 있어서 그 위험 때문에 팔찌를 차고 있었다.- P252

1심 재판부는 "업무상 수직적, 권력적 관계로 인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지위·직책·영향력등 위력이 존재했지만 행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P294

가해자에 대한 공포는 평생 따라다닌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라고 했다. 암울했다. 재판을 진행하며 2차 피해를 심하게 당했다. 가해자 측과 가해자 변호인으로부터, 직장 동료들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숱한 편견으로부터 공격당했다. 가해자 측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논리와 패턴은 대부분이 흡사했다. ‘피해자다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SNS를 모두 털어서는 왜 이날 이렇게 웃었냐며, 왜 아무렇지 않게 일했냐며 공격했다. 피해자의 삶은 잘게 분절되어 해체당했다. 성폭력을 겪었고, 문제를 제기했을 뿐인데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겪는 부당함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피해자는 회사와 학교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이게 내가 만난 미투 이후 피해자들이 겪는 진짜 현실이다.- P296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채 깨닫기도 전에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죽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상황 파악과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안희정을 제어해줄 더 높은 사람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나의 대응으로 인해 어떤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충남도청의 성 고충전담 직원은 6급 주무관이었다. 안희정은 수시로 충남경찰 청장과 지역 검사장들과 통화했다. 대체 누구에게 신고를 해야 해결해줄 것인가? 아무도 떠올릴 수 없었다.- P299

활동가의 제안으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듣기로 결심했다. 교육 접수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접수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매일 같은 공간에서 수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게다가 약 4주간 꽉 짜여 있는 커리큘럼으로 100시간을 공부하는 일이, 일상조차 어려워 병원을 오가던 내게는 벅찬 일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교육에 참가했다.
뜨거운 여름 시작된 교육 첫날에는 강한 긴장으로 몸이 너무 아팠다. 온몸이 굳은 채로 수업을 들었다. 사실 교육 일주일 전부터 걱정에 내내 잠을 못 자기도 했다. 둘째 날에는 수업을 듣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했다니,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다시 나로 살고 있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다. 피해자가 아닌 학생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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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3 2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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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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